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2019년 남미에서 가장 긴 영토를 자랑하는 국가 칠레는 대규모 항의시위에 휩싸였다. 수많은 칠레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였고, 그 시위는 2020년인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계속되고 있다. 칠레는 부의 불평등이 극심한 나라다. 유엔 중남미ㆍ카리브경제위원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가 전체 국가 부의 26.5%를 차지하고 있고, 하위 50%가 차지하는 부는 전체의 2.1%에 불과할 정도로 칠레의 빈부격차 문제는 심각하다. 현재 칠레의 최저임금이 한국 돈으로 49만원 정도이지만, 민중의 53%가 62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고 있고 231만원 이상을 버는 샐러리맨은 칠레 인구 전체의 6.1%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 대학 등록금은 비싸고 의료보험과 약값도 비싸기에 일반 민중의 부담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칠레의 상류 계급들과 기업들은 엄청난 이윤축적을 하고 있기에, 칠레 민중들은 이에 분노하여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빈부격차와 기업의 착취적 이윤창출로 인하여 민중의 불만이 극심한 칠레에서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한 사회주의자가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적이 있다. 그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대통령이 된 이후 칠레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가 바로 혁명적 민주주의자이자 세계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된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참으로 매력적인 생애를 가진 인물이다. 1908년 칠레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처럼 의대에 입학했고, 군복무와 의대시절의 경험 그리고 각종 반정부 시위를 통해 사회 비판적 의식을 길렀으며,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함으로써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1938년부터 1942년까지 그는 칠레의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쳤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부터는 칠레의 상원의원을 지냈다. 칠레 사회당에서 정치경력을 쌓은 그는 3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지만, 1952년과 1964년 대선에선 칠레 좌파계열의 분열과 보수진영의 방해공작으로 패배했었다. 1970년 그는 세계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칠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그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칠레에서 여러 가지 사회주의적 개혁 및 정책을 실행했다. 그는 집권 초기에 수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폭등하던 물가인상률을 30%대에서 15% 이하로 감소시켰다. 전 정부에서 3%도 이루지 못했던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약 8% 이상까지 치솟게 했고, 산업 생산과 광산ㆍ농업 생산량도 모두 성장세를 보였다.
초기 아옌데의 정책으로 칠레 경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호황을 누렸고, 수많은 이들이 전보다 나은 식품과 소비재를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아옌데 정권은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모든 60세 이상 인구에게 연금 지급을 약속했고, 중소기업에게도 사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가족 보호를 전담할 정부 부처도 신설하기로 했으며,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으로 우유와 아침 식사 급식을 실시하기로 했다. 모든 동네마다 모자보건진료소와 법률상담센터를 마련하기로 하는 한편, 전기와 수돗물 공급을 칠레 전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집세는 가계 수입의 10%를 상한선으로 정해, 더 인상할 수 없도록 했다. 아옌데의 개혁정책 뼈대에는 칠레 경제를 3개 부문으로 개편하는 방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사회 부문, 혼합 부문, 민간 부문으로 나눠, 민주적으로 결정된 계획에 따라 긴밀히 연계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중요한 조처는 구리, 질산염, 요오드, 철광석, 석탄 산업과 금융, 무역, 그리고 칠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독과점 부문들의 국유화정책이었다. 따라서 아옌데는 많은 부분에서 사회주의를 이룩하고자 했다.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진보적인 조치들을 단행해 나가자,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있었는데 바로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반공의식을 가진 미국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 그리고 사회주의에 불만을 품은 우익 세력들이었다. 1970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을 겨냥한 흑색선전에 80만~100만 달러가량의 자금을 쏟아부었던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되자 CIA를 이용하여 칠레에서 군사 쿠데타를 준비했고, 이들에게 부역하는 세력은 칠레에서 테러 공격을 감행했다. 대형 슈퍼마켓과 증권거래소, TV 방송국과 철도, 공항 유류 저장 시설로 폭탄이 날아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테러 행위를 일삼는 이들에게 자금을 댄 것은 역시 미국과 CIA였다.
결국 미국은 1973년 우익 출신 군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이용하여 군사 쿠데타를 획책했다. 미국은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를 도왔고, 수도 산티아고는 피바다가 되었다. 피노체트 휘하의 반혁명 세력들은 아옌데가 있던 대통령궁을 비행기로 폭격하고 탱크를 앞세운 군대를 보내 아옌데 측 군대를 진압했다. 아옌데 또한 피델 카스트로에게 선물받은 AK-47 소총을 들고 반혁명 군대와 총격전을 벌였지만, 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 1973년 9월 11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아옌데는 반혁명 군대와의 대치속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했는데, 그 내용중 일부를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와 농민과 지식인 모두, 앞으로 파시즘 치하에서 탄압을 당하게 될 겁니다. 파시즘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테러가 횡행하고, 교량이 파괴되고, 철로가 끊기고, 원유와 가스 파이프라인이 파괴돼도 이를 막아야 할 자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 역시 똑긑은 짓을 저지른 겁니다. 역사가 저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돼선 안됩니다. 저들에게 압도당해서도, 살육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주십시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검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p.236에서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일부 발췌
아옌데가 죽고 난 이후 칠레에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피노체트와 그의 주구들은 점령군 행세를 했다. 쿠데타 이후 불과 몇 달 새 수십만 명이 체포, 구금됐고 상관의 명령에 불복한 병사들은 총살되었으며, 아옌데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장교들은 줄줄이 체포돼 고문당했고, 일부는 살해됐다. 칠레 좌파 정당의 평당원이나 노동조합 조합원도 탄압의 대상이 됐다. 많은 이들이 살해됐고, 이들 중 어린이 수십 명도 고문을 당했으며 일부는 살해됐다. 지방에서는 지주들이 농민들에게 폭력적 보복을 가했다. 군부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더 나은 미래와 이상적 사회를 꿈꾸던 수천 명의 이름 없는 이들도 삶을 마감했다. 피노체트가 아옌데의 유산을 지우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교육계에서 좌파 성향의 인사들이 줄줄이 축출됐다. 또한, 그는 공산당을 불법화했다. 이렇게 피노체트는 친미주의를 유지하며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피노체트부터 시작된 칠레의 정부는 무능했고 사회주의적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칠레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초과이윤을 위한 소수 자본가들의 극심한 민중 착취 체제다.
칠레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극심한 불만이 심화되면서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피노체트 정권은 사회주의자 아옌데가 남긴 유산을 지우려 했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이 칠레 사회에 폭발적으로 나타나면서 아옌데는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칠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의 존재는 미국이라는 악랄한 제국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정권을 어떻게 파멸 시킬 수 있는지도 보여주기도 한다. 아옌데의 비극적 죽음과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악랄함과 사악함이 칠레를 어떤 비극으로 몰고 갖는지도 같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옌데의 존재는 “사회주의자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과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비록 아옌데는 미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로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했지만, 사회주의자가 민중 대다수에게 지지를 받았을 때 가지고 올 변화가 무엇인지 집권 기간 3년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칠레 인민들에게 안정적인 노후연금과 질높은 교육, 외세의 기업적 착취 및 인권유린 종결,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질높은 소비재 보급을 추구했고, 실제로 짧은 기간에 그걸 달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미제국주의와 칠레 우익 부르주아 계층의 도움 없이 이룩한 아옌데의 업적이었다. 아옌데가 추구했던 정신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누려야할 당연한 인권이기도 하다.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가 집필한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는 혁명가 아옌데의 감동적인 생애와 민중의 인권과 사회주의 사회를 향한 그의 열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명저다.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아옌데의 감동적인 생애와 사회주의적 열정을 느끼게 할 것이다. 글 앞부분에서 상술했듯이 현재 칠레는 1973년 피노체트가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적 내부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민주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아옌데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