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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일기 ㅣ 카프카 전집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유선 외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1월
평점 :
카프카의 작품이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이 책은 왠지 좀 만만히 봤던 것도 사실이다. 모름지기 일기라면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글을 쓴 것이라 대체로 쉬운 문체로 씌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건 또 내가 청소년 시절 <안네의 일기>를 읽은 여파이기도 할 것이다. 일기라곤 그 책 밖에 읽은 적이 없으니). 그런데 그거 아는가, 카프카가 그의 작품 가운데 유독 ‘단단히’란 말을 잘 썼다고 한다. “단단히 매듭지어진”, “단단히 붙들린”, “단단히 묶인” 등등. 그래서일까 이 말이 그의 일기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 책을 펼치면 몇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압도하는 책의 두께에 놀라게 된다. 그것도 그가 한 50년이나 60년에 걸쳐 썼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1909년에서 1923년 동안 쓴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카프카가 일부는 소각해 버렸다고 하는데 소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썼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게다가 그는 일기만 쓰지 않았다. 소설도 쓰고, 편지도 쓰고 또 직장에도 성실히 다녔다. 과연 그 많은 글을 언제 다 썼을까 싶다. 그런데 그가 소각했다던 일기의 일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부가 아닌 듯하다. 나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정말 많이 삭제하고 지워버렸다는 사실, 그래, 올해에 썼던 글이란 글은 거의 다 지워버렸다. 어쨌거나 이 사실은 내가 글을 쓰는 것도 굉장히 방해했다. 지워버린 것은 정말 하나의 산을 이루는데, 내가 전에 썼었던 글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은 것이며, 이미 그 지워버린 양으로 내가 쓴 글 전부를 펜 밑에서 빼앗아버린다(110p). 그러니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또 그런 점에서 카프카는 모든 작가들의 표상이 될 만한데 작가인가 아닌가는 여기서 판명이 나는 것 같다. 단순히 이런 글을 쓰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과 비록 삭제하고 지워버린다고 해도 글자란 형태로 써 보는 것과는 큰 차이일 것이다. 삭제하고 지워버릴 걸 생각하면 뭐 때문에 글을 쓰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작가의 운명은 아닐까?
작가들은 빙산의 일각의 법칙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대하면서 왜 이렇게 두껍냐고 불평하는 건 카프카를 알고 싶다면 별로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카프카는 자신이 일기를 쓴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의 1910년 12월 16일 일기를 보면,
나는 일기 쓰는 것을 더 이상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를 확인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만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지금처럼 때때로 내 안에 갖고 있는 행복이란 느낌을 기꺼이 설명하고 싶다. 그것은 실제로 거품이 있는 어떤 것이다. 이것은 기분 좋게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는 것으로도 나를 완전히 채워주고 또 내게 능력이 있다고 믿게 한다. 그런데 이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은 매순간, 지금도 역시, 아주 확실하게 나를 설득한다(109p)라고 썼다.
나도 한때는 일기를 나름 열심히 썼던 때가 있었다. 일기를 쓰면 뭐가 어떻더라는 학습된 동기에 의해서 나도 편승해 쓴 것 같다. 그런 말이 있다. 그 사람의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말. 먹는 것만 그러겠는가? 그 사람이 쓰는 말, 쓰는 글도 그 사람을 말해 준다. 그런 것처럼 일기를 쓰다보면 나의 사고방식을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난 카프카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대체로 자신이 쓴 글들을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는 글을 쓰고 있는 자신에 만족해 하지만 이내 불만스러워 한다. 그래서 그처럼 미완성작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 작가냐 아니냐를 구분 짓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쓴 글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짓느냐 못 짓느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미완성작을 가지고 여타의 문학상에 도전할 수 없고, 독자더러 읽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작가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 어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모 아니면 도로 설명될 수 있는게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을 남이 읽을 거니까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고 완성을 봐야한다는 강박은 과연 문학의 자세일까? 미완성 그 자체로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자세, 그런 풍토가 부럽기도 하고 카프카는 복 받은 사람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내 자신의 일기를 포기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애인 펠리체에게 보내는 편지엔 일기를 쓸 의욕이 없으며 결코 쉽지 않으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그는 일기에 M에게 1921년 양도했다고 쓰고 있는데, 여기서 M은 밀레나 예젠스키로 기혼이면서 카프카의 애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카프카는 자기 집 하인과 약혼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건 그를 참 단순히 보는 측면이란 생각이 든다. 일기 어디에도 보면 그 역시 여자를 에로틱하게 보는 대목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카프카를 그저 나약한 존재로만 봐서는 안 되며 그래서 이런 일기가 그를 좀 더 심층적으로 보게 해 준다. 아무튼 그렇게 밀레나에게 일기를 양도하고도 그는 자유롭지 못했으며 불면증이 생겼다고도 고백한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을 알기 위해 썼던 일기가 자신을 집어 삼킨 것은 아닐까 싶다.
모 작가는 그런 말을 했다. 작가는 아라크네의 후예로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써야하는 천형을 지녔다고. 카프카가 딱 그런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전혜린의 책 중에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란 책이 있는데 카프카를 위한 말 같기도 하다. 작가는 그래서 괴로운 것 같다. 그는 모르긴 해도 저 세상에서도 일기를 쓰고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고, 쓴다고 해도 그것에 들이는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삶이 단조롭다 보니 별로 쓸 말도 없고, 무엇보다 나이들 수록 뭔가를 남긴다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그리고 내 글은 갈수록 가벼워졌다. 웹을 사용하고부터는 남이 내 글을 읽을 것을 생각해 무거운 글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한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기 쓰기를 부활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솔직히 난 카프카의 일기 거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해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애초에 욕심을 버렸다. 그저 이 책에 내 눈을 담그고 스캔하듯 그저 만져만 보는 것으로도 영광이겠다 싶었다. 훗날 다시 읽어 보면 또 다르게 다가 올 거라고 믿는다. 단지 이 지구상에 일기 쓰기에 가장 애증을 보였던 한 작가가 살다 갔다는 걸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억해 주고 싶을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