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적인 측면에서 19세기의 역사는 현재 미국이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유지하고 또 세계적으로 지키려고 하고 있는 체제 자본주의(Capitalism)가 성장의 가동을 밟기 시작한 시점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량의 공장생산 체제에 돌입하면서 과거하고는 비교가 안 될 생산력을 보일 수 있었다물론 이러한 이면에는 노동자 계급에게 비인간적인 노동을 강요하고 아동착취여성의 중노동과 그로인한 유아사망을 급증시키기는 어두운 면이 아주 극명하게 존재했었다이러한 현실을 알게 된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산업혁명을 통해 탄생한 자본주의 체제를 아예 타도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산력이 확장되자 자본주의 체제는 값싼 시장 확보와 궁극적으로 무절제한 이윤을 창출해내기 위해또 다른 것을 시도하는데 그것이 바로 식민지 확장이었다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일란성 쌍둥이로써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현재까지도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 신제국주의라는 형태로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수히 많은 나라들을 침략했고반인륜적인 전쟁범죄와 학살극을 벌였고 벌이고 있는 것처럼제국주의적 야욕을 유지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게 그러한 욕심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1991년 미소냉전이 소비에트 연방 해체로 종결이 되면서 한국 운동권들은 대단히 충격에 휩싸였다이런 과정속에서 사회주의에서 극단적 극우주의로 사상을 전향하는 사례가 있었는데현재 반일 종족주의와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이영훈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이영훈은 2000년 저서 하나를 출간했는데바로 한국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특질이라는 책이다이영훈은 그 책에서 이른바 ‘19세기 위기론이라는 것을 주장했는데주장을 짧게 요약하자면 “19세기 위기론은 내부적 동력에 의한 근대 이행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고외세의 작용이 없었더라도 조선왕조는 자멸해 나가는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영훈에 따르면 19세기 위기론에 따라서 우리 역사는 필연적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즉 19세기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 자본주의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미화하기 위한 수단 내지는 목적으로 이용된 논리가 바로 19세기 위기론이다이영훈 교수는 19세기 위기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드는 근거가 있다그것은 바로 19세기 논농사 생산성의 감소산림 황폐화가뭄과 흉년을 포함한 잦은 자연재해 그리고 18세기부터 따른 인구감소 등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가장 큰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이러한 일련의 논리적 구조가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그리고 제국주의의 일란성 쌍둥이인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적인 옹호로 간다는 점이다이영훈이 제시한 구체적인 자료와 통계 그리고 근거 등은 차명수 교수가 반박 연구를 발표하면서 그 진실이 드러났다심지어 같은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말이다우선 이영훈 18~19세기 조선의 조선왕조의 쇠퇴와 혼란했던 시기로 인해 인구 파악 능력이 약화되었을 것을 간과했다또한 18~19세기 조선의 인구가 연평균 0.62%의 속도로 증가하고, 19세기에 0.83%로 증가했던 사실도 무시했다생산성 하락의 문제도 총 생산량이 아닌 두락당 지대 수취량을 취사선택 한 것이었다즉 이영훈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일련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식민사학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온 자본주의 맹아론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나의 대답은 물론 아니다자본주의 맹아론은 이른바 식민사학에 대한 반대급부의 이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을지언정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영훈 교수가 맹신하는 그 자본주의의 논리로써조선 사회를 해석하고자본주의 그 자체를 옹호하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그리고 여기에는 조선이 서구에 비해 후진적이었음을 인정하는 함정즉 서구중심적이고 근대중심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다시 이영훈의 ‘19세기 위기론으로 주제를 돌리겠다무엇보다 이영훈 교수의 ‘19세기 위기론의 문제점은 바로 그가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와 제국주의 논리를 합리화 한다는 사실에 있다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이영훈이 맹신적으로 추종하는 이런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는 결과적으로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적 논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이러한 관점들은 결국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타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내세웠던 논리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타국을 식민 지배할 때 내세운 논리와 아주 같다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서남아시아의 강국이었던 인도를 식민지배할 때이러한 논리를 내세웠고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포함한 여러 식민지들의 지배를 합리화 할 때 내세웠던 논리가 이러했다.


이러한 지배논리에 대한 비판을 이영훈의 ‘19세기 위기론에선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은 이영훈 교수의 친제국주의적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에 있고크게 보면 친서방 그리고 친미 친일적인 제국주의 관에 있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19세기 위기론이라는 것은 이러한 기만과 위선 속에서 만들어진 제국주의적 논리다이영훈 교수의 친제국주의적인 ‘19세기 위기설과 이런 식민사학에 맞대응하기 위해 나온 자본주의 맹아론 둘 다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이에 따라 역사를 유물론적이고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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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에 대해 비하하는 분들은 대한민국에 넘칩니다. 그러나 비하하기 전에 그들이 어떠한 인생을 살았고, 어떠한 변화를 거쳤는지도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 얼마나 많이 투쟁현장에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적어도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토대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걸 알기에 지난 겨울과 봄 LG트윈타워 연대투쟁에 거의 매주 나갔던 것이고요. 아래의 글은 제가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한 글입니다.)


내가 한국의 정치상황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2년이었다당시 일반적인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현재는 탄핵 된 대통령인 박근혜 후보가 점차 국민들에게 대대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 걸 보았다시대가 이명박 정권 시대였기에 나 또한 그 정권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중학교 3학년인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나에게 있어 대대적인 반북의식을 고취시키는 사건이었다거기다 KBS에서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으로 방영했던 드라마 전우는 북한을 더더욱 싫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물론 부모님이 친민주당 성향에 가까워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극우적인 견해는 없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박근혜가 인기를 끌게 되자 할아버지(외할아버지다)는 박근혜를 찍어야 한다고 얘기했다또한 친북주의자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고나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단군이래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주신 분이라고 얘기했다물론 나 또한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그 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박정희가 독재를 한 것에 대해선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원에는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2학기 때였다당시 국어 선생님은 안철수와 문재인이 힘을 합쳐 박근혜를 이겨야 한다 주장했다또한 박정희가 친일파이며 남로당이었고폭압적인 통치를 한 독재자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나 또한 그 선생님의 주장에 점차 공감하게 됐고문재인이 당선되길 원했다여기서 나의 인식에 있어 제1차적인 인식의 변환이 있었던 것 같다알다시피 2012년 대선은 박근혜가 이겼다나 또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2013년 박근혜 정권 시기는 초기부터 시끄러웠다당시 고3인생을 시작하던 나는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에 따른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보게 되었고그 외에도 박근혜 정권에 대한 안 좋은 목소리가 많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또한 그 시기 국정원에 대한 안 좋은 소문과 이석기 사건 등이 있었다일베들의 사악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비하행위들을 보면서 박근혜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쌓였던 것 같다당연하게도 이것은 학원의 국어 선생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은 것 같다.

 

나는 운 좋게도 재수하지 않고 2014년에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새내기가 된 나는 대학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그럭저럭 학창생활을 해나갔던 것 같다새내기 초기인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세월호 사건이 터졌지만당시의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새내기 생활이 바빴던 것도 있고그해 여름에 1달 간 유럽 여행을 갔다 온 이후론 머릿속에 해외여행 생각밖에 없었던 것도 있었다그래도 고등학교 2~3학년과 대학교 새내기 생활을 하면서 확실히 대한민국의 체제와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식 자체는 있었다따라서 북유럽의 복지 모델이 좋아 보이긴 했다.

 

그렇게 해서 2015년을 맞았다. 2015년을 맞은 나는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드라마 서울 1945를 정주행하게 됐다드라마 서울 1945를 정주행하게 된 나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지점들을 그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여기서 제2차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나는 해방 이후 남북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헌신을 다했던 몽양 여운형을 좋아하게 되었다무엇보다 김구의 남북협상 이전에 분단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했던 여운형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이렇게 해서 2015년 대학교 2학년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대학교 2학년 시절이던 2015년 나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사건 하나가 터졌다그게 바로 박근혜 정권의 국정 교과서 사건이었다국정 교과서 사건은 나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사건이었다박근혜 정권이 우리 역사를 자신들 입맛대로 바꾸기 위해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는 걸 본 역사학계는 이에 반기를 들었다많은 대학교 사학과가 이에 동참했다인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던 나 또한 이에 동참해야 한다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당시 국정교과서 사태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연대서명을 우리학교에서 총 4명밖에 하지 않았다이에 대해 학과 단톡방에 항의하기도 했다그 이후 서명하는 이들이 늘었다.

 

또한 국정 교과서 사태 때 난생 처음으로 집회라는 것을 참가해보게 됐다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제3차적인 인식의 변화였다난생 처음 집회에 나갔을 때우연히 거리행진을 하는 우리를 보고 북한으로 가라라고 확성기를 통해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어버이연합 트럭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나는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국정 교과서 반대 집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국정 교과서 사태는 제3차적인 변화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왜냐하면 내가 사회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2015년 국정 교과서 사태이기 때문이다이후 나는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그 다큐멘터리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해서 만들어진 다큐였고거기에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성공 시킨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조선의 독립을 지원해주었다는 내용이 있었다이리하여 난 레닌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2학년 2학기를 마친 이후 2016년이 되었다. 2016년 초 나는 학교 친구를 통해 한 단체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그 이후 나는 민중총궐기와 3.1절 집회 등을 포함하여 이쪽 계열 사람들과 같이 활동했고여러 집회에 참여했다그러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이 단체는 민중당(현재는 진보당성향을 많이 띈 단체였다한국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반북의식 때문에 나 또한 이쪽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비판의식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고거기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그래서 나는 이쪽 계열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그 과정에서 당적을 가지게 되었는데처음 입당한 당이 심상정의 정의당이었다내가 정의당에 입당한 이유는 분명했다반북의식과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적인 환상 때문이었다.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2016년 당시 나는 레닌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이 영향으로 난 아르바이트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군복무를 하기 전 러시아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었다러시아 여행을 가기 전 나는 러시아 역사책과 더불어 레닌과 사회주의에 관한 책도 읽었다그때 처음 읽은 것이 책갈피에서 출판한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사상>, <공산당 선언>, <국가와 혁명그리고 토니 클리프가 쓴 <레닌 평전 시리즈>였다이런 책들은 내가 레닌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물론 책갈피에서 쓴 책들의 의도와는 달리 나는 소련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인드도 조금은 생겼다물론 스탈린을 싫어했었다아무튼 2016년 10월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레닌 묘를 들어가 보게 된 나는 레닌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러시아에 갔다 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는 앞으로 역사에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터졌다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그리고 나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 10월 말에 소방서에서 공익 근무를 하게 되었다박근혜에 대해 증오와 혐오가 쌓여있던 나는 촛불집회의 첫 시작부터 매주 토요일 마다 참가했다집회는 평화로웠다전국적으로 천만 이상이 참여하는 이 집회 속에서 나 또한 촛불집회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었다비록 3월 10일 현장에는 없었지만그 이전의 매주 토요일 집회는 2~3번을 제외하고는 빠지지 않고 민중들과 함께했다.

 

이런 과정 속에 있던 2017년 1월 우연히 노동자 연대에서 파는 소책자를 사게 되었고서명을 한 덕분에 노동자 연대 쪽에서 하는 세미나에도 참가해 볼 수 있게 되었다당시 노동자 연대의 입장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토니 클리프의 국가 자본주의론을 처음 접했을 때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이것이 바로 제4차적인 인식의 변화였다이 영향에 따라 나 또한 스탈린에게 암살당한 것으로 알려진 레온 트로츠키를 좋아하게 되었고노동자 연대쪽의 입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무엇보다 마르크스라는 타이틀을 단 것이 참으로 심장으로 와 닿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민주당류의 기류를 완벽히 버린 것도 아니었다아직도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도그마와 북한에 대한 반북의식 그리고 스탈린과 그 외의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남아있었다그리고 사회민주주의를 여전히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즉 인식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심지어 나 자신이 페이스 북에다 나는 사회주의자면서 사회민주주의자 그리고 민족주의자라는 이상한 말을 진심으로 선언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그리고 촛불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했을 정도로 문재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았기에 2017년 5월 대선에서 나는 문재인을 찍었다.

 

2016년 10월 말부터 시작한 소방서 공익 근무 시절 나는 구급 출동하지 않는 시간에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넘쳐났다당시 와이파이가 없고 똥컴이 놓여있는 소방서에서 사무실에서 잘 안가는 시간을 소비하는 방법은 독서를 하는 것이었다그 시기 나는 정말 많은 책들을 읽었다. 24개월이라는 공익 근무 기간 동안 거의 100권 가까이 사회과학 서적들을 완독했다그리고 소방서 공익 근무는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인식의 전환을 주었다왜냐하면 구급 출동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정말 힘든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이런 현실에 직면했기에 사무실에서 읽던 사회주의자들의 전기나 사회주의 관련 서적들이 더 와 닿았다이렇게 해서 2018년 중반에 나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선포했다이것이 제5차적인 인식의 변화였다.

 

2018년은 평창올림픽과 남북공동선언 북미회담 등이 있으면서 시기적으로도 화해모드가 진행되었다거기에 힘입어 공익 근무 말기 나는 북한에 대해서도 좀 다르게 보게 되었다북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본 책들을 읽는 것과 동시에사회주의 원전 및 혁명사 등도 읽었다이와 더불어 미국의 저항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책도 읽었다이렇게 되면서 사회주의자적인 면모가 보다 내 자신에게 의식적으로 생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또한 이 경험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웬만한 반북주의적 인식도 많이 희석되었다.

 

2018년 10월에 전역한 나는 1달간 미국 여행을 했다미국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하워드 진의 묘도 찾아가 보았고미국 자본주의의 민낯도 보게 되었다이미 사회주의자를 선언했던 터라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서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리고 2018년 시기부터 스탈린에 대해서 나름 긍정적인 면모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당시 내가 내리던 스탈린의 평가는 공과 6정도였을 것이다그래도 나는 피델 카스트로나 호치민레닌마르크스엥겔스체게바라 등의 인물들을 좋아했다.

 

아무튼 미국 여행도 마쳤고그 다음해인 2019년 나는 다시 학교에 복학했다. 3년만에 한 복학이었다복학한 나는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스탈린에 대해 긍정적인 면모보다 부정적인 면모를 더 많이 봤다그래도 스탈린의 긍정적인 면모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싶었다그러나 스탈린을 객관적으로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특히나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던 2019년 1학기 말에 데이비드 글랜츠가 쓴 <독소전쟁사>라는 책을 완독했다이 책은 비록 미국 군사학자가 쓴 책이지만독소전쟁 시기 소련군의 업적을 나름 객관적으로 조명한 책이었다이 책을 완독한 나는 흥분했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노사과연에서 번역한 마리오 소사의 책 <진실이 밝혀지다>도 읽었다이 책을 읽은 뒤에 나는 평소에 우리가 알고 있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나 굴라그 수용소가 매우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것을 시작으로 나는 스탈린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고그를 존경하게 되었다이것이 바로 지금까지는 나에게 있어 마지막 변화인 제6차적 인식의 변화다.

 

내가 사회주의자를 스스로 선언한 것은 2018년이었다공익 근무 말기 나는 우연히 같은 근무지에서 쌍용차 투쟁을 하다가 공익으로 들어온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사상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 이쪽의 영향도 받았고여러 가지 좋은 조언들도 많이 받았다무엇보다 이 분 덕분에 사회주의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내가 사회주의자가 되기에는 여러 과정도 있었지만가장 중요한 것은 소방서 공익 시절의 경험이었다그 시기 내가 구급출동을 하면서 보게 된 현실은 사회주의자가 되기에 충분했다또한 그 시기 읽은 책들은 내가 사회주의자가 되는 데여러 가지 인식의 전환을 주었다.

 

나는 아직도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위해선 더 많은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러기 위해선 앞으로도 이론과 더불어 실천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아무튼 나 또한 여러 과정속에서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여러번 있었던 것 같다이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나로 하여금 단순히 학습 뿐만 아니라 실질적 투쟁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었다민중총궐기노동절 집회퀴어 축제반미시위국가 보안법 철폐 시위이석기 동지 석방 시위등이 바로 이러한 인식적 전환의 영향을 받았기에 나 자신이 참여했던 것이라 생각한다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지 않은 채 2021년을 맞이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의 내모습을 보면 좌경화의 역사인가? 뭐 아무튼 내가 사회주의자인 것이 자랑스럽다앞으로도 난 내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살아가고 싶다.

 

사회주의는 불멸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앞으로도 인류가 성취해야할 과제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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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10-01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한 개인의 인식 변화가 우리 사회 굵직한 사건들과 연계되어 일어났네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니 대단해 보입니다~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는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앞으로의 길을 응원합니다!!

NamGiKim 2021-10-01 20:12   좋아요 1 | URL
기본적인 이론을 가지고, 그 이론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것이 결정적이라 봅니다.ㅎ

필리아 2021-10-01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이 누구도 소외,배제됨 없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네 소망이지요. 이데올로기에 천착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다만 NamGiKim님의 진솔한 자기 성찰에 입각한 신념의 실천을 향한 노력에는 마음껏 응원하고 싶습니다.

NamGiKim 2021-10-01 20:12   좋아요 1 | URL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2년을 공들여 쓴 책인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을 오늘부터 알라딘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예전에 알라딘 블로그를 포함하여 SNS에 연재하던 '미제국주의 역사'를 보다 정리하여 책으로 냈습니다. 알라딘 친구분들을 포함하여 이 글을 보신 분들이, 이 소식을 널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부터 올해 종결된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미국사의 이면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공부를 더 해야하는 학생신분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책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555188


(미제국주의 역사 연재 시리즈)

https://blog.aladin.co.kr/759779161/category/70614412?CommunityType=MyPaper&page=6&cnt=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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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30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고생많으셨고 앞으로 더 큰 학업적 성취를 기원합니다.

NamGiKim 2021-09-30 17: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관심 있으시면, 한번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분명 미국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붕붕툐툐 2021-09-30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와우!! 축하드립니다!! 공들인 책이 나왔다니 엄청 뿌듯하시겠습니다!! 이 주제는 요즘 핫하지 않습니까? 판매도 쭉쭉 잘 되시길!!🙏

NamGiKim 2021-10-01 00:02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제가 이 책의 출판 작업을 조직에서 진행하고 있을 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끝나고 있었죠. 그거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분명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무튼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1-10-01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간 축하드립니다!!!!!^^

NamGiKim 2021-10-01 12: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는 미국의 이면을 들어봐야한다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1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NamGiKim 2021-10-01 12: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관심 있으시면 일독을 권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0-01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NamGiKim 2021-10-01 21: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분명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겁니다.
 

내가 책 출판과정을 거치고 있던 8월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20년 동안 지속되던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탈레반의 공세는 올해 6월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군을 궤멸시켰던 역사가 생각나게 만들 정도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베트남전에선 미군사고문단이 50명도 채 안남은 상태였지만, 이번 아프가니스탄은 3,000명 이상의 미군이 있었다는 점이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속도도 매우 빨랐다. 9.11 20주년 전까지 철수를 마치겠다던 바이든의 주장을 보다 더 빨리 실현하게 만들었다. 8월 15일 카불이 함락되면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사실상 장악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8월 30일에 종결됐다. 미국과의 전쟁 20년 혹은 40년 전쟁이 마무리 되는 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가던 시점에서 서방의 언론과 국내 언론은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의 대부분은 탈레반의 잔학성과 잔학행위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들이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인권을 억압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난무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탈레반의 잔학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1도 없다. 또한 이들은 반동세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시초는 반소주의 반공주의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느 서방과 국내의 편향된 언론보도에 분노를 많이 느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아프간인들의 탈출 뉴스를 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전쟁기간 동안 이웃 파키스탄으로 피신하였던 수십만명의 난민들이 탈레반의 카불 입성후 그들의 고향땅으로 귀국했던 수십만 명의 이야기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탈레반의 잔학성 부분도 마찬가지다. 탈레반의 잔혹행위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전쟁 제1의 원흉인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전쟁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의해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런 편향성을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때 국내 언론과 외신언론들은 아주 낱낱이 보여줬다. 즉 이나라의 언론은 이에 대한 심층분석없이 서구의 통신사와 언론들이 제공하는 그들의 시각에서의 아프간 기사를 분별없이 수용하고 실어나르기에 급급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인 여성인권 부분도 마찬가지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인권문제는 굳이 탈레반이 아니더라도 심각한 문제였다. 패망한 친미 정부 또한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미국이 내세웠던 여성해방이라는 글자 그 자체는 위선이었을 뿐 미국 정부는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탈레반의 반동적인 여성관과는 별개로 미국 통치시기의 아프가니스탄은 인권도 생명도 여성의 권리도 그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사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하는 소리만 받아적었던 이들이 모습은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은 자칭 좌파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탈레반에 대해 미군을 몰아냈다는 점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에도 온갖 힐난을 보인다. 탈레반이라는 집단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다들 하지도 않은 주장을 열심히 비판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수많은 '진보', '좌파'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왜 우리가 종교근본주의 집단을 무조건 지지하고 있다고 오독을 하는걸까...


아마도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식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탈레반을 지지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진보', '좌파'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든다. 자칭 좌파들이나 일부 반좌파세력이 생각하는 그런 주장을 밀어붙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두들겨 패는 취미가 있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지만,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인것 같다.
혹시 "(서구식)민주주의가 아니라서 문제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적어도 진보나 좌파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가급적 삼가고, 미국의 비호를 받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당신들이 가진 이념에 더욱 가까운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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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생각에 큰 전환과 충격을 갖다 준 책 한권이 있다그 책은 1950 6 25일에 일어났던 6.25전쟁 즉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국내에 알려준 저작이었다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다. 1960년대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이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고특히 한국전쟁 관련 연구에 많은 노력을 했다또한 1970년대에는 북한을 방문했으며북한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다즉 이런 연구를 통해 그가 만든 작품이 바로 한국전쟁의 기원인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한국전쟁의 기원은 영문으로 대략 1,000페이지가 넘는 그의 방대한 연구서이며, 1권과 2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1권은 1945년부터 1947년까지의 해방정국을 분석했고, 2권은 1947년 해방정국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까지를 분석했다한국전쟁의 기원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대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이들이 받은 충격은 리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못지않았다고 나는 믿고 있다한국전쟁에 관해 깊은 연구를 했던 그의 저서는 국내에서 이적표현물이 되었고이에 따라 한국전쟁의 기원』 2권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이 책을 탄압한 이유는 분명했다한국전쟁의 기원이 당시 정부가 제시하는 한국전쟁관과 전혀 다른 해석을 했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는 반공주의에 위배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 대해 깊게 연구하며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그는 한국전쟁의 발발 시점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 남침했다는 부분에 중심을 두지 않았다그는 한국전쟁을 일제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찾았다그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도부였던 김일성과 주류 인사들이 1930년대에는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반면남한 지도부들 특히 군부의 경우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했던 친일파들이었다고 주장했다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대립구도(친일파vs독립운동가)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1950년 한국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보았을 때한국전쟁이 북한의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것이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이다.

(브루스 커밍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누가 먼저 일으켰느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전쟁의 구도와 성격 그리고 맥락을 중심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봤다물론 1990년대 동구권 붕괴 이후 박명림 교수나 국내의 몇몇 사학자들이 커밍스 교수의 자료를 반박하는 시도를 감행했고커밍스의 주장이 반박당하기도 했으나이것이 커밍스가 제시한 민족해방전쟁론에 대한 완벽한 반박이 된 것은 아니었다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던 2010년 브루스 커밍스는 The Korean War: A History라는 한국전쟁 관련 신간을 출간했고그 신간은 2017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됐다물론 이 책에서도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김일성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했으며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가지고 있던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

 

물론 브루스 커밍스가 제시한 민족해방전쟁론은 좌우 할거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그러나 나는 이 민족해방전쟁론에 대해 완벽한 반박을 하는 반공주의자들을 본적이 없다그저 낡은사관이라는 말만 얼버무릴 뿐커밍스가 제시한 근거(친일파vs독립운동가 등등)를 완벽히 반박하는 사례는 못 봤다오히려 이승만 정부부터 반복된 침략자 김일성이 나쁜거니 한국전쟁은 다 김일성 책임이야와 같은 주장들만 반복될 따름이다이것은 개인적 입장부터 학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사학 전공자로써 나는 브루스 커밍스의 민족해방전쟁론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커밍스의 민족해방전쟁론은 국제적인 시각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당시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을 보면 그 구도는 명확해진다. 1950년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은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었고대만해협에서는 장제스를 지원하는 것이었으며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식민지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를 지원하여 호치민의 독립운동을 막는 것이었다따라서 이런 국제적인 구도에서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며한국전쟁을 김일성과 호치민 그리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국제연대라는 시각에서 연구 성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앞으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이쪽으로 깊은 연구를 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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