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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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우골리노와 아들들>의 조각상, 이 소설을 장악하고 있는 이미지다. 왜 주인공 루시는 이 조각상에 마음이 붙들려 있었던 것일까? 처음 이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 하고 속으로 외쳤다.”(103p) 13세기 이탈리아, 권력싸움 끝에 아들들과 함께 탑에 갇힌 우골리노와 아들들은 굶어 죽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아들들이 자신들을 먹어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다.(이 이야기는 각색된 것으로 그의 시체에서는 육식의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루시는 그 조각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그 미술관을 일부러 찾아갔다.

<Ugolino and His Sons>, Jean-Baptiste Carpeaux(French, 1872-1875), 대리석, 1865-1867


두 번째 이미지는 병실 창밖 밤이면 환한 불빛이 기하학적으로 밝혀지는 크라이슬러 빌딩의 풍경”(9p)이다. 병실을 찾아온 어머니와 4일 동안 병실에서 기억의 아픈 파편들과 대비를 이룬다. 가난한 유년 시절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화려한 세상, 자신에게 꽂히던 사람들의 무심하고 차가운 시선을 상징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독한 가난, “너희 식구들한테서는 냄새가 나”(18p)하고 달아나던 아이들, 배고픔, 방임과 체벌, 유기와 폭력의 기억들과 겉도는 대화의 대조는 아직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따금 예고 없이, 부모님이 충동적으로 사정없이 우리를 때리기도 했는데때리는 사람은 대체로 엄마였고, 대체로 아빠가 보는 데서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푸르죽죽한 피부와 침울한 태도를 보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19p)

 

고립되고 지적 성장에 있어 자극과 도움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예절, 말의 뉘앙스, 눈초리의 의미들에 대해 스스로 터득해 갈 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일에 무지했었다. 시간이 흐른 뒤 길을 걷다 떠오른 기억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음과 자신의 유년이 얼마나 어두웠는가를 깨닫는 순간의 묘사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다. 역설적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 차는 순간들이예기치 않게찾아오기도 한다. 그 앎이 너무 깊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고,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가 낯선 사람과 새로 들어온 스웨터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21p)

 

사람들도 이런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통과해나가겠지만 그들은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자신은 타인을 잘 알지 못하고, 삶은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는 그녀의 생각이 슬프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 조차 알지 못했던 소녀가 유년의 루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의 고통스런 기억으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도 가둬두었다. 그녀가 갇혀 있곤 했던 트럭에서의 기억은 모호하고 희미하지만 존재의 그림자로 남아있어 순간순간 두려움으로 튀어 나온다. 그녀의 기억 속의 집은 갇힘, 돌아가면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장소였다.

 

추수감사절이라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생활이 꿈일까봐 두려웠고, 눈을 뜨면 다시 이 집에서 영원히 머물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안 돼. 그 생각을 한참 하다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35p)

 

외로움은 루시가 맛본 인생의 첫 인상이었고, 그것은 숨어 있다가 존재를 일깨워주곤 했다. 그런 그녀는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98p)라고 한 블랑시 뒤부아의 대사를 기억한다. 그 대사처럼 그녀는 사람들의 친절에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린다. 헤일리 선생님, 제러미, 몰라, 세라 페인, 그리고 매일 병실을 찾아오는 친절한 의사.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세라 페인의 워크숍에서 참여하고, 세라페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루시를 격려한다. 그것은 학대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이야기이고 전쟁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124p)라고 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흔들리지 말고 쓰라고 한다. 그러나 세라 페인의 글 역시 뭔가를 피해 빗겨 서있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기 어렵다. 작가 엘리베스 스트라우스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작가가 되려면 냉혹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204p)바로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냉혹함이다.

 

<우골리노와 아들들> 조각을 바라보던 그녀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도 알고 있겠구나하고 그 조각가 말이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103p) 라고. 무엇을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딸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 과거에 딸에게 했던 잘못을 입에 올리지 조차 못하는 엄마는 지인들의 실패한 결혼과 불행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겉도는 이야기 속에서 엄마의 진심은 무엇일까? 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 딸에게 제발 가달라는 애원을 하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조각가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그것일까?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며, 입을 찢고 있는 우골리노의 고통을! 조각을 바라보는 은밀한 순간 그녀가 조각상에서 얻은 사실은 우린 모두 불쌍한 인간”(104p)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일까? 하지만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다. 치유 되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족으로부터 전혀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던 그녀가 의지한 것은 오히려 낯선 사람들의 친절이었다. 루시의 치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냉정함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이제 병실 창밖의 크라이슬러 빌딩의 불빛처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당당할 수 있다.

자신을 가두었던 기억들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은 고백한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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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28 0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루시의 마음이 느껴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배움의 발견이란 책 속 주인공과 닮았단 생각도 했었지요. 문장들 다 좋지만 특히 마지막 두 문장 넘 와닿습니다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1-12-28 00:31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더 슬프구요ㅠ

scott 2021-12-28 0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상처 받은 인간 ㅠ.ㅠ
루시 바턴 작가님의 자전적 스토리!
그레이스님 리뷰는 언제나 내게 감동을 ^ㅅ^

그레이스 2021-12-28 00:46   좋아요 4 | URL
자려고 하다가 댓글 달아요.^^
감사해요 ~~♡

새파랑 2021-12-28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전적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상처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 다를 것 같아요.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너무 공감가고 멋진 말이네요~!!

그레이스 2021-12-28 06:57   좋아요 5 | URL

새로운 풍경 속에 있는 그녀의 말에 감동했습니다.
작가는 루시 바턴이기도 하고 세라 페인이기도 한듯요.

다락방 2021-12-28 09: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시 바턴을 두 번 읽었거든요. 그런데 그레이스 님의 이 리뷰를 보니 완전히 새로운 루시 바턴을 읽은 느낌이에요. 이 리뷰를 읽은 후에 읽는 루시 바턴은 또 새로울 것 같아 다시 루시 바턴을 보고 싶네요. 그러고보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야말로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독한 가난에 대해서 썼지만 그것에 대한 작가 개인적 감정이나 관심은 떨어뜨려 둔 것 같아서요. 아 또 읽고 싶네요, 정말.

그레이스 2021-12-28 10:10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읽으신 감상을 보고 싶어요
서재에서 찾을 수 있겠죠?
제가 워낙 늦게 읽어서...^
감사합니다 🍊

공쟝쟝 2021-12-31 15:30   좋아요 2 | URL
저도... 동감해요... 제게는 올해의 발견이었던 <루시바턴>
루시바턴에 나오는 이미지들을 이렇게 그레이스님의 소개로 읽으니까, 정말... 감동이네요... ㅜㅜ 그리고 진짜.... 아...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싶고, 이렇게 멋지게 독해해내는 이웃이 있어 좋고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2-31 16:28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의 말씀이 더 감사합니다.
몇시간 남지 않은 2021년 책읽기로 마무리하시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1-12-28 1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니 오타와 비문 작렬!
수정하면서, 역시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
이런 글을 읽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感謝萬萬입니다. ;;

희선 2021-12-29 0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상처없는 사람은 없겠지요 어릴 때부터 사랑 많이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살면서 다른 사람한테 상처받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걸 마주하면 모든 삶이 감동을 주는군요 그런 걸 느낀다면 좋을 텐데...


희선

그레이스 2021-12-29 19:56   좋아요 3 | URL
직면하는게 쉽지 않으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겠죠. 저도 쉽지 않은것 같아요. 글을 쓸때 저 자신을 보면.

scott 2022-01-07 1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탑에 갖힌 우골리노가 용돈을 줌요 ^ㅅ^

그레이스 2022-01-07 18:55   좋아요 3 | URL
굶주린 그에게서?^^ㅋㅋ
감사드려요~

mini74 2022-01-07 17: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이스님 축하축하 ~ 무슨 책 사실지 궁금해요 ㅎㅎ

그레이스 2022-01-07 18:56   좋아요 4 | URL
살 책이야 많죠!
고민해야할듯요 ㅋ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1-07 17: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글은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

그레이스 2022-01-07 18:54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청아 2022-01-07 18: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바구니 담았어요~!!당선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01-07 19:02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물감 2022-01-07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해요 ㅎㅎ
기회되면 이 책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당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1-07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전 지금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기 시작했어요.읽고 나면 이 책도 읽어 보려구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예~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2-01-07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2-01-07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2-01-07 2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제 리뷰 쓰기 활활 불타실듯요^^

그레이스 2022-01-07 21:4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 2022-01-08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밤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1-08 09:16   좋아요 2 | URL
감솨합니다
좋은밤이었습니다^^
북플도 못 들여다보고 잤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페넬로페 2022-01-08 0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같은 책 2권의 투혼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1-08 09:1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연말연초에 넘 바빴는데 리뷰 상금주시니 감사하고 ㅎㅎ
책 사들이고 더 바쁠듯요 ㅋㅋ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08 09:18   좋아요 3 | URL
아아!
같은책?!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한 권은선물해서 리뷰상금 받았나봐요.~♡

희선 2022-01-08 0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어쩐지 살면서 자신과도 화해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레이스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1-08 09:38   좋아요 2 | URL
끝이없죠 ㅠ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잘못하니까...!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2-01-08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2022년 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2-01-08 22: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알라딘 서재 글쓴지 1년 됐으니(1년적 쓴 글들 알라딘에서 알려주는데 못읽겠더라구요^^)
새내기는 벗었죠ㅋㅋ
감사합니다~
북홀릭님 2022년도에도 함께 쭉 이어가요~♡

독서괭 2022-01-0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1-09 23:15   좋아요 0 | URL
감사드려요 ~♡

하나의책장 2022-01-10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1-10 05: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4-10-08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앙 저 루시바턴 읽고 그 조각상이 대체 뭔지 궁금해서 검색해봐도 못 찾았는데! 여기 딱 적어두셨었군요. 이제야 뭘 알았다고 한 건지 좀 이해가 됩니다. 뒤늦게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4-10-09 10:31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