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으로 망명한 아프리카인 라티프 라흐무드는 거리를 걷다가,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에게 히이죽거리는 블랙어무어라는 말을 듣는다. 모퉁이를 세 번 돌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혐오의 말이다. 사전에서 블랙을 찾아본 그는 한 페이지에서 그렇게 많은 의미의 블랙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미움 받고 있다는 기분, 그러한 연상에서 오는 일종의 공포에 갑자가 나약한 느낌이 든다. 그는 OED(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 블랙어무어를 찾아본다. 거기서 영문학의 대가들에게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은 그의 기분을 돋우어주었다고 한다.

그 모든 고난의 시기 동안 내가 잊히지 않고, 밀림의 늪지에서 먹을 것을 뒤지면서 씩씩거리거나 벌거벗은 채 나무 사이를 건너다닌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존재하면서, 수세기 동안 정전(正典)사이에서 히죽거리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바닷가에서압둘라자크 구르나 125p)”

그가 말하는 영문학의 대가들 중에 셰익스피어가 있다. 그 정전은 오셀로일 것이다.

 

오셀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오셀로의 뒤에서 무어인이라 부른다. 그는 피부색이 어두우며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군인이다. 그만큼 그의 개인사는 파란만장하다. 데스데모나는 그의 인생역정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제가 겪은 위험 땜에 절 사랑하였고, 전 그녀가 그걸 정말 동정해서 사랑했죠.(1.3.168-169)”라고 말하는 오셀로의 말에서 불안을 감지한다. 투르크의 키프로스 침공이라는 베네치아의 위기가 아니라면 두 사람의 사랑은 반대 앞에서 좌절될 뻔했다. 그의 주변인들은 그의 성공과 사랑이 과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 극을 이끌어가는 이아고의 역할과 비중은 필연성처럼 보인다. 그는 악마의 화신인 듯하고 인간의 취약한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작정하고 달려들면 그의 계략에 다 걸려 넘어질 것 같다. 놀랍도록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꿰뚫어본다. 그는 이 지식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파멸시키는데 능란하다. 이아고의 오셀로를 향한 증오의 원인은 알 수는 없으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그에서 생겨나는 부정적 감정과 그것을 실행하는 사악한 인격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셀로의 파멸이 단지 이아고의 간계에 의한 것일까?

 

셰익스피어(아르떼)의 저자 황광수는 많은 해석자들이 마치 등록상표라도 얻으려는 사람들처럼 저마다 특이한 해석을 특수한 언어로 포장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콜리지는 악당 이아고에 주목하여, ‘무동기의 악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빅토르 위고는 오셀로는 밤이고. “거대한 운명적 인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많은 경우 타당하지 않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인 것은 사랑 때문일까? 작품 안에서 데스데모나의 시녀이자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는 질투란 스스로 생기고 태어나는 괴물(3.4.155)”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질투의 근원을 찾으려 해봤자 소용없다고, 한번 일어난 의심은 잠재울 수 없다고 한다. 그 분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라고 충고하는 것 같다.

 

켄지 요시노는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에서 18세기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을 빌어 법(재판)에 있어 정의를 말한다. “사실관계를 확정짓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가 좌지우지(166p)” 된다는 의미다. 오셀로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 비극적 엔딩 후 진실이 밝혀진다. 주인공들과 그와 연루된 인물들의 죽음 이후, 사건의 진상이 알려진다. 베네치아 귀족이면서 데스데모나의 삼촌인 로도비코와 오셀로 전임 총독 몬타노와 장교들에 의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실체가 드러나고 이아고는 체포된다.

 

그들이 세운 정의는 무엇인가?

 

오셀로의 주변에 악의를 막아줄 선의가 부재함을 본다. 오셀로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회적 통념조차 회의할 줄 모르는 단순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을 무어인이라고 지칭하는 말들과 데스데모나의 부친 브라반시오의 경고에도 묵묵하다. 반면 질투를 일으키는 이아고의 충동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모습을 보인다. 의심하다가 후회하고 격정에 휩싸이다가도 뒷걸음질 친다. 미끼로 던져진 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즉시 간파하고, 증거를 찾으면서 그런 자신을 책망한다.

 

비극의 원인을 이아고의 사악한 간계와 오셀로의 허약한 사랑에서만 찾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가 이아고의 악의적 계략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은 지속적으로 무어인이라는 말로 수많은 잽을 날린 사회적 폭력과 관계있다는 생각이다. 무반응으로 일관했지만 그의 자의식에 깊은 상흔을 남겼을 것이라는 추측은 인간의 보편성을 생각할 때 당연한 귀결이다. 그를 키프로스로 보내던 귀족들의 통념 속에 자리 잡은 은밀한 혐오, 이것이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정의의 실마리를 잡는 것이다.

 

히죽거리는 블랙어무어

모퉁이를 세 번 돌면 꼭 한 번은 뒤에서 그를 향해 짖고 그를 멸시하는 언어, ‘블랙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던 20세기의 라티프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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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1-13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투에서 비롯된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존재하는지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마음 수양 혹은
수련이 필요한 시절이 아닌가 싶습
니다.

그레이스 2025-01-13 09:1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한번 그 감정에 빠지면 걷잡을수 없거나, 사라졌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죠.ㅠㅠ
자존감, 관계에 있어서 신뢰 이런 문제들도 있는듯 합니다.
오셀로 입장에서만 본다면 질투가 사랑에서 비롯된것이고, 어쩔수 없다면, 그 감정을 표출하는데 있어 데스데모나를 대상화하고 폭력으로 반응했다는게 문제겠죠.

모든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의 문제인듯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1-15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저 글 생각납니다.
오셀로에도 여러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인물 중 이아고가 가장 악하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아고의 말이 맞지 않나요? ㅎㅎ

그레이스 2025-01-16 12:52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같은 생각!
이아고의 악의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자주 마주치는 상황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증오심이란게 뭐든 할수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