책, 조선 사람의 내면을 읽다 - 책이 읽은 사람, 사람이 읽은 책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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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람을 불러 세운다

간혹 서재를 두리번거리곤 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그 책과 나와의 인연을 떠올리기도 하고, 책 속의 주인공들과 만나 책으로는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며,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은 편안하지고 가슴 가득 따스한 기운이 전해진다. 나름대로의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는 그럴싸하니 좋은 시간이다. 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은 사람이 만든다. 책을 만드는 사람의 가치관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고스란히 반영되기 마련이다.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앞선 시대와 소통하는 것이다. 우리가 책에 집중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리라. 보통의 경우 책을 통해 저자와 내용을 보게 된다. 하지만 역으로 책이 만든 사람을 본다면 어떨까?


설흔의 ‘책, 조선 사람들의 내면을 읽다’는 저자의 '책의 이면 : 책을 읽다 사람을 읽다'(2012. 역사의아침)의 개정판으로는 흡사 이러한 경험을 실제로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 인물과 특별한 책의 인연을 찾아 사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내 사람과 책 사이 소통을 매개로 사람들의 속내를 꺼내고 있다. 여기서 다루는 책으로는 등 인물이 직접 저술한 책도 있고 그가 평소에 가까이 두고 읽었던 책도 있다. 스물세 명의 사람들과 스물네 권의 책이 그 주인공으로 저자 설흔의 맛깔스런 이야기 구성이 돋보인다. 책과 사람의 상호작용이 참으로 신선한 접근이다.


근사록과 조광조, 능엄경과 심노승, 교우론과 홍대용 등과 같이 사람에게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던 책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의 추적하고, 박제가와 북학의, 최부와 표해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 처럼 저자와 책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나’를 통해 사람의 심사를 추론해 가고 있는 것과 한편으로 김시습과 매월당집, 이문건과 양아록, 신류와 북정일기, 소혜왕후 한씨와 내훈, 김양기와 단원풍속도첩, 김정호와 청구도와 같이 책을 저술한 사람이나 그 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책과 관련되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흔적을 찾아본다.


서재 책장에 가만히 있는 책들이 그 책의 주인인 나를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다면 그 책과 주인 사이는 따스한 공기가 흐를 것이지만 존재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책들은 무슨 시선으로 바라볼지 의문이다.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선택한 책이기에 내 생각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그 책들의 모음은 결국 내 자신의 관심과 생각을 대변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책장을 둘러보며 나의 관심과 생각을 반영한 책을 통해 자신을 볼 시간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와같은 저자의 행간읽기를 통한 사람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매개하는 방식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기에 역사인물과 시대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내가 책을 본다’라고만 생각하며 책을 대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역으로 책이 사람을 본다는 시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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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하루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대 생각 넣을 수 있어 
비 오는 날 저녁을 좋아합니다 
그리움 담고사는 나는... "


*윤보영 시인의 '가슴에 내리는 비'라는 시의 일부다. 이 시는 "내리는 비에는/옷이 젖지만/쏟아지는 그리움에는/마음이 젖는군요/벗을 수도 없고/말릴 수도 없고"라며 처절하게 열어간다. 그리움에 젖지도 못하는 마음이 내리는 비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이끌려 가고만다. 시의 힘인지 비의 끌림인지도 분간할 수 없다.


스스로 진 멍에가 버겁고,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서 더 무거운 시기를 건넌다.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추워서 억지로 마알개진 정신으로 건너야할 이 겨울에 봄날 아지랑이처럼 몽개몽개 피어나는 비라니 도대체 어쩌자고 이럴까 싶다.


비로 내려 가벼워진 구름이 산을 넘어와 안개로 변하더니 헐거워진 옷깃 사이로 자꾸만 파고 든다. 속절없이 당할 판이다. 별수없이 옷깃을 여미고 마음깃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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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 먼 산들이 모여 골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를 안개가 드리웠다. 화순 백아산에서 남쪽을 바라본다. 그 품이 넉넉하고 아늑하다.

어쩌면 산에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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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
이방원은 알았을까. 칡덩굴처럼 서로 얼켜서 살아보자고 '하여가'를 지어 정몽주를 설득했던 이방원은 칡의 생리를 알고 한 말이었을까. 어쩌면 칡의 생리를 너무도 잘알아 서로 얼켜지내다가 결국엔 초토화시켜버릴 심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칡은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서 사이좋게 살지 않는다. 어느 곳이든 일단 자리를 잡으면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감아 순식간에 점령해버린다. 결코 양보라는 것이 없다. 공생共生이라는 숲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바로 칡이다. 하여, 이른바 '칡과의 전쟁' 중이다.


그렇더라도 칡은 사람들의 일상에 고마운 식물이었다. 뿌리, 줄기, 잎, 꽃 모두 요긴하게 쓰였다. 갈근葛根이라 불리는 칡뿌리는 흉년에 부족한 전분을 공급하는 대용식이었으며, 질긴 껍질을 가진 칡 줄기는 삼태기를 비롯한 생활용구로 널리 이용되었고, 크게는 다리와 배를 만들고 성을 쌓은 데도 활용되기도 했다.


꽃은 7~9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자루에 홍자색 꽃이 많이 달려 피는데 큰 꽃잎의 가운데 부분은 황색이다. 꽃에서 칡뿌리의 향긋한 냄새가 난다.


일이나 인간관계가 까다롭게 뒤얽혀 풀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가 까다롭게 뒤엉켜 있는 상태에서 온 말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관계가 어긋나기 마련이다. 까다롭게 뒤얽혀 대상을 힘들게하는 모습에서 연유한 듯 '사랑의 한숨'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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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서재 책장을 둘러보는 사람들 중 조심스럽게 책을 빌려보기를 청하는 경우가 있다. 기꺼이 응하지만 돌아오리란 기대는 크지 않다. 그렇게 책을 빌려간 분이 책을 돌려주며 책 사이에 담아온 물건이다.

잘 다듬어진 나무의 결이 살아있다. 얇고 매끄럽고 단단하다. 가볍고 부드러워 손에 착 감겨든다.

하여, 책을 읽는 동안 손에서 떠나지 않은 놀잇감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책갈피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마음이 가는 책갈피를 만난적이 없다.

완물상지玩物喪志라고 했던가. 쓸 데 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소중한 자기의 의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상지喪志하지는 말자.

썩 마음에 드는 완물玩物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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