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천둥의 시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와 천둥의 시대 -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햄프턴 시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피와 천둥은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던 19세기에 인디언들과의 싸움을 소재로 하여 출판한 통속소설의 장르이다. 당연히 책의 내용은 미국이 어떻게 서부를 개척하고 인디언들을 몰아 내었으며, 인디언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 가운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인디언 부족이 등장했겠지만 이 책은 키트 카슨이라는 미국인과 나바호라는 인디언 부족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키트 카슨일까, 하고 많은 인디언 중에 하필이면 나바호일까?"라는 의문은 아마도 내가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지극히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미국인에게 이순신과 선조,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낯설듯이 나에게도 키트 카슨과 나바호가 낯설다. 그저 나바호는 니콜라스 케이지 아저씨가 출연했던 영화 "윈드 토커"에서 미군의 암호병으로 등장했던 인디언 부족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저자가 왜 키트 카슨과 나바호를 집중 조명했는지 책을 다 덮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키트 카슨과 나바호는 19세기 서부 확장의 시대에 정면으로 부딪혔던 두 문명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피와 천둥의 시대라는 책의 제목을 살짝 바꿔본다면 나는 헌팅턴 아저씨의 문명의 충돌이라고 바꾸고 싶다. 조금 더 의미를 곱씹어 가면서 제목을 붙이자면 서평의 제목인 19세기판 충격과 공포가 아니겠는가? 칼턴의 명령으로 키트 카슨이 나바호에 대하여 수행한 작전이 꼭 부시가 후세인을 향하여 행했던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과 닯아 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무기가 좀더 첨단이라는 것, 그리고 백인과 인디언이 미국인과 이라크로, 서부가 중동으로 바뀐 정도만 다를뿐이지 상대방을 굴복시켜 말 잘듣는 존재로 순화시키고 교정시키겠다는 오만함에서는 크게 다를바가 없다.  

  피와 천둥! 이 말만큼 19세기 미국의 서부를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일상적으로 피를 흘리고 약탈을 하고 습격을 하고 살인을 하고. 머스킷 총병과 기병대의 시기가 저물어 가면서 대포가 그 자리를 점차 대체하며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방을 깨부수고 복종시키는 힘과 폭력이 곧 질서인 시대. 예의도, 도덕도, 윤리도, 종교도 모두 없어지고 오직 피를 흘리는 폭력만이 최고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시대가 바로 이런 폭력의 시대이다. 민주주의의 대의도, 고귀한 인간성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오직 땅과 금, 명예로 그 자리를 대체했던 것이 우리가 "OK목장의 결투"를 보면서 로망을 꿈꾸는 세대의 실체이다.(이 책이 기록한 시대는 그보다 앞선 시대이므로 더 무법천지였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백인의 오만함,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문명과 시대의 흐름에 너무 무지하여 무기력해지고 결국은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인디언들, 서부를 너무 사랑하고 인디언을 잘 이해하지만 백인의 편에서 인디언의 몰락과 서부의 부패를 가져온 중간자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이 얽히고 설킨 스토리는 서부시대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바호의 몰락과 고향 땅으로의 귀환은 이 책의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오만과 무모함의 충돌.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충돌.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 문명과 조화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인디언 문화의 충돌. 도저히 섞일 것 같지 않은 문명의 충돌이 가져온 비극과 그 결과 쌍방이 서로를 소진시키다가 적절한 타협을 찾아 상생의 길을 모색한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면(물론 약자인 나바호 입장에서 본다면 강요된 양보이기는 하겠지만)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미군에 의해 수행되는 전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을 보는 내내 들었던 질문이며,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한켠이 무거웠던 이유이다. 

  충격과 공포.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의 작전명이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방의 전의를 꺾은 다음 자기들의 입장을 강요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 작전의 핵심이다. 목적이 무엇인가? 후세인이라는 독재자 타도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실행한다는 고귀한 명분을 걸지만 결국은 검은 금, 석유 때문이 아니던가? 나바호와 뉴 멕시코인의 평화라는 고귀한 대의 이면에는 칼턴의 명예욕과 금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과 너무 흡사하다. 칼턴이 나바호를 공격하여 초토화 시키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굶어죽어갔던 역사가 오늘날 이라크에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상대방의 문화를 도무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은 오만한 미국의 모습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무모함 하나만으로 덤벼드는 이라크인들의 끊이지 않는 투쟁. 보스케레돈도 평원의 실험은 바그다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개인적으로 결말이 뻔한 이 실험에 우리나라가 지분을 넣으려고 하는 것이 속상하기만 하다. 결국 돈이 문제인 것이다.) 바그다드에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민주주의와 친미 성향의 정부를 세우는 것이 보스케레돈도 평원의 실험이라면 그 해법 또한 자명하지 않겠는가? 쌍방의 이해와 양보(물론 어느 한 쪽이, 이 경우에는 약자인 이라크가 더 많은 강요된 양보를 해야하겠지만) 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