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기 싫다’가 먼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문학 읽기 권태기’가 왔다. 계속 비슷한 주제에 도달하게 되는 소설에 식상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다. 그려지는 일상과 대화들은 빠른 속도로 훑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이 잦아졌다. 결말을 알 것 같은 전개와 혹은 중요한 메시지임에도 작가의 의도가 미리 읽혀지는 머리 부분에서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갈등을 하곤 했다. 나름대로 내린 처방은 문학이 아닌 난이도 있는 책 읽기와 두꺼운 책 함께 낭독하기였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다. 사이즈도 크고 페이지도 많지만, 읽지 않고 모셔두기엔 너무 비싼 책이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어둠이 내리는 길을 걸어서 만나기로 한 카페를 향했다. 마음이 설렜다. 달리기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지나 천변 길을 걸어서 카페에 도착했다. 다행히 카페는 한산했다. 창가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짊어지고 간 무거운 책을 꺼냈다. 함께 읽기로 한 독우(讀友)를 기다리며 ‘이 두꺼운 책을 3권까지 무사히 읽을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걱정보다는 기대, 드디어 읽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서론부터 읽어나갔다. 번갈아가며 조용한 목소리로 빠르게 읽다가 중요한 문장에서는 속도를 줄이며 줄을 치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만나면, “이 문장 이해되세요?” 하고 다시 새겨 읽고, 서로 설명을 덧붙였다.(길지 않게) 한 사람이 읽고 있는 듯이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너무 좋은데!’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독서 친구여서 그런가? 이전에 함께 낭독으로 읽었던 경험도 있어서 서로에게 갖고 있는 믿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잡담 없이 계속 읽어가며 나는 “이 부분 재밌네요.”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독우의 책에 대한 조용한 열정과 성실함 때문에 완독의 전망이 높아진다. 불가피한 일 때문에 빠질 걸 예상하고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만나서 읽기로 했다. 돌아오면서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즐기면서 하자고 생각했다. 이제 해가 길어지고 오고 가는 길이 조금 더 밝을 것이다.
그렇게 1장의 반 분량을 읽고 이번 주 다시 이어서 읽게 되었다. 아직은 그리 어려운 철학 용어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본질을 탐구했던 고대 과학과 철학에 대해 잘 전달하는 에코의 문장도 우리가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그의 접근도 신선하고 흥미를 끈다. 그렇게 특이하지 않음에도 그의 글에는 관심을 끄는 새로움이 담겨있다.
그는 아르케(arche), 아페이론(apeiron), 그리스어(mythos)에 담겨 있는 신화(myth)의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현대의 철학자들의 해석도 간략하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서론 부분에서 가장 눈길을 끈 내용은 “인간이 경이로움을 경험하면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 철학을 시작했다(8p)”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인간은 경이로움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경배를 하거나, 질문을 한다. 경이로움에 대한 과학이나 철학적 반응은 질문이다. 고대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질문들은 과학이 답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고, 이어지는 질문들은 철학의 영역에 해당한다. 철학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생각의 훈련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와 시칠리아 아프리카 북부, 이오니아 지역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지도를 보며, 그동안 읽어왔던 서양 고전 독서가 이 책을 쉽게 읽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두꺼운 책의 1장 부분이 『수학의 정석』 「집합」이 될지도 모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용어들이 멈추게 할지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모르는 것은 놓고 갈 예정이다. 내일 만나서 읽을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준비도 예습도 없이 책만 지고 가서 반가운 친구와 앉아서 읽다가 올 생각을 하니 그 만남이 기대된다.
또 다른 모임에서도 낭독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남자아이 둘과 헤로도토스 『역사』를 낭독하고 있다. 읽고 설명해주고 지도나 역사와 인물설명을 해야 해서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지만 덕분에 나는 세 번째 읽고 있고, 눈으로 읽고 정리할 때와 달리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을 발견한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미술 모임에서 한 주에 한 장씩 요약 발표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그 모임 회원과 한 번쯤 읽었던 몇 사람이 낭독만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독서가 기대했던 것 보다 큰 효과가 있어서, 처음 읽었던 때와 달리, 시대별 정리가 되고, 보이지 않던 그림이 보이고, 또 곰브리치의 작은 오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 관람했던 전시들을 통해 얻은 지식과 보는 눈이 생겼음을 스스로 느낀다. 격려가 되는 독서다.
바르트의 책(『영도의 글쓰기』)이 잘 읽혀지는 것을 보니, 이 처방이 맞나 보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주문하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은 1장 부분만 읽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오래 전에 읽고 참고했고, 거기에서 멈췄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만 읽고 만다고 어디에선가 읽고 공감되서 웃었었다. 이번 기회에 읽어버려야지 했는데, 눈에 보이는 대로 꺼내놓다 보니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버렸다. 이번엔 성공하길! 『말과 사물 강의』를 사야할까? 생각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할 소설이 있긴 하다. 왜 권태기가 왔을까? 글쓰기도 식상하고……. 생각하는 틀이 고정되어 있고 깊어지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지금은 이 책들을 읽는 게 맞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