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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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히 혁명에 가깝지 않나 싶다. 글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책이 나왔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철학 입문서치고 이렇게 나온 건 처음 보는지라 좀 놀라웠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일본에서 제작된 책이다. 일본이 출판에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앞서있는 것은 사실이고(뭐는 앞서지 않겠는가만), 저자는 학원 강사란다. 어쩐지 책을 펼쳐든 순간 뭔가 참고서스럽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철학을 또 이렇게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청소년들을 겨냥한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꼭 청소년만 보랄 건 없다. 나 같이 철학의 철 자만 들어도 하품부터 해 댈 것 같은 성인들이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의 캐리커처가 인상적이다. 

각 철학자의 생김새를 정말 잘 살렸다. 단지 여러 다양한 표정이 가능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걸 기대하기엔 욕심이 과했을까? 그 점은 조금 아쉽긴 하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세상은 스토리텔링과 편집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단 말이 실감 난다. 어떻게 각각 다른 시대 살았던, 서로 다른 철학자의 생각과 사상을 이렇게 한 테이블에 불러 모을 생각을 했을까, 한마디로 기획이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의 생각이란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그 반대되는 생각이 있고 이를 통해 우린 분석과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책 속에서 따로 다루기도 하지만) 헤겔의 정반합의 사고를 지향하는 것도 같다.

당대 유명한 철학자를 한 테이블에 끌어모았으니 얼마나 말발들이 셀까. 물론 실제로 이들은 결코 만나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단지 시대를 거슬러 면면이 이어져 온 사상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 편집의 힘이란 게 대단하다는 것이다.

단지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각 단원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길이가 짧다. 그래서 그냥 맛보기 수준이지 깊이는 느끼지 못하겠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게 전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고 입문서란 콘셉트이라면 말이다. 그저 한 가지 사안에 대해 과거 철학자는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미끼를 던져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묻는 일종의 토론이 가능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역시 읽고 있으면 이만큼 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철학은 어렵다는 장탄식을 피해 갈 길은 없어 보인다. 철학 공부의 새로운 형식의 책으로는 쌍수를 들어 환영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란 학문 자체가 쉬워졌다거나 접근 자체가 용이해졌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 그 답을 조금이나마 이 책에서 찾는다면 그도 이 책을 읽는 보람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일독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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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3-06 13: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오타쿠 문화가 가능해서 일 수도!
이렇게 정리를 잘 하는 사람 보면 정말 부러워요.
전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ㅠ

페크pek0501 2017-03-05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철학의 지도 같은 책이군요.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인 듯...

stella.K 2017-03-06 13:44   좋아요 0 | URL
네. 그냥 입문서 정도.^^

고양이라디오 2017-03-05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어보이는 책이예요. 읽어보고 싶네요ㅋ

stella.K 2017-03-06 13:46   좋아요 0 | URL
어떻게 캐리커처를 넣을 생각을 했는지...
재미도 있어요. 가끔 조용히 하라고 호통도 치고 그래요.ㅋ

북프리쿠키 2017-03-07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이라는 나라는
특정 주제에 대해 기발하게 접근하고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데는
특출난 것 같습니다.^^;

stella.K 2017-03-07 1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밀조밀하게.^^
 
카프카의 일기 카프카 전집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유선 외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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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이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이 책은 왠지 좀 만만히 봤던 것도 사실이다. 모름지기 일기라면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글을 쓴 것이라 대체로 쉬운 문체로 씌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건 또 내가 청소년 시절 <안네의 일기>를 읽은 여파이기도 할 것이다. 일기라곤 그 책 밖에 읽은 적이 없으니). 그런데 그거 아는가, 카프카가 그의 작품 가운데 유독 단단히란 말을 잘 썼다고 한다. “단단히 매듭지어진”, “단단히 붙들린”, “단단히 묶인등등. 그래서일까 이 말이 그의 일기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 책을 펼치면 몇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압도하는 책의 두께에 놀라게 된다. 그것도 그가 한 50년이나 60년에 걸쳐 썼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1909년에서 1923년 동안 쓴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카프카가 일부는 소각해 버렸다고 하는데 소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썼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게다가 그는 일기만 쓰지 않았다. 소설도 쓰고, 편지도 쓰고 또 직장에도 성실히 다녔다. 과연 그 많은 글을 언제 다 썼을까 싶다. 그런데 그가 소각했다던 일기의 일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부가 아닌 듯하다. 나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정말 많이 삭제하고 지워버렸다는 사실, 그래, 올해에 썼던 글이란 글은 거의 다 지워버렸다. 어쨌거나 이 사실은 내가 글을 쓰는 것도 굉장히 방해했다. 지워버린 것은 정말 하나의 산을 이루는데, 내가 전에 썼었던 글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은 것이며, 이미 그 지워버린 양으로 내가 쓴 글 전부를 펜 밑에서 빼앗아버린다(110p). 그러니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또 그런 점에서 카프카는 모든 작가들의 표상이 될 만한데 작가인가 아닌가는 여기서 판명이 나는 것 같다. 단순히 이런 글을 쓰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과 비록 삭제하고 지워버린다고 해도 글자란 형태로 써 보는 것과는 큰 차이일 것이다. 삭제하고 지워버릴 걸 생각하면 뭐 때문에 글을 쓰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작가의 운명은 아닐까?

 

작가들은 빙산의 일각의 법칙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대하면서 왜 이렇게 두껍냐고 불평하는 건 카프카를 알고 싶다면 별로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카프카는 자신이 일기를 쓴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의 19101216일 일기를 보면,

나는 일기 쓰는 것을 더 이상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를 확인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만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지금처럼 때때로 내 안에 갖고 있는 행복이란 느낌을 기꺼이 설명하고 싶다. 그것은 실제로 거품이 있는 어떤 것이다. 이것은 기분 좋게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는 것으로도 나를 완전히 채워주고 또 내게 능력이 있다고 믿게 한다. 그런데 이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은 매순간, 지금도 역시, 아주 확실하게 나를 설득한다(109p)라고 썼다.

 

나도 한때는 일기를 나름 열심히 썼던 때가 있었다. 일기를 쓰면 뭐가 어떻더라는 학습된 동기에 의해서 나도 편승해 쓴 것 같다. 그런 말이 있다. 그 사람의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말. 먹는 것만 그러겠는가? 그 사람이 쓰는 말, 쓰는 글도 그 사람을 말해 준다. 그런 것처럼 일기를 쓰다보면 나의 사고방식을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난 카프카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자신이 쓴 글들을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는 글을 쓰고 있는 자신에 만족해 하지만 이내 불만스러워 한다. 그래서 그처럼 미완성작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 작가냐 아니냐를 구분 짓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쓴 글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짓느냐 못 짓느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미완성작을 가지고 여타의 문학상에 도전할 수 없고, 독자더러 읽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작가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 어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모 아니면 도로 설명될 수 있는게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을 남이 읽을 거니까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고 완성을 봐야한다는 강박은 과연 문학의 자세일까? 미완성 그 자체로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자세, 그런 풍토가 부럽기도 하고 카프카는 복 받은 사람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내 자신의 일기를 포기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애인 펠리체에게 보내는 편지엔 일기를 쓸 의욕이 없으며 결코 쉽지 않으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그는 일기에 M에게 1921년 양도했다고 쓰고 있는데, 여기서 M은 밀레나 예젠스키로 기혼이면서 카프카의 애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카프카는 자기 집 하인과 약혼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건 그를 참 단순히 보는 측면이란 생각이 든다. 일기 어디에도 보면 그 역시 여자를 에로틱하게 보는 대목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카프카를 그저 나약한 존재로만 봐서는 안 되며 그래서 이런 일기가 그를 좀 더 심층적으로 보게 해 준다. 아무튼 그렇게 밀레나에게 일기를 양도하고도 그는 자유롭지 못했으며 불면증이 생겼다고도 고백한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을 알기 위해 썼던 일기가 자신을 집어 삼킨 것은 아닐까 싶다.

 

모 작가는 그런 말을 했다. 작가는 아라크네의 후예로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써야하는 천형을 지녔다고. 카프카가 딱 그런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전혜린의 책 중에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란 책이 있는데 카프카를 위한 말 같기도 하다. 작가는 그래서 괴로운 것 같다. 그는 모르긴 해도 저 세상에서도 일기를 쓰고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고, 쓴다고 해도 그것에 들이는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삶이 단조롭다 보니 별로 쓸 말도 없고, 무엇보다 나이들 수록 뭔가를 남긴다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그리고 내 글은 갈수록 가벼워졌다. 웹을 사용하고부터는 남이 내 글을 읽을 것을 생각해 무거운 글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한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기 쓰기를 부활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솔직히 난 카프카의 일기 거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해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애초에 욕심을 버렸다. 그저 이 책에 내 눈을 담그고 스캔하듯 그저 만져만 보는 것으로도 영광이겠다 싶었다. 훗날 다시 읽어 보면 또 다르게 다가 올 거라고 믿는다. 단지 이 지구상에 일기 쓰기에 가장 애증을 보였던 한 작가가 살다 갔다는 걸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억해 주고 싶을 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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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2-1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보내 주신 책 정말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잘 읽을게요...

stella.K 2017-02-16 10:46   좋아요 0 | URL
잘 도착했군요. 넵.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슴다.^^

2017-02-15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2-16 10:50   좋아요 1 | URL
그런 게 많죠?
저도 소설이랍시고 열심히 쓰다 얼마만에 다시 보면
영 아니다싶어 지운 게 한 두 장이 아닙니다.
아, 정말 창작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ㅠ

상상력최강 2017-02-15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 할것같네요. 감사합니다.

박균호 2017-02-16 10:47   좋아요 0 | URL
네 재미는 보장합니다 호

stella.K 2017-02-16 10:49   좋아요 1 | URL
네. 한 번 읽어보시면...^^

moonnight 2017-02-16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썼던 일기들은 낯부끄러워서 차마 다시 읽지도 못하고 어떻게 없애버리나 고민하게 되어서 간단한 글 외에는 기록하지 않게 된지 오래예요. 나이들수록 뭔가를 남긴다는게 부담스럽다는 말씀에 백배 공감ㅠㅠ; 내 일기는 됐고 카프카님 일기는 (이해 못 하겠지만-_-) 읽어봐야겠어요^^

stella.K 2017-02-17 13:18   좋아요 0 | URL
ㅎㅎ 일기를 써 온 사람의 공통점은 한 번 정도는
소각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또 지나놓고 보면 그걸 후회한데요.
그말을 들으니까 저도 소각을 못하겠더라구요.
후회할 것 같아서.
그런데 또 자기 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면
그걸 자기 손으로 없애버리겠다고 하더군요.
누구한테 맡겨버리면 그 사람이 귀찮아 할 거니까.
일기는 이래저래 애물단지 같습니다만
그래도 안 쓰는 것 보다 쓰는 게 좋다는 게 중론이어요.^^

페크pek0501 2017-02-18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뛰어난 작가의 일기는 그 누구든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저 이거 사고 싶어요.
2. 쓰고 삭제한 행위는 노력의 흔적이라고 봐요. 삭제할 거면 쓰나마나한 게 아니고 글을 쓰는 시간 동안 생각에 깊이 잠겼을 테니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봅니다. 그러니 다음 글을 쓸 때 유리하겠지요.
학생들에게 글쓰기 시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봐요. 저 또한 글을 쓸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따로 사색할 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거죠.
3. 저는 유작이라거나 미완성 원고를 묶어 책으로 낸 거라고 하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요. 완성도 면에서 떨어질 거라는 편견 때문이죠.
4. 어째서 대작가들은 자기 글에 만족을 못하는 것일까요? 예술가들은 자신에 대한 기대치(또는 이상)가 너무 높기 때문이 아닐까요?
5. 저는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어요. 매일 쓰는 건 아니어도 꾸준히 써요. 매주 쓰게 될 때가 많아요. 허한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랄까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랄까요. 일기를 쓰고 나면 좀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아요.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 리뷰를 읽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stella.K 2017-02-19 12:38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감사드리죠. 늦게라도 오셔서 이렇게 봐 주시고
여러 가지 의견과 조언도 해 주시고...

아, 이번에 언니 리뷰 당선작을 내셨던데 보태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ㅋ
책이 좀 비싸더군요. 카프카도 카프카지만 번역 작업에 뛰어든 번역자들이
새삼 존경스럽더군요.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번역을 했을까 싶은...
일긴데도 이렇게 방대하고 장황하게 쓰는 걸 보면
어떤 지옥도를 보는 것도 같고 카프카 정말 대단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리뷰를 좀 급하게 썼는데 나중에 오랜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작품의 고향 -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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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그림과 관련된 장소를 직접 가서 취재하고 글을 썼다. 그런데 저자가 기자라서 그런지 나름 필력이 느껴진다. 얼핏 요즘의 그림 가지고  글을 썼을 것 같지만 고전, 현대 가릴 것 없이 종횡무진으로 썼다. 지면의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우리나라 고전 미술에 대해 그다지 아는바가 없어서일까, 처음엔 다소 산만한 느낌이었는데 차츰 읽어가면서 어느새 빠져 들었다

 

 

표지의 그림은 통영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혁림의 그림이다. 주로 코발트블루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나 역시 평소 파란색을 좋아해 더 인상적이고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가 그 색깔에 집착하는 건 피카소가 꿈에 나타나 파랑이라고 했기 때문이란다

 

전 화백의 그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가 대통령 시절 직접 사서 청와대에 걸 정도로 좋아했단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어떤 그림 보다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며 그림에 대해 잘 설명할 자신이 있다고 했단다. 대통령이 사랑한 화가의 그림이라니,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아무개란 대통령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면서 그림은 더 이상 거기 걸리지 않았다면서 저자는 글 속에서 이 아무개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아무튼 표지 그림이 전혁림 화백의 그림이라 소개해 본 것이고, 그 외에 여러 화가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지면상 다른 건 다 생략하고 나 개인적으론 광부 화가 황재형이 가장 기억에 남아 대표로 그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저자도 특별히 그에 대해선 두 챕터에 걸쳐 다루었는데 그런 것을 보면 황 화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기도 하다. 앞부분은 황 화백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증언 형식이고 뒷부분은 인터뷰다.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화가 있었나. 새삼 놀랍기도 하고 다른 어떤 작가 보다 그 느낌이 강렬했다.

 

그는 스스로 광부가 된 화가다80년 대 초 탄광에 위장취업을 했는데 그 시절 위장취업 사례가 유독 많기도 하거니와 그게 어떤 의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안경을 낀 사람은 탄광이 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그는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막장에 들어갔다. 자꾸 탄가루가 눈에 들어가니 염증이 생겨 실명 위기에 이르자 결국 탄광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탄광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 위장 취업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질 않았다. 탄가루 섞인 도시락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과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일을 그만 둔 후 그는 오히려 탄광 주민들을 교육시키겠다는 꿈을 버리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고, 마을 사람들(주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그런 삶도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막장에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지 죽어서 나올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한가하게 그림이나 그린다고 손가락질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있으면서 그곳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변화되어 가는 걸 지켜보았을 것이다사람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떤 의이었을까? 여기 다 옮길 수 없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어둠과 비참 그 자체다. 그것을 그림으로 승화하는 것을 보면서 황 화백도 나름 보람을 느꼈으리라.

 

그의 그림 중 광부 예수가 있는데 어찌 보면 황 화백이야 말로 (민중을 향한)작은 예수는 아니었을까 싶고 진정한 교화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가 태백에 들어오기 전 탄광촌을 교화시키겠다고 한 치과 의사가 왔었다고 한다. 열심히 사회운동을 했지만 무시당하고 처참하게 좌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는 그것에 대해 자기본위를 못 벗어난 탓이라고 했다. 스스로가 인내하고 동화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번쯤 새겨볼 말이다. 물론 화가의 일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 화가가 화가로서 충실한 것도 훌륭하다. 그러나 황재영 화백은 그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나누기까지 해 존경을 받지 않는가 싶다. 화가가 그곳을 그렸기 때문에 그곳이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화가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나 싶다. 한번쯤 이 화가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작품의 고향은 곧 사람의 고향이기도 하다. 장소가 있고 사람이 있다. 또한 그 사람이 그 장소를 알린다. 잘 지켜졌으면 좋겠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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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08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가 그곳을 그렸기 때문에 그곳이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화가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나 싶다.˝ 란 텔라님의 말씀 멋진데요.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변경하기 위해 <예술작품의 근원>을 썼다고 했다.....
작품을 미적 대상으로 격하할 때 작품의 진리는 사라지고, 그것이 열어주는 세계는 붕괴한다.
그래서 작품을 대하는 현존재의 태도는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변화된 태도를 가지고 작품을 볼때, 작품은 존재자의 모방이 아니다. 그곳은 존재의 진리가 일어나는 신전이다.
- 진중권, <미학오디세이>3권 중에서

신전 역시 마찬가지!
신이 그 장소에 있기 때문에 신전을 짓는 게 아니라
신전을 지어 비로소 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한다는 겁니다.!
가상이 현실의 한갓된 모방이 아니며 예술 작품 또한 한낱 눈요기감이 아니라는 걸
하이데거가 밝혀줬지요..^^;;

이 또한 마이어 샤피로가 등장하면서 산산히 깨어졌지만 말입니다.

stella.K 2017-02-08 17:51   좋아요 0 | URL
쿠키님 저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만드시네요.
한 10년 전쯤 미학오디세이 1권 읽고 안 읽었는데
진중권이 3권에서 그런 말을 했단 말이죠.
그런데 마이어 샤피로가 어떻게 했길래 산산히 깨졌다는 건지
궁금하네요.

저는 이렇게 말만 잘해요.ㅋㅋ

yureka01 2017-02-08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예술가네요..그들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다는 게 와닿습니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그린 그림이었네요...

stella.K 2017-02-08 17:55   좋아요 1 | URL
캬~ 역시 유레카님은 그림을 볼 줄 아시네요.
궁금하시면 검색란에 황재형 쳐 보세요.
그림이 정말 뭐라 형언할 수가 없어요.
그도 그렇고 책 보면 탄광촌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나오는데 소설 보다 징해요.
정말 나중에 이 사람 평전이나 전기 소설 나올 것 같아요.

cyrus 2017-02-08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 고흐도 탄광에서 일하면서 생활한 적 있어요. 전혁림 화백도 그렇고, 범인들과 다른 생활을 하는 예술가들은 정말 특별해요.

stella.K 2017-02-08 17:58   좋아요 1 | URL
그렇지. 반 고흐와 비견이 되긴 하는데 본인은 그걸 부정해.
사실 반 고흐는 어떤 면에선 자기 자신에게 함몰된 느낌을 받는데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뭔가의 감동을 주지.
기회되면 한 번 읽어봐.
 
작업 인문학 - 아는 만큼 꼬신다
김갑수 지음 / 살림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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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소 불순하게 느껴졌다. 학문 그중에서도 인문학이란 게 원래 좀 고귀한 건데 그것을 그저 한갓 이성을 꾀는데 사용해야 하는 건가, 더 나아가 작업 잘 못 거는 사람을 위한 책인 것 같아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를 보고 잠시 이런 생각을 접었다. 김갑수라지 않는가.

 

물론 난 그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 아는 것이 없으니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시쳇말로 말빨이 장난이 아닌데 이번 기회에 그의 말의 향연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제목 때문이 아니라 저자의 명성 때문에 고른 것임을 밝혀둔다. 만일 다른 저자가 이와 같은 제목의 책을 냈다면 나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꼭 너여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더구나 인문학이라 하지 않는가. 작업이란 말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일단 인문학에 방점을 두고 읽기로 했다. (그는 남독濫讀을 얘기하기도 했는데 이 책이 나에겐 남독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업이란 말이 들어가서일까? 이 책에 꽂히는데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의 매력에 빠져서 킥킥거리며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하다(저자가 앙큼하게 그러면 그렇지 할 것도 같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이거 내가 너무 빨리 이 책에(또는 저자에게) 넘어 간 것은 아닌가 왠지 그의 작업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에 있어 필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 밀당인데 나는 밀당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게임이 종료된 것이다. 그러리만치 그는 정말 글을 잘 쓴다. 혼이 나갈 정도로.

 

, 물론 앞에서 밝힌 대로 처음부터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엔 그의 방대한 지식에 놀란다. 그것도 뭐 얼핏 보면 넓어 보이지도 않는다. 다룬 걸 보면 클래식과 커피, 팝과 재즈 정도가 전부다. 페이지 수도 300 페이지가 고작이다. 뭐 결코 얇은 책은 아니겠으나 썰을 풀어 놓기엔 다소 적은 듯도 하다. 그런데 읽다보면 저자가 정말 아는 게 많구나 감탄한다. 언제나 그렇듯 두껍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책은 아니다. 자기 얘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풀어 놓느냐가 우선인데 그런 점에서 저자는 탁월하다.

 

그래서 읽으면 갑수 씨는 아는 것이 많아 좋겠수.’ 하게 된다. 이름이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생각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난 (남자들도 여자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남자들 자기 아는 것 많다고 상대에게 말할 기회도 안 주고 딥다 떠들어 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대도 그는 그게 무슨 자신의 지성이라도 되는 양 착각한다. 그런데 명백히 말하지만 여자는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 더 정확히는 대화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는 게 많으니 들어주기도 바쁘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새 빠져든다. ‘갑수 씨는 아는 것 많아 좋겠수.’는 다시 말하면 일종의 각성 상태라는 말도 되는데 그 상태를 좀 더 오래 가지고 있어야 했다.

 

문득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독서를 해 오지 않았는가 반성도 하게 되는데, 사실은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도 밀당의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이 책에 보면 나쁜 년이 나온다. 줄 듯 줄 듯 안 주는 여자를 두고 남자들의 세계에서 은어처럼 그렇게 쓴단다. 우리 독자들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어떤 저자건 무조건 처음 읽은 책이 좋아 그날로 팬을 자처하지 말고 좋아하면 오히려 이런 나쁜 사람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스토커가 되라는 말은 아니고.

 

그런데 읽다보면 갑수 씨는 확실히 호사가란 생각이 든다. 하긴 문화평론가의 다른 이름이 호사가는 아니던가? 그런데 호사가도 알고 보면 굉장한 지식인은 아닌가 싶다. 과거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엔 공부도 참 고통스럽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의 공부의 목표는 오로지 입신양명이었다. 물론 요즘의 공부도 그렇긴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호사가의 공부라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즐겁게 공부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하는 공부는 무슨 학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생활이나 문화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 밖에 호사가의 특징은 뭐가 있을까?

 

요즘엔 대학에서도 별의별 것들을 다 가르치는 모양인가 본데 저자가 386세대이고 보면 그 시절 클래식은 그렇다 쳐도 팝이나 재즈, 커피 등을 대학에서 배웠을 것 같지가 않다. 다 독학으로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커피로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한 사람에 대해 꽂히면 그 사람에 관한 평전을 세 권은 독파한다. 그런 것을 보면 호사가의 공부는 학위를 위해 공부하는 것 못지않은 아니 때론 그 보다 더한 정력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나 싶다.

 

클래식 전문가야 요즘엔 너무 많아졌고, 그도 클래식에 대해선 누구 못지않은 일가견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 보다는 오히려 팝이나 재즈를 말할 때 좀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읽다보면 미국 민중사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내가 그 부분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도 나 역시 팝송만 줄곧 들었던 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뭘 알고들은 것은 아닌데 들은 가닥이 있으니 저자가 어떤 말을 해도 흡수가 빠르다. 저자와 내가 팝송을 들었던 때가 비슷하기도 하고. 요즘 팝의 경향은 어떤지 모르겠다.

 

삶의 질이 좋아지면 사람들은 뭔가 호사가의 특징을 띄고 싶어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어찌 클래식이나 커피, 팝송을 아는데 국한 되어 있겠는가. 의외로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클래식이나 커피, 재즈 등을 아는 것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단적으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호사가 자체가 되는 것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난 후자 쪽이라고 보는데 저자는 너무 자신을 일반화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난 앞에서 너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싫다고 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분명 뭔가 자기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난 왜 연애를 못하느냐고 머리털 뽑지 말고 어떤 분야든 자신의 내면을 빛나게 해 줄 지식으로 채워라. 자신감이 충전되고 그것으로 썰 풀 일은 많으며 반은 먹어주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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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1-31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김갑수씨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호사가.
커피 매니아, 클래식 매니아인 것은 많이 알려져있고요.
글도 재미있게 잘 쓰지요. 이 책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 나왔다는 소식 들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읽으셨네요 ^^

stella.K 2017-01-29 20:17   좋아요 1 | URL
진짜 이 사람 호사가예요.
정말 글 잘 쓰더군요.
새해 벽두에 이렇게 좋은 책 읽는 것도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요.
h님도 한 번 읽어 보세요.^^

북프리쿠키 2017-01-31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수씨가 종편방송에 많이 나오시는 분 맞죠? ㅎ
얼굴이 호감형은 아닌데 또 매력이 있는가봐요.

줄듯 줄듯 안주는 여자에 심히 공감하고 갑니다.ㅎㅎㅎㅎ

stella.K 2017-01-31 16:0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저런 사람이 젤 부럽더군요.
자기 좋아하는 공부하면서 여기 저기서 불러주고 알아 봐 주고.
누구는 힘들게 힘들게 사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 만나신 적 있으신가 봅니다.ㅎㅎㅎㅎ

북프리쿠키 2017-01-31 16:10   좋아요 1 | URL
문득 몇명의 여자분들이 스쳐지나갑니다.ㅋㅋㅋ

stella.K 2017-01-31 16:17   좋아요 1 | URL
그럴 땐 화악~ 잡아 끌어야 하는데 말입니다.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7-02-03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야든 자신의 내면을 빛나게 해 줄 지식으로 채워라.˝ ㅡ 님의 페이퍼에서.
이런 말이 생각나네요. 남이 나에게서 훔쳐 갈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지식이다, 라는 것.

지식뿐 아니라 지혜까지 포함해 내면을 꽉 채우기가 명성을 떨치는 일이나 돈이나 권력을 갖는 일보다 우선이라는 걸 알아야하겠습니다.

스텔라 님,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stella.K 2017-02-03 15:33   좋아요 0 | URL
오, 언니! 저 방금 언니네 있다 오는 건데...ㅎ
남이 나에게서 훔쳐 갈 수 없는 것!
과연 그러네요.^^

페크pek0501 2017-02-03 15:37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전쟁이 나서 집도 불에 타고 재산도 없어지고 그래도 내 머릿속의 지식은 그대로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워서 남 주냐, 하나 봐요. ㅋ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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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공공의 적인가

 

하루키의 삶에 관해서 알려진 것들이 많아 솔직히 이 책이 나왔을 때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망설이기도 했다. 먼저 결론으로 말하자면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난 하루키의 작품을 읽은 지가 좀 오래된 편인데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워낙 좋아해 읽으면서도 흡족했다. 무엇보다 하루키를 나름 연구해 놓은 책들이 몇 권 되는가 본데 가볍기도 하거니와(적어도 내가 읽은 책은 그랬다) 뭔가의 혼선이 있는 듯하고 산만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이건 그 자신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거라 오히려 후련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새삼 하루키는 공공의 적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 그대로 의미는 아니고 흔히 질투의 대상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작가를 결정짓는 건 엉덩이의 힘이란 말이 있다. 얼마큼 책상 앞에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인데 무조건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고 조금 더 신랄하게 얘기하자면 자기 작품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느냐 즉 퇴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에도 보면 하루키는 자신의 하루 일과와 함께 어떻게 작품을 쓰고 그것을 고쳐 나가는지를 양생이란 단어와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밝혀 놓고 있다. 작품은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고쳐 쓰기의 과정은 처음 초고를 쓰는 과정만큼이나 신나고 재미있는 과정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고통스럽고 진이 빠지는 일이다. 분명히 더 좋아지는 것이 사실인데도 말이다. 하루키는 편집자에게 자신의 원고를 넘기기까지 적어도 세 번 이상은 고쳐 쓰는 모양인데 그러고도 편집자에게 넘길 때는 초고라고 말하고 있으니 편집자와는 또 얼마를 고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하루키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게 한다. 나는 과거에 연극 대본을 썼는데 희곡을 쓰는 작가라고해서 예외는 아니다. 초기 나는 연출가와 고쳐 쓰기를 7번인가 8번을 하고 병원으로 실려 간 적이 있다. 물론 그렇게 된 게 꼭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스트레스가 과중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큼 고쳐 쓰기란 초고 쓰기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그렇게 고쳐 쓰는 일이 즐겁단다.

 

하루키가 공공의 적이 될 만한 요소는 또 있다. 그는 모든 작품을 가상의 이야기로 쓴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을 자신의 작품에 출연시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우리나라의 누구라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작가도 아예 솔직하게 자신은 현실에 있는 사람을 작품에 쓴 적이 있다고 한다다(물론 할 수 있는 한 가공을 하겠지). 그래서 칭찬을 받기도 하고 수난도 당했다고 했다. 다른 작가도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어떻게 매번 그렇게 새로운 인물을 창조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건 그만큼 그가 뛰어난 상상력과 감수성을 가져서일 수도 있고, 성실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뭐 여기까지는 용서해 준다고 치자. 정말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그는 그렇게 창조한 인물들이 살아서 자기네들끼리 대화를 주고받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그 이야기를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쯤 되면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나며 발광수준 된다. 솔직히 나도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서 장편 소설에 도전해 본적이 있는데 거짓말 좀 보태서 두 번 병원에 실려 가고 싶지 않아 중단했다. 하루키가 그렇게 말하는 건 공부가 제일 쉽다고 말하는 것과 동급인 것이다. 한 땀 한 땀 이태리 장인 정신을 가지고 쓰는 작가에겐 굉장한 열등감과 충격적인 박탈감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라이터스 블록 즉 작가로서 느끼는 슬럼프도 겪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글이 안 써질 땐 그냥 안 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얼마나 속편한 작가인가. 글이 안 써지면 그만이라니. 스트레스 사망 1위에 해당하는 직업군으로 작가가 속해있다고 하는데 하루키는 장수할 것이 틀림없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마라톤 선수면서 글쓰기를 위해 매일 조깅을 한다지 않는가. 게다가 그는 문학상에 관심도 없다(나는 하루키가 일본 내 그 유명하다던 아쿠타가와 상을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원고 청탁도 받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작가가 되어버렸으니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을 것이다그러나 그게 작가생활 초기 때부터 이어져 온 거라면 좀 짜증나려고 하지 않을까? 어떻게 청탁을 안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돈이 많아? 원고료 받아 살림에 보태 쓸 필요가 없어? 무엇보다 작가가 되가지고 원고 청탁 못 받으면 그게 얼마나 쪽팔리는 일인데그것도 다 명예고 스펙 쌓기 아닌가그걸 받지 않는다니과연 하루키다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키의 이런 작가로서의 태도가 원래 맞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처음 작가의 꿈을 가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하루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가의 꿈은 대체로 사춘기 전후로 갖게 되는데 솔직히 내가 무슨 신문사 신춘문예나 어떤 출판사의 신인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습작을 하겠는가? 요즘엔 혹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이런 경향으로 쓰면 무슨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들을 다 입수하고, 그것에 맞는 글과 문체를 개발하고 하는. 그러나 작가는 그저 쓰는 사람일 뿐이다. 경향을 알 수도 없거니와 알 필요도 없다. 작가가 되면 청탁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았다. 작가로 등단은 했는데 청탁도 못 받으면 우울증에 걸리는 작가도 많다는데 그것도 능력인가 보다. 어쨌든 그런 하루키가 자국 내 무슨 작가협회 같은 곳에 등록이나 했겠는가? 당연히 안했다. 물론 그런 곳에 등록하고 같은 업계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곳에 등록하지 못해 눈물에 밥을 말아 먹는 작가지망생이 한 둘이겠는가? 그런 걸 보면 하루키는 객쩍은 일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좋게 말하면 아주 심플한 사람인 것 같다.

 

 

하루키 마침내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말하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비로소 그 문제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말했는데 자세한 것은 책을 보면 되는 것이고, 확실히 그의 작품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그만의 독창성을 인정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하루키의 문체를 따라했던 작가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그만큼 하루키의 문체가 탐나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그렇게 해서 성공한 작가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역시 아류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난 이쯤에서 작가가 굳이 누구의 문체를 따라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가져 본다. 물론 하루키도 한때는 누구누구의 아류란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딛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제를 구축해 나갔다. 그런 걸 보면 아류란 그 작가가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누구를 흉내 내기보다 내가 세상에 들려 줄 이야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그가 말하는 오리지널리티의 정의 보면, 첫째는 다른 표현 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97~98p)고 했다. 벌써 설명만 듣는 것으로도 머리가 아프려고 한다. 작가가 무슨 수로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까지 좌지우지 한단 말인가. 작가가 쓰진 않고 그런 것만 생각하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냥 써라. 그러다 보면 그런 것도 저절로 따라 온다. 안 따라오면 말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도 바쁜데 그런 거 따져 뭐하겠는가. 또 그래서 말인데 하루키의 글의 장점은 어렵지 않다는 건데 이 책은 솔직히 전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것 같은데도 꼼꼼히 읽으면 좀 어렵지 않았나 싶다.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소설가, 할 만한 직업인가

 

하루키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소설을 쓰는 일은 철저하게 혼자 해야 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어떤 장르의 글을 쓰던 작가는 모두 고독한 직업이다. 그래도 조금은 덜 고독한 작가가 있다면 그건 대본 쓰는 작가가 아닐까 한다. 물론 쓰는 동안만큼은 고독하다. 하지만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만 빼면(?) 작품에 대해 연출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심심하면 배우들의 연습 현장을 둘러볼 수도 있으니 혼자 머리털 뽑는 소설 보다 훨씬 유쾌하게 일할 수 있다. 또 여차하면 연출까지도 넘볼 수 있으니 가히 매력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나 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어느 날 내 작품을 성실하게 올려줬던 팀이 해체가 됐다. 좀 섭섭하기도 했지만 이제야 말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 한창훈이 소설가가 되기로 한 것이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 작가란 직업이 좋은 건 크게 밑천 들이지 않고 종이와 펜 살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무렵 난 정말로 소설을 썼었다. 하루키는 매일 원고지 20매를 썼다고 하는데 그걸 컴퓨터로 하면 2장반이라고 한다. 나도 그걸 51장을 쓰고 중단해 버렸다. 원고지로는 상당한 분량이지 않을까? 어쨌든 썼더라면 장편을 썼을 것 같은데 이미 그만큼 쓰기도 기운을 많이 소진한 상태였고, 뭔가 엉성한 것이 이것을 계속 이끌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직은 그 작품을 쓸 만한 때가 아닌가 보다 했다. 이게 거의 7, 8년 전의 일이고, 이런 식으로 끝을 못 본 이야기가 두 세 개가 더 있다.

 

소설가가 좋은 건 이런 것일 게다. 소설을 끝냈지 못했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는 것. 작품을 보여 줄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상관없다. 그런데 소설은 여간해서 끝을 보기가 어렵다. 누가 닦달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으니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이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때 깨달은 건 작가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끝을 맺느냐 못 맺느냐에 있다는 걸 알았다.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맺을 수만 있다면 소설가는 할 만하다고 아니 그는 이미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유명한 작가이기 전에 다작하는 작가다. 그의 한 두 작품이 어쩌다 운이 좋아 무슨 상을 받아서 유명해진 게 아니라 열심히 뭔가를 썼다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다. 천재는 어쩌다 운 좋게 번뜩이는 몇 작품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바탕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무수히 많은 습작 끝에 그런 소리를 듣는 거라고. 하루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쓰다 보면 좋은 소리만 듣지는 않는다. 좀 놀라웠던 건 하루키가 그런 말을 한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 이제 그만큼 유명한 작가가 됐으니 누가 뭐랄 사람이 없을 것도 같은데 아직도 그런 말을 듣는가 보다. 솔직히 그럴 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입을 꿰매주던가 그 일을 포기하던가. 하지만 둘 다 말은 안 된다. 어떻게 가진 꿈인데 한낱 사람들의 그런 세치 혀에 놀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그 꿈을 이루는데 쉬울 줄 알았나?

 

나는 안다. 대다수의 많은 작가들이 그 자리에서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이 갈등하며 쓰는지. 또한 적지 않은 작가들이 첫 번째나 두 번째 작품을 쓰고 얼마나 빨리 펜을 놓고 일반인으로 돌아가는지. 솔직히 글만 써서 돈 번다는 게 이 나라에서 가능한 일인가? 별로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도 작가의 꿈은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딱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나도 꾸준히, 미친 척하고 소설이나 열심히 쓸 걸 그랬다는 것이다. 이 나라가 작가에게 밥을 못 먹여줘서 작가를 포기했다? 물론 그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러기 전에 내가 안 쓰니까 포기한 건 아닐까?

 

사실 난 처음 희곡을 썼던 게 앞으로 소설을 쓸 건데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썼다. 하지만 훗날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썼던 것 같다. 소설 써 봐야 누가 알아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놀 수만은 없고 그런 식의 최선이 아닌 차선 같은 것. 그런데 희곡을 못 쓰게 될 때도 나는 할 수만 있으면 소설을 안 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루키 말마따나 글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그런 부정적인 묵상까지 할 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랬다고 어느 새 나는 그 속에서 글을 쓸 이유를 찾고 있었다. 내가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 아니겠는가.

 

정말 미친 척 하고 소설이나 열심히 쓸 걸 그랬다. 지금은 갈수록 눈이 나빠져서 이대로 앞으로 내가 글을 쓰면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이쯤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 눈 좋을 때 할 수만 있으면 글 한 자라도 더 써 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더 나빠지기 전에 또 써야겠지? 게다가 나는 삼시세끼 밥은 먹지 않은가. 끼니 걱정을 하며 무슨 글을 쓰겠는가. 바로 지금 많이 써 두면 안 될 것 같다. 소설이란 이런 걱정하면 못 쓸 거니까 

 

난 하루키의 작품은 거의 읽지 않고 있지만 그 사람 자체는 좋아한다. 오만한 것 같지만 실은 당당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작가가 되기 위해 맞혀져 있다.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인지를 알면 그에 대해 함부로 비난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는 모든 작가들의 표상이라 할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될 사람은 대충하지 말고 뼛속까지 작가가 되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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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27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루키 소설을 단 한권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전혀 땡기질 않았습니다.
아니 하루키가 아니라 소설에 관심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닌가 싶어요...ㅎㅎㅎㅎ

그런데 포스팅 리뷰 글보고 은근 구미 땡기게 글쓰셧네요.^^..

새해에도 복 많이 만드실거죠?

새해에도 리뷰 잘 부탁드립니다. ,,,,,

stella.K 2017-01-27 18:3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근래 들어선 그렇긴 한데
이 책을 읽으니까 읽다 만 1Q84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책은 한 번 읽어 보세요.

유레카님의 새해 인사가 근사합니다.
님도 복 많이 만드실 거죠?
고맙습니다. 저도 유레카님의 변함없이 좋은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7-01-3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지낼러티에 독보적인 작가들을 보면
하루키도 글코 김훈도 글코 흠..또 누가 있을까...
암튼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낫다고들 하던데요..

저도 이책 참 좋아합니다.
제목만 보고 지루할줄 알았는데 어찌나 재미있고 공감되던지요..^^;

stella.K 2017-01-31 16:06   좋아요 1 | URL
이 책 가지고 쿠키님 장원하셨잖아요.
저도 이번에 함 노려볼까 하는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ㅎㅎㅎ

북프리쿠키 2017-01-31 16:13   좋아요 1 | URL
이런 글이 안되면 문제있지요
강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