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요등'
여름이 무르익어 가을로 가는 길목 언저리 즈음에 유독 향기로 존재를 알리는 식물들이 있다. 비오는 날이나 달밝은 밤엔 더 진한 향기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향기는 사람마다 기호에 따라 차이가 있어 호불호가 나뉘지만 은근히 전해지는 이 향기가 그리 싫지 많은 않다.


길쭉한 원통형에 붉은 속내로 가득 채우고서 혼자서는 부끄러워 무리를 지었나 보다. 꽃통의 윗부분은 다섯 개로 갈라지고 하얗게 핀다. 안쪽은 붉은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고, 제법 긴 털이 촘촘히 뻗쳐 있다.


계요등의 계는 닭을 의미한다. 닭의장풀이나 닭의난초 등 어쩌다 닭과 관련된 이름을 얻었을까. 사는 곳이나 모양, 냄새 등으로 닭을 연상하는 무엇에 주목한 결과다. 계요등은 잎을 따서 손으로 비벼 보면 약간 구린 냄새가 난다. 이 냄새가 양계장에서 풍기는 진한 닭똥 냄새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작고 예쁜꽃이 옹기종기 모여 가을로 가는 길목에 향기를 전하고 있다. 혹, 가을내음이 여기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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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가 있는 국경
김인자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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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마음속에 함께 머무는 시간

삶 자체가 여행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일상이 오늘의 환경과 조건에 묶여 마음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다른 이의 여행이 주는 맛으로나마 내 삶을 음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이 맛에 풍미를 더하여 내 삶의 맛으로 가져오는 것은 다 내 몫이기에 여행에세이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내 몫이다.

 

여행의 본래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할까아니 본래 가치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기나 할까사람마다 제 가치관에 의해 사물을 대하고 그것에 의해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다르듯 여행 역시 같은 시각으로 본다면 본래적인 가치는 없을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찾는다면 그 가치의 본래 목적을 사람에 두고자 한다목적을 어디에 두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여행이라는 길 위의 시선을 늘 사람에게 있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관령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책으로 만나 독특한 시각에 매료되었던 김이자의 이 책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은 그 여행의 목적에 충실한 여행에세이로 보여 진다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저자의 시선이 닿는 중요한 곳에 사람이 있다그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어가 그들의 삶이 가진 가차를 발견하고 인정해주는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경계의 범주를 넘어선 아이들을 향한 연민의 눈빛에서 어쩌면 삶의 종착역에 있을지도 모를 늙은이들의 주름진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시선에는 한결같이 그들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따스함이 있다그들 모두는가진 걸 모두 주고도 아깝지 않은 이들이다.

 

이유 없이 피는 꽃이 있을까문득 피는 꽃이 있을까.” 수많은 문장 중에 다음 책장으로 넘어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문장이다낯선 곳낯선 풍경낯선 사람들 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간 것을 여행으로 본다면 그 여행의 모든 것을 이루는 중심에 바로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하고 또 있기에 가능했던 그 모든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싶다이 시선으로는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 이상 여행지의 이방인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일한 사람으로 삶의 여정이라는 한 곳을 바라보고 묵묵히 걷는 여행자들인 것이다.

 

누구나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삶'을 꿈꾼다이 꿈에 여행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치 큰 것이라는 점은 문지방을 넘어 길을 나서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저자의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대상에 그치지 않고 자기 스스로에게로 귀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여행이 준 가장 큰 혜택은 아니었을까.

 

언제부턴가 변화보다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이기를 바란다. '어제 같은 오늘오늘 같은 내일'이길 바라는 것이 그 마음이다여행과 같은 일상에 더 이상의 변화를 수용할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결코 돌아갈 수 없는 어제와 미리 당겨 쓸 수 없는 내일에 주목하여 오늘이 주는 의미를 소홀하게 대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다.

 

셀 수 시간과 공간에 홀로 우뚝 서서 스스로를 돌아봤을 여행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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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습니다.

오늘도 냉장고를 가득 채웠습니다.
내가 배터지도록 먹은 밥이 아이의 밥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것으로 부족해 남은 음식을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곳간에 양식이 넉넉한데 내일 다음 달 먹거리를 걱정했습니다.
읽지도 못할 책을 다섯 권이나 주문했습니다.
우리 문 앞에 실례를 했단 이유로 옆집 개를 미워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개로 배고픈 아가 길냥이를 외면했습니다.
연둣빛 싹을 밟으면서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를 5초도 못 참고 끊었습니다.
손빨래를 하자해놓고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게으르자 하면서 바빳고 바쁘자 해놓고 게을렀습니다.
페절한 친구에게 감사는커녕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회사를 쫓겨난 친구를 위로해 주지 못했습니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후배에게도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골목에서 제 어미를 욕하는 아이를 방관했습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를 때도 나는 나를 못 본 척했습니다.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1분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내 아이를 챙기느라 하늘같은 부모님을 잊었습니다.
햇살이 눈부시다는 이유로 하늘을 보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탓했고 들판의 풀잎을 시샘 했습니다.
꽃을 보고도 웃지 않았습니다.

*김인자 시인의 세계여행 포토에세이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에 나오는 글이다. 문지방을 넘어 걸음을 옮겼던 사람의 사색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햇살이 눈부셔 하늘을 자주 보고, 꽃을 보고는 자주 웃는다. 이것이 내게 의미 있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문지방을 넘어 걸음을 옮기는 일은 내 마음을 가둔 벽에 틈을 내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저자와 마음으로 동행하고 싶었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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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가리'
골목이나 숲길을 지나다보면 다소 이상한 향기에 이끌려 두리번거리게 된다. 요사이 흔하게 볼 수 있는 계요등과 박주가리가 주인공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겐 그리 싫지 않은 냄새다.


흰색 또는 연한 보라색으로 피는 꽃은 털이 유난히 많다. 별도 닮았고, 불가사리도 닮았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하는 듯 신기하다. 덩굴로 무리지어 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열매는 길고 납작하며 겉이 울퉁불퉁하다. 씨는 흰색 우산털이 있다.


박주가리라는 이름은 박처럼 생긴 열매가 흰색 털을 달고 층을 이루며 매달려있는 모습에 연유하여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장작 따위를 차곡차곡 쌓은 더미'를 뜻하는 '가리'란 말을 덧 붙여 박주가리라고 한다. 다른이름으로는 박조가리, 새박덩굴, 노아등, 뢰과, 비래학, 학광표, 천장각, 작표 라고도 한다.


가을부터 한겨울까지 열매가 벌어지며 날아가는 씨앗이 더 주목되는 식물이기도 하다. 깃털을 단 씨앗이 바람에 의지해 새 생명을 꿈꾸는 비행은 꽃말처럼 '먼 여행'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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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럽다. 맑은 소리의 경쾌함이 눈으로도 보이는 양 그 맑음이 보는 이의 마음으로 전해져 소나기를 닮아가나 보다. 발치엔 빗방울 소리가 머물고 먼산엔 구름이 가볍게 산허리를 감싸고 돈다. 저 들판 어디 나무그늘엔 소나기를 피해 잠시 숨을 고르는 생명이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NlxSniYfqWY

오늘은 숲길이 아니어도 좋다. 벼이삭 패는 남도땅 허허벌판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음악과 함께한다. 빗소리와도 저절로 어우러지는 거문고 가락에 고인 빗물을 밟는 발걸음에도 가락이 스며들었다.

번개에 천둥으로 요란스럽게 점점 굵어지며 정도를 더해가지만 이내 그칠 것을 아는 소나기라 마냥 바라보는 마음에 여유가 있다. 머리에 쓴 우산을 가만히 내려도 좋을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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