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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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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공간 - 집
시골 농가주택을 구입하여 수리중이다. 시골생활을 하기위해 수년전부터 적당한 집을 찾는 과정에서 주목했던 것이 한옥에 대한 관심이었다. 한옥이라고 해서 덩치 크고 오랜 역사를 가진 대가집은 아니었다. 우리 전통이 살아있으면서도 거대한 건축물의 위세에 의해 그곳에 사는 사람이 소외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집이다. 수도 없이 돌아다니면서도 적당한 집을 찾지 못하다가 30여 년 전에 지어진 한옥을 발견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구하게 되었다. 

기와지붕에 소나무 서까래와 흙벽 그리고 판자로 만들어진 마루가 온전하게 보존되어진 집이기에 3여년 정도 비어있었지만 당장이라도 살림이 가능한 집이다. 중천장을 철거하고 보니 온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서까래와 흙으로 마감한 미장이 온전하다. 비가 새거나 떨어져 나온 흙 한줌 없이 멀쩡한 내부구조가 집을 지을 당시 집주인의 정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한옥이라는 건축의 구조가 가지는 장점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바닥과 대벽 등 아직 마무리 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수리한 이후 그곳에서 살아갈 일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

개인적인 관심이 증폭되는 시기에 접한 이 책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눈에 보이는 모습에서부터 감춰진 내부를 비롯하여 건축물을 지탱하는 기단과 초석에 이르기까지 통째로 한국의 건축물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가능하도록 구성된 책이다. 

해당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면 머릿속 상상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건축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점을 세심하게 살펴 건축에 필수적인 모든 요소를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다. 기초부터 시작하여 공간 구성, 기둥, 가구, 공포, 지붕, 마감에 이르기까지 건물 하나를 지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사진, 구조도, 평면도와 단면도, 투시도 등 수많은 자료를 눈으로 확인하며 마치 실물을 대하듯 머릿속으로 그려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료로 제시된 곳에 대한 안내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건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을 위해 건축용어까지도 알려주고 있다.

우리 눈으로 확인 가능하며 대표적인 한국 건축물을 든다면 궁궐이나 사찰 그리고 몇몇 고택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의 그러한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을 압박하는 위엄을 보여주지 않고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리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다. 이것은 저자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자연’을 ‘대우주(大宇宙)’, ‘인간’을 ‘소우주(小宇宙)’, 그 사이에 있는 ‘집’을 ‘중우주(中宇宙)’로 의미 지우며, 집은 곧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중심이었던 우리들의 생활이 급격한 서구화 산업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활의 근거가 되었던 우리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너무 익숙해서 그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지만 현대화라는 미명아래 막무가내로 서양의 것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우리의 상황이 더 큰 요인이지 않을까 싶다. 

언제부턴가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옥을 체험랄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건물의 모양이 주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조상들의 삶의 가치까지를 체험할 수 있는 내용성의 확보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고 사라져 버린 것을 복원하거나 현대인이 요구하는 편리성을 가미한 재창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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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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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을 잃어버린 권력의 선택-포장된 감정 이식
날마다 신조어가 생겨내는 세상이다. 이런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은 낫선 의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일쑤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말들 중에서 새로운 세대들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는 것에는 그리 주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전도되거나 확장 내지는 축소되기도 하여 언어의 소통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또한, 특정한 세력에 의해 목적의식적으로 강요된 단어가 있다. 이는 우리 정치 현실에서 피부로 느꼈던 현실의 문제이기에 그리 낫선 일은 아니다. ‘공산주의’라는 말이 ‘자본주의’의 대립적인 말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의 반대개념으로 사용되면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상의 자유를 말살하는 정치적 의도로 사용된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의 저자 소래섭이 주목하는 단어는 바로 ‘명랑’이라 것이다. 주목하는 대상의 상태를 표현하는 의미가 더 넓게 사용되던 말이 사람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의미가 바뀌면서 강요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용된 역사적 현실에 대한 검증을 하고 있다. 저자가 ‘명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주목하는 시대는 1930년대인 일제 침략기 조선의 경성이었다. 

식민지의 암울했던 시기는 민족적 감정이 발로되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또한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세력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신문화가 확산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는 1930년대 식민 통치와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도시 경성에는 ‘명랑’이라고 하는 특정한 감정이 총독부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총독부는 거리 청결에서 미소 서비스까지 ‘대경성명랑화프로젝트’를 실시하며 도시 곳곳을 파고들었다. 사상검열은 신문, 잡지, 음반, 영화 등의 사회 전반적 분야에서 의도적인 보급이나 변화되어가는 사회의 흐름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군국주의적 의도가 다분히 내포된 사실을 말해준다.

이렇게 일제 총독부에 의해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키려는 정책은 군국주의 일본의 정치적 의도에 부합하는 사회와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한 계산된 정책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명랑이라는 단어의 뜻이 ‘유쾌하고 활발한 기분이나 감정’ 정도를 가리키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가 대면해야 했던 식민 통치와 근대 자본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고 파악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저자는 1930년대 일제 침략기의 조선 사회를 중심적으로 살피면서도 그것에서 멈추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군부독재 시절로 대표되는 박정희 정권이후 정부의 목적의식에 의해 펼쳐졌던 사상의 통제정책이나 뒤쳐진 산업사회의 겉모습을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키려 했던 다양한 정책에 대해서도 살피고 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명랑운동회’나 ‘범도민 생활 명랑화 운동’ 등에서 보이는 ‘명랑화’가 어떤 목적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까지를 살피고 있다.

“1930년대의 ‘명랑화’는 2010년대의 ‘행복화’와 ‘쿨’이라는 레토릭으로 대체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21세기의 문화를 대변하는 코드가 된 ‘쿨한’ 감성은 실업률이 높아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결국 88만 원 세대의 ‘쿨’은 1930년대의 ‘명랑 가면’, 즉 감정 포장술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힌 말이다. 특정한 세력이나 권력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되는 정책들은 결국 도덕적 정당성 확보에 실패한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일반적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역사의 사실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며 사람들이 이렇게 ‘포장된 감정’에 의지할 때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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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6-1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쾌하고 쾌활한 단어, 명랑에 이런 깊은 의미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어릴적 명랑운동회가 꽤나 인기있는 예능프로였습니다. 전두환시절이었으니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때 사회를 받던 분이 선징당 변웅전 전 국회의원이었죠.
 
히든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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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희망을 품고 세상을 맞이하도록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이 말에 대해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떠나지 못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내가 한 사람에 대해 주목하는 무엇을 보고 그것만을 크게 생각하면서 대하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야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어준 가장 처음의 관계인 가족이라는 범주에 든 모든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런 전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라는 것 때문에 감내해야할 무엇이 있고, 그 무엇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용납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회적 관계인 사람들의 사이는 일정한 규범과 규칙이 있다. 그것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반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범주로 들어오면 그러한 인간관계에서는 기본이 되는 많은 것들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가족이기에 사회적 관계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무한 애정과 헌신이 있는 것을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존재하고 더 강화된 모습으로 표현되기 위해서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한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에 따라 다양한 규정을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을 감싸주는 울타리’, ‘쉼의 안식처’, ‘삶의 근원이 되는 힘’ 등이 아닐까 한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가족 구성원에게 가족의 의미는 다소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가, 삶의 가치가 변화된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이 아직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책 ‘히든’은 바로 그런 가족의 의미와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모든 부분에서 잘 나가며 부모의 온갖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언니와 그 그늘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동생이지만 둘 사이는 돈독한 자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한 살 차이 고등학생인 두 자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자매에게 일어난 일은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다. 

‘히든’은 열여섯 살 소녀가 영아유기 및 살인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5년을 복역 하던 중 모범수로 가석방되면서 시작된다. 가족에게 버림 받은 시간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살았던 소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미 지나간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바꿀 수도 있지만 다시 시작하는 삶은 얼마든지 자신이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말이다.

살인자로 살아가던 소녀가 가석방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일하는 곳이 서점이다. 그 서점에는 입양한 5살 난 남자아이가 있다. 이 아이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음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알게 된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강에 유기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소녀의 5년 전 이야기가 하나 둘씩 밝혀지며 한밤중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고등학생 딸아이가 임신하고도 출산할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부모,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살았던 앨리슨, 언니의 그늘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한 동생 브린, 오빠의 무책임한 행위로 인해 그 책임을 더 안은 차메인, 가족과 자식에겐 관심 이 오직 자신의 삶만을 살아간 차메인 엄마, 자식을 갖고자 온갖 노력을 하지만 불임으로 인해 결국 아이를 입양한 클레어 등 이들이 5살 난 남자아이 조슈아를 사이에 두고 가족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왜? 아이를 출산하고도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는지, 언니의 출산 과정에 참여하면서 아이를 강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동생의 선택, 동생의 잘못된 선택을 알고도 모든 것을 자신으로 일로 안고 감옥행을 선택한 언니, 오빠의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던 동생 등 등장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기를 쓰듯 담담하게 그려가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페이지를 더할수록 혼란스러웠던 사건의 실마리가 잡혀간다. 

미혼모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사회적 문제로 된지 오래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와 엄마의 사회적 존재로써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세이프헤븐 영아 보호법’ 미국의 법률적인 장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생명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도 비슷한 법률적 보호 장치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가족이라는 범주에 속하면서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와 그 구성원 간의 공감과 소통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족은 무엇이든 가능하게도 하지만 때론 가족이기에 아무것도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이 둘의 경계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드는 것이 복지사회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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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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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지금 갈게 
지금 내가 사는 도시로 유학 아닌 유학을 떠나는 자식이 눈에 밟혀 기어이 할머니를 보내고 말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간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부모님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 내내 나무처럼 살아오던 할머니는 낯선 도시에 하나 둘 적응하면서 손자가 집에 오는 시간이 궁금하여 시계 보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커다란 숫자가 박힌 시계를 마련하고 숫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몇 칠을 보낸 후 할머니는 드디어 시계에 표시된 숫자를 알게 되고 늘 그 시간에 들어오는 손자를 위해 밥을 준비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숫자는 가슴에 담아두고도 늘 안타까운 손자를 맞이하는 소중한 신호가 되었 것이다.

그 손자가 학교를 마치고 성장하여 결혼할 때까지 이어진 할머니의 도시생활은 나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했으나 늘 평생을 살아온 시골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소망이셨다. 10여년을 함께 살던 손자와 떨어져 시골로 가신 할머니는 손자가 집을 찾을 때 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곳에 대해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묻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건강을 잃어가며 정신을 놓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언제나 반기며 잡아주는 할머니의 손은 먼 나라로 가신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를 보내고 나서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으로 엄마를 대하고자 하지만 마음속 무게가 커서인지 늘 먹먹한 가슴이다. 전화통화 속에서 느끼는 목소리에서 하루가 다르게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은 아마도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내 삶 때문이리라.

이 책은 엄마 홍영녀와 딸 황안나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엄마는 자식들 몰래 평생 한이었던 글을 배우고 나서 자신의 속내를 일기장에 남겼다. 어느 날 불쑥 딸의 눈에 띄어 딸이 엄마의 속내를 알게 되고 그런 마음에 공감한 사람들에 의해 책으로까지 발간되게 되었다. ‘만학으로 한글을 깨치고 80세에 첫 책을 펴낸 96세 어머니 홍영녀, 그 어머니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해 세상을 울린 72세 딸 황안나’는 우리 모든 자식들의 마음을 대신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엄마, 나 또 올게’를 읽으며 할머니와 엄마가 한꺼번에 눈앞에 어른거리게 된다. 우리들의 모든 할머니와 엄마의 가슴 속 깊은 한 곳에 있었을 진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유명세를 탄 주인공들이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는 엄마와 딸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엄마나 나이든 딸이나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이었으며 자식들을 안위를 위해선 아까울 것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딸이면서 동시에 엄마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부르면 당장이라도 반가운 얼굴을 할 할머니와 엄마가 계시지 않더라도 가슴에 남은 부모에 대한 마음이 있기에 내가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고무신을 닦아 / 햇볕에 내놓았다. / 어딜 가보게 되지 않으니 / 신어보지도 않고 / 또 닦게 된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태생적인 마음자리가 아닌가 싶다. 신어보지도 못할 고무신을 닦고 또 닦는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졌을 마음의 무게가 얼마일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을, 정든 고향집 음식처럼 천천히 맛있게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는 추천사를 전해주는 이해인 수녀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엄마, 나 도 올게’라는 말을 가슴속에서 울리도록 만드는 책이라는 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이 책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대신하는 듯 붉은 진달래가 피어있다. 진달래 화가 김정수의 그림은 엄마를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을 화면으로 불러온 듯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책의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다. 하여 지난 시간 마음 다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첫머리에 부모님에 대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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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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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 간송미술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책 속에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만들었던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사설박물관이라고 하는 그곳은 한해 두 차례만 문을 열어 사람들에게 살며시 속내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마음이 가득담긴 책을 통해 알게 된 ‘간송미술관’이라는 곳이다. 

‘간송미술관’은 다수의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33세 때 세운 것이다. 196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박물관인 이곳은 여타의 박물관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듯하다.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의 독보적인 산실 역할을 해온 곳으로 관련자를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박물관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1934년 북단장에 이어 1938년 보화각을 건립하고 우리문화재에 대한 연구 복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다. 설립자의 뜻에 따라 현재 북단장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보화각은 부속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훈민정음 원본 등 국보 12점,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을 포함한 5천여 점의 문화재를 수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을 세운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기도 하다. 대한제국시절에 태어나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위창 오세창과, 월탄 박종화 등과 교류하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일본으로 유출되는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는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또한 동성학원 설립을 비롯하여 보성중학교를 인수하여 인재양성에도 앞장섰으며 고고미술동인회 등의 활동으로 ‘고고미술’을 발간하기도 했다.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려고 했던 그의 뜻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 책 ‘간송 전형필’은 바로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민족 문화에 대한 침탈이 극심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무엇을 해야 했는지, 한 사람의 진정한 마음이 후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전해주고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가문에서 태어나 성장배경을 가졌지만 그것에 안주하거나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보여준 삶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간송 전형필의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식민지 청년으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던 전형필에게는 막대한 유산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다스한 애정과 탁월한 식견을 가졌던 스승과 동지들이 있었다. 그는 다른 문화재 수집가들과는 다른 그만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본이 결코 넘볼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며 후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을 들여서라도 우리 땅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그가 보여주는 우여곡절은 때론 미소를 때론 가슴 절절한 아픔을 전해준다. 

‘전형필은 밤이 새도록 《훈민정음》을 읽고 또 읽었다. 만들어진 지 500년 만에 발굴된 보물 중의 보물이었고, 전형필이 수집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성취한 대발굴이었기에, 눈물을 흘리다가는 웃었고, 웃다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집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갈무리했다.’

세상의 눈에서 멀어져야 문화재를 지킬 수 있다는 스승의 오세창의 말은 묵묵히 자신이 정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으로 다가섰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남긴 큼직한 발자국이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확인하게 만들어 주는 삶이라는 생각이다. 큰 나무 기슭에는 온갖 새들이 둥지를 튼다고 한다. 큰 나무로 다가오는 전형필의 삶은 5천여 점의 문화재가 남아 우리들에게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고 있다.

한때 간송미술관에서 근무했던 오주석의 빛나는 글이 나올 수 있고 그 글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마음속에 품었던 높은 이상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간송 전형필의 일생을 통한 민족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매년 봄과 가을 10만 명 이상이 찾아가는 곳, 한국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 국립중앙박물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곳을 만들어 온 간송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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