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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 중국 제국 시스템의 형성에서 몰락까지, 거대 중국의 정치제도 비판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일단 책이 어렵다. 중국 사람이 중국 고사를 가지고 쓴 책이기 대문에 어렵다. 거기에다가 그 주제가 "과연 이 책을 역사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켜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회정체에 관한 문제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에 훨씬 더 가까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어려운 고비를 한 순간 넘겼다라는 안도감임을 부인할 수 없다. 440페이지 분량의 책을 2주에 걸쳐서 읽었다는 것은(물론 요즘 바쁜 일들이 많아서 책을 잡고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이 책이 얼마나 일기 난해하고 진도가 안나가는 책인지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읽기 어렵다기 보다는 읽기 싫다고 할까?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참 박식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국의 역사에 대하여 이정도로 꿰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랍고, 중국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는 제국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용기가 부럽다.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떠받들었던 것들이 사실은 백성을 착취하기 위해 고도로 발전된, 그리고 은밀한 계략이요, 통치술이라고 정면에서 비판하는 그의 식견도 존경스럽다.

  제국이 무엇인가? 누구나 제국을 꿈꾼다. 제국은 힘의 상징이다. 권력의 상징이다. 하늘로 대변되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지만 절대 권력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한번은 갖고 싶은 정말 달콤한 유혹이다. 물론 그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뤄야 하지만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제국은 농경민족이나 유목민족 같은 무력과 권력을 숭상하는 민족에게서부터 유래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점령하고 천하를 호령한 민족은 여지없이 농경민족이 아니면 유목민족이었다. 권력을 숭상하고 무력을 숭상하는 호전적인 사람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시스템이 제국이다. 물론 하늘은 황제에게, 혹은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국은 하늘을 빙자하며 정당성을 획득한 절대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명천자라는 말 가운데 그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제국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대대로 우리 민족은 세계로 뻗어 나갈 수도 있고, 침략을 받을 수도 있는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를 점하고 살았다. 한반도라는 곳에 터를 닦고 살았다. 로마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반도 국가가 되었지만, 우리 나라는 세계로부터 침략당하는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대략 천번에 육박하는 침략을 당해왔지만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위하고 살아가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것은 약소국의 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에게 있어서 제국이란 꿈에서도 그리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중국이라는 제국의 밑에서 오랜 세월 관계를 맺어 온,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우리 나라는 본능적으로 제국을 그리워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하나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렇게 제국을 숭상하는 마음에 미국이 없으면 죽는 줄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제국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때문에 우리나라 민족은 국익이라는 말 앞에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는 아프간 파병과 이라크 파병을 찬성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양심을 지키려고 하고, 윤리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도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는 황빠가 될 수밖에 없다. 강한 국가 제국을 희망하기 대문에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공존하는 것이 서툴기만 하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제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미쿡 사람들이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친구를 만들어야 하고 코쟁이 말이라면 어린 시절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한이 있어라도 배워야 하며 쏼라쏼라 혀 꼬부라진 말을 잘 하기 위해서라면 어린 자식의 혀를 째는 수술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제국을 갈망하면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엇을 위해 제국을 갈망하는가?

  제국이 될 수 없는 나라에서, 왜 그렇게 시대에 퇴행하면서 제국을 갈망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힘은 곧 생존이며, 돈과 무력은 자기를 생존시켜 주는 원동력을 오랜 세월 침략을 통하여 몸에 자연스럽게 익혀 온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절대 강자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장려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과의 공조라는 미명하에 미국을 등에 없고 호가호위하기 위해서 미국에 돈을 퍼 주고, 국민 건강을 내어주고, 부시의 차를 운전해 주는 것이 이 나라의 실상이 아니던가?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꼬부랑말로 큰소리로 외치며 기도하는 모습은 호가호위라는 말, 제국에 대한 충성이라는 말을 제외하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제국을 경험해 본 저자는 제국은 멸망을 늦추는 제도일 뿐 멸망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뒤로 늦추는 만큼 멸망할 때에는 급속도로 망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제도라고 설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공화를 이야기하고 민주의 길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나가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과연 민주국가인가? 헌법이 모든 것 위에 있는 헌정국가인가? 일단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심스럽게 뜯어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자는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는 말로, 천하위공이라는 감언이설로 백성을 침탈하였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역사의 부름 앞에, 국민을 위하여라는 말로 사리사욕을 챙기고 국민을 침탈한다. 삼권분립이 법제화 되어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의 한마디가 국회를 움직이고, 사상을 검열하고, 국가의 부을 사유화한다. 인터넷을 검열하고, 국가 시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감옥에 넣는 것은 진시황이나 행했던 분서갱유가 아닌가? 측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자기 사람 심기가 아니던가? 그저 황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관리들을 만들어 내듯이 대통령의 은혜에 감지덕지하는 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던가? 그 어떤 법으로도 천자를 제어할 수 없듯이 그 어떤 법으로도 대통령을 제어할 수는 없다. 주권재민을 외치는 국가에서 국민의 의견으로도 말이다. 죄기조를 반포해 천자가 덕이 없어 하늘의 노여움을 사 천재가 발생했다는 정치 쇼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풍랑이나 저항이 거세면 그저 죄송하다고, 덕이 없어서 그렇다고 국민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하며 조금 지나 가라앉으면 강경대응하는 것과 죄기조가 무엇이 다른가? 평화 시위는 보장하지만 불법 시위는 엄단하겠다 말하는데 평화 시위와 불법 시위를 가르는 심판은 누가 보는가? 결국 책임지지 않는 권력자가 아니던가? 이 모든 불만을 유학으로 통일시켰듯이 조중동으로 사상통일시키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중텐 교수가 지적한 제국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말 흡사할 정도로 품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니던가? 君貴民賤의 실상을 天下爲公으로 교묘히 감추었듯이 집권층의 사욕을 국민의 뜻이라는 말로 교묘히 감추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지막으로 묻는다. 대한민국은 헌정국가인가? 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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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3 -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 한국사傳 3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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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가? 비단 E.H.Carr의 책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란 특별한 존재이다. 인류가 살아 남는 이상 역사 또한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살아 남을 것이다. 역사가 인류에게 있어서 가지는 위상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역사가 재미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역사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다. 종교개혁을 설명하기 위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배경을 설명을 하다가 고3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녀석들에게 학교에서 안배우냐고 물었더니 당당하게 하는 말이 안배운다는 것이다. 상식인데 모르냐는 말에 그런건 시험에 안나온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설명을 포기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역사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쓸데 없이 외울 것이 많다는 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나라 문교부(지금은 과학 기술부)의 평가이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말하지만 순수 인문학은 이미 위기의 단계를 넘어 멸종의 단계로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니 뉴라이트 도라에몽님들께서 그 말도 안되는 역사책을 펴내신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묘사하는 도라에몽님들. 하나님의 이름이 그런데 사용된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뿐이다. 그냥 자기들의 태생이 그러니 자기들은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노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곧 죽어도 자신들은 애국 애민하는 부류라고 말하는 것이 가소로울 뿐이다. 왜 그런가?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역사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거 시험 점수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수학공식 외우듯이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다. 해석하고, 그 이면의 깊은 곳을 살펴봐야 하는 고등의 사고력을 요하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대한민국 교육부의 정책이 가소로울 뿐이다.

  각설하고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가졌던 생각이다. 논어 팔일편에 이런 말이 있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공자가 말하길, 주는 이대를 살펴보아 그 문화가 찬란하다. 그래서 나는 주를 따르련다.)"

  또한 조선시대 대학자 徐居正(서거정1420-1488)은 동국통감을 지어 올리면서 箋(전- 책의서문)에 "나라의부흥과 패망에 있어서 이미 지난 것에서 거울삼을 것이니 , 거짓으로 미화하지 말고 악한 일도 감추지도 말아야 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줌이 마땅하다" 라고 밝혔다. 이 두가지 이야기는 역사의 역할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거울이다. 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면 교사 삼고, 과거의 치적은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 하여 본으로 삼을 것인가 판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과거 사관에 대한 왕들의 핍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실정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관들에게 압력을 가하였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관들이 목숨 내걸고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이만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가급적이면 후대에 남겨주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지만 후대는 여러가지 사료를 살펴보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일단 사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에는 사료를 남기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들이 자기 정권이 끝나고 나면 모든 기록들을 말소하고 리셋하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5년후 리셋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정책이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오늘날 벌어지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바라보면서 사료조차 남기길 원하지 않는 파쇼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든 못하든 후대에 기록은 남겨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파쇼를 하려면 적어도 박정희처럼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배포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박정희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배포도 없고,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아 배워온 검찰과 경찰을 움직이는 강압정치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권의 한계가 아니던가? 답답한 마음 뿐이다. 도대체 역사에서 무엇을 거울 삼아 배웠는가? 이 책을 다시 한번 열어보길 바란다. 오늘날 논란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여기 다 들어 있다.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라는 부제에 맞게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어떻게 그런 언행을 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책은 바로 거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백제를 부흥스킨 무령왕, 개인의 아픔은 뒤로 하고 수렴청정하여 조선의 기초를 다진 정희왕후,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과 결혼한 불운의 여인 난설헌, 왜가 아닌 조선 정부에 의하여 꺾여버린 곽재우, 닫힌 시대 자생 천주교의 리더이나 천주교로부터 배교자로 평가받는 이벽, 황제의 연호를 쓰면서 당대 최고의 제국 당과 맞짱 뜬, 그리고 당도 함부로 하지 못한 발해의 무왕과 문왕, 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당쟁의 진흙탕으로 내려간 정철, 왕이 하늘인 시기에 밥이 백성의 하늘이라 말한 세종, 조선의 사대부들과 싸워서 한국의 소리를 뿌리 내린 세종!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지금가지 우리 역사 교육의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당장 세종만 해도 한글 창제와 집현전이라는 부분에만 집중했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장영실을 등용하면서까지 과학기술에 목메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과만 놓고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의 한계였을 것이다.

  당과 맞장뜨는 당당함과 국제 관계에서 적절하게 실리를 챙기는 외교는 오늘날 관료들이, 특히 농수산부 협상팀과 6자회담 실무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프렌들리 비지니스를 외치면서 기간 사업을 민영화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이미 남미에서는 이것들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좌파 정권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10년만에 다시 찾은 정권이라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국민들의 밥을 빼앗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것이 국제화 시대에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외국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얼빠진 사대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여자라서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이들은 난설헌의 이야기를 거울 삼으면 된다.

  정말 주옥같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 책의 내용이 쉬워 쭉쭉 넘어가지만 그 내용은 결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두고두고 음미해볼 내용들이다. 책을 덮고 벌써 4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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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벽 틈에 난 잡초, 출처:http://photohistory.tistory.com/3398)

  지식 e가 나올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인가? 어떤 내용으로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것인가 기대를 품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는 항상 충족되었다. 노란색의 1권, 빨간색의 2권, 파란색의 3권을 접하면서 편집부의 말 대로 지식이란 암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임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마음이 따뜻해 짐을 느끼면서 한권의 책을 서재에 꽂고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빨강과, 노랑과 파랑은 세상의 기본 색이다. 거기에다가 세 가지 색은 신호들에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 사용되지만 우리는 그런 구분 없이 파란불이라 부르곤 한다. 세권의 책으로 나온 지식e가 세상의 신호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지식의 기본 요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근대는 기대감을 품고 책을 열었다. 첫장을 열고 에필로그를 보는 순간 활칵 눈물이 났다. 다음의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화성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태양 전지판에 먼지가 쌓여 3개월 후면 수명을

 
 

다할 것이다.

로봇 팔의 관절 이상, 복구 불능

망가진 몸으로 고산 등반, 소프트웨어 이상

생존을 위해 이틀 동안 66번 재부팅

화성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160'C의 일교차 속에서 16만장을 전송하며

2008년 6월 현재

 
  아직 살아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아직 살아 있다." 이 말은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식 e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까지 지식 채널은 세월의 많은 부침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서도 여전히 지식 채널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존재해 왔었고 이들의 목소리는 "17년 후"라는 방송을 통하여 무한대로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모습들이다. 여전히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자기 주위에 있는 인사들을 방송계에 낙하산을 태워 언론사 사장으로 꾸준히 내려보내고 있다. 얼마전 YTN의 날치기 주주총회와 KBS 정연주 사장 퇴진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급기야는 KBS를 좌파 방송이라고, 빨갱이 방송이라고 몰아 붙이는 코메디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식채널은 이명박 정부에게 눈엣 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정책들을 정책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난 "17년 후"라는 방송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이것 때문에 지식채널은 사상 초유의 일을 경험한다. 외압에 의한 방송금지라는 아픔이다. 만일 김진혁 PD가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침묵했더라면 아무것도 모른채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게 외쳤고, "17년 후"는 방송되었다. 그리고 그는 징계성 인사라는 시비 가운데 지식채널 PD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지식 e 시즌 3은 김진혁 PD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작품을 내 놓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직접적인 거론은 없지만 "아직 살아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고 많은 것 중에서 왜 하필 사형선고 받은 화성 탐사 로봇의 이야기를 에필로그로 선택했을까? 어떤 이들은 음악이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가운데 "아직 살아 있다."는 절규를 발견했다.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속삭이는 세상이 사실은 디스토피아라는 진실을 말하면서 위협당하지만 오늘도 살아 있다는 그들의 외침이, 그리고 절규가 내 마음에 저릿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소망한다. 지식 채널이 몇 년 후에도 "아직 살아 있다."고 당당하게 외출 수 있기를 말이다. 물론 그 길이 수십번씩 재부팅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하고 열사의 사막을 고장난 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순례자의 고행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아픈 몸 하나 추스리지도 못하면서도 세상에 사람 중심, 진실이라는 사진을 계속적으로 전송하기를 소망한다.

  지식 e 3은 아직 살아 있다는 절규로 시작하여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이유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지식 e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일까 다른 책보다 더 사회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인다. 성매매 여성, 뉴타운에서 소외된 원주민, 그라바비차의 아이들, 떡볶이 아저씨 등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지만 그렇게 가볍게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 시킨다. 그러나 무슨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고 있을 뿐이다. 특정한 색깔을 지니고 있지도 않고 법적인 태도를 가지고 정죄하거나 강제하지도 않고 그저 인간 양심에, 인간적의 도의에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묻고 잇을 따름이다. 그런데 새로운 오른손잡이들은 빨간 왼손이라고 맹공격을 퍼붓고 있다. 참 웃기는 짜장이다.

  이 책의 마지막을 행동하는 사람으로 한 것 또한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가 난 아직 살아 있다는 절규하면 행동하는 사람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각오라고 생각이 든다. 이 각오는 직식 채널 편집부의 각오이고, 기진혁 PD의 각오이고, 우리의 각오이고 인간의 각오이어야 할 것이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상실해가는 인간성 회복에 대한 각오가 정말로 필요한 시기에 이 책을 만나 마음이 따뜻하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과 이 따뜻함을 공유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국제 기구의 첫 한국인 의장(반기문이 아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덩치가 큰 기구라면 사족을 못쓴다. UN이라면 사족을 못쓴다.)이었던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본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故 이종욱

 

PS. 벽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 하루도 버티는 끈질김이 지식 채널팀에게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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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8-08-0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가 어떻게 이런 글을 쓸수있는지..참..^^ 새로보임..(소라)

김이진 2008-08-13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많은 힘을 얻고 갑니다

saint236 2008-08-13 10:02   좋아요 0 | URL
님에게 힘이 되었다니 감사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 - 악의 뿌리 미국이 지목한‘악의 축’그들은 왜 나쁜 나라가 되었을까?
권태훈 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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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과 맞짱을 뜬 나쁜 나라들"이라는 제목이 내 눈을 확 잡아 끌었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서클 형에게 선물을 해달라고 했다. 졸업한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써클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내 부탁을 들어준 형에게 참 감사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우리가 흔히 나쁜 나라들, 독재 국가들이라 기억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델과 체의 나라 쿠바,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산디노의 나라 니카라과,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베트남, 금기의 조선, 중동에서의 논란의 핵심 이란, 카다피의 리비아 7개국에 대하여 우리가 익히 언론을 통하여 접하게 된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은 말만해도 진저리처지는 나쁜 나라, 독재의 국가, 악의 축과 같은 나라이다. 체와 피델의 이야기는 우리 나라에서 금기였으며, 라이따이한으로 기억되는 베트남은 우리에게 잊고 싶은 악몽이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시는 고엽제 전우회같은 분들의 모습이나 돈 주고 베트남 신부를 사온다고 생각하는 일부 한국 남성들의 몰지각한 인상이 베트남에 대한 시각의 전부이다. 차베스는 미국에 반대하며 포퓰리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독재자이며, 이란은 핵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위협에 빠뜨리려는 아주 나쁜 나라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악의 축으로 악명 높은 국가로, 오죽하면 에니메이션에서 바퀴벌레로 그려졌겠는가? 니카라과와 리비아는 거의 존재감도 없는 국가이다. 이것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7개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런 시각을 일단 접어두고 이 책을 대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읽기가 매우 고약한 책이 될 것이다.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의 리뷰를 보다가 빨갱이 서적이라고 도대체 이런 책이 어떻게 우리 나라에서 출판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태워버리고 싶다고 하는 사람의 비류를 봤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시각을 접어버리지 못하고 이 책을 편 사람일 것이다. 만일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이 이렇게 지금까지 배워 온 시각을 접어두지 못한다면(책의 내용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이) 이 책을 읽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철저하게 세계의 악의 축은 미국이라 말하고 있다. 미국이 어떻게 제3세계 국가에서 민중을 착취하는지 기록하고 있다. 과거에는 무력으로 직접 통치하고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했다면 지금은 훨씬 더 교묘한 방법으로 착취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경제봉쇄와 테러지원 국가, 대량 살상무기 보유국가 등 온갖 명분을 다 동원하여 그 나라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미국식의 세계 질서에 편입한다면 그것들을 해제해 주겠다는 논리, IMF 구제 금융을 통하여 해당국의 경제질서를 미국에 유리한 신자유주의로 바꾸도록 강요하는 모습은 동네 양아치나 조폭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는 미국이라면 껌뻑 죽는다. 같이 피를 흘린 동맹국, 꼭 은혜를 갚아야 하는 나라, 하나님의 지상 대리인 같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뉴라이트분들께서 못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 임진왜란 출병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면서 다 죽어가는 명나라를 붙잡았다가 청에 된통깨진 사람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명이 멸망하자 마치 자기나라가 멸망한 듯 슬퍼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소중화를 말한 사람들의 미련함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날고 기고 명나라를 따라한다고 할지라도 조선은 명이 될 수 없다.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은 중화가 되겠다는 무식한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며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오늘 대한민국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뿐이다.

  동맹국이라 말하면서 미국에 은혜를 갚기 위해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 미국식 정치 제도를 도입하고, 신자유주의에 열광하며, 미국 사람이라면 범죄자라도 받아들이는 웃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젠 도를 넘어 스스로 운전까지 하는 한심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소중화가 아닌 소미화를 외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마치 우리는 한 형제, 동지라고 말하듯이 악수를 하고, 친숙한 모습을 보이지만 워싱터 포스트지에서 말한 부시의 애완견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무례한 부시의 모습과 머슴같은 이명박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미친"이라는 욕이 튀어나온 적이 몇번인지 모르겠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이미 제국주의 노선을 착실하게 걷고 있다. 원하는 자원이 있는 곳이라면 온갖 무력을 다 동원하여 그 땅을 차지해 버린다. 그 어느 나라도 미국과 1대1로 맞짱을 뜰 힘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실체를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의 교묘한 전술 때문이다. 자유와 자본, 편리라는 논리로 모든 것을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문명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들곤한다.

  이런 미국에 거침없이 달려드는 7개국 나라의 특징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지금 벌어지는 모습들은 냉전이 낳은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거침없는 미국의 행보에 당랑거철과도 같은 모습으로 덤벼드는 이들의 모습은 사회주의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품게 된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이것이다. 미국 절대주의를 넘어 숭미주의를 탈피하고 소미화를 탈피하게 하는 하나의 돌팔매질과도 같은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좌파가 가지는 한계를 보여준다. 우석훈씨가 책에 기록했던 말 가운데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우파는 능력이 있지만 부패하기 쉽고, 좌파는 사회를 개혁하고자하는 열정은 있지만 정책을 운용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그 단점을 보여준다.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열망은 가득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뒷받침하고 실행할 정책 운용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좌파의 한계이다. 우파보다 더 독선적인 것이 좌파인데 이 책에서 여실히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 미국에 의해 강요된 모습들도 있지만 위에 제시된 나라들의 특징은 강력한 정책 운용자가 있다는 말이다. 강력한 정책 운용자라는 말은 독재자라는 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들의 독재가 미국과 맞장 뜨도록 만들어 주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많은 단점들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단점은 싹 무시하고 그곳이 마치 지상 천국인것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은 좌파가 금기시 된 대한민국 좌파의 한계이다.

  조선을 대한민국과 대조하면서 그 나라는 미국과 맞짱뜨는데 우리나라는 무엇인가라는 식의 화법은 과거 학생 운동을 하면서 주사파를 학습한 사람들이 "김일성 장군님 만세!"라고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이런 태도가 일반인들에게 먹힐 것인가?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한다고 할지라도 먹히지 않는 것이고, 대통령의 정책이지만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명명하는 오만한 한나라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좌파가 자기만의 벽을 쌓아버리고 다른 사람을 계도하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좌파나 우파나 모두 버림받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우파는 살아남을테니 좌파 없는 바른(right) 대한민국이 평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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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2 - '인물'로 만나는 또 하나의 역사 한국사傳 2
KBS 한국사傳 제작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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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떠온 어느 님의 사진>

  

   
  깨끗한 달 빛이 환하게 비추나니...비록 구름이 그 빛을 가리더라도...삽시간에 불과하다.  
                                         -<정조실록>정조 7년 6월 15일

  "모든 강을 미추는 달빛과 같은 존재!"

  정조가 자신을 빗대어 이른 말이다. 노론이라는 거대 당이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하는 혼란한 시기에 이런 군주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사용하였던 정조의 낙관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정조의 이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한국사 傳 1권이 역사에서 예기치 않은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었다면 한국사 傳 2권에 기록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역사의 위기 앞에 직면하여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김윤후, 정조, 이경석, 김춘추 등 비교적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들의 일생에 관하여 적고 있지만 거기에 적혀 있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국사를 통하여 국민은 통치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입받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여기에서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다. 그저 말잘듣는 국민을 양산하기 위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군인들을 이야기하고, 역사를 이야기하고, 민족 항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머리가 커가면서 단순히 그럴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좌빨이라 부르며 정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느꼈다. 역사의 사건이란 단순히 한면만을 바라봐서는 그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사 傳 2권에 기록된 사람들은 화려한 배경을 가진 메이저리거들이 아니다. 그저 가진 능력을 계속 갈고닦고, 역사의 부름에 고개 돌리지 않고, 위기 가운데 배짱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했던 사람들이다. 한국사 傳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메이저들이 아닌 마이너들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마이너들의 삶이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수업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한, 아니 일부러 접근을 금지당한 역사의 진실일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너무 안타까워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억울해서 탄식을 하기도 하고, 거대 노론의 무식한 행동에 너무하단 마음에 분노를 삭히기 위하여 애쓰기도 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껴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정조는 달과 시냇물 사이에 구름이 끼면 안된다고 했다. 요즘은 달이 없다. 서울에 달이 안뜬지 오래다. 먹구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먹구름 중에 가끔 자기를 달이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시냇물은 보이지 않는다. 구름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거기가 자기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구름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조금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달이라 자처하는 기회가 오기를 말이다. 그 밑으로 성난 시냇물들은 모래를 삼키고 버스를 뛰어 넘는다. 이순신 동상을 향하여 전진해 보지만 컨테이너 방파제에 막혀서 가야할 길마저 가지 못해 역류하고 있다. 물이 흐르는 길을 불법이라 지칭하며 깎아 내리고, 깊이 파고, 운하를 만들어 검찰청으로, 경찰서로 넘긴다. 어찌보면 한반도 대운하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진짜 물이 아닌 국민이라는 물을 조절하고 컨트롤하기 위해서 말이다.

  경제는 김영삼, 정치는 전두환이라는 오늘의 총체적인 난국을 어떻게 해야 할거나? 정조대왕이 다시 나타나야 할것인가, 아니면 홍경래가 다시 나타나야 하나? 소현세자빈 강씨는 시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고, 죽어가는 명을 섬기며 청을 멸시하는 척화파들,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적인 일마저 팽개치는 썩은 글쟁이들, 김처선 같은 왕의 남자들은 이미 사라지고 김자원만이 가득한 파란집. 도무지 풀리지 않는 복잡한 정국 속에서 지켜주지 못해 끌려갔던 아낙내들은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자결을 강요당한다. 돌아갈 고향을 꿈에도 잊지 못했지만 환향의 기쁨은 순간 환향년으로 변해버렸다. 여전히 달은 없고 구름들이 서로 높은 위치에 서서 달을 자처하기 위하여 한나라를 뒤덮는다. 성나고 지친 시냇물들은 그저 촛불을 켜고 토정비결로 아픔을 달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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