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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한다. 원래 커피를 즐겨마시기도 했지만 전역 후에 바쁘기도 하거니와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차를 마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커피를 더 즐겨 마시게 되었다. 여러가지 브랜드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스타벅스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던 청년 가운데 한 명이 농담처럼 나에게 "된장남"이라고 말은 했지만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하기 때문이다. 몇군데의 커피를 마셔봤지만 피곤한 내 몸에 카페인을 충전하여 잠시나마 피곤함을 잊게 해줄만큼의 진하기는 스타벅스 외에는 없다. 게다가 자사 제품이라면 언제 가져가도,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갈아주는 친절함 때문이다. 적당히 시끄러운 것도 내가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전역 후 꾸준히 1년을 스타벅스를 이용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일회용 컵을 사용했다. 물론 일회용 컵들을 모아서 한경 부담금을 받아 오긴 했지만 환경을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돈이 아가워서였다. 그러던 작년 10월쯤일 것이다. 일회용 컵을 머그잔으로 바꾼 것이다. 환경 부담금이 사라졌기 때문에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이 될 이유가 없었음에도 머그잔으로 바꾼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구가 많이 아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기독교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할까를 고민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을 선택한 것이다. 테이크 아웃이라면 모르지만 마시고 가는 경우라면 머그잔에 담아 마시자는 것이다. 물론 나는 테이크 아웃보다는 마시고 가는 비율이 거의 2배 이상 높기 때문에 꽤 성가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문을 할 때 머그잔에 담아달라고 했다. 꾸준히 6개월 이상을 했더니 이젠 아르바이트생들이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머그잔이 아니냐고?" 내가 깜빡한 날에는 이들 때문에 머그잔을 사용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의 서평을 쓰면서 왠 뜬으없는 스타벅스 이야기냐고? 책을 보는 내내 스타벅스에서 내가 하는 일과 노예제 폐지라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 혹은 비싼 돈을 주고 커피 마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은 사치요, 이해하기 힘든 일이며, 물질만능주의의 전형으로 보이는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아직은 포기할 맘이 없다. 다만 빈도수를 줄이려고 할 뿐이지. 노예제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노예제라는 것도 사실 아무리 우리가 관심을 갖는다고 할지라도 나에게 그다지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처지에 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 책을 보면서 깊은 고민을 하는가?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순간 내게 있는 특권을 조금이나마 포기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속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유무이다. 지구라는 삶의 터전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습관적으로 일회용 컵을 사용하듯이, 인간이 갖는 존엄과 가치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일회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너가 아니라 그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그것"으로 사유되는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말함이 아니던가? 인간이 일회용으로 취급받는 이유는 그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아닌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사실, 즉 그들은 물건이 아니요, 우리와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절대적인 존엄을 가지는 인간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라 말한다. 이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책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과연 노예제로부터 벗어나 있는가? 이 책에서 노예를 구분하는 세 가지 기준, "강요나 사기를 통해, 생존을 넘어선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강제 노동에 종사하고"라는 기준을 가지고 우리 나라를 본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어느 등급을 받을까? 1등급은 절대 아닐 것이고, 아마 미국관의 관계 때문에 2등급을받지 않을까? 사실 3등급에 가깝지만 말이다. 자본과 물질에 의해서 생명이 위협받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지 않은가? 국가로부터 차별받고, 허울 좋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죽도록 일만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든지, 그냥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벼에 얼마나 많던가? 오늘은 내가 아니지만 내일은 그 사람이 나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이드로부터 눈을 돌리는 일은 정말 쉽다. 그러나 그 순간 당신은 노예제를 옹호하는 사람이 된다. 또는 노예제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의식하라. 바꾸라. 어둠의 소리, 절대 약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간은 쓰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이 아니다. 쉽게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의식하고 끊임없이 바꾸도록 노력하라. 일회용 컵을 머그잔으로 바꿀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ps. 번역이 깔끔하지 못하다. 직역한 것처럼 내용이 딱딱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들이 너무 많다. 또한 미국 저널리스트가 써서 그런지 미국적인 사고가 가득하다. 이것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별점 하나를 덜 주는 것은 순전히 번역상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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