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참하라 - 상 -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우리역사 진실 찾기 1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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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들 편에서 본 조선통사"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 "왕을 참하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인지라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봤다. 역사란 정말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저자의 말에 십분 동의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조선은 존재해서는 안되는 그런 개같은 나라였다는 평가를 가지고 조선을 평가해가겠다는 그의 직설화법에 마음이 끌렸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한권당 400페이지가 넘으며 두권 합하여 9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분량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조선의 역사에 관하여 300페이지 안팎의 한권짜리 책들을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많은 분량만큼 내용에 더 충실하겠꾸나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솔직하게 실망하게 된다. 내용이 부실해서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은 재미있다. 역사적인 사료들도 충분하게 사용한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조선사에 대한 참신한 해석이라는 부분에서 충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왕을 참하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백성들 편에서 본 조선 통사라는 말은 하지만 정작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 멸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성리학을 꼽는데 성리학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비판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때가 있다. 저자가 성리학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성리학에 정통하여서라기보다는 서구적인 사고로 동양적인 것들은 구시대적이고, 비생산적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과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연 이렇게 비판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성리학적인 명분 때문에, 주변에 강력한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에, 당쟁때문에 조선이 멸망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던가? 도대체 여기 어디에 참신한 역사적 해석이 들어 있단 말인가? "선비들의 배반"같은 책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시각이 아니던가? 그저 말투가 참신하다는 것 정도? 역사책에 어울리지 않게 깐족거리는 말투가 참신하다면 참신하달까? "참신한"이라는 말을 뺀다면 이 책은 읽을만한 책이다. 이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백성들 편에서 본 조선통사"라는 부제 또한 이 책에 안 어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백성들의 시각에서 봤다는데 과연 무엇이 백성들의 시각이란 말인가? 민중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바라본 것보다는 그저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지배층들을 절단하고 평가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그러면서도 백성의 시각이라고 말한다. 읽다보면서 "백성은 과연 어디있는가? 왕을 참할 주체는 어디 있는가?"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저 자신의 견해를 백성의 견해로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시각으로 제단하고 깎아 내리는 것이 왕을 참하는 것이 아니던가? 차라리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밣힌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했으리라. 

  마지막으로 저자가 대단한 역사학자인 것은 충분히 알겠다. 사료들을 비판하고 의심하면서 조심스럽게 가져다 쓴 노력 또한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료라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사용한 부분이 많은 것은 필자의 자가당착이 아닐까? 간단한 예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은 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안 지었을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음 문단에서 "허균은 서얼들의 한을 마음에 품고 그들 입장에서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단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 사료를 비판하면서 이런 오류가 쉽게 나타난다. 차라리 솔직하게 이런 견해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이런 견해가 있으니 이 견해를 따르겠다고 확실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아서 이 책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은 몇 가지 사실들만 감안하고 본다면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사료에 충실하다는 것과 분량이 900페이지를 넘어갈 정도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전체적인 평은 하편을 읽은 다음에 하겠지만 역사를 재미있게 만드는 힘은 충분히 가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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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 뉴라이트의 위험한 역사 인식에 맞닥뜨려 오늘, 대한민국을 돌아보다!
역사교육연대회의, 김종훈 외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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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록위마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진시황의 아들 호해가 환관 조고와 짜고 자기 형 부소를 죽였다.그렇게 황제의 자리를 탈취한 호해인지라 항상 정당성의 문제를 안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호해를 황제로 올려 놓은 조고의 힘이 세어질 수밖에. 환관 조고의 힘이 강해지다 어느날 호해를 능가하게 된다. 자기의 권위를 과시하고 싶었던 조고인지라 하루는 꾀를 내어 사슴 한 마리를 가져다가 놓고 무엇이냐고 호해에게 물었다. 호해는 당연히 사슴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조고가 이번엔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조고의 힘을 두려워한 신하들은 그것이 말이라고 대답하였다. 정당성을 잃어버린 황제의 권력의 덧없음과,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진실을 호도하는 조고와 살기 위해 진실에 눈감아야 하는 신하들의 비겁한 행동을 바라보면서 어지 그리 오늘과 같은지 모르겠다. 이래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탄생했는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박정희, 김영삼 대통령 모두 정당성을 획득하였던가? 국민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던 사람들이었는가? 당시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세월이 지나고 그들의 권력이 지고난 다음 후세의 평가는 어더한가? 정당성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아닌가? 자기의 영달을 위하여 조국의 분단마저 우습게 생각했던 이승만! 말해 무엇하랴. 일본 만주군 출신인 박정희! 신군부 세력인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위해 국민의 염원마저 버리고 노태우와 손을 잡은 김영삼! 과연 그들의 정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일부 영남 인사들, 일부 반공주의자들, 일부 극우파에서 그들의 정당성을 찾지 않았는가? 그들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를 자유주의라 말하면서 호도하고, 북한의 위협을 들먹이면서 반공을 외치던 것이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시켜 주던 제도가 아니었던가? 더이상 그 약발이 먹히지 않았을 때, 김대중,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던 것이 아니던가?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초등학교 사회만 제대로 들었더오 알게 되는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무시한 결과가 아니던가? 

  인생 무상이라고 했던가? 김대중, 노무현의 같은 실책은 결국 이번에 이명박 정부로 권력을 넘겨 주게 되었다. 이제 다시한번 예전에 먹혔던 마스터 카드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소위 말하는 지록위마의 방법 말이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 빠진 하천 정비와 건설 산업 육성을 녹생산업이라고 부른다. 대책없는 민영화를 경영합리화라고 말한다. 임원들의 연봉은 그대로 두고 신입사원들의 연봉을 삭감하여 신규채용을 늘리는 것은 일자리 나누기, 고통분담이라고 한다. 이정도면 지록위마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만족하지 못하는지, 화룡점정으로교과서 시비가 붙었다. 

  교과서 포럼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반성을 좌파라고 몰아붙이면서 자기들이 답이라고 한다. 대안이 아니라 대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자신들은 여러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사슴이라고 해야하는가, 아니면 말이라고 해야하는가? 권력에 아부하기 위하여 중심을 잃은 자칭 역사학자들과 보수 언론의 띄우기는 차치하고 대한 상공 회의소의 주장은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들이 역사에 대하여 무얼 그리 많이 아는지 검인정을 거친 교과서를 난도질하고 고치라고 한단 말인가? 여의도와 청와대의 조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사슴을 강요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지록위마라는 말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들은 신하들의 소시민적인 태도때문이 아니던가? 아닌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당장 내게 피해가 오지 않아야 한다고 진실을 부정하고 거짓을 말했기 때문인가? 단 한사람만이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사슴이라고 했다면 사슴이라는 진실을 묻히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걸고 진실을 말할 수 잇는 단 한사람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애쓴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슴을 말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저런다고 사슴이 말이 되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잘하면 말이 될 것 같다.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동의를 한다면, 우리 모두가 소시민적으로 대응한다면 사슴이 말이 될 것 같다. 금성교과서 사태를 바라보면서 이미 한번 경험하지 않았던가?  

  목숨 걸 한 사람, 진실을 위해서 타협하지 않을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가운데 한 이름을 발견했다. 나도 역사학자가 아닌지라 감정적으로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사 교육의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치시던 그분들이 성명서를 낸 것이다. 자랑스러운 그 이름을 보다가 한 이름 앞에 멈추어 섰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찾앗다고 하는 것이 맞다. 고등학교때 나를 가르치셨던 역사 선생님의 이름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찾아 냈다. 내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한때 나로 하여금 역사학도의 길을 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던 그 분의 이름을 찾았다. 비록 내가 역사학도가 되지는 않앗지만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 사회에 대하여 눈을 부릅뜨고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이름이 거기 있었다. 이 이름이 내게 많은 힘을 주었다. 그분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 그리고 그분에게 영향을 받은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사슴이 결코 말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힘이 났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분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그분의 그 작은 이름이 그 위치를 고수할 수있도록 지지하는 것이다. 힘을 보태는 것이다. 나도 사슴을 말이라고 하지 않도록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큰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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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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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협씨는 "밖에서 본 한국사"라는 책을 통하여 처음 접해본 분이다. 밖에선 본 한국사를 읽으면서 솔직히 그분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서 비판하는 서평을 적었던 기억이 있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다는 말로 혹평했던 기억이 있어서 만약 이 책이 그분이 쓴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나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분의 이름을 본 것이 아니라 "뉴라이트 비판"이라는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구매했다. 작가의 소개를 통하여 그분이 그분이었구나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열심히 읽기 시작하였지고 이분에 대하여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분의 생각에 일부 동의하기도 하고 일부는 비판하기도 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이 땅에 건전한 보수(이 책에서는 합리적인 보수라 칭한다.)가 존재하는가?"이다. 언제부터인가 미친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리뷰 100편 이상을 기록했다면 나름대로 열심히 읽었다고 자부한다. 종교에서부터 사회과학가지 닥치는대로 읽었다. 내가 이렇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쯤이 아마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쯤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 놈의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기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미친 사회가 어디로 굴러가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답을 책에서 찾고자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특히 세리보고서, 사회과학서적, 경제 분야는 열심히 읽었다고 자부한다. 처음에는 버벅거리면서 읽기가 힘들었지만 어느새 지금은 쉽게 술술 넘어가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 같다. 그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땅에 건전한 보수는 존재하는가?" 

  1년이 조금 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결론은 비극적이게도 이 땅에는 보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좌파도 없고, 주도파도 없고, 보수도 없다. 오직 수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 수구의 최선봉이 행정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요, 정계에서는 한나라당이요, 시민단체에서는 뉴라이트이다. 언론은 두말할 것 없이 조중동이다. 요즘 문화일보가 추가되어 조중동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동안 교회에서 황당한 사건을 겪어 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인격적이고 샤프하신 목사님이 이상하리만치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편을 들면서 이명박 대통령 추종자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뭔가라는 의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기독교 복음이 언제부터 반공이었는가 반문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내린 결론이 이 땅에 건전한 보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로 나의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지금은 목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은 철저하게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 운동을 하면서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둘고 양키 고 홈을 외쳐본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노당의 지지자였으며, 민노당의 체제화를 비판하면서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서 한나라당의 이야기는 정말 딴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군목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도 다분히 민족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내가 나의 생각을 펼치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좌로 몰아 붙인다. 내가 보기에 나는 지극히 보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좌로 평가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을 비판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사물화 되어 가는 것을 비판하기 대문일까? 아니면 한나라당을 비판하기 때문일까? 

  이런 나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이 과연 보수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들과 전혀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당을 뽑아가면서 반공을 외치고 친미를 외치는 지인들을 보면서 황당하다 못해 말을 잃은 적이 몇번이던가? 이제는 이렇게 서평으로나마 내 할말을 할뿐이지만 말이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했을까? 왜 김진홍 목사님이 뉴라이트를 이끌면서 기독교가 수구 꼴통으로 인식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자기 정당성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 땅에 건전한 보수가 없는 것은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트라우마와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뉴라이트의 논리는 과거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에서 과거로 올라갈 뿐이다. 이 과정에서 말도 안되는 아전인수와 역사적인 왜곡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 자기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논리를 반공에서 찾았다. 유일한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반공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반공을 이념으로 내세우니 북한의 경제체제 붕괴와 한국의 경제적 약진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박정희와 이승만을 영웅화 한다. 그리고 이들이 받아들인 친일 인사들도 반공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과거를 용서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길러내고 이 당에 경제와 자본주의를 발생하도록 기간 시설을 마련해 놓은 일본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북한이 정반대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민족은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세계화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뉴라이트는 이것을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들었을 분이고,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무식하게 노가다 정신으로 밀어 붙이는 차이만이 존재할 뿐 그 본질에서는 동일하다. 그런 이들이 자신들을 건전한 보수로 선전한다. 뉴라는 말은 수구가 아니라는 자기 최면이요 가면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국민들이 잘 속는다. 왜 그럴까? 나는 아니겠지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힘과 권력과 재물을 자기도 소유한 사람이라는 말도 안되는 자위가 아닐까? 마치 여자 친구를 두고 군에 입대한 병사들처럼 말이다. 군에 입대해서 99%의 커플이 깨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1%이겠지라고 자위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가? 그 마지막은 결국 파탄이 나지만 말이다.  

  이 땅에 건전한 보수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사람들이 자신은 건전한 보수라고 국민을 기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서민이라는 애매한 말 대신 사용되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국민들이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진짜 정치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예전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20대에는 마르크스에 미쳐야 하고 30대 이후에는 보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20대에 보수에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마르크스에 미쳐있으면 그것은 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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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전쟁 가일스 밀턴 시리즈 1
가일스 밀턴 지음, 손원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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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타니엘의 육두구"라는 원제의 책!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제목에 속았다고 할 수 있다. 원제가 나타니엘의 육두구라는 것을 미리 확인했어야 했다. 잔드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일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솔직하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고, 이 책을 왜 읽고 있는가 회의를 갖기도 했다. 철저하게 영국 중심으로 쓰여졌으며, 영국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여졌다. 영국과 향료의 판도를 놓고 벌이던 전쟁의 대상국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가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약속을 잘 어기는 존재인지 이야기하면서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영국 지상주의적인 책이 어떻게 한국에서 번역되어 주요 일간지에 실리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알 수 없다.  

  향료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전개해 나가면서 저자는 시종일관 영국은 정당한 댓가를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섬 주민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향료를 정당한 값을 주고 사왔다고 말한다. 정당한 값이 영국인 스스로도 놀랄만큼 쌌다는 것을 기록하면서 영국인의 상재를 드높이기에 열심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아마 이 책을 읽기 전에 "적도의 침묵(주강현/김영사)"이라는 책을 읽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향료 전쟁에서 원주민들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철저하게 소외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미개인으로 그려진다. 외국의 침략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영국 쪽을 선택한 현명한 사람들로 그려지던지, 아니면 미련하게 매척하며 사람을 잡아 먹는 식인종으로 그려진다. 오만함의 극치이다.  

  향료를 놓고 벌이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도 영국 선원들의 이야기는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는 그 무식한 선원들마저도 영국의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향료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영국 도한 착취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쏙 빼버린다. 게다가 영국 함선이 미국 허드슨 강을 타고 올라가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해 놓은 글을 보면서 도대체 이 글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기들 물건을 훔쳐갔다고해서, 선원 2명이 죽었다고 해서 수십명을 향하여 총을 쏘는 모습이 과연 정당한가? 자기나라 군사 2명이 죽었다고 해서 민갑인 수백명을 향하여 보복 공격을 감행하는 오만한 이스라엘과 무엇이 다른가? 차라리 이 책이 소설이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이렇게 허탈하지ㄷ 않을 것 같고, 이렇게 시간이 아깝고 돈이 아깝지도 않을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만약 앵글로 색슨인들이 얼마나 오만한 사람들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사서 보라. 이 책의 가치는 겨우 그 정도이다. 아니 그 정도도 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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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침묵 - 해양문명의 교차로, 적도태평양을 가다
주강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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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게임 중에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최고 백미는 싼 값에 물건들을 사다가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그것을 되파는 무역과 닥치는대로 상대방의 선박을 강탈하는 해적질이랄까? 한때 이 게임에 빠져서 밤을 며칠씩 새운 적도 있었다. 그당시에는 참 재미있게 했던 게임인데 철이들 무렵 재미와는 상관없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항해하는 그 어디에도 아프리카 국적의 캐릭터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의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게임이 서양의 대항해시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던 게임인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중에 일본과 중국 국적의 캐릭터가 보태지긴했지만(그것도 최근작의 최근작인 대항해시대4PK에서나) 여러모로 보아도 중심캐릭터가 아닌 보조 캐릭터 였음은 분명하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한국 국적의 캐릭터는 없었다. 아주 황당하게 항해사 한명이 나중에 추가됐을 뿐이다. 게임 하나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 반문하겠지만,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과 동남아시의 국가들이 세계 해양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그래도 항해사라도 캐릭터가 추가 되었음에 감사해야 하는것일까? "적도의 침묵"이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도시들의 캐릭터는 아주 찾아볼 수도 없다. 캐릭터가 무엇이란 말인가? 항구 조차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가끔 외국식 이름의 보급항 정도로만 몇 개가 등장할 뿐이다. 이들이 아예 항해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모르지만 이들의 항해 문명은 오히려 중세 유럽보다 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강현씨는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라는 책으로 이미 한번 접해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했지만 솔직하게 책을 읽기가 참 어려웠다는 생각을 한다. 분류상으로는 역사가 분명한데, 기행문이라고도 할수 있는 책의 구조가 이 책을 재미없게 만드는 이유였을 것이다. 적도의 바다를 연구하는 온누리호를 얻어탄 저자가 적도에 있는 섬들을 거치면서 자기가 도착한 섬들의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역사에 대하여 서술하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르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낯선 문명에 관한 이야기에 대하여 저자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으며 그때문에 읽이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흔히 남양군도로 알려져있던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제국주의가 맞부딪혔던 역사의 현장이 실은 강제 징용당한 우리 선조들의 눈물과 애환이 깃든 땅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솔직하게 이 책 가운데 등장하는 섬 가운데 이름을 들어 본 것은 하와이아 난마돌 유적 정도가 전부이다. 물론 하와이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주강현씨가 그렇게도 비판하던 미국에 의하여 상품화된 훌라춤과 가짜 하와이 박물관 정도? 난마돌 유적은 얼핏 텔레비전을 통하여 봤을뿐 더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왜 찬란한 문화 전통에 비하여 이렇게 그들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는가? 저자는 이들의 역사가 침묵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이들의 해양사는 대항해시대라는 철저하게 유럽 중심적인 사관에 밀려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으며 침묵하길 강요당했다. 문자로 남기지 못한 역사는 식민주의라는 침략 행위에 의하여 취사 선택되어 적절하게 변형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 또한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에 의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모계사회라든지, 왕권 사회에 대한 정치 체제 또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하여 급속하게 몰락되어 오늘날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황폐화 되었다.  

  이 책은 침묵당하길 강요받은 적도의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강현씨가 침략국인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아니라 침략당하고 역사의 변형과 왜곡, 그리고 침묵할 것을 강요받았던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그가 적고 있는 명칭이라든지, 그가 지나오면서 겪었던 오늘날의 모습들이 철저하게 미국에 의하여 재편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주강현씨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현재 그들의 국가와 삶은 서구 열강에 의하여 정형화된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잊혀진 역사의 아픔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주강현씨의 기독교에 의한 문화의 파괴라는 측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구 열강이 건네 준 것이 다 나쁜 것일까?(물론 그네들의 의도가 불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기독교가 전통 문화를 파괴해서 이들의 삶을 피폐화 시킨 것 뿐일까?"라는 의문을 품어보게 된다.   

  철저하게 서양적인 사고로 동남아시아를 바라보고 해석한 "향료전쟁(가일스 밀턴/생각의 나무)"와 함께 읽어 본다면 더 흥미 진진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타가 많은 것도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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