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봄맞이'
농부들의 봄맞이는 지난겨울 거름을 주문하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날이 풀리고 논밭갈이로 분주해진 손길에서 봄의 절반은 지나간 셈이다.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몇해가 지나갔건만 내겐 여전히 꽃소식으로 봄을 맞이한다. 이렇게 다른방식으로 매번 봄을 맞이한다면 이방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채마밭 가는 시끌벅적 요란한 소리로 아침을 깨우더니 오늘은 그 터전을 안개가 포근히 감싸고 있다.


난 건너편 소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풍경으로 빠져드는 이방인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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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선씀바귀'
초록으로 변해가는 들판 앙증맞은 하얀 봄 들꽃들 사이로 유독 주목되는 노오란 녀석이다. 봄맞이, 꽃마리, 벼룩나물들보다는 훨씬 큰 꽃이다. 크다고 해봤자 신형 십원짜라 동전 크기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햇볕이 잘 드는 풀밭이나 길가에서 자란다. 선씀바귀를 닮았는데, 노란 꽃이 핀다고 노랑선씀바귀다.


다른 씀바귀처럼 잎과 어린순을 생으로 쌈 싸 먹거나 데쳐서 무치기도 한다. 뿌리째 캐서 무치거나, 김치와 장아찌를 담기도 한다. 쓰지 않은 나물과 섞어 먹으면 맛이 잘 어우러진다. 즙을 내어 먹기도 한다.


들판에서 흔하게 자라는 습성이나 꽃의 모양과 색감에서 비롯된 듯 '순박함'이란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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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나를 구하러 왔다'
-설흔, 창비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열하일기 외사', '내 아버지 김홍도', '책의 이면',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등으로 만난 작가 설흔의 글에서 깊은 글의 맛과 멋을 알았다. 일부러 찾아서 보는 작가의 다른 책이다.

"작가는 그저 쓰는 사람이고, 추측하고 고민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얼마나 솔직하고 당당한 말인가. 옛사람들이 남긴 글의 행간에서 작가가 읽어낸 사람의 마음을 옮겨 적는다. 여기에 작가의 사고의 힘이 녹아 있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한 흡입력을 가진다.

'연암이 나를 구하러 왔다'는 연암 박지원의 글에서 마음의 치유의 길을 찾는다. 삶이 힘겨운 이들에게 전하는 '방 안에 잘 틀어박히는 법, 혹은 밖으로 나오는 법'에 대한 설흔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암의 글과 설흔의 행간 읽기의 절묘한 어울림의 세계다.

스스로를 방에 가둔 '미노'는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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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봄'

겹으로 쌓인 그리움의 시간을 헤집고 봄볕이 들어온다. 
그 봄볕에 밀려난 시선이 자연스럽게 닿는 곳,
그곳에 그대가 있다.


그대의 봄맞이도 이와 다르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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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나물'
꽃다지, 봄맞이, 꽃마리 등 봄꽃의 절정이 여기에 있다. 작고 여리고 앙증맞은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는 들꽃들이다. 눈높이를 낮추고 눈을 마주치면 봄햇살처럼 환한 미소로 웃어준다.


습기많은 논바닥 등지에서 해를 넘겨사는 한해살이풀이다. 식물체 전체가 부드럽고 털이 없다. 지표면 가까이에서 분지해 퍼지며, 지표면을 덮을 정도로 무리를 이룬다.


꽃은 4~6월에 백색으로 피며, 꽃잎이 5장이지만, 깊게 갈라져서 마치 10장으로 보인다. 꽃잎이 꽃받침보다 약간 길거나 같다.


건조한 곳에서는 잠시도 살지 못하는 벼룩나물은 어린순을 겉절이를 하거나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다. 한방에서는 천봉초라 하여 약용한다.


꽃과 잎이 워낙 작아서 벼룩나물이란 이름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쁜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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