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개의 사진이 있다. 뇌리에 박혀 오랫동안 가슴아프게 했던 사진 중 하나는 첫 페이지에 나오는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다. “1934년 독일 청소년의 날에 포츠담에서 찍은 나치 돌격대 제복을 입은 한 꼬마가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7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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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은 막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16세의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의 사진이다. 1945년 초 라인 강에서 미군에 포로가 되었다. 두 사진 간의 시간의 차이는 11년, 어쩌면 저 아이가 이렇게 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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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들은 포로가 된 데 대해 갈등을 느꼈다. 끝까지 싸우고, 포로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하지만 전쟁의 패배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많은 청소년단 단원들은 전쟁 포로수용소가 제공하는 안전과 온기, 배급을 갈망하기도 했다”(170p)고 한다.
다음 장의 제목은 “나는 그저 울 수밖에!”
이 책은 히틀러청소년단(히틀러유겐트 Hitlerjugend. 히틀러가 청소년들에게 나치당의 신조를 가르치고 훈련하기 위하여 만든 조직-옮긴이) 에 가입했던 소년소녀들의 이야기이다. 1926년 공식 출범한 히틀러청소년단은 독일의 미래를 약속하며,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고, 나치당에 대한 열성과 충성심을 끌어낸다. 가입한 청소년들은 우수한 혈통을 입증하는 것으로, 가입하지 못한 아이들은 반대하는 부모를 고발하거나, 자신의 의사만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소년단 아이들은 소집되어 집단생활과 캠프를 통해 강한 정신을 키우는 교육과 혹독한 신체훈련과 군사훈련을 받는다. 유태인과 나치에 비판적인 사람들을(부모들조차도) 색출하고 고발하고, 나치를 선전하는데 앞장선다. 10대에 가입했던 아이들 중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은 친위대가 되어 히틀러의 비밀경찰과 포로수용소에서 인종청소를 하는 최전선에 서게 된다. 그들의 인종청소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유태인과 집시들을 대상으로 했었다. 하지만 그 칼날은 독일인 사회 내부로 겨눠지고 장애인도 그 대상이 되었다.
8만 여명에 이른 이 히틀러청소년단원들은 1938년 뉘른베르크에서 나치당의 고위급 인사, 나치 돌격대, 노동 감시단과 함께 거리를 행진한다. 전쟁을 다짐하는 행진이었다.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그들은 더욱 히틀러에 열광한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게르만족의 위대함과 히틀러를 위해 싸우던 아이들, 어려서부터 오로지 삶의 목표를 세뇌 당했던 아이들은 전장에서 목숨을 바쳤다. 독일이 패전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폐허가 된 곳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포로가 되어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영상으로 보며, 자신들의 실체를 확인하면 괴로워한다. 일부는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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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아이들』에 수록된 사진 중에 유사한 모습을 『학교사로 읽는 일본근현대사』라는 책에서 보았다. 일본패망소식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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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메이지5) 메이지 정부는 학제를 발포하여 근대적 학교제도를 발족시켰다.”(159p)
근대 교육제도와 학교의 모습은 근대 국가의 ‘국민’ 만들기의 일환이었다. 이 책에는 일본이 근대 교육을 위해 만든 학교 건물, 학생모집, 교육의 의무화 과정, 급식, 교복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수업시작 신호, 수업 시작 전 ‘차렷, 경례’ 구호… 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보여준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군국주의의 정신을 보게 된다. “학생복이 교복이 되는 계기는 중학교에 ‘병대식(兵隊式) 체조’가 도입되어 군사교련이 시작된 데 있었다. 그 내용은 각개교련, 부대교련, 사격, 지휘법, 군사강연, 전쟁사 등”(196p)이다. 메이지헌법하의 국민개병 시대에 중학생 때부터 복장면에서도 학생을 장차 병사에 어울리는 인간으로 기르려는 교육적 의도가 있었다. 이 시기 여학생의 세일러복 역시 영국 해군의 수병복에서 온 것이고,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에 들어왔다.
히틀러유겐트의 그림자는 모든 전제국가에서 볼 수 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학도호국단, 교련, 전방입소를 기억해보면 이 그림자는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와 그를 답습했던 독재시절의 군사문화는 여전히 우리의 학교와 조직문화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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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D.P』라는 웹 드라마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장면들에서 군복을 평상복으로 바꾸면 군사문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조직문화의 단편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학교의 잔재가 남아있는 학교 교육과 폭력을 묵인하는 군대의 비윤리적 경험이 우리 일상에서 떨쳐질 리가 없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내용이지만 지그프리트 렌츠의『독일어 시간』이 떠오른다.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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