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
토니 클리프 지음, 조효래 옮김 / 책갈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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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15일 밤 독일의 자유군단은 한 여성을 체포하여 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쳐 살해했다. 그 여자가 바로 독일의 유명한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다. 마르크스 전기 작가인 프란츠 메링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스탈린과 스탈린체제에 반대했던 사회주의 계열 세력들은 5명의 사회주의 혁명가들로부터 사회주의의 정통성을 세우고자 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에서부터 찾았다. 이렇듯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회주의자들에게 준 영향력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1. 개혁이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쟁점은 현재도 사회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과 대립하게 되는 이유다. 현재 존재하는 진보세력들이 개혁과 혁명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대립하듯이, 19세기와 20세기의 사회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또한 그러했다. 물론 작금의 사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나 20세기 사회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세상과는 다르긴 하지만, 지금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립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세기 마르크스주의가 탄생한 이후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에뚜아르뜨 베른슈타인이나 칼 카우츠키처럼 사회주의 사상을 수정하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 생겼다. 이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당 내에 있으면서 수많은 논쟁을 거쳤고, 사상적인 부분에서 많은 대립을 겪었다.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소부르주아나 개량주의자들로 간주했고, 자신이 속한 당 내에서 사상적인 뜨거운 논쟁과 투쟁을 거치며 그들의 사상에 맞서 싸웠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 시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개량주의적인 관점과 관념론적인 이상을 비판하며 자본주의를 일부분 수정하는 개혁보다는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는 혁명을 추구했다. 실제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세계대전 시기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스파르타쿠스단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1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1811월에 독일 혁명을 일으켰다. 즉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2.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투쟁

 

1914년 유럽은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먹구름에 휩싸였다. 이 전쟁으로 강대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러시아, 오스만 제국과 같은 군사강국들이 죄다 참가했다. 19세기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발전된 과학기술은 전쟁을 학살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기관총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는데, 그 시기 전쟁 지휘자들은 기관총을 처리하기 위해 구식 전법을 고집하는 바람에 기관총을 향해 돌격하는 병사들은 대량 학살당했다.(이런 짓거리를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할 거 없이 다 했다.) 그리고 이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보충되는 병력은 자국의 노동계급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1914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제2인터내셔널에 있던 대다수의 지식인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국 방어라는 논리를 내세워 제국주의 쟁탈 전쟁을 찬성했고, 선동했다. 이 시기 독일에 있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에 반대했다.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자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오직 문제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찬성론자들의 입장에 반대하며 그들의 논리를 논파했다.

 

자본주의가 팽창하지 않고도 존속할 수 있다는 이론은 특정한 전술적 의도를 위한 이론적 정식화에 불과하다. 이 이론은 제국주의 국면을 역사적 필연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결정적 투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수 이해집단의 악의에 찬 발명품이라고 여긴다. 이 이론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심지어 부르주아적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도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부르주아지에게 인식시키려 한다. 이렇게 되면 쇠위 한 줌도 안 되는 이해집단을 고립시키고 프롤레타리아가 다수파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어서 제국주의를 억제하고 부분적 군축으로 약화시키고 독침을 제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쇠퇴기의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무식한군주가 아니라 계몽된군주에게 호소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 중간파는 이제 비합리적부르주아지가 아니라 합리적부르주아지에게 제국주의라는 파멸적 정책을 버리고 군축을 위한 국제조약을 체결하라고, 세계 지배를 위한 무력 쟁탈전을 그치고 민주적인 국민국가들의 평화로운 연방 체제로 나아가라고 호소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주의 사이의 해묵은 원한, 즉 양자 간에 존재하는 커다란 모순의 해소가 자본가 국가들 간 제국주의적 모순의 완화를 위한 목가적 타협으로 해소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몇 년간의 감옥생활을 했지만,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전쟁에 반대했다.

 

3. 자본의 축적

 

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과 더불어 수많은 글을 많이 집필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를 분석한 위대한 철학서적인 자본론을 집필했듯이,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자본주의를 분석한 서적을 썻다. 그것이 바로 자본의 축적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저서 자본의 축적은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잉여생산을 통해서 자본이라는 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축적해 나가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이 저작은 룩셈부르크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 없이, “자본론이후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이며 독창적인 저작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을 잘 알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경제학 서적이자 철학 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4. 로자 룩셈부르크를 생각하며

 

마르크스의 전기 작가인 프란츠 메링이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라고 말한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또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지적 능력만을 노동계급의 운동에 바친 것은 아니었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모든 것, 곧 정렬, 강인, 한 의지 , 삶 자체를 바쳤다.

 

무엇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을 추구하던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위대한 지도자와 교사 중에서도 룩셈부르크는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점한다. 마르크스나 레닌 그리고 사회주의를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봤지만, 로자 룩셈부르크를 깊이 공부해보진 못했다. 이번에 토니 클리프가 쓴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이라는 책을 읽으며 현실에서 투쟁하며 실천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가적인 모습과 제국주의를 분석하며 비판하는 그녀의 글에서 정만 많은 걸 느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죽음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고, 독일혁명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독일의 자유군단과 우익들에게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반동적인 행태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로부터 14년 뒤 최악의 독재자이자 대학살자인 아돌프 히틀러와 그가 이끄는 나치독일이라는 파시즘적인 국가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토니 클리프가 쓴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은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 입문하는 차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 책 또한 읽는 것에 비해 얻는 것이 많다. 다만 영국의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냉전시기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기에, 이 부분은 좀 걸러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로자 룩셈부르크를 알기위해선 읽어볼만하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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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미국의 세기
존 다우어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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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폭력, 전쟁, 무기개발, 제국주의로 얼룩진 미제국주의의 추악한 역사>

미국이라는 나라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을 패망시키는데 이바지했던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소련과 경쟁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은 자신들의 적이 사라졌다 생각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1991년 걸프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은 중동분쟁에 개입했고,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에 개입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중동분쟁은 현재진행형으로써 아직도 미국은 중동분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한 제국주의 국가가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저질러 제국주의적 폭력과 비상식적인 무기개발 그리고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이 저질러온 침략과 학살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고 규탄한다. 그 중 하나는 ‘대리전과 대리 테러’라는 제목의 장에서 다루는 음험하고 추악한 만행들이다. 냉전기 미국은 남미에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친미괴뢰정권들을 세우기 위해 남미에 있던 사회주의 세력과 혁명세력들을 무력과 친미파들을 앞세워 박살냈다. 마치 8.15 해방 이후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남조선에서 이승만이라는 미제국주의자와 총칼을 앞세워 여운형 선생과 같은 좌우연합 통일 세력의 염원과 당시 제국주의에 맞서 저항하던 사회주의 세력과 수많은 노동자 농민의 투쟁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듯이 말이다. 쉽게 말해 남미에서도 4.3항쟁이나 여순항쟁 그리고 대구 10.1 항쟁같은 반제국주의 투쟁과 노동자 농민의 항쟁이 있었고, 미제와 미제 앞잡이들에 의해 아주 철저히 짓밟혔다는 얘기다. 그리고 미국의 저지른 그런 제국주의적인 만행은 “하나같이 반공주의의 이름”아래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미제국주의의 탄압과 전술전략이 남미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라 일으킨 쿠바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쿠바혁명으로 인하여 미국은 바티스타 친미괴뢰정권을 지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자 미국은 쿠바를 봉쇄했고, 심지어 망명자들 출신들을 동원하여 쿠바를 침공했었다. 그리고 처참히 패배했다. 냉전 후반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후반 사이 미국은 ‘콘도르 작전’을 개시하여 친미반공국가를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그 과정에서 수만 명 이상이 남미에서 학살당했다. 마치 한반도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반공이라는 이름아래 목숨을 잃었듯이 말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반대세력을 고문하기 위해 만든 매뉴얼이 있는데, 이는 너무나 끔찍해서 읽다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다.

미국의 이러한 만행들은 1991년 걸프전쟁 이후에도 반복됐다. 2001년 9.11테러로 인하여 충격에 휩싸였던 미국과 호전광 조지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리고 미국은 여러 전쟁범죄들을 일으켰고, 지속적으로 중동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21세기 초반부터 오늘날 까지 치른 중동분쟁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합치면 대략 7000명 이상이 된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아직까지도 엄청난 교착상태에 빠져 전투가 지속되고 있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는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행한 무차별 미간인 폭격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에게 행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각각 수십만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한다. 독일의 드레스덴 폭격과 일본의 도쿄 대공습만 보더라도 적어도 2만에서 10만사이의 민간인이 미군의 폭격으로 무차별 학살당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남북합쳐 약 200만명의 베트남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미국의 융단 폭격과 고엽제 투하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무차별 폭격은 베트남에서 보다 한국전쟁에서 더 효율적이었다 한다.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전략폭격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북한과 남한 양쪽에서 도시란 도시는 거의 다 불태웠어요.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을 죽였고 700만 명 이상을 고향에서 내몰아서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비극이 일어나게 된 거죠.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p.73~74)

커티스 르메이 장군이 제시한 수치가 과장이든 아니든 간에 한국전쟁 시기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학살당한 민간인은 엄청 많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은 걸프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도 반복됐고, 지금도 계속 미국에 의하여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폭력적인 미국의 세기”는 이와 같은 미국의 만행을 아주 잘 고발한 책이다. 저자는 풍부한 지식과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책 두께에 견줘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미제국주의의 역사가 궁금한 독자에게 아주 유용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200페이지 안팎의 짧은 분량이지만 그 짧은 분량 안에 정말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잘 담고 있다. 책 분량에 비해서 읽으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책이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큰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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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이 책을 인터넷 구매했습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학습을 해야 남북관계를 더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할 수 있으리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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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찌민인가? - 베트남의 진실이 위기의 한반도에게 묻는다
송필경 지음 / 에녹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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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함락시킴으로써 외세를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이룩했다. 1965년 베트남 전에 개입한 미국의 요청으로 대규모의 전투부대를 파병한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부는 75년 월남이 해방되자 이를 계기로 반공주의를 강화하고 반독재투쟁을 전개하던 민주인사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베트남 전쟁을 단순히 “자유민주주의을 수호하기 위해 싸운 전쟁, 경제발전에 기여한 소중한 전쟁 혹은 공산괴뢰 월맹이 자유월남을 적화시키게 된 전쟁”으로 인식했고 군사독재의 끄나풀이었던 대한뉴스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 민주화 투쟁하는 학생과 지식인들을 월남패망을 예시로 들며 대중매체를 통해 지속적인 반공반북 선전을 하였다. 박정희 전두환의 반공선전의 여파로 지금까지도 자유한국당과 박사모세력들은 월남패망을 들먹이며 반공선전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베트남 전쟁을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보려는 사람들은 종북좌파, 좌경, 용공분자로 몰아붙인다.

사실 수구세력의 이러한 반공선전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난 베트남 전쟁을 단순히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이 참전한 전쟁”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다른 자료를 접하고 리영희 선생이 쓴 책과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 관련한 서적을 여러권 읽으며 나의 생각은 점차 변했고 한평생을 베트남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헌신한 호치민 아저씨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왜 호치민인가” 저자 송필경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반공주의로 인하여 대한민국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혹은 지금까지도) 베트남 전쟁과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과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매우 불필요한 관점이다. 우선 베트남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2천년 전부터 중국의 침략에 저항해온 역사다. 수많은 중국의 침략에 저항했고 13세기 칭기스칸의 몽고군대가 아시아 대륙을 정벌할 때 베트남은 몽골의 지속적인 침략을 막아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나라가 베트남이다. 그러던 중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제국이 된 프랑스가 19세기 중반 베트남을 침략하였고 베트남을 3등분(북부는 통킹, 중부는 안남, 남부는 코친차이나)하여 식민지화 하였다. 이와 같은 프랑스의 지배 하에서 베트남의 위대한 영웅 호치민이 1890년 베트남의 시골마을 킴리엔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민중은 프랑스 제국주의에 저항해왔다. 호치민도 20대 때부터 독립운동을 해왔다. 1940년 나치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히틀러의 동맹국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했다.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의 애국자들은 베트남 독립 동맹(베트민)을 창설하여 일본에 저항해왔고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에서 있을 일본의 공식항복 서명식에 맞추어 호치민은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이를 무시했고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화 하려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결국 베트남에서 물러났다. 프랑스가 떠난 뒤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원래는 2년 이내에 통일을 위한 선거를 해야 했지만 미국은 민중성이라고는 1%도 없는 민족반역자 반공정권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분단을 구축했다. 그러던 중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고 북베트남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였다. 1965년부터 미국의 지상부대가 상륙하였고 1967년에는 54만9천명의 미군이 남베트남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프랑스를 대신하여 싸우게 된 미국은 수많은 전쟁 범죄와 학살 그리고 폭력을 자행하였다. 1968년 1월 31일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구정공세를 감행하여 “베트남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미국의 선전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고 미국 내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났다. 결국 미국은 1969년부터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고 1972년 크리스마스에는 대규모의 융단폭격을 가한 뒤 1973년 1월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나서 베트남에서 철수 했다.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에도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삼던 남베트남 정권은 결국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처럼 베트남의 역사는 2천 년간 중국의 침략에 맞서 저항해왔고 몽고군의 침략도 막아냈으며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침략까지 막아냈다. 즉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미국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위대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1969년 9월 2일 심장병으로 죽었지만 호치민이 베트남 인민들에게 보여준 친 민중성과 따뜻함 그리고 베트남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열정은 베트남 인민들을 자발적으로 침략자들의 야만적인 행위에 저항하게 만들었고 미국을 몰아내고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베트남의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 그는 비록 잘살지 못하는 나라의 지도자였지만 그가 민중에게 보여준 진심과 따뜻함 마음 그리고 베트남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정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 그리고 미국의 용병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하여 온갖 범죄와 민간인 학살을 일삼았던 우리의 과거도 분명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송필경 선생이 베트남 평화 기행을 배경으로 한 기행문에 가깝지만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들이나 수구세력들이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에 대해 얼마나 잘못알고 있는지를 아주 잘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쓴 책 중에 호치민을 주제로 한 몇 안 되는 매우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틈만 나면 월남패망과 보트피플 같은 얘기만 외치는 대한민국의 수구적폐세력들의 논리와 지식이 얼마나 흠이 많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책의 저자 송필경 선생님처럼 베트남 평화기행에 꼭 동참하고 싶어졌다.

무튼 이 책은 베트남 전쟁의 본질과 호치민을 아주 정확히 잘 파악하고 있는 매우 좋은 책이다. 비록 절판되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본다. 이처럼 좋은 책을 써주신 저자 송필경 선생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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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 다이빙 시작하기 - 다이버로 살아가는 당신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
Arnold J. Kim 지음 / psdc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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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 다이빙 입문격으로 읽기 괜찮은 책이다. 물 안무서워하는 다이버초보들은 읽어보길 바란다. 참고로 내 외삼촌이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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