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은 책의 소재는, 표제에서도 드러나듯, 여자들이다. 피와 살을 지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여자들. 이런 소재를 고른 것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페미니스트도 마초도 아니다. 그저 남자에게보다 여자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남자일 뿐이다. ---(중략)---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 행성에 살다 죽은 수백억(?) 인류 가운데 철반 안팎은 여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쓰는 사람들은 그만한 비율을 여자들에게 할당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기록된 역사는 압도적으로 남자들의 역사다. 그 불공평함의 책임을 역사 기록자의 편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모계사회(라는 것이 정년 있었을까?)가 막을 내린 뒤, 역사는 남자들의 역사였기 대문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천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온 것은 주로 남자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역사의 실천ㅁ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여성을 남성보다 '덜 중요한 성'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공정한 역사 기록자라면, 역사 속에서 남녀가 제가끔 감당해온 기능부담량의 불공정성을 공정하게, 다시 말해 불공평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6~7페이지 책 앞에서 중에서 인용) 

  나는 서평을 쓰면서 책의 내용을 길게 인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 탓일것 같다. 독후감을 쓸 때 책의 내용을 요약하지 말라고 지겹게도 이야기하시던 국어 선생님들 덕택인지 내용을 길게 인용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놀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서평을 쓰면서 잘 쓰겠다는 강박관념이라든지, 책의 내용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그저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을 끄적거려 보는 것이고, 받은 느낌을 가감없이 적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의 서평은 꽤 조리있게 서지기도 하지만 어느 때의 서평은 내가 봐도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쓰여지기도 한다. 잡설이 길어졌지만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위해 지은이의 말을 길게 인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왜 이런 이례적인 일을 했을까? 써놓고 생각해본다. 왜 이런 짓을 했지? 왜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을까? 

  그렇다. 저자의 강박주의적인 입장 때문이었다. 왠지 책을 읽으면서도 껄쩍지근함을 느꼈던 것들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라고 말하면서 남성들의 공격성과 가부장적인 폭력성을 주장하는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동의하자니 남자라는 정체성이 울고, 그렇다고 된장녀, 개똥녀, 백일 휴가녀라는 말로 마녀사냥식을 행하는 몰지각한 마초들의 편에 서자니 상식이 없는 사람이 되고...결국 선택하게 되는 것은 균형주의자의 입장이 아니던가?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여자를 무시하지도 않는...음...워랄까? 젠틀맨이라고 할까? 남자들끼리 모여서는 시시껄렁한 성적인 농담을 하고 여성 편력을 자랑하지만(실제로 없는 것들을 만드렁 내기도 한다.),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예의바른 남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젠틀맨 콤플렉스랄까? 말로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남자라면 직감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그런 애매모호함이 저자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비겁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의 모든 남자들의 모습이 대체로 이럴테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의와 젠틀맨이라는 관념으로 이렇게 교육받고 길들여져 가고 있다.(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난 대학원에서 윤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다보니 종종 페미니즘 수업을 들을 때가 있었다. 여성학이라는 기초 입문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즘 윤리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꼭 들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내용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윤리학자들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도 아니다.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굳이 여성학이라서가 아니라 나와는 학문의 방향이 달라서였다. 그들의 사상을 배우고 토론을 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던 일로 기억이 된다. 그런데 내가 왜  페미니즘에 대한 수업을 들을가 말가 고민을 했냐면 말이다 여자 학우들 때문이었다. 요즘말로 "이뭐병"이라고 하나? 정말로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이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원래 그렇다고 반대로 어던 사람들은 전투적이다. 한국 남성들이 여자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리고, 아내라는 이름으로 억압한다고. 마치 "때려잡자 공산당" 이런 분위기다. 왠지 남자 학우들은 죄인이 된 기본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니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남학생들이 학을 떼는 것이다. 여학생회를 마치 벌레 보듯이 보는 것이다. 대다수 남성들이 여성부를 바라보던 시각도 아마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최소한 내 생각에는 그렇다.) 

  자꾸 잡설이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남학생들이 취해야할 행동은 오직 하나다. 죄인된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순전히 남성이라는 죄) 앞으로는 여성들에게 충성을 다 바칠 것을 맹세해야 한다.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면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꼰대가 되는 것이고, 필요할 때마다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는 것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기억해 보라. 벌칙에 흑기사는 있어도 흑장미는 없다.) 고종석이 자신을 자이노파일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남성이면서도 젠틀하고, 여성을 존중하면서도 페미니스트이기를 거부하는 균형잡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나는 자이노파일이라는 말에서 읽었다. 여하튼 여자로서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남자로서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책에는 고종석이 인정하고 호의를 표하고, 때론 존경할 수 있는 34명의 여자들이 나와있다. 그들의 삶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자신의 느낌을 적고 있다. 이 책의 분류가 역사인 것은 천만 뜻밖이다. 에세이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문학으로 분류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이 책을 역사로 분류한 것은 남성의 역사를 다분히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여하튼 그가 기록한 34명의 여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이다. 다만 여성이기 때문에(물론 이 이유만은 아니다. 대다수는 또한 좌파이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좌파는 척결대상이지 관조의 대상은 아니다.) 잊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에서 이 책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인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허구의 인물들인데 누가 클레임을 걸 것인가?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리고 이 책을 균형주의자이고 싶은 강박관념의 표현이라고 어찌 보면 평가절하하는 것은 사유리, 최진실 때문이다. 솔직히 사유리가 역사에 기록될만한 인물들인가? 내가 에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진실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책에서 논의가 될 사람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젠틀맨이고 싶은 강박관념의 표현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어절 수 없지 않을까?  

  꽤 흥미로운 인물들도 많이 있고, 역사를 움직여간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내용의 깊이가 부족하다. 간단한 소개는 되겠지만 그들의 평가에 대해서, 사건의 개요에 대해서 깊이있게 다루지는 못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을 다루다 보니 부딪치게 되는 자연스러운 한계가 아니겠는가? 저자가 바란 흥미를 끄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깊이에서는 실패한 책이 아닐까 한다. 

ps. 황인숙과 강금실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최진실과 사유리만큼은 아니다. 165페이지 6번쩨 줄 스물 살은 스무 살이 맞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