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생각에 큰 전환과 충격을 갖다 준 책 한권이 있다. 그 책은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났던 6.25전쟁 즉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국내에 알려준 저작이었다. 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다. 1960년대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이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고, 특히 한국전쟁 관련 연구에 많은 노력을 했다. 또한 1970년대에는 북한을 방문했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다. 즉 이런 연구를 통해 그가 만든 작품이 바로 『한국전쟁의 기원』인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한국전쟁의 기원』은 영문으로 대략 1,000페이지가 넘는 그의 방대한 연구서이며, 1권과 2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1권은 1945년부터 1947년까지의 해방정국을 분석했고, 2권은 1947년 해방정국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까지를 분석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대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이 받은 충격은 리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못지않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한국전쟁에 관해 깊은 연구를 했던 그의 저서는 국내에서 이적표현물이 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전쟁의 기원』 2권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이 책을 탄압한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이 당시 정부가 제시하는 한국전쟁관과 전혀 다른 해석을 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반공주의에 위배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 대해 깊게 연구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전쟁의 발발 시점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 남침했다는 부분에 중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한국전쟁을 일제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찾았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도부였던 김일성과 주류 인사들이 1930년대에는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반면, 남한 지도부들 특히 군부의 경우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했던 친일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대립구도(친일파vs독립운동가)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1950년 한국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보았을 때, 한국전쟁이 북한의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것이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이다.
(브루스 커밍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누가 먼저 일으켰느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전쟁의 구도와 성격 그리고 맥락을 중심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봤다. 물론 1990년대 동구권 붕괴 이후 박명림 교수나 국내의 몇몇 사학자들이 커밍스 교수의 자료를 반박하는 시도를 감행했고, 커밍스의 주장이 반박당하기도 했으나, 이것이 커밍스가 제시한 민족해방전쟁론에 대한 완벽한 반박이 된 것은 아니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던 2010년 브루스 커밍스는 『The Korean War: A History』라는 한국전쟁 관련 신간을 출간했고, 그 신간은 2017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됐다. 물론 이 책에서도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김일성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했으며,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가지고 있던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
물론 브루스 커밍스가 제시한 민족해방전쟁론은 좌우 할거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민족해방전쟁론에 대해 완벽한 반박을 하는 반공주의자들을 본적이 없다. 그저 낡은사관이라는 말만 얼버무릴 뿐, 커밍스가 제시한 근거(친일파vs독립운동가 등등)를 완벽히 반박하는 사례는 못 봤다. 오히려 이승만 정부부터 반복된 ‘침략자 김일성이 나쁜거니 한국전쟁은 다 김일성 책임이야’와 같은 주장들만 반복될 따름이다. 이것은 개인적 입장부터 학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사학 전공자로써 나는 브루스 커밍스의 민족해방전쟁론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커밍스의 민족해방전쟁론은 국제적인 시각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당시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을 보면 그 구도는 명확해진다. 1950년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은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었고, 대만해협에서는 장제스를 지원하는 것이었으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식민지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를 지원하여 호치민의 독립운동을 막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국제적인 구도에서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며, 한국전쟁을 김일성과 호치민 그리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국제연대라는 시각에서 연구 성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이쪽으로 깊은 연구를 하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