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 Sle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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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케네스 브레나
주연 : 주드 로, 마이클 케인

제목이 역시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영낙없는 그쪽 계열의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출연 배우만으로도 이건 충분히 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해롤드 핀터'가 맡았다고 나고해서 놀라웠다. 해롤드 핀터라면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여타의 그것과는 차별성이 있겠다 싶었다. 

가끔, 영화들 중 연극 대본 같은 시나리오가 있다. 예를들면 <이별의 여섯 단계>(이 영화는 윌 스미스의 초기 영화이기도 하다) 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들은 실제로 연극 대본을 시나리오로 고쳐서 찍은 영화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 역시 1972년 <발자국>이란 연극을 영화로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영화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다가 횡재한 기분이다.

원제는 sleuth '탐정' 혹은 '형사'다. 한국식 제목도 그렇고, 원제도 그렇고 이런 고감도 스릴러에는 둘 다 맞지 않아 보인다. 추적이라면 쫓고 쫓기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이 영화에 그런 게 있나? 물론 반전의 반전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추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치 않나? 또한 형사라면 원톱일텐데, 이 영화는 투톱이면서 출연진의 전부다. 이를테면 주드 로와 마이클 케인. 조연도 없다. 물론 형사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주드 로가 위장해서 나오는 것뿐 형사가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고 마무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건 추리 작가로 나오는 마이클 케인이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카메라 워크가 독특하다. 첫 장면도 톡특하거니와 뭔가의 등장인물의 속내를 내비치고 싶어하듯 ,전체를 보여주기 보다 부분 부분에 더 많은 포커스를 두고 보여주려고 하고있다. 예를들면 한컷 안에 두 사람을 동시에 보여 주려하기 보다, 이번엔 마이클 케인을 다음 번엔 주드 로를 고루 배치해서 보여주고,  그 중에서도 그 사람의 얼굴, 또 그 얼굴 중에서도 특정 부위(여기선 주로 눈이 해당이 되겠지만)를 보여주고 그런 배우들의 표정을 눈여겨 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으론 마치 스토리가 있는 사진을 보는 것도 같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독특함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 단 두 사람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극에서는 일인극도 있고, 이인극도 있지만, 영화에서 단 두 사람만이 88분이라는러닝 타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여자 하나를 놓고 두 남자가 서로 속고 속이는 두뇌 게임을 펼치지만 여자는 끝까지 등장하는 법이 없다.  

 

더구나  앤드류(마이클 케인)의 집이란 한정된 공간만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주로 실내. 아무리 두 걸출한 배우라고는 해도 두 사람만 보여준다는 건 한계가 있어 보인다. 앤드류의 집은 상당히 럭셔리 하다. 집 자체도 지능적으로 잘 꾸며져 있다. 그야말로 요즘 나오는 똑똑한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그중 거실에서 침실로 올라가는 승강기가 보는이로 하여금 마음을 사로잡는다.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나중에 틴들 그러니까 주드 로가 앤드류를 복수하려고 가두는 곳이 이 승강기이고,  앤드류 앞에서 까불다 그의 총세례를 맞고 튕겨져 나가 우아하게 죽는 곳도 이 승강기이다. 그러니까 이 승강기는 여러모로 이 영화에선 쓸모가 많다.  

이 영화는 말했던대로 여자 하나를 두고 본남편과 내연남이라는, 두 남자의 3전2승제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싸움에서 이긴 자가 여자를 차지하게 된다.  여자의 남편되는 앤드류는 이대로 순순히 여자를 내어줄 수 없다는 쪽이고, 내연남인 틴들은 여자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데 굳이 여자를 갖고 있어 뭐하냐고 뻔뻔스럽게 나온다. 그러다 틴들이 된통 당하는, 한마디로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 한다'로 시작해서 '남의 집 여자를 탐하지 마라'로 끝나는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추리 작가다. 아무리 노련한 배우라고 해도 추리 작가의 치밀하고 대범함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더구나 상대는 자존심 강한 늙은 남자다. 늙었다고 얕보지 마라. 세상을 좀 더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패기의 젊음이가 아니라 세상 살기에 능수능란한 늙은 사람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말은 좀 모호하다. 원래 홈그리운드의 잇점이라고 젊은 틴들이 늙은이의 집에 와서 죽는 건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앤드류가 틴들에게 총을 쐈던 건 질투도, 겁없이 까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앤드류의 동성애적 성향을 틴들이 냉소했기 때문인데 쏜 것이다. 약간은 삼천포로 빠진 것 같아 아쉽다.  

게다가 별로 들어나지는 않지만, 여자가 내연의 남자가 실컷 놀아나다 다시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도 섞연치 않다. 그 돌아가겠다는 이유가 남편이 돈이 많아서인데 역시 그 이유 때문에 남편에게로 돌아오겠다면 여자는 모르긴 해도 싸움만 부추기고, 백치미를 제대로 갖춘 여자인 듯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난 위에서 열거한 이 영화의 독특함 때문에 이런 시시콜콜함을 들어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주드 로의 1인2역도 볼만했지만(난 이 배우 잘 생기기도 했지만 연기도 곧잘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마이클 케인을 위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집사인 조역으로 나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존재감이란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배트맨에서 조역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무한 신뢰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긴, 배트맨에서 주인공을 맡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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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10-08-1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롤드 핀터의 작품이라는 사실에서 관심이 가네요.

stella.K 2010-08-16 14:21   좋아요 0 | URL
헤롤드 핀터를 아시는군요. 나름 멋진 영화였어요.
꼭 한번 보세요.^^

마녀고양이 2010-08-1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클 케인,, 참 멋지고 좋은 배우예요.
검색해보니 2000년 기사 작위도 받았네요. 정말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드 로, 지난번에 내이름은 알피 라는 영화를 보고 깔깔댄 기억이.. ㅋ
은근히 매력적이죠?

stella.K 2010-08-16 15:56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그 영화에선 웃기게 나오나 보죠? 주드 로.
한 번 뵈야겠군요.
마이클 케인은 정말 그럴만 하다고 생각해요.^^
 
해피 피트 - Happy Fee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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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다고 보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영화는 또 언제 개봉했다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우선, 펭귄의 특징을 너무도 잘 살린 영화하라는 생각이든다.  동물의 특징을 잘 살려 이야기를 만드는데 탁월하기로야 디즈니를 따라갈 수 있을까?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쥐도 디즈니의 손을 거치면 '미키 마우스'가 되고, 오리에 기운을 불어 넣어주면 '도날드 덕'이 된다. 하지만 꼭 디즈니만 그러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오래 전, 누군가는 나에게 물었다. 동물 중에 좋아하는 동물은 뭐가 있냐고? 글쎄, 개나 고양이는 기본이니 제외하고, 나는 돌고래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 귀엽고 선한 인상인 돌고래를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하다잖는가? 하지만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역시 그건 펭귄이 될 것이다.  그 뒤뚱거리는 그 날지 않는 새를 싫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인간은 똑똑하다.(가끔 그 똑똑함이 비열한데 작용해서 기분을 상하게도 하지만) 펭귄의 이 특징을 잘 살려 이미지화 했으니 말이다. 저 새끼 펭귄의 얼굴 좀 보라. 너무 귀여워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새끼 펭귄의 움직임은 다른 어른 펭귄과는 확연히 달라 분명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실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제작진들이 꽤 오랫동안 펭귄을 관찰한 노력의 산물은 아닐까 한다. 

게다가 그 많은 펭귄들이 노래하고 춤도 추며 팝뮤지컬의 향연을 펼쳤다. 어찌 즐겁지 않으랴? 더구나 주인공 멈블은 탭댄스의 귀재다. 멈블이 탭댄스를 출 때마다 나는 소리도 소리지만, 하얀 눈위에 선명히 나타나는 펭귄의 발자국은 영화의 사실감을 한층 더 극대화 한다. 

 

하지만 이야기 스토리는 영화의 특징만큼이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 멈블은 그렇게 탭댄스의 귀재여도 그가 사는 동네에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원래부터 멈블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도 늦었고, 펭귄의 세계에선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데 음치다. 또한 그것이 아빠 펭귄이 멈블이 알에 있었을 때 잘 품어 줘야하는데 실수로 한번 팽개쳐지고 말았다. 아빠는 그 때문에 죄책감 속에 멈블이 그런 것이 자기 탓 같아 괴롭다. 더구나 춤을 추라고 하면 그들이 잘 추는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탭댄스를 춘다. 생각 또한 다르다. 멈블은 그가 보는 세계 이상의 것을 상상하고 보려고 하는데, 군집생활을 해야하는 펭귄의 세계에서 이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은 현대의 인간 사회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 우리는 남과 같지 않으면 못 참아하지 않는가? 그래도 저 펭귄 무리는 자기 몸 외엔 가진 것이 없으니 서로 서로 돕고 살지 않으면 종(種)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상황은 종(種)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훨씬 더 많다. 같지 않으면 느껴지는 박탈감, 열등감 같은 것이 바로 오는 그런 류의 것이다. 

사실, 같아지면 지배층의 관리는 훨씬 편해진다. 그리고 사고는 고정이 되고 협소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는 피지배층에 관한 지배층으로만 유지되는 것마는 아니다. 좀 더 나은 독창적인 생각이 변혁을 가져오는 법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사회는 이러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그런 사람이 인재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보면 사회는 나와(또는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를 싫어하거나 두려워 한다. 부모 또한, 내 자식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당하거나 고생할까봐 근심하며,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도록 종용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 이민을 간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남매를 두고 있는데, 맏이인 아들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한동안 했었다. 그 아들은 보석 같은 아인데 유감스럽게도 가공된 보석이 아닌 원석 그대로의 보석이었다. 그래서, 이를테면 부모의 관점에서 뻔히 보이고 아는 것을  그 아들은 꼭 굳이 몸으로 부딪혀 보고 체험해 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니 이 친구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것은 그 아이가 머리가 안 좋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중이었다. 결국 그 친구는, 이 아이의 다른 점을 인정하기가 그토록이나 힘들었던 것이다. 친구의 시각에선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보여졌던 것. 그러니 이 아이와 이 친구의 시각이 '이해'의 관점에 머물 때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아이를 키워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힘든 시간을 거너와 두 모자가 잘 지낸다.  

그나마 영화에선, 엄마 펭귄과 여자 친구 글로리아가 멈블을 이해하는 쪽에 섰으니, 멈블은 전혀 외롭지마는 않다. 그리고 멈블이 사는 곳은 그래도, 키 작은 펭귄이 사는 곳은 다른 사고방식이어서 오히려 지내기는 거기가 훨씬 좋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펭귄의 주 식량인 물고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해 기성세대는 그것이 신의 저주 때문이라고 고정된 주장을 하는 반면, 멈블은 그것이 외계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멈블의 이런 주장이 단번에 받아들여지기 만무하다. 그래서 그것을 증명하고자 모험을 떠난다.   

남과 다르다면 그것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용기'를 가져 볼 일이다.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들을 증명하고자 하는 용기 말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과감히 말하라. 기존의 사고방식에 길들이려 하기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사회가 더 성숙하고 평화를 유지하는데 긴요해 보인다.  사실,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는 당장의 평화는 유지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또 어느 땐가 새로운 사고방식과 세대 가 오면  무너질 불안한 평화다.  

이 영환의 또다른 특징은 사람을 직접 등장시켜, 우리 인간의 무지가 펭귄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또한 멈블의 그러한 노력이  유엔의 안전보장 이사회의 안건으로까지 채택된다는 과장되지만 귀여운 호소력까지 담고 있어 보면서도 키득키득 웃게 만든다.     

이 애니메이션은 한마디로, '미운 오리 새끼'의 새로운 변형이며, 팝뮤지컬을 접목시켜 즐겁게 녹여냈지만, 한번쯤 사고를 환기시켜주는 메시지도 담고 있어 이래저래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나는 이 작품을 한 겨울이 아닌 더운 여름에 볼 수 있게 돼서 더 즐거웠다. 혹시라도 놓치고 보지 않은 분은 늦게라도 꼭 챙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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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8-1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너무 더워서 저곳으로 도망가고 싶어요~ ㅎㅎ

stella.K 2010-08-12 10:44   좋아요 0 | URL
지금 대구에 계시는군요. 막간을 이용해서 한번 보시면 시원하실텐데...!^^

blanca 2010-08-1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이거 세 살짜리랑 같이 볼 수 있나요?^^;;

stella.K 2010-08-12 14:35   좋아요 0 | URL
분홍 공주요? 글쎄요...분홍 공주가 나름 조숙하다면요.ㅎㅎ
조금 어려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 펭귄은 좋아하지 않고는 못 베길 걸요?ㅋ
혹시 분홍 공주님이랑 보게 되거든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아이들은 뭐라고 할지 궁금해지네요.^^
 
충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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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전작 '하녀'와 비슷한 구조다. 아니, 내용도 그닥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단지 다르다면 '하녀'는 가정부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첩에 관한 이야기고, <하녀>에서는 주인 여자가 소극적인 반면, 여기서는 본처가 엽기, 대담하다는 것 정도랄까? 

어느 곤충인지 모르겠지만(듣고도 잊어 먹었다. 요즘 나의 기억력은 새다.), 암수 교미가 끝나면 수컷을 잡아 먹는 암컷 곤충의 이야기를 모티프 겸 첫 번째 시퀀스로 나온다. 상당히 흥미로운 시작이지만, 이것 역시 <하녀>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가상으로 펼치는 식이다. 이야기는 남녀의 부도덕한 면과 권력의 관계를 을 부각시켜 진행하다가, 끝은 도덕적인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당시로선 이렇게 밖에는 보여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솔직히 지금도 본처와 첩과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흔한 소재는 아니다. 그러니 당시는 어땠겠는가? 현실에서 가상으로 들어갔다 다시 현실로 나오는 방식은 어쩌면 감독의 꼼수에서 나온 방식일 수도 있겠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질 땐 김기영 감독 역시 마초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리도 남자 하나를 두고 여자 둘이 신경전을 벌이고 싸우는지? 남자는 중간에서 거의 하는 일도 없다. 두 여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 밖에.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땐 그 역시 도덕주의자란 생각을 했다. 끝에 가서는 '우리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며 끝을 맺고 있으니, 도덕의 전복과 사수를 왔다 갔다 하는 셈이다. 

나아가, 감독은 페미니스트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 대 초에 여성을 이다지도 당당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영화든 소설이든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리기 일색인 그 시대에, 처와 첩의 관계라면 무조건 머리부터 잡아 뜯어 놓는 그렇고 그런 통속극을 만들어 놓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남자들의 역할은 그다지 비중을 크게 잡지 않으며 오히려 여자들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하녀>에서도 마찬가지다.  

흰쥐를 이용한 효과라든지, 갓난 아기의 시체를 냉장고에 너놓은 방식은 확실히 엽기적이고 당시로선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을 주기 위함이겠는데, 지금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놀래켰을지 좀 더 연구해 봐야할 부분은 아닌가 싶다. 

섹스신 역시 비교적 리얼하게 펼쳐 보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그 보다 더 했겠지만 어디 그 시대에 그러기가 쉬운가?  

이 영화를 리메이크 하는데 또 문제가 될 요소는 당시의 정조관념과 요즘의 정조관념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 어디다 포커스를 맞혀야 할지 난감해진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여자 주인공(윤여정)의 경우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술집 작부가 되고, 사생활이 복잡한 여자가 되지 않기위해 첩의 길을 택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오늘날의 시대는 자유연예 시대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런 여자가 있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이 한계를 어떻게 다른 관점으로 보게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영어 자막이 나온다. 그런 것으로 봐 해외에서 주목 받기도 했던 모양인가 보다. 과연 외국에선 우리나라의 처와 첩의 관계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 영화는 전작인 '하녀' 보다 어느 면에선 연출력이 다소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따귀는 또 얼마나 서로들 잘 때리는지? 딱, 딱 하는 소리 장난 아니다.ㅋ  

그래도 주목할만한 건, 김승옥 작가의 원작이고 그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인데 그 원작이 어떨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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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0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다양한 영화를 보시는군요. 처음 보는 영화입니다.
하녀도 못 봤지만... 비교될만 하네요.
그 시대에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것도 신선하구요.

그 곤충은 사마귀 입니다. 그냥 보기엔 섬뜩하지만 암컷의 주위돌리기,수정확률높이기,영양공급등 자연의 이치가 담긴 생존전략이죠.

stella.K 2010-08-09 22:5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사마귀! 고마워요, 루체님.

사실은 이 영화 졸면서 보느라고 약간 고생했습니다.
중간에 끌까 하나가 참고 끝까지 봤죠.
옛날 방화라 그다지 보기가 좋았던 게 아니어서 권할만 하지는 않아요.
물론 그 시대 영화 환경이 감독을 받혀주지 못해 안타깝지만...
최근 하녀가 리메이크가 되서 혹시 이 영화도 리메이크되면 어떨까?
생각하며 쓴 리뷰랍니다.^^

카스피 2010-08-0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녀는 아마도 원판 필림이 소실되서 외국에 자막으로 보낸 영화를 다시 들여왔다고 하더군요.뭐 예전 필림이 없는 것이 이 한편만은 아니겠지만 오래된 국산 영화들이 보존이 잘 안되있느것이 좀 창피하긴 합니다^^

stella.K 2010-08-10 10:42   좋아요 0 | URL
오, 그리 된 사연이 있었군요. 정말 창피하네요.
그래도 그나마 그렇게라도 보존하게 되었으니...ㅜ

Tomek 2010-08-1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명보극장 살인사건이랬던가... (김기영 감독님 표현을 빌어) 극장 사장님이 세컨드를 들였는데, 청초한 여대생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처는 워낙 교양있는(?) 집에서 자라, 남자들의 아랫도리 문제에 참견을 하는 것은 경망스러운 짓이라 생각하고 지나갔다고 했어요. 하지만, 선을 그어야 했기에, 영화에서처럼, 12시간씩 서로 남편을 나누어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허무함을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칼로 찔러 남편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하녀>도 그렇고 <충녀>도 그렇고... 김기영 감독은 당시 사회문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낸 기이한 감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기영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기행을 벌였었는데, <하녀>는 <화녀>와 <화녀 82>로 리메이크 했고 <충녀>는 <육식동물>로 리메이크 했습니다. 문제는 하나같이 다끝내줬다는 점이지요! :D

stella.K 2010-08-10 10:44   좋아요 0 | URL
와, 그게 그렇게 된 거로군요.
참, 토멕님은 쵝오십니다!^^

2010-08-10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0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쿄 마블 초콜릿 - Tokyo Marble Chocolat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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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기회가 있는데, 정말 예쁜 애니메이션을 만나게 되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보고나면 일본이 애니메리션 강국임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우리 국산 만화영화가 TV 공중파에서건, 극장에서 건 얼마나 볼 수 있는 건가? 심형래의 무모함(이젠 그렇게 말하면 실례지만)같은 도전정신만 있으면 따라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객쩍은 컴퓨터 게임에 나랏돈을 쏟아 붓고 이쪽엔 도통 신경들이 없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컴퓨터 게임으로인한 후유증이 생각 보다 심각하다. 그런데도 자구책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이쪽에 투자를 해서 한몫 뽑아 보겠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예쁜 애니메이션 뽑아 내면 누가 뭐라겠는가? 이런 건 정말 정서에도 좋고 부가가치가 상당할텐데도 늘 제자리 걸음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20을 갓넘은(아니면 10말이던가?) 남녀가 사랑을 시작할 때의 우유부단함과 망설임 끝에 어떻게 사랑하기로 마음 먹나를 재밌고도 극적인 에피소드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20대는 젊은 패기 때문에 무모하다고도 하겠지만, 그와 반대로 10대까지는 공부에 매어있다가 선택과 정보의 량이 많아지니 오히려 더 많이 흔들리고, 망설여지는 나이가 그 나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자신있게 좋아하지도 못하는 건 비단 주인공의 성격마는 아닌 것 같다.  

이 만화영화는 크로스적인 요소가 있다. 말하자면 남자 주인공은 토끼를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면서 사귀자고 할 참이었다면, 여자는 그 자리가 사실은 그동안의 관계를 끝낼 요량으로 만나는 마지막 자리였던 것.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가지고 나온 상자 안엔 토끼대신 미니당나귀가 들어 있었고, 이 미니당나귀 때문에 겪는 해프닝으로 인해 둘은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개기가 되었으니 두 사람 모두에겐 잘된 일이다. 

 

이 작품은 총 2장으로 되어있는데, 1장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2장은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도 그 싯점이 서로 갈리고 크로스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또 이런 작품을 좋아한다. 한 사람의 싯점으로만 말하지 않고 또 다른 싯점에서 보면 또 다르게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 말이다. 

사랑에 대한 망설임은 꼭 20대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0대에 사랑도, 40대의 사랑도, 50대의 사랑은 결국 망설임이고 그것이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의도와는 상관없는 여러가지 환경과 상황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 한쪽은 울고, 어느 한쪽은 웃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작품인 경우 엉뚱하게도 미나 당나귀지만. 그리고 미니 당나귀가 말이 그렇지 거의 어린 아기 수준이다. 그렇게 뚜렷한 자기 표현이 가능한 짐승이 과연 있겠는가만, 어차피 만화도 상상력의 표현이니 그냥 보고 넘어간다. 

아무튼 지나치게 개그스럽지도 않고 딱 만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성실하게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상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런 애니메이션이라면 정말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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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0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 이거이거!!!
스텔라님이 나의 마음을 다시 흔드는!!! 나 이거 주문했는데여,,,
주문한지 4일인가 지나서 품절되어 죄송하다는 문자 하나만 달랑 받았어여.
헉헉............................

stella.K 2010-08-04 16:31   좋아요 0 | URL
이거 인터넷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예뻤어요. 꼭 보세요.^^
 
주홍글씨 - The Scarlet Lett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변혁
주연 : 한석규, 이은주

영화는, 성경의 저 유명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유혹'를 말하려 하고 있다. 즉, 인간이 얼마나 유혹을 잘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유혹에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몸소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상당히 세력된 연출력으로 러닝타임 내내 잘 보여주고 있다. 

불만이라면, '유혹'하면 왜 남자 보다 여자를 더 연상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앞서 말한 성경 내용에서도 보면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을 자신과 함께한 아담에게도 준다. 다시 말하면 여자는 유혹에도 약하며 동시에 유혹을 잘 하는 캐릭터며, 남자로 대변되는 아담은 유혹에 취약한 캐릭터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여자가 없었더라면 유혹 받지 않을 거라는 배면에 깔린 의도도 있어 보인다.  그런 구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어쩌다 이 역할이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럴 경우 '나쁜 남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또 요즘 얼마나 인기있는 아이콘이 되었는가? 이래저래 요즘의 이미지는 남자에게 꽤 관대해 보인다.  

어쨌거나 그렇다고 해서 남자의 죄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러한 논리라면 유혹하는 쪽 보다 유혹에 넘어가는 쪽이 죄가 더 크다는 것을, 성경이나 영화나 모습은 다르지만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를테면,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평생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벌을 주신 것이라면, 영화는 '조강지처를 속인 남자의 패가망신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결론엔,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거란 '허세'가 숨어 있기도 하다.

얼마 전에 본 '이집트의 여인'들에서 보면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라' 유명한 대사 한마디가 나온다. 사랑과 욕망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욕망, 다시 말하면 상대를 갈구하는 욕구없이 사랑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사랑과 욕망은 내면에 존재하는 샴쌍둥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또 반드시 구분해야 할 알곡과 쭉정이인것마는 확실하다. 그런데 나는 비로소 이 영화를 보니 그 구분이 모호하게나마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할 기훈이, 그의 직업에서는 투철한 사명의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생활에선 올바르지 않다. 즉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그렇고 그런 남자다. 하지만 그의 삶을 또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는 아내도 사랑하지만 내연의 여자도 사랑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연의 여자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내와 내연의 여자는 여고 동창생이다.  

아내를 속여가며 아내의 친구와 관계를 갖는다는 건 기훈에겐 또 얼마나 스릴있고 짜릿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자기 직업에서 승승장구하며, 주어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만큼이나 성취욕과 자기 중요감을 갖게하는 것과 비교될만한 만족도를 선사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아내의 친구인 가희가 자신을 더 많이 원하고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사람은 자신을 더 많이 갈망하는 쪽에 더 마음을 쏟는 법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아내에게 더 많은 친절과 관용을 베푸는 수 밖에 없다. 예를들면, 기훈의 아내 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에 한번 임신중절을 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수현은 이 사실을 알게된 이상 진실을 알려 줘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그 순간 기훈은 모른척 넘어간다. 왜 그러겠는가? 자신도 결국 제 발이 저리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원래 도덕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는 사랑은 더 탐닉적이 되어가는 법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인정 받는 사랑을 하는 것 보다 더 달콤하고 짜릿할 수는 있지만, 그 욕망을 채우고 나면 더 깊은 갈증이 느껴져 끝간대없는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된다. 바로 여기에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는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그 사랑은 서로를 풍성히 채워주고, 서로를 성숙하게 하며, 신뢰와 안정 속에서 더 크게 자라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기훈과 가희의 사랑은 그저 육체적 욕망만을 채워주는 쓸쓸하고도 허망한 사랑일뿐이다. 서로 울며 안타까움 속에 섹스 하지만 서로를 더 가지지 못해 안타까와하고 그 끝은 항상 불안하다.  

그런데 넘어지려면 거미줄에도 걸려 넘어진다, 기훈이 하필 경찰로서 그 수훈을 인정 받고 상을 받던 날, 그리고 가희의 생일이기도 한 날, 어느 한적한 교외로 나온 둘은 서로 사랑을 나누다 이들이 타고 온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사랑과 증오를 교차시키다 사랑의 종지부를 찍고 만다.  하지만 그 과정이 녹녹치가 않다. 그야말로 피가 범벅이 된 혐오스럽고도 섬짓한 것이어서 아무리 영화라지만 보고 있기가 역겨울 정도다.  

또한 그것은 감독의 연출력에 또 한번 놀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떻게 자동차의 트렁크란 좁은 공간에서 그런 연출이 가능할까? 감독이 다른 앞부분에선 세련된 연출을 보여주다가  보는이로 하여금 뒤통수를 칠만한 놀라운 연출이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알다시피 고 이은주의 마지막 유작으로 남은 작품이기도 하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을 때 돌연 세상을 등진 비운의 배우다.  

새삼 말하기 뭐하지만, 당시 그녀의 죽음을 두고 참 말이 많았었다. 그중 하나는 과감한 노출신이 준 수치감 때문에 자살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 했다. 꼭 그녀가 아니더라도 어느 배우건 그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가 보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아까운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훈 역을 맡은 한석규는 참 한결 같은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형사 역에 늘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복잡하고도 묘한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다. 연기 초기 순박하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거부하고 아마도 이런 캐릭터로 자신의 캐릭터에 방점을 찍을 모양인가 보다.  

즐기는 건 아니지만 모처럼 늦게나마 아주 괜찮은 스릴러를 본 것 같아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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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8-03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속 이은주 참 곱고 이쁘네요.
이 영화에서 재즈를 부르던 그녀가 참 좋더군요.
사랑과 욕망을 구분하긴 해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겠지요.

stella.K 2010-08-04 13: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참 매혹적이었는데...
참, 프야님 좋은 일 있으셨죠? 늦었지만 축하해요.
어쩐지 될 것 같더라니...^^

카스피 2010-08-0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은주 자살은 사실 그 당시에도 참 왈가왈부했던 사건이었지요.그 진실은 아마 저 넘어에 있는데 도저히 밝혀지지 않을것 같군요 ㅜ.ㅜ

stella.K 2010-08-04 13:33   좋아요 0 | URL
그럼요. 한 가지 이유만 있었겠습니까?
스타에 대해 열광하면 뭐합니까? 하나 지켜주지도 못하면서.ㅜ

마녀고양이 2010-08-0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영화 싫어요. 이은주 씨 맡았던 영화보면, 더 싫어져버려요.
이은주 씨의 죽음과 계속 오버래핑되는게.... 정말 끈적거리는 영화예요.

stella.K 2010-08-04 16:32   좋아요 0 | URL
흠, 그랬군요. 전 괜찮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