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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고향 -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16년 12월
평점 :
제목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그림과 관련된 장소를 직접 가서 취재하고 글을 썼다. 그런데 저자가 기자라서 그런지 나름 필력이 느껴진다. 얼핏 요즘의 그림 가지고 글을 썼을 것 같지만 고전, 현대 가릴 것 없이 종횡무진으로 썼다. 지면의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우리나라 고전 미술에 대해 그다지 아는바가 없어서일까, 처음엔 다소 산만한 느낌이었는데 차츰 읽어가면서 어느새 빠져 들었다.

표지의 그림은 통영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혁림의 그림이다. 주로 코발트블루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나 역시 평소 파란색을 좋아해 더 인상적이고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가 그 색깔에 집착하는 건 피카소가 꿈에 나타나 ‘파랑’이라고 했기 때문이란다.
전 화백의 그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가 대통령 시절 직접 사서 청와대에 걸 정도로 좋아했단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어떤 그림 보다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며 그림에 대해 잘 설명할 자신이 있다고 했단다. 대통령이 사랑한 화가의 그림이라니,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아무개란 대통령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면서 그림은 더 이상 거기 걸리지 않았다면서 저자는 글 속에서 이 아무개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아무튼 표지 그림이 전혁림 화백의 그림이라 소개해 본 것이고, 그 외에 여러 화가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지면상 다른 건 다 생략하고 나 개인적으론 광부 화가 황재형이 가장 기억에 남아 대표로 그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리뷰를 대신할까 한다. 저자도 특별히 그에 대해선 두 챕터에 걸쳐 다루었는데 그런 것을 보면 황 화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기도 하다. 앞부분은 황 화백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증언 형식이고 뒷부분은 인터뷰다.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화가 있었나. 새삼 놀랍기도 하고 다른 어떤 작가 보다 그 느낌이 강렬했다.


그는 스스로 광부가 된 화가다. 80년 대 초 탄광에 위장취업을 했는데 그 시절 위장취업 사례가 유독 많기도 하거니와 그게 어떤 의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안경을 낀 사람은 탄광이 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그는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막장에 들어갔다. 자꾸 탄가루가 눈에 들어가니 염증이 생겨 실명 위기에 이르자 결국 탄광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탄광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 위장 취업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질 않았다. 탄가루 섞인 도시락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과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일을 그만 둔 후 그는 오히려 탄광 주민들을 교육시키겠다는 꿈을 버리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고, 마을 사람들(주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그런 삶도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막장에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지 죽어서 나올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한가하게 그림이나 그린다고 손가락질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있으면서 그곳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변화되어 가는 걸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떤 의이었을까? 여기 다 옮길 수 없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어둠과 비참 그 자체다. 그것을 그림으로 승화하는 것을 보면서 황 화백도 나름 보람을 느꼈으리라.
그의 그림 중 ‘광부 예수’가 있는데 어찌 보면 황 화백이야 말로 (민중을 향한)작은 예수는 아니었을까 싶고 진정한 교화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가 태백에 들어오기 전 탄광촌을 교화시키겠다고 한 치과 의사가 왔었다고 한다. 열심히 사회운동을 했지만 무시당하고 처참하게 좌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그는 그것에 대해 자기본위를 못 벗어난 탓이라고 했다. 스스로가 인내하고 동화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번쯤 새겨볼 말이다. 물론 화가의 일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 화가가 화가로서 충실한 것도 훌륭하다. 그러나 황재영 화백은 그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나누기까지 해 존경을 받지 않는가 싶다. 화가가 그곳을 그렸기 때문에 그곳이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화가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나 싶다. 한번쯤 이 화가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작품의 고향은 곧 사람의 고향이기도 하다. 장소가 있고 사람이 있다. 또한 그 사람이 그 장소를 알린다. 잘 지켜졌으면 좋겠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