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아네트 비비오르카 지음, 최용찬 옮김 / 난장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가" 이후에 이렇게 쉽게 설명된 책을 보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의 비극을 다루지만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적절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만한 학자를 길러낸 프랑스의 교육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저자는 딸의 질문에서 부터 이 책을 풀어 나간다. 친분이 있는 베르트 아줌마의 팔뚝에서 파란 잉크로 새겨진 수인 번호를 발견한 딸은 역사의 진실 앞에 서게 된다. 지금까지 들어 왔던 이야기, 그래서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이지만 아줌마의 손에 멍자욱처럼 남겨진 파란 숫자를 보는 순간 알고 있던 이야기가 삶으로 불쑥 들어오게 된다. 얼마나 고민을 했으며,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결국 딸은 엄마에게 베르트 아줌마의 팔뚝에 새겨진 숫자로부터 시작하여 아우슈비츠의 역사와 남겨진 자로서 자신에게 기억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 흐름의 주도권을 아이가 아이에게 있음을 보면서 엄마의 대단한 인내심에 우선 존경을 표한다. 또한 아이를 세뇌시키거나 강제해야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 아이의 눈 높이에서 설명하면서 이해시켜야 하는 온전한 인격체로 보는 모습이 두 아이의 아빠인 나에게 감동이 되었달까?  

  홀로코스트라기보다는 제노사이드라는 용어가 더 적절한 유대인 학살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유럽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나는 왜 배웠는가? 그리고 왜 이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어찌 생각하면 나와 상관이 없는 남의 나라 역사인데, 더군다가 수능에 비중이 없다고 자국의 역사조차 선택과목으로 취급받는 대한민국에서 유태인들의 역사, 유럽인들의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 단순히 동정심에서? 아니면 2차대전에서 피해를 입은 피정복민의 입장이라서?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합병했던 일본과 독일이 함께 동맹을 맺은 관계라서? 물론 이것들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된 그들을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무덤은 저자의 말 그대로 구름속에 존재하다가 흩어져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꽤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하도 웃겨서 미니홈피에 담아 놓았던 사진이다.  

 

  아마 화려한 휴가를 보고 온 다음에 담았던 사진 같았는데 그 당시에 일해공원이 세간의 관심사였었다.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에 동의할 수 없다는 시민단체들이 공원 명칭을 바꾸려고 시도했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 "전사모"라는 단체가 나서서 공원의 입구를 지켰던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었다. 그 당시 전사모에서 붙여 놓았던 현수막 사진인데, 이 사진을 홈피에 올리고 그 밑에 달았던 코멘트가 "이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최고의 개그다...최고의 슬랩스틱 코미디다...ㅋㅋㅋ"였다. 정말 왠만한 코미디보다 더 웃겨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 19개월, 7개월인 내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 광주 민주 항쟁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어찌 대답해야 하는가? 아네트 비비오르카처럼 자세하게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왜 배워야 해요?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수능에 나오지 않는데."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무엇이라 말해 줄 것인가?  

  좀더 올라가서 일제 식민지가 벌서 100년이 되어 가는데 왜 그것들을 기억하고 배워야 해요? 왜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나요? 만주국이 뭐예요? 난징 대학살은 무엇이고요? 그런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솔직하게 지금으로서는 무엇이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몰라도 돼.", 혹은 "그냥 외워."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아네트 비비오르카는 살아남겨진 자들의 기억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말한다. "왜 배우는가?"라는 질문에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니까라고 말한다. 현문에 현답이다. 기억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말 가운데에는 매우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 일이 두번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유태인 대학살을 기억한다는 것은 두번다시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딸에게, 손자에게, 후손에게 대대로 전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도 바로 여기에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의 죽음과 죽음을 통해 얻고자 한 민주주의를 기억한다는 것이며,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몬 원흉이 누구인지 기억한다는 것이고,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가지 묻는다. 나는 광주를 기억하고 있는가? 나는 정신대를 기억하는가? 나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만행을 기억하고 있는가? 아주 잠깐이지만 나도 모르게 동남아 출신의 근로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과의 축구경기 혹은 야구 경기를 보면서 한국의 승리를 외치고 여기에 열광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보면서, 데모하는 이들과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 정체에 짜증내는 지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집단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누구나 다 아는 광주 학살의 주모자를 민족의 영웅이라고 우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기억하기를 게을리 한다면 아마 완전하게 민족의 영웅이 되지 않겠는가?  

  수능보다, 경제보다, 먹고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나에게 가르쳐 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내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생이 된다면 반드시 읽히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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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from 날아라! 도야지 2009-11-01 22:44 
    그들의 무덤은 구름속에 지은이 아네트 비비오르카 상세보기 ‘지롱드 주의 경찰 총서기로서 보르도로부터 유대인을 강제 이송하는 법령에 서명했던 모리스 파퐁에 대한 재판에서 사람들은 ‘행정 범죄’라는 말을 했단다. 업무상 자신의 상관에게 복종하는 행정 관료의 간단한 서명이 특정 상황 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어.‘-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중에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면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군사편>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 군사편
탕민 엮음, 이화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뭔가 있을 것 같은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내용은 거창할 것이 없다. 왠지 속았다는 허망함과 서평단 도서라는 안도감이 교차하고 말았다. 표지에는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디자인하여 마치 몽고메리 장군의 "전쟁의 역사"와 같은 수준의 책일 것처럼 기대를 하게 만들더니 실제 내용은 썬데이 서울(?) 정도였달까? 도대체 이 책을 왜 냈더란 말인가?  하도 궁금한 마음에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가 6편의 리뷰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런데 왜 하나같이들 이 책에서 무엇인가 묵직한 것을 얻었다고 하는 것일까? 내가 잘못된 것일까? 아무래도 6명보다는 한명인 내가 잘못된 것이라 믿는 것이 속이 편할 것이다.  

  알라딘 서평단에서 읽고 리뷰를 써달라고 하는 책이니 리뷰를 써야겠다. 물론 이 리뷰가 나에게 바라는 방향의 리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그럴듯하게 써줄 수도 있지만 그런 비겁한 행동은 책을 읽고 난 후에 취해야 할 행동은 아니기에, 솔직 담백하게 작성하고자 한다. 그게 이 서재의 이름을 지키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인류 역사상 일어났던 이해할기 어려운 사건들을 모아 놓고 사건의 대략적인 것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정황상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자세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 뭐 대충 이런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하나도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세가지 이다. 첫째는 어떤 기준으로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사건들을 선별했느냐는 것이며, 둘째는 역사적인 근거는 확실하냐는 것이고, 셋째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첫째, 어떤 기준으로 이 사건들이 인류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한번 정리해보자. 트로이 전쟁, 적벽대전, 무적함대와 영국의 전투, 워털루 전투, 북양함대와 일본의 전투, 진주만과 노르망디, 진의 무기 체제, 삼국지의 목우유마와 팔진도, 나바호 암호, 씨 허리케인, 로마군, 몽고 철기병, 나치 돌격대, 스파르타쿠스, 2차대전, 독소불가침조약, 뎅케르트 후퇴작전, 원폭투하, 조조의 72개능, 칭기즈칸 능, 오삼계의 투항, 태평천국운동, 게바라, 한신, 마속, 잔다르크, 정성공, 이자성, 연갱요, 야마모토 이소로쿠, 무솔리니, 히틀러, 괴링, 멩겔레, 마타 하리, 가와시마 요시코(금벽휘), 포포프, 올가 체코바, 트로이 보물, 진시황릉, 태평천국 보물, 아와마루호, 나치의 보물. 

  꽤 길지만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는 이것들이 과연 인류의 운명을 바꾼 사건인가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는 동양과는 거의 무방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유럽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우긴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2차대전은 분명히 온 인류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으니 넘어가고, 중국의 진시황, 삼국지의 내용들, 몽골, 태평천국운동 등은 도대체 인류의 운명을 바꾼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끽해야 중국의 운명을 바꾼 역사라고 볼 수 있고, 어떤 것은 역사를 바꾼 것과는 상관없이 신화적인 내용들을 모아 놓은 것도 있는데. 중국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라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결국 이 책은 중국 우월주의의 산물이 아닐까?  

  둘째, 역사적인 근거는 확실하냐는 것을 집고 넘아간다. 내가 이 책을 썬데이 서울과 같다고 평가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 관력 책들은 분명한 역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만약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역사를 가장한 소설이거나, 썬데이 서울의 카더라는 음모론 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몇가지 들어보자. 3뷰 특공대를 둘러싼 비밀 편에서 "전설의 부대, 고대 로마군"이라는 부분을 살펴보자. 로마군과 파르티아의 카르하이 전투에 대하여 묘사하면서 크라수스의 군대가 패하여 크는 참형에 처해졌고, 그의 아들 푸블리우스가 1개 군단을 이끌고 무사히 탈출하였고, 그 군단이 중국까지 흘러들어가 여간현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이 저자가 말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일부 소수 역사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푸블리우스는 파르티아에 사로잡혀서 참수되고 그의 머리는 아버지 크라수스의 머리와 함께 효수되었다고 본다. 내 생각에도 사람들이 푸블리우스라는 거물의 용모를 헷갈려서 다른 사람의 머리를 그의 머리라고 표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푸블리우스는 확실하게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설명조차 없다. 오로지 사라진 로마 군단이 중국까지 오게되어 정착했다고 말할뿐이다. 다만 말미에 진위여부는 더욱 확실한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하다는 무책임한 말로 끝맺을 뿐이다. 롬멜에 관한 예도 마찬가지다. 도대체가 롬멜이 언제 죽었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때문에 돌격대가 처형되었을 때인지, 아니면 돌격대와는 상관없이 전쟁이 끝나지 직전이었는지를 모호하게 설명한다. 그 외에 이곳저곳에서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역사적인 사실을 모호하게 설명하여 헷갈리게 만들거나, 혹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역사관련 서적으로서는 영 아니올시다라는 판단을 내리게 만든 근거가 되었다. 

  셋째, 이 책의 의도가 무엇인가? 책을 쓴 의도는 두 가지가 아닐까? 하나는 음모론이다. 이렇게 저렇게 떠도는 이야기들을 심심풀이 삼아 읽어볼 수 있도록 모아 놓았다. 그것도 자극적인 소재들로만 말이다. 태평천국의 사라진 보물과 나치의 사라진 보물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결국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시간 때우기에나 쓰라는 의미가 아닌가? 둘째 중국 중심적인 역사관이다. 위에서 말한 여간현은 일부 사학자들이 중국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글이다. 로마까지도 중국의 속국이며, 칭기즈칸도, 누르하치도 결국은 중국의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이 이 책이 은밀히 발신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중국의 사건을 이렇게 많이 포함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깨닫는 유일한 한 가지는 역사에서만큼은 어설프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알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니까 이런 말도 안되는 책들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이책 저책을 통하여 주워들었던 모든 지식들을 동원하여 독서하게 만들어준 아주 고마운(?) 책이다. 심심풀이용으로 읽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권하지만 진지하게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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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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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하"라는 제목 대신에 다른 제목을 붙여본다면 무엇이 될까? 아마도 "지중해 세계의 종말" 내지는 "지중해사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지중해 세계의 종말을 세밀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하권은 상권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상권이 해적의 출몰 배경과 그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면 하권은 해적계의 스타플레이어와 이에 맞대항하는 서유럽의 걸출한 해군 제독, 그들을 조종하여 서유럽의 배후를 교란하는 오스만 제국, 그리고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등장한 스페인과 프랑스의 파워 게임, 도시국가가 난립한 이탈리아 반도의 혼란과 해적 대책에 관하여 흥미진진하게 기록하고 있다. 코에이사에서 만들어낸 유명한 롤플레임 게임 대항해 시대2를 통하여 한국의 게임머들에게 잘 알려진 안드레아 도리아, 하이레딘, 울구 아리 같은 선장들이 바로 해적계와 이에 맞대응하는 서유럽의 해군 제독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해군들에 의하여 목욕장으로 끌려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노예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일반 서민들,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구출 수도회와 구출 기사단,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최선봉에 선 몰타 기사단, 신성로마 제국, 이슬람 세력의 팽창을 막으려고 하는 서유럽과 서유럽으로 이슬람의 집을 확장하려는 투르크 제국, 예니체리군단 등 어느 것 하나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 존재감을 역사에 당당하게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책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하권을 보면서 이야기꾼 나나미가 이 많은 사람들을 적당하게 잘 비벼서 아주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내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책을 넘기면서 한 가지 생각해본다. 왜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는 지중해의 이야기가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저물어 가는가? 왜 르네상스를 전후하여 그 존재감마저 사라져 버릴 정도로 희미해져 가는가? 두말할 것없이 신대륙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 아닐까? 항해 기술의 발달은 신대륙으로부터의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오스만제국과의 힘겨루기는 물산의 흐름을 막아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물품이 점점 향신료를 포함한 고가의 상품으로 구성되면서 신흥 강국들은 독자적인 항해노선을 개척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가? 신대륙과 동방으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지중해보다는 대서양이 더 유리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영토 중심의 민족국가가 형성 되면서 질은 높지만 양이 부족했던 도시국가들이 몰락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로마제국의 전성기와 그 시대의 지중해를 떠올려본다면 지중해의 멸망은 로마의 멸망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몰락한 지중해의 뒤를 이어 대서양이 해운의 중심이 되었고, 시간이 더 흐른 근대에 와서는 다시 태평양으로 그 중심이 옮겨졌다. 

  이런 시각에서 이 책을 읽노라면 항거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중해가 더 이상 해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중해 최고의 해운국 베네치아가, 상인의 집단인 베네치아가 그저 곤돌라의 도시, 낭만의 도시로 취급되어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역사의 흐름이란 이렇게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무리 미래를 준비한다고 할지라도 항상 그렇게 잘 맞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자신을 변화시키고 환경에 적응시켜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럼 다시 하나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장차 다가올 통일을 위해,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민족 국가를 위해, 더 나아가 동아시아 경제 블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통일 국가, 동아시아 경제블록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 누구도 상상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논의가 되어 가고 있고, 그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가? 그냥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면서 담을 쌓고 살고 있지 않는가?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상황을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철저한 준비를 했던 베네치아도 무너졌다. 화려했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일이다. 준비하지 못하고, 담을 쌓고 살아 이미 한번 식민지로 전락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역사의 흐름 앞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할 가장 시급한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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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9-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제 서재에 축하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saint236 2009-09-11 14: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셔서 댓글 달아 주시고
 
<사기 교양강의>를 리뷰해주세요.
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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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 사람에게 역사의 시작을 묻는다면 단연코 고조선 단군 할아버지부터 시작할 것이다. 곰과 호랑이가 어느날 환웅을 찾아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소원을 말했더니 쑥과 마늘을 주면서 동굴에 콕 박혀서 햇빛을 보지 않고 이것만 먹으면서 100일을 버티면 소원을 이룰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괌과 호랑이가 함께 동굴에 들어갔으나 호랑이는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오고, 곰은 사람이 되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설화이며 이것을 우리나라의 시작을 설명하는 설화로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배웠다. 그리고 요즘도 배우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있지만 고조선 역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만들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삼국시대일까? 아니며 고려시대일까? 그것도 아니면 조선시대일까?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 고려시대가 두루 영향을 끼쳤겠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와 생각과 감정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조선시대가 아닐까?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확실한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오늘날 벌어지는 유교식 사고와 권위주의, 집단 이기주의와 민족주의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형성된 것이 아닐까? 

  그럼 삼황오제라는 전설은 뒤로 제껴두고 중국인의 의식과 역사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어느 왕조일까? 전설상의 성군이라 일컫는 요순우탕일까? 아니면 주지육림의 걸주일까? 그것도 아니면 전국시대? 단언컨대 한나라가 아닐까? 전국시대에 백가가 쟁명하면서 중국의 거의 모든 사상이 출현했다면 그것들이 모이고, 짝을 이루고 변형되면서 정착된 것은 단연코 한나라일 것이다. 진나라를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국가이긴 하지만 사상을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에는 너무나 단명한 왕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첫 통일 왕조라는 의미는 지대할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이 삼황오제부터 시작하지만 사기에 통달했다고 하는 한자오치는 전설상의 앞부분을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진시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한족이라는 말이 한나라에서 유래했다는 그럴듯하고, 유력한 설이 있는데 이는 중국 사람들이 대대로 한나라를 얼마나 자신들의 뿌리로 여겼는지 알려 준다.  

  이 책은 진시황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설상의 삼황오제는 물론이요, 요순우탕, 주 문공, 춘추전국시대의 사공자 등 고사성어로 알려진 수많은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략했다기보다는 이 책에 기록된 내용만 발췌햇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130편이나 되는 방대한 불량 가운데 고작 10편 남짓을 뽑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제를 제기할지 모르지만, 일단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왜 사기의 전문가라 불리우는지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 많은 내용가운데 사기의 기본을, 그리고 기록 목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엮으면서 자신의 정치 철학을 풀어내고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 패도인가, 덕치인가, 법치인가? 그도 아니면 무위자연의 도치인가? 전국 시대 많은 정치철학이 등장했고 그 중 두각을 나타낸 것은 노장의 무위의 치와 공맹의 덕치, 한비자의 법치, 그리고 난세의 패도가 아닐까? 물론 패도와 법치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니지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정치가 시작된 이래 올바른 정치체제에 대한 탐구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시각으로 사기에 접근한다. 사마천의 시각을 빌려 정체에 대하여 논하지만 결국 저자의 생각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저자의 생각은 지극히 중국적이다. 시작은 패도와 법치로, 정착은 덕지로 해야 국가가 오래 유지되며, 창업자를 도운 공신들의 최고의 처세술은 황로사상이며 수성자를 돕는 대신들의 처세술은 변형된 유교라는 것이 중국인의 사고에 딱맞는 정치이념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것이 단지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말이다. 사마천의 궁형 자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의와 충이라는 정치 이념 가운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뻔하지 않는가?  

  사기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기치고 있고 애독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좀더 확실히 말하면 사기를 왜 읽어야 하는가? 다른 어느 책보다 우리에게 역사를 판단하는 힘을 길러 주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충실히 모아 여기저기 배치한 사마천의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판단하게 해주며, 각 인물의 장단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게다가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체세의 방법들은 복잡하고 불안한 시대, 합리주의와 냉정한 계산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시대에 이익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어서 기분은 좋지만 오탈자가 많다. 내가 발견한 오탈자는 대충 이렇다. 

136p 밑에서 두번째 줄, 유방의 공세=>항우의 공세
139p 맨 마지막 줄, 항우의 아버지=>유방의 아버지
140p 10번째 줄, 누가한테=>누구한테
196p 맨 밑 줄, 소화는 첫 눈에=>소하는 첫 눈에
207p 밑에서 두번째 줄, 연나라로=>연나라를
228p 12번째 줄에는 수비대장이 "상인의 아들"인데 121p 16번째 줄에는 "백정의 아들"로 나오는데 원전이 잘못된 것인지 궁금한다. 225p 지도 5번 설명에는 고등=>고릉이다. 

  연도에 관한 것들은 살펴보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이니 다음 판본에는 수정을 했으면 하고, 책을 만들 때 한번은 더 수정을 해줬으면 좋겠다. 오탈자가 많은 관계로 별점을 하나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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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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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완결되고 난 다음 시원하면서도 섭섭함을 느꼈다. 한해에 한권씩 낸다는 말을 하면서 거의 15년을 끌어온 로마인이야기가 끝을 냈다는 것에 대해서 시원함을 느꼈다면 이젠 무슨 낙으로 살아가나라는 생각은 섭섭함일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이 나왔다는 것은 참 즐거운 소식이었다. 몇번의 망설임 끝에 상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역시 나나미의 책은 재미있다."였다. 

  요즘들어 대세는 사극인가 보다. 용의 눈물, 장보고, 불멸의 이순신, 천추태후, 그리고 선덕여왕까지. 온갖 사극들이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지만 걱정이 앞선다. 재미를 통하여 시철률과 역사 의식을 고양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역사를 너무 소설화 해버린다는 단점은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학생이 물어보더라. "신윤복이 여자예요?" 이정도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내가 나나미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나미의 책은 어떻게 보면 소설같지만 철저하게 역사적인 고증을 가지고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상상한 부분은 분명하게 상상력이라고 밝힌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이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질문한 후배에서 어디서 잘못된 쓰레기를 읽고 그런다고 무시했던 일도 있었지만, 그분이 읽기는 읽으셨는가? 나나미가 읽은 그 많은 1차 사료들을 말이다. 

  여하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첫장에 이렇게 써 있었다. "해적" 

  지금까지 로마제국의 멸망을 그렇게 안타까워하던 나나미는 로마의 멸망과 함께 해적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사회적인 현상이요, 새로운 직업군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분해와 멸망은 단순히 한 국가의 멸망이 아니라 지중해의 문명을 요동치게 만드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지중해를 내해라고 부르던 로마의 멸망은 지중해에서 안전과 평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걷어버렸다. 그것이 군사력에 의한 평화이든, 종교에 의한 평화이든 간에 지중해에서 평화가 사라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맞물려 북아프리카에서의 이슬람 세력의 대두는 지중해를 한층 더 복잡하고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교도에 대한 지하드 의식과 산업의 붕괴, 그리고 호전성은 해적이라는 새로운 직종을 출현시켰고 발전시켰다. 로마의 붕괴는 이렇게 해적의 역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또한 해적의 역사는 이탈리아에 해양국가인 도시국가를 출현하게 만들었고, 그들로 인하여 다시한번 불완전하나마 pax가 시도되었고, 이것은 부의 증가와 르네상스를 불러 일으켰다. 논리적인 비약이 상당히 강하지만 우스개소리로 결국 르네상스는 해적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으려나?  

  이 책과 로마인 이야기의 공통의 주제는 평화와 안전보장이다. 물론 나나미가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도 일본 태생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하필 산 곳이 이탈리아 쪽이어서 그런지 군사력에 의한 평화를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호전적이어서라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평화를 위한 방법을 간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평화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의 댓가로 얻어진다는 것이 나나미의 평화에 대한 주장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하여서 노력을 통한 평화 획득의 예를 보여줬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노력을 하지 않아 평화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책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시대는 평화로운가?" 

  물산의 이동과 안전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우리 시대는 결코 평화롭지 못하다. 평화롭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불안 가운데 살면서 만성화 되어 평화라고 착각하고 살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화로울 것인가? 그녀의 책을 통하여 한가지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가 베네치아의 항해방법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배는 출발하면서 선장과 1등급, 2등급 선원만 태우고 출발한다. 아드리아해를 빠져나가면서 항구마다 들러 신선한 음식을 보충하고, 슬라브인들을 노잡이로 고용한다. 그들에게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와 해적이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훌륭한 결실을 맺어 슬라브인들은 베네치아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베네치아와 운명을 같이 했다." 살길을 마련해 준후, 평화의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 막바지까지 몰아붙인 후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요즘 북한과 남한의 모습을 바라본다. 살길을 마련해주고 화해를 모색하기 보다는 막바지까지 밀어붙이고 항복하면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식의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럴 것이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찌보면 강경책 일변도로 나서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서,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몰아붙이다가 평화가 깨지면 그 다음에는 해적이 횡행하는 난세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 어려움은 고위층 인사가 아니라 우리같은 일반 서민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것임을 역사를 통하여,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보게 되지 않는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개성공단, 금강산 여행, 백두산 여행, 대북 지원은 단순히 퍼주는 것도, 상대방에게 전쟁자금을 마련해 주는 것도 아니다. 평화를 위해 치르는 대가이다. 물론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어야겠지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지 최선의 수단은 아니다. 너무 근시안적으로 북한을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북 강경책은 그들로 하여금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뿐이다. 함께 공생할 수 있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하고 운용하는 정부가 되길 소원해본다. 비록 헛된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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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09-08-2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를 실천하는 영역으로 북한을 초대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은거 같아요.
내부의 반대자를 이해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북한의 강경세력도 평화를 원치않으므로, 내부와 외부의 반대자 모두를 잠재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역시 현실은 참 많은 변수가 존재합니다. 그래도 평화의 영역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가야겠죠? ^^

saint236 2009-08-2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그래도 공생의 길을 찾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되겠죠.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공생이 불가능하면 공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