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년을 공들여 쓴 책인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을 오늘부터 알라딘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예전에 알라딘 블로그를 포함하여 SNS에 연재하던 '미제국주의 역사'를 보다 정리하여 책으로 냈습니다. 알라딘 친구분들을 포함하여 이 글을 보신 분들이, 이 소식을 널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부터 올해 종결된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미국사의 이면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공부를 더 해야하는 학생신분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책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0555188


(미제국주의 역사 연재 시리즈)

https://blog.aladin.co.kr/759779161/category/70614412?CommunityType=MyPaper&page=6&cnt=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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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30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고생많으셨고 앞으로 더 큰 학업적 성취를 기원합니다.

NamGiKim 2021-09-30 17: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관심 있으시면, 한번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분명 미국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붕붕툐툐 2021-09-30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와우!! 축하드립니다!! 공들인 책이 나왔다니 엄청 뿌듯하시겠습니다!! 이 주제는 요즘 핫하지 않습니까? 판매도 쭉쭉 잘 되시길!!🙏

NamGiKim 2021-10-01 00:02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제가 이 책의 출판 작업을 조직에서 진행하고 있을 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끝나고 있었죠. 그거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분명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무튼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10-01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간 축하드립니다!!!!!^^

NamGiKim 2021-10-01 12: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는 미국의 이면을 들어봐야한다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1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NamGiKim 2021-10-01 12: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관심 있으시면 일독을 권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0-01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NamGiKim 2021-10-01 21: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분명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겁니다.
 

내가 책 출판과정을 거치고 있던 8월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20년 동안 지속되던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탈레반의 공세는 올해 6월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군을 궤멸시켰던 역사가 생각나게 만들 정도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베트남전에선 미군사고문단이 50명도 채 안남은 상태였지만, 이번 아프가니스탄은 3,000명 이상의 미군이 있었다는 점이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속도도 매우 빨랐다. 9.11 20주년 전까지 철수를 마치겠다던 바이든의 주장을 보다 더 빨리 실현하게 만들었다. 8월 15일 카불이 함락되면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사실상 장악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8월 30일에 종결됐다. 미국과의 전쟁 20년 혹은 40년 전쟁이 마무리 되는 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가던 시점에서 서방의 언론과 국내 언론은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의 대부분은 탈레반의 잔학성과 잔학행위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들이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인권을 억압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난무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탈레반의 잔학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1도 없다. 또한 이들은 반동세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시초는 반소주의 반공주의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느 서방과 국내의 편향된 언론보도에 분노를 많이 느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아프간인들의 탈출 뉴스를 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전쟁기간 동안 이웃 파키스탄으로 피신하였던 수십만명의 난민들이 탈레반의 카불 입성후 그들의 고향땅으로 귀국했던 수십만 명의 이야기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탈레반의 잔학성 부분도 마찬가지다. 탈레반의 잔혹행위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전쟁 제1의 원흉인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전쟁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의해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런 편향성을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때 국내 언론과 외신언론들은 아주 낱낱이 보여줬다. 즉 이나라의 언론은 이에 대한 심층분석없이 서구의 통신사와 언론들이 제공하는 그들의 시각에서의 아프간 기사를 분별없이 수용하고 실어나르기에 급급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인 여성인권 부분도 마찬가지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인권문제는 굳이 탈레반이 아니더라도 심각한 문제였다. 패망한 친미 정부 또한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미국이 내세웠던 여성해방이라는 글자 그 자체는 위선이었을 뿐 미국 정부는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탈레반의 반동적인 여성관과는 별개로 미국 통치시기의 아프가니스탄은 인권도 생명도 여성의 권리도 그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사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하는 소리만 받아적었던 이들이 모습은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은 자칭 좌파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탈레반에 대해 미군을 몰아냈다는 점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에도 온갖 힐난을 보인다. 탈레반이라는 집단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다들 하지도 않은 주장을 열심히 비판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수많은 '진보', '좌파'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왜 우리가 종교근본주의 집단을 무조건 지지하고 있다고 오독을 하는걸까...


아마도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식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탈레반을 지지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진보', '좌파'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든다. 자칭 좌파들이나 일부 반좌파세력이 생각하는 그런 주장을 밀어붙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두들겨 패는 취미가 있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지만,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인것 같다.
혹시 "(서구식)민주주의가 아니라서 문제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적어도 진보나 좌파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가급적 삼가고, 미국의 비호를 받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당신들이 가진 이념에 더욱 가까운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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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생각에 큰 전환과 충격을 갖다 준 책 한권이 있다그 책은 1950 6 25일에 일어났던 6.25전쟁 즉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국내에 알려준 저작이었다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다. 1960년대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이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고특히 한국전쟁 관련 연구에 많은 노력을 했다또한 1970년대에는 북한을 방문했으며북한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다즉 이런 연구를 통해 그가 만든 작품이 바로 한국전쟁의 기원인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한국전쟁의 기원은 영문으로 대략 1,000페이지가 넘는 그의 방대한 연구서이며, 1권과 2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1권은 1945년부터 1947년까지의 해방정국을 분석했고, 2권은 1947년 해방정국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까지를 분석했다한국전쟁의 기원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대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이들이 받은 충격은 리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못지않았다고 나는 믿고 있다한국전쟁에 관해 깊은 연구를 했던 그의 저서는 국내에서 이적표현물이 되었고이에 따라 한국전쟁의 기원』 2권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이 책을 탄압한 이유는 분명했다한국전쟁의 기원이 당시 정부가 제시하는 한국전쟁관과 전혀 다른 해석을 했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는 반공주의에 위배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 대해 깊게 연구하며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그는 한국전쟁의 발발 시점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 남침했다는 부분에 중심을 두지 않았다그는 한국전쟁을 일제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찾았다그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도부였던 김일성과 주류 인사들이 1930년대에는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반면남한 지도부들 특히 군부의 경우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했던 친일파들이었다고 주장했다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대립구도(친일파vs독립운동가)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1950년 한국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보았을 때한국전쟁이 북한의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것이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이다.

(브루스 커밍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누가 먼저 일으켰느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전쟁의 구도와 성격 그리고 맥락을 중심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봤다물론 1990년대 동구권 붕괴 이후 박명림 교수나 국내의 몇몇 사학자들이 커밍스 교수의 자료를 반박하는 시도를 감행했고커밍스의 주장이 반박당하기도 했으나이것이 커밍스가 제시한 민족해방전쟁론에 대한 완벽한 반박이 된 것은 아니었다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던 2010년 브루스 커밍스는 The Korean War: A History라는 한국전쟁 관련 신간을 출간했고그 신간은 2017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됐다물론 이 책에서도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김일성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했으며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가지고 있던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

 

물론 브루스 커밍스가 제시한 민족해방전쟁론은 좌우 할거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그러나 나는 이 민족해방전쟁론에 대해 완벽한 반박을 하는 반공주의자들을 본적이 없다그저 낡은사관이라는 말만 얼버무릴 뿐커밍스가 제시한 근거(친일파vs독립운동가 등등)를 완벽히 반박하는 사례는 못 봤다오히려 이승만 정부부터 반복된 침략자 김일성이 나쁜거니 한국전쟁은 다 김일성 책임이야와 같은 주장들만 반복될 따름이다이것은 개인적 입장부터 학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사학 전공자로써 나는 브루스 커밍스의 민족해방전쟁론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커밍스의 민족해방전쟁론은 국제적인 시각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당시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을 보면 그 구도는 명확해진다. 1950년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은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었고대만해협에서는 장제스를 지원하는 것이었으며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식민지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를 지원하여 호치민의 독립운동을 막는 것이었다따라서 이런 국제적인 구도에서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며한국전쟁을 김일성과 호치민 그리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국제연대라는 시각에서 연구 성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앞으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이쪽으로 깊은 연구를 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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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안개 (The Fog of War)
소니픽쳐스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지난주 네이버 영화에서 맥나마라와의 인터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안개의 전쟁(The Fog of War)을 봤다. 다큐멘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포드 자동차 회사의 전 CEO, 하버드 대와 버클리대를 수석으로 나온 천재,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비서이자 베트남 전쟁 계획자, 세계은행 그룹 총재였던 맥나마라의 일생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룬다.

(안개의 전쟁 포스터)

다큐멘터리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중동전쟁에 피를 뿌리던 시점에 제작됐다. 다큐멘터리는 맥나마라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는 그가 가지고 있던 첫 번째 기억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알려주며, 맥나마라의 관점은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맥나마라의 첫 번째 기억은 놀랍게도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것이었고, 이후에 덮친 스페인 독감이었다. 그는 미국의 전형적인 인재였다. 명문대를 다니면서, 항상 특출난 두뇌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았으며, 이것을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공군 전략 사령부에서 장교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독일과 일본을 폭격하는 전략을 커티스 르메이와 함께 세웠으며, 이 전략은 미 공군이 독일과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45년 3월에 있던 도쿄폭격은 하루만에 일본 민간인 8만 명에서 10만 명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비슷한 파괴가 일본의 도시 곳곳에서 발생했다. 미공군의 폭격에 의해서 말이다.


(케네디 행정부 시절 케네디와 맥나마라)
그는 포드 회사에 근무하면서 사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던 그에게 정치를 제안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국의 존 F. 케네디였다. 맥나마라는 그의 비서 및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 케네디의 대베트남 정책을 세웠다.

그는 천재적인 통계와 철저한 계산을 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원했다. 그에 따르면,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을 확전할 의지가 없었다고 하며, 이는 디엠의 암살과 케네디의 암살 이후 존슨 대통령이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베트남인 340만 명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베트남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케네디는 디엠 정권을 지원하다가 미군사고문단을 철수하려 했다.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던 그는 나중에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했으며, 1995년 미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 개선을 위해 하노이를 방문했다. 또한 그는 자서전에서 베트남 전쟁이 전적으로 미국의 오만한 착오와 실책이었음을 솔직하게 밝혔으며, 미국의 폭격과 고엽제 투하 및 군사작전으로 340만 명의 베트남인이 학살당했음을 인정했다.
(인터뷰 당시 맥나마라)

나는 맥나마라가 과거를 반성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2003년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도 반성따위는 전혀없는 부시나 딕 체니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록 제국주의자였으나, 어쨌든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리고 평화책을 더 강구하는 모습을 말년에 보이게 됐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나는 맥나마라를 단순히 미워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다. 안본사람은 한번 감상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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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래로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의 위기가 극단적으로 치달은 적이 있었다바로 1968년의 한반도 위기가 그러했다. 1953 7 27일 휴전협정이 발효된 이후에도 남북한의 긴장관계는 한반도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지도자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렀다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입지가 예전보다 더 강해졌고남한에서는 이승만이 그러했다그러던 1960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정부가 들어섰지만, 1961 5 16일 박정희 중심의 군부 쿠데타로 제3공화국이 탄생했다.


이와 더불어 북한의 김일성은 남로당과 연안파 그리고 소련파 사이에서의 권력투쟁에서 승리를 얻음과 동시에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사업에 착수했다소위 전후복구와 천리마 운동은 북한을 빠르게 발전시켰다북한의 경제는 빠르게 발전했다당시 한국은 박정희 정부가 산업화를 가동하기 전까지 부정부패와 정치적 혼란 그리고 빈곤이 도사리고 있었지만이와 대조적으로 북한의 체제는 안정적이었다. 1960년 기준으로 북한의 세계 경제력 규모가 49위였던 반면 남한의 경제규모는 101위였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얼마나 현저했는지 알 수 있다사실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앞지른 것은 1980년대 중후반에 가서야 있던 일이었다.

(1968년 청와대 기습 공격 사건)

 

1960년대 당시 북한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사회주의 체제가 갖춘 기본적인 복지체계가 확고히 잡혀 있었으며적어도 이웃나라였던 사회주의 중국보다 더 경제사정이 좋았다이후 칠레의 대통령이 되는 살바도르 아옌데는 1960년대 당시 북한을 방문했었는데북한의 무상의료 체제와 무상교육 체제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놀랍게도 당시 칠레의 실질적 소득 수준은 북한의 몇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즉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당시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얼만큼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이런 사정이었기에 실제로 북한은 냉전이라는 흐름에서 제3세계나 사회주의 진영의 투쟁을 돕고자 했다당시 북한이 쿠바베트남이집트인도네시아 등을 도왔던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그러던 1968년 한반도에서는 놀라운 일이 터졌다바로 청와대 기습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김신조를 포함하여 31명으로 편성된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가 청와대 기습을 목표로 휴전선을 넘어 수도 서울에 침투한 것이었다이들이 공격 목표로 삼은 장소는 청와대와 주한 미대사관육군본부 등이었다이들의 침투는 결국 들통이 나서 김신조 1명을 생포하고 29명을 사살했다나머지 1명은 북한으로 도망친 걸로 추정된다생포된 김신조는 공개 인터뷰에서 자신의 목적이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힌 푸에블로호 선원들)

 

청와대 기습 사건이 있은 지 2일 뒤인 1월 23일 북한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북한 영해에서 해군기지항만시설해안가 지형 등을 정탐하던 미 해군 정찰함 USS 푸에블로(USS Pueblo AGER-2)호가 해상 순찰 중이던 인민군 해군에게 나포된 것이었다당시 배를 포위한 인민군들은 푸에블로호에 사격을 가해 배에 탑승 중이던 미군 수 명을 사살하고 선언 80여 명을 포로로 붙잡았다또한 배에 있던 각종 무기와 탄약최신예 정탐장비(전파탐지기도청장치암호해독 장치 등)를 노획하기도 했다이렇게 되면서 미국의 존슨 행정부도 한반도 문제로 발칵 뒤집히게 됐다.

 

청와대 기습 사건과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으로 한반도는 다시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반공관변집회가 연이어 일어났고곳곳에 타도하자 김일성!”, “때려잡자 김일성!”등과 같은 구호가 걸렸었다그리고 미국의 존슨 정부는 핵추진항모 USS 엔터프라이즈 호 등 함선 4척으로 구성된 기동부대를 원산만 인근 해역에 급파해 해상 무력시위를 벌였으며미국 본토에선 해군과 공군 예비역 1만 4,600여 명에게 소집령을 내리고 전투기 372대에 출동 대비태세를 명령했으며오산 주한미군 공군기지엔 전략폭격기인 B-52 2대와 F-105 전투기 수십 대를 배치했다그리고 남한의 국군 병력도 비상동원령이 내려졌다남한에서는 이 시점으로 주민등록증 발급교내 교련수업 필수화 등 실시하게 됐다.

(현재 평양 대동강에 있는 미국의 정탐선 푸에블로호)

 

이에 따라 북한에서도 맞대응에 나섰다. 1968년 2월 8일 김일성은 보복에는 보복으로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를 강조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침략에 결사항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이에 따라 북한에서도 전국적으로 전투준비태세를 갖추었으며인민군과 로농적위대는 물론 일반민중들도 전투준비태세를 갖췄었다이처럼 한반도의 상황은 당장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다.

(김일성과 호치민)

 

다행히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당시 사회주의의 한축이던 중국과 소련은 갈등을 보이고 있었고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특히나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남베트남 전역에서 감행한 구정 공세(Tet Offensive)로 미국 내 베트남전 반전 여론은 급상승했다이에 따라 미국은 1968년 12월 판문점에서 푸에블로호의 영해 침범 사실과 정탐행위를 인정했고북한은 억류했던 80명의 선원들을 전부 석방했다. 1968년 당시 북한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박정희를 죽이려 했던 사건에 미국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푸에블로호 사건에는 격렬히 반응했다여기서 박정희가 미국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이것은 1970년대 박정희가 독자노선을 생각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와 응우옌반티에우)

 

반면 북한의 청와대 기습 공격 사건은 국제연대라는 관점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은 미국을 따라 친미정권인 남베트남에 지상병력을 파병했다그에 반해 국제주의 노선을 천명했던 북한은 북베트남에 공군 조종사를 보냈다즉 북한은 당시 호치민의 북베트남과 연대를 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북한에서 청와대 기습 공격을 감행할 때베트남에서는 북베트남 정규군이 미해병대 기지가 있는 케산을 포위 공격했다즉 1968년 1월 21일에 서울 인근 지역과 남베트남의 케산지역에서는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이런 사실을 비추어 양측의 국제연대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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