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임스 롬 지음, 정영목 옮김 / 섬섬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알렉산더가 죽었다.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정복군주 알렉산더가 죽었다. 그것도 상당히 젊은 나이에. 살아 생전에 거의 신격화 되었던 알렉산더의 사후 그는 그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진짜로 신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물론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상당히 어색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그가 죽었는데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죽음에 대한 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동시에 그가 품었던 세 대륙을 아우르는 대제국에 대한 이상마저도 신성불가침의 것이 되었다. 그 구상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그의 이상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살아 생전 그의 이상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일단 그가 죽자 그의 존재는 물론 이상마저도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은 그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모자라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실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혈통이 순수한 마케도니아 왕족도 아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천자처럼 제후들이 호령하기에 좋은 도구일 뿐이다.

 

  그의 부하들이라고 온전하게 알렉산더의 후계자를 자처할 수도 없다. 그릇과 명성, 실력, 혈통, 그 어느 것으로도 그의 뒤를 이을만한 사람이 없었다. 실력은 있으나 혈통이 안되는 사람, 명성이 안되는 사람, 혈통은 되지만 실력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람 등 딱히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물론 그의 부하들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를 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압도할만큼은 아니다. 당연히 그의 제국은 사분오열되었다. 그리고 많은 내전을 거치면서 그의 제국은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몇 개의 왕조로 분할되었다. 애굽을 중심으로 하는 프톨레미 왕조, 아시아의 대부분을 집어 삼킨 안티고노스 왕조, 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셀류코스 왕조 등 그의 나라는 몇 조각으로 분열되었다.

 

  이 책은 알렉산더 사후 그의 나라가 완전히 분열되기 이전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직 셀류코스 왕조가 등장하기 전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왕조부터 안티고노스의 왕조가 성립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꽤나 신선하다. 아마도 주로 마케도니아의 이야기는 알렉산더에 집중하기 때문이었으리라.

 

  역사적인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알렉산더가 어떻게 마케도니아에서 신화가 되고 정치 권력의 선전과 정당화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은 더 재미있다. 알렉산더의 이름을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그의 부하들의 이름을 전두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환하여 읽어도 크게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은 더 놀라우면서도 속쓰린 이야기일 것이다.

 

  박정희가 죽었다. 군사력으로 모든 것을 다 집어 삼켰던 전제 군주가 죽었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과 권력은 이미 신성불가침의 신화가 되었다. 감히 박정희의 이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종북이 되고, 좌파가 되었다. 박정희는 이미 반신반인의 존재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대물림되고 있다. 이만큼 살만한 것이 박정희의 공로라는 말로 모든 의문을 근본부터 차단해 버린다. 이후의 권력자들은 그의 신화화되고 박제화된 권력에 기대어 자신이 그의 진정한 후예라면서 정통성을 주장한다. 그와 같은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박정희라는 이름 앞에 35%의 지지율을 몰아 준다.

 

  알렉산더와 박정희의 차이는 딱 하나다. 그의 핏줄이 성장해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권력을 잡았느냐 아니냐의 차이 뿐이다. 이로 인해 박정희는 죽어 신화로 남겨진 알렉산더와는 달리 무덤에서 살아나 이 땅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신화가 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그의 가장 큰 복은 그가 비명에 죽었다는 것, 과가 나타나기 전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비극적으로 맞이한 죽음이 그들에게는 복이 아니었을까?

 

  역사를 통하여 현실을 보게 된다는 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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