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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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 간송미술관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책 속에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만들었던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사설박물관이라고 하는 그곳은 한해 두 차례만 문을 열어 사람들에게 살며시 속내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마음이 가득담긴 책을 통해 알게 된 ‘간송미술관’이라는 곳이다. 

‘간송미술관’은 다수의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33세 때 세운 것이다. 196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박물관인 이곳은 여타의 박물관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듯하다.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의 독보적인 산실 역할을 해온 곳으로 관련자를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박물관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1934년 북단장에 이어 1938년 보화각을 건립하고 우리문화재에 대한 연구 복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다. 설립자의 뜻에 따라 현재 북단장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보화각은 부속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훈민정음 원본 등 국보 12점,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을 포함한 5천여 점의 문화재를 수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을 세운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기도 하다. 대한제국시절에 태어나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위창 오세창과, 월탄 박종화 등과 교류하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일본으로 유출되는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는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또한 동성학원 설립을 비롯하여 보성중학교를 인수하여 인재양성에도 앞장섰으며 고고미술동인회 등의 활동으로 ‘고고미술’을 발간하기도 했다.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려고 했던 그의 뜻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 책 ‘간송 전형필’은 바로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민족 문화에 대한 침탈이 극심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무엇을 해야 했는지, 한 사람의 진정한 마음이 후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전해주고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가문에서 태어나 성장배경을 가졌지만 그것에 안주하거나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보여준 삶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간송 전형필의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식민지 청년으로 민족의 정신을 지켜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던 전형필에게는 막대한 유산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다스한 애정과 탁월한 식견을 가졌던 스승과 동지들이 있었다. 그는 다른 문화재 수집가들과는 다른 그만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본이 결코 넘볼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며 후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을 들여서라도 우리 땅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그가 보여주는 우여곡절은 때론 미소를 때론 가슴 절절한 아픔을 전해준다. 

‘전형필은 밤이 새도록 《훈민정음》을 읽고 또 읽었다. 만들어진 지 500년 만에 발굴된 보물 중의 보물이었고, 전형필이 수집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성취한 대발굴이었기에, 눈물을 흘리다가는 웃었고, 웃다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집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갈무리했다.’

세상의 눈에서 멀어져야 문화재를 지킬 수 있다는 스승의 오세창의 말은 묵묵히 자신이 정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으로 다가섰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남긴 큼직한 발자국이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확인하게 만들어 주는 삶이라는 생각이다. 큰 나무 기슭에는 온갖 새들이 둥지를 튼다고 한다. 큰 나무로 다가오는 전형필의 삶은 5천여 점의 문화재가 남아 우리들에게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고 있다.

한때 간송미술관에서 근무했던 오주석의 빛나는 글이 나올 수 있고 그 글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마음속에 품었던 높은 이상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간송 전형필의 일생을 통한 민족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매년 봄과 가을 10만 명 이상이 찾아가는 곳, 한국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 국립중앙박물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곳을 만들어 온 간송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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