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 출판과정을 거치고 있던 8월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20년 동안 지속되던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탈레반의 공세는 올해 6월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군을 궤멸시켰던 역사가 생각나게 만들 정도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베트남전에선 미군사고문단이 50명도 채 안남은 상태였지만, 이번 아프가니스탄은 3,000명 이상의 미군이 있었다는 점이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속도도 매우 빨랐다. 9.11 20주년 전까지 철수를 마치겠다던 바이든의 주장을 보다 더 빨리 실현하게 만들었다. 8월 15일 카불이 함락되면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사실상 장악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8월 30일에 종결됐다. 미국과의 전쟁 20년 혹은 40년 전쟁이 마무리 되는 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가던 시점에서 서방의 언론과 국내 언론은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의 대부분은 탈레반의 잔학성과 잔학행위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들이 전근대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인권을 억압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난무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탈레반의 잔학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1도 없다. 또한 이들은 반동세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시초는 반소주의 반공주의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느 서방과 국내의 편향된 언론보도에 분노를 많이 느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아프간인들의 탈출 뉴스를 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전쟁기간 동안 이웃 파키스탄으로 피신하였던 수십만명의 난민들이 탈레반의 카불 입성후 그들의 고향땅으로 귀국했던 수십만 명의 이야기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탈레반의 잔학성 부분도 마찬가지다. 탈레반의 잔혹행위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전쟁 제1의 원흉인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전쟁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의해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런 편향성을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때 국내 언론과 외신언론들은 아주 낱낱이 보여줬다. 즉 이나라의 언론은 이에 대한 심층분석없이 서구의 통신사와 언론들이 제공하는 그들의 시각에서의 아프간 기사를 분별없이 수용하고 실어나르기에 급급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인 여성인권 부분도 마찬가지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인권문제는 굳이 탈레반이 아니더라도 심각한 문제였다. 패망한 친미 정부 또한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미국이 내세웠던 여성해방이라는 글자 그 자체는 위선이었을 뿐 미국 정부는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탈레반의 반동적인 여성관과는 별개로 미국 통치시기의 아프가니스탄은 인권도 생명도 여성의 권리도 그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사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하는 소리만 받아적었던 이들이 모습은 그저 한심할 따름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은 자칭 좌파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탈레반에 대해 미군을 몰아냈다는 점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에도 온갖 힐난을 보인다. 탈레반이라는 집단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다들 하지도 않은 주장을 열심히 비판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수많은 '진보', '좌파'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왜 우리가 종교근본주의 집단을 무조건 지지하고 있다고 오독을 하는걸까...


아마도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식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탈레반을 지지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진보', '좌파'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든다. 자칭 좌파들이나 일부 반좌파세력이 생각하는 그런 주장을 밀어붙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두들겨 패는 취미가 있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지만, 별로 좋지 않은 모습인것 같다.
혹시 "(서구식)민주주의가 아니라서 문제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적어도 진보나 좌파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가급적 삼가고, 미국의 비호를 받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당신들이 가진 이념에 더욱 가까운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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