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
토니 클리프 지음, 조효래 옮김 / 책갈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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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15일 밤 독일의 자유군단은 한 여성을 체포하여 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쳐 살해했다. 그 여자가 바로 독일의 유명한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다. 마르크스 전기 작가인 프란츠 메링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스탈린과 스탈린체제에 반대했던 사회주의 계열 세력들은 5명의 사회주의 혁명가들로부터 사회주의의 정통성을 세우고자 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에서부터 찾았다. 이렇듯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회주의자들에게 준 영향력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1. 개혁이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쟁점은 현재도 사회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큰 논쟁과 대립하게 되는 이유다. 현재 존재하는 진보세력들이 개혁과 혁명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대립하듯이, 19세기와 20세기의 사회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또한 그러했다. 물론 작금의 사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나 20세기 사회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세상과는 다르긴 하지만, 지금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립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세기 마르크스주의가 탄생한 이후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에뚜아르뜨 베른슈타인이나 칼 카우츠키처럼 사회주의 사상을 수정하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 생겼다. 이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당 내에 있으면서 수많은 논쟁을 거쳤고, 사상적인 부분에서 많은 대립을 겪었다.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소부르주아나 개량주의자들로 간주했고, 자신이 속한 당 내에서 사상적인 뜨거운 논쟁과 투쟁을 거치며 그들의 사상에 맞서 싸웠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 시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개량주의적인 관점과 관념론적인 이상을 비판하며 자본주의를 일부분 수정하는 개혁보다는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는 혁명을 추구했다. 실제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세계대전 시기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스파르타쿠스단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1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1811월에 독일 혁명을 일으켰다. 즉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2.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투쟁

 

1914년 유럽은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먹구름에 휩싸였다. 이 전쟁으로 강대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러시아, 오스만 제국과 같은 군사강국들이 죄다 참가했다. 19세기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발전된 과학기술은 전쟁을 학살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기관총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는데, 그 시기 전쟁 지휘자들은 기관총을 처리하기 위해 구식 전법을 고집하는 바람에 기관총을 향해 돌격하는 병사들은 대량 학살당했다.(이런 짓거리를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할 거 없이 다 했다.) 그리고 이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보충되는 병력은 자국의 노동계급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1914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제2인터내셔널에 있던 대다수의 지식인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국 방어라는 논리를 내세워 제국주의 쟁탈 전쟁을 찬성했고, 선동했다. 이 시기 독일에 있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에 반대했다.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자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오직 문제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전쟁 찬성론자들의 입장에 반대하며 그들의 논리를 논파했다.

 

자본주의가 팽창하지 않고도 존속할 수 있다는 이론은 특정한 전술적 의도를 위한 이론적 정식화에 불과하다. 이 이론은 제국주의 국면을 역사적 필연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결정적 투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소수 이해집단의 악의에 찬 발명품이라고 여긴다. 이 이론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심지어 부르주아적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도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부르주아지에게 인식시키려 한다. 이렇게 되면 쇠위 한 줌도 안 되는 이해집단을 고립시키고 프롤레타리아가 다수파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어서 제국주의를 억제하고 부분적 군축으로 약화시키고 독침을 제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쇠퇴기의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무식한군주가 아니라 계몽된군주에게 호소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 중간파는 이제 비합리적부르주아지가 아니라 합리적부르주아지에게 제국주의라는 파멸적 정책을 버리고 군축을 위한 국제조약을 체결하라고, 세계 지배를 위한 무력 쟁탈전을 그치고 민주적인 국민국가들의 평화로운 연방 체제로 나아가라고 호소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주의 사이의 해묵은 원한, 즉 양자 간에 존재하는 커다란 모순의 해소가 자본가 국가들 간 제국주의적 모순의 완화를 위한 목가적 타협으로 해소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몇 년간의 감옥생활을 했지만,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전쟁에 반대했다.

 

3. 자본의 축적

 

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과 더불어 수많은 글을 많이 집필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를 분석한 위대한 철학서적인 자본론을 집필했듯이, 로자 룩셈부르크 또한 자본주의를 분석한 서적을 썻다. 그것이 바로 자본의 축적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저서 자본의 축적은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잉여생산을 통해서 자본이라는 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축적해 나가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이 저작은 룩셈부르크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 없이, “자본론이후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이며 독창적인 저작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을 잘 알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경제학 서적이자 철학 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4. 로자 룩셈부르크를 생각하며

 

마르크스의 전기 작가인 프란츠 메링이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라고 말한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또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지적 능력만을 노동계급의 운동에 바친 것은 아니었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모든 것, 곧 정렬, 강인, 한 의지 , 삶 자체를 바쳤다.

 

무엇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혁명을 추구하던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위대한 지도자와 교사 중에서도 룩셈부르크는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점한다. 마르크스나 레닌 그리고 사회주의를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봤지만, 로자 룩셈부르크를 깊이 공부해보진 못했다. 이번에 토니 클리프가 쓴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이라는 책을 읽으며 현실에서 투쟁하며 실천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가적인 모습과 제국주의를 분석하며 비판하는 그녀의 글에서 정만 많은 걸 느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죽음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고, 독일혁명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독일의 자유군단과 우익들에게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반동적인 행태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로부터 14년 뒤 최악의 독재자이자 대학살자인 아돌프 히틀러와 그가 이끄는 나치독일이라는 파시즘적인 국가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토니 클리프가 쓴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은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 입문하는 차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 책 또한 읽는 것에 비해 얻는 것이 많다. 다만 영국의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냉전시기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기에, 이 부분은 좀 걸러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로자 룩셈부르크를 알기위해선 읽어볼만하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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