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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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지금 갈게 
지금 내가 사는 도시로 유학 아닌 유학을 떠나는 자식이 눈에 밟혀 기어이 할머니를 보내고 말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간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부모님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 내내 나무처럼 살아오던 할머니는 낯선 도시에 하나 둘 적응하면서 손자가 집에 오는 시간이 궁금하여 시계 보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커다란 숫자가 박힌 시계를 마련하고 숫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몇 칠을 보낸 후 할머니는 드디어 시계에 표시된 숫자를 알게 되고 늘 그 시간에 들어오는 손자를 위해 밥을 준비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숫자는 가슴에 담아두고도 늘 안타까운 손자를 맞이하는 소중한 신호가 되었 것이다.

그 손자가 학교를 마치고 성장하여 결혼할 때까지 이어진 할머니의 도시생활은 나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했으나 늘 평생을 살아온 시골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소망이셨다. 10여년을 함께 살던 손자와 떨어져 시골로 가신 할머니는 손자가 집을 찾을 때 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곳에 대해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묻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건강을 잃어가며 정신을 놓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언제나 반기며 잡아주는 할머니의 손은 먼 나라로 가신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를 보내고 나서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으로 엄마를 대하고자 하지만 마음속 무게가 커서인지 늘 먹먹한 가슴이다. 전화통화 속에서 느끼는 목소리에서 하루가 다르게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은 아마도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내 삶 때문이리라.

이 책은 엄마 홍영녀와 딸 황안나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엄마는 자식들 몰래 평생 한이었던 글을 배우고 나서 자신의 속내를 일기장에 남겼다. 어느 날 불쑥 딸의 눈에 띄어 딸이 엄마의 속내를 알게 되고 그런 마음에 공감한 사람들에 의해 책으로까지 발간되게 되었다. ‘만학으로 한글을 깨치고 80세에 첫 책을 펴낸 96세 어머니 홍영녀, 그 어머니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해 세상을 울린 72세 딸 황안나’는 우리 모든 자식들의 마음을 대신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엄마, 나 또 올게’를 읽으며 할머니와 엄마가 한꺼번에 눈앞에 어른거리게 된다. 우리들의 모든 할머니와 엄마의 가슴 속 깊은 한 곳에 있었을 진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유명세를 탄 주인공들이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는 엄마와 딸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엄마나 나이든 딸이나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이었으며 자식들을 안위를 위해선 아까울 것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딸이면서 동시에 엄마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부르면 당장이라도 반가운 얼굴을 할 할머니와 엄마가 계시지 않더라도 가슴에 남은 부모에 대한 마음이 있기에 내가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고무신을 닦아 / 햇볕에 내놓았다. / 어딜 가보게 되지 않으니 / 신어보지도 않고 / 또 닦게 된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태생적인 마음자리가 아닌가 싶다. 신어보지도 못할 고무신을 닦고 또 닦는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졌을 마음의 무게가 얼마일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을, 정든 고향집 음식처럼 천천히 맛있게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는 추천사를 전해주는 이해인 수녀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엄마, 나 도 올게’라는 말을 가슴속에서 울리도록 만드는 책이라는 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이 책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대신하는 듯 붉은 진달래가 피어있다. 진달래 화가 김정수의 그림은 엄마를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을 화면으로 불러온 듯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책의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다. 하여 지난 시간 마음 다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첫머리에 부모님에 대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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