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테러 방지법 때문에 시끄럽다.

 

  국회의장 직권으로 상정이 된다 만다는 이야기가 있고,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몸으로 저지하기 시작했다. 몸으로 저지했다고 하지만, 과거처럼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아니다. 필리버스터라는 적법한 절차를 가지고 저지를 시작한 것이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도 말을 자주하는 사람으로서 연단에 서서 몇 시간을 연설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않다. 한 시간만 해도 목이 갈라지는데 몇 시간을 이어가고, 은수미 의원은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연설을 하면서 이 분야의 신기록을 세웠단다. 그들이라고 그렇게 하고 싶을까? 그럼에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말 말그대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대통령은 무식한 소리를 하면서 자신의 밑바닥을 온 국민에게 드러내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기가 막힌 현상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일이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책상을 탕탕 쳤단다. 몇번을 쳤는지 정신나간 기자들은 그 횟수를 세었다. 과거 몇번이나 기립박수를 했는지를,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를 기사로 다루었던 기자들의 정신 세계와 수준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씁쓸하다. 그런데 우리 공대생 대통령께서는 정말로 필리버스터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일이 이미 역사가 오래된 일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소의 필리 버스터는 로마 시대의 정치인 카토(그를 3차 포에니 전쟁 시의 카토와 구분하기 위하여 소 카토로 부른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사르에 반대했던 카토는 당시 원로원의 회의가 해가 지면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해가 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연설을 했던 전적이 있다. 아마도 내 기억에는 이것이 역사가 기록하는 최초의 필리버스터라고 생각한다. 근대적인 필리버스터는 1854년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24시간 이상을 연설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故 김대중 대통령이 5시간이 넘는 시간을 연설하였던 전적도 있다. 네이버 시사 상식 사전에서는 필리버스터를 "의회 안에서의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2012년 개정한 국회법 106조의 2에 보면 이에 대한 관련법이 있어서, 필리버스터가 합법적인 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며칠 사이에 국회법 106조의 2와 필리버스터, 카토가 인기 검색어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 106조의 2를 모른다고 할지라고 조금이라도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게다가 자기 아벚와 그렇게 싸웠던 故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상식이 있다면 이것이 낯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텐데,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지식이 얄팍한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필리버스터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국회의원들고 있음을 가르쳐 주었으며, 특히 은수미 의원의 마지막 발언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은수미 의원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한 마지막 발언이 이번에 처음 한 발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몇 달전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등장에서 청년 실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했던 이야기임을 알 것이다. 청년과 연관 검색어가 글자 수 세기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그분은 알기나 하나 모르겠다.

 

  과거 나는 친박이다라는 팟캐스트가 있었다. 꽤나 재미있게 들었던 팟캐스트였는데 진행자들이 했던 말 가운데 아직도 기억나는 촌철살인의 말이 있다.

 

  "이명박은 해 본 것이 많아서 문제고, 박근혜는 안해 본 것이 많아서 문제고, 국민들은 아는 것이 많아서 문제다."

 

  당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었던 말인데, 이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이 해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청년들의 삶이 어떤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어떠지 당최 알지를 못하고, 책상만 탕탕 쳐대면서 국회가 딴지를 건다는 천박한 말이나 해대는 것이겠지. 제발 자신의 지식이 얇고 가늘다는 것을 온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테러방지법을 몸으로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필리버스터라는 것이 꼼수이지 해결책은 아니다.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방편이지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깨닫고 그냥 감동하지 말고, 그들을 응원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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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5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6-03-03 18:17   좋아요 1 | URL
문제는 그걸 모른다는 것이지요. 금붕어도 아니고....
 

  예전에 리뷰를 작성했던 글에 어제 댓글이 달렸다. 내가 그때 글을 작성하면서 故를 실수로 古로 적은 것 같다. 난 일단 글을 쓰고 나면 탈고하거나 오타를 찾거나 그러지 않는다. 책을 내기 위한 것이나 어디 공적으로 올리려고 하는 글은 아니기 때문에 오타가 나오면 나오는대로 그냥 둔다.

 

  물론 위의 글고 마찬가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런데 여기에 댓글이 달렸다. 오타를 지적하면서 위의 이미지처럼 댓글을 달아 놓은 것이다. 전혀 친분도 없고, 그렇다고 한마디 해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진짜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알라딘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다. 지금껏 알고 지냈던 많은 알라디너들이 이런 류의 인신공격과 막말 때문에 알라딘을 떠났다. 그들 중에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이 있어서 마음이 더 아프다. 물론 나도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접어버릴까도 생각해봤지만 순전히 귀찮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런 글 하나에 마음이 꽤 지친다. 인터넷 공간이라고 막 뱉어내면 그만인가? 서로 조심했으면 좋겠다.

 

  PS. 내 오타를 보면서 이런 인신 공격을 날린 사람은 과연 자기 맞춤법은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古박남준 => 나는 故를 古로 잘못 적었지만 최소한 백남준을 박남준이라고 하는 성희롱은 안했음.

 

씨빡세끼 => 나더러 무식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욕도 틀리는지...씨팔새끼가 맞소. 씨빡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고 세끼는 세번의 끼니를 말하는 것이오. 씨빡세끼는 그럼 씨빡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번을 먹는다는 말인데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지.

 

  혹시 지나오면서 이 글을 보거든 욕에도 맞춤법은 있다는 것을 아시고, 무식을 티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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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인간 말종들을 만나면 누군지 알아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비판도 제대로 못하면서 비겁하게 비로그인으로 비난하는 태도는 한심스러워요.

akardo 2016-02-2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서 비로그인으로는 댓글 못 달게 막아놨습니다. 비로그인으로 댓글 남기는 사람들 보면 다 좀 치졸한 글들을 많이 남기더라고요.

yureka01 2016-02-2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로그인 댓글금지 하시길.....익명 뒤에서 댓글은 무시하시구요..

나타샤 2016-02-2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빡세끼는 그럼 씨빡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번을 먹는다는 말인데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지.<-- 요대목에서 큰 소리로 웃었어요. 와..멋지십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2-2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뭐 이런 걸 가지고 알라딘 떠나시려 합니까. 이런 ㄱ ㅅ ㄲ 는 항상 있으니 생까십셔..
이 댓글 본다면 내 글에도 댓글 달겠네 ? 달아라, 빙시야..

기억의집 2016-02-2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시하세요! 찌찔한 사람에게 져서는 안 돼죠!

yamoo 2016-02-26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넘은 걍 무시하는 게 장땡입니더~~
 
역사 ⓔ 4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4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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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황우여 의원을 포함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 선진화법이 위헌이라면서 헌재에 소를 제기했다는 기사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내가 느낀 심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뜨악"이다. 내가 알기로 당시 국회 선진화법은 여야가 합의한 것이며, 그 안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 당시 원내대표였던 황우여 의원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국회에서 찬성표를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궁금한 사람들은 조금만 키보드를 만지작 거리는 수고를 하면 당시 어떤 맥락에서 누가 참여하였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처럼 종이 신문을 다 뒤져야 하는 수고를 인터넷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과거에 자신들의 행동을 잡아 뗄 수 없어서 곤혹스러워 하는 정치인들이 꽤 많이 있다. 비단 이뿐이랴. 경남 새누리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무상급식을 공략으로 들고 나오고 있는데 그들이 과거에 무상급식에 줄기차게 반대해왔던 것 또한 약간의 수고를 통하여 자세하게 알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욕을 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가 말을 해 놓고 아닌척 뒤집어 엎어 버리는 태도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즈음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카 선생의 말을 주절대면서 어려운 말을 떠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직관적으로 역사란 무엇이며,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주절거리고 싶을 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기록이고 기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역사e 4권은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 잊혀져간 역사, 기록되어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과거 모습 가운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들, 잊혀져 갔지만 다시 기억해 내야할 것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 투철한 기록 정신으로 임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들도 많이 있고, 지식e처럼 이 책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만족감을 얻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유체이탈 화법의 달인인 두 통치자의 시대를 지나가면서 기억과 기록으로서의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다는 점이다. EBS가 은근히 안티요 종북좌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장 일어나서 이 책을 불온도서로 지목해야한다고 시위를 해야하지만 전혀 그런 움직임은 없다. 그들은 이 책도 자신들의 기억처럼 엄청난 휘발성을 자랑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꽤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사라들이 이 책을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문학책치고는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고등학생들에게 권장 도서로 많이 읽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보같은 정치인들은 우리가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기억과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각하게 되고, 키보드를 만지는 약간의 수고를 할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상상력마저도 없는 것 같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하여 기억과 기록의로서의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자각했으며 좋겠다는 지극히 불온한 생각을 해본다.

 

  이 책에 대한 한마디 평을 하자면...

 

  "돈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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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독교 1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양혜원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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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진영 쪽에서 주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사도신경은 전혀 복음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적인 것의 의미에 대해서 논란의 의미가 있지만 과격한 보수주의자들은 예수님이 말하지 않은 것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진보진영에서는 사도신경은 사도들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오랜 역사를 두고 사도신경은 Apostles' Creed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암송되어 왔고 교육되어 왔다. 이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맥그라스는 사도신경으로부터 시작해서 기독교 역사상 존재해왔던 여러 신조들의 역사적인 유래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신조가 제정되고 고백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면서 교회 안에서 신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기록하고 있다.

 

  이 시대 최고의 변증가라 불리우는 맥그라스답게 내용의 깊이는 있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 루이스의 책을 읽기가 쉽지 않은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이 책도 상당히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쉽지 않다.

 

  루이스는 신조가 교회 안에서 공동체성을 상기시키고 믿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신조를 외우면서 믿음을 보호하는 교리적인 내용들을 재교육하고, 이를 통하여 믿음을 강화하고, 믿음의 공동체성을 강화하게 된다. 사도신경을 예배 시간에 외울 때 너무 익숙해서 주문처럼 외우지만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의 마운더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어떤 예수님을 믿으며, 어떤 성령님을 믿고, 어떤 종말론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를 사도신조는 몇가지의 간단한 문장으로 상기시킨다. 그외에 다른 신조들을 살펴보면서 사도신경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역사의 결과물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다시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교회 안에서 청년들을, 혹은 교리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교육할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의 시리지들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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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6 0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16 0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임스 롬 지음, 정영목 옮김 / 섬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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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가 죽었다.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정복군주 알렉산더가 죽었다. 그것도 상당히 젊은 나이에. 살아 생전에 거의 신격화 되었던 알렉산더의 사후 그는 그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진짜로 신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물론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상당히 어색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그가 죽었는데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죽음에 대한 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동시에 그가 품었던 세 대륙을 아우르는 대제국에 대한 이상마저도 신성불가침의 것이 되었다. 그 구상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그의 이상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살아 생전 그의 이상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일단 그가 죽자 그의 존재는 물론 이상마저도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은 그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모자라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실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혈통이 순수한 마케도니아 왕족도 아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천자처럼 제후들이 호령하기에 좋은 도구일 뿐이다.

 

  그의 부하들이라고 온전하게 알렉산더의 후계자를 자처할 수도 없다. 그릇과 명성, 실력, 혈통, 그 어느 것으로도 그의 뒤를 이을만한 사람이 없었다. 실력은 있으나 혈통이 안되는 사람, 명성이 안되는 사람, 혈통은 되지만 실력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람 등 딱히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물론 그의 부하들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를 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압도할만큼은 아니다. 당연히 그의 제국은 사분오열되었다. 그리고 많은 내전을 거치면서 그의 제국은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몇 개의 왕조로 분할되었다. 애굽을 중심으로 하는 프톨레미 왕조, 아시아의 대부분을 집어 삼킨 안티고노스 왕조, 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셀류코스 왕조 등 그의 나라는 몇 조각으로 분열되었다.

 

  이 책은 알렉산더 사후 그의 나라가 완전히 분열되기 이전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직 셀류코스 왕조가 등장하기 전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왕조부터 안티고노스의 왕조가 성립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꽤나 신선하다. 아마도 주로 마케도니아의 이야기는 알렉산더에 집중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역사적인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알렉산더가 어떻게 마케도니아에서 신화가 되고 정치 권력의 선전과 정당화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은 더 재미있다. 알렉산더의 이름을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그의 부하들의 이름을 전두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환하여 읽어도 크게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은 더 놀라우면서도 속쓰린 이야기일 것이다.

 

  박정희가 죽었다. 군사력으로 모든 것을 다 집어 삼켰던 전제 군주가 죽었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과 권력은 이미 신성불가침의 신화가 되었다. 감히 박정희의 이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종북이 되고, 좌파가 되었다. 박정희는 이미 반신반인의 존재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대물림되고 있다. 이만큼 살만한 것이 박정희의 공로라는 말로 모든 의문을 근본부터 차단해 버린다. 이후의 권력자들은 그의 신화화되고 박제화된 권력에 기대어 자신이 그의 진정한 후예라면서 정통성을 주장한다. 그와 같은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박정희라는 이름 앞에 35%의 지지율을 몰아 준다.

 

  알렉산더와 박정희의 차이는 딱 하나다. 그의 핏줄이 성장해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권력을 잡았느냐 아니냐의 차이 뿐이다. 이로 인해 박정희는 죽어 신화로 남겨진 알렉산더와는 달리 무덤에서 살아나 이 땅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신화가 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그의 가장 큰 복은 그가 비명에 죽었다는 것, 과가 나타나기 전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비극적으로 맞이한 죽음이 그들에게는 복이 아니었을까?

 

  역사를 통하여 현실을 보게 된다는 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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