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인문학 - 아는 만큼 꼬신다
김갑수 지음 / 살림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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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소 불순하게 느껴졌다. 학문 그중에서도 인문학이란 게 원래 좀 고귀한 건데 그것을 그저 한갓 이성을 꾀는데 사용해야 하는 건가, 더 나아가 작업 잘 못 거는 사람을 위한 책인 것 같아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를 보고 잠시 이런 생각을 접었다. 김갑수라지 않는가.

 

물론 난 그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 아는 것이 없으니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시쳇말로 말빨이 장난이 아닌데 이번 기회에 그의 말의 향연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제목 때문이 아니라 저자의 명성 때문에 고른 것임을 밝혀둔다. 만일 다른 저자가 이와 같은 제목의 책을 냈다면 나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꼭 너여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더구나 인문학이라 하지 않는가. 작업이란 말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일단 인문학에 방점을 두고 읽기로 했다. (그는 남독濫讀을 얘기하기도 했는데 이 책이 나에겐 남독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업이란 말이 들어가서일까? 이 책에 꽂히는데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의 매력에 빠져서 킥킥거리며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하다(저자가 앙큼하게 그러면 그렇지 할 것도 같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이거 내가 너무 빨리 이 책에(또는 저자에게) 넘어 간 것은 아닌가 왠지 그의 작업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에 있어 필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 밀당인데 나는 밀당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게임이 종료된 것이다. 그러리만치 그는 정말 글을 잘 쓴다. 혼이 나갈 정도로.

 

, 물론 앞에서 밝힌 대로 처음부터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엔 그의 방대한 지식에 놀란다. 그것도 뭐 얼핏 보면 넓어 보이지도 않는다. 다룬 걸 보면 클래식과 커피, 팝과 재즈 정도가 전부다. 페이지 수도 300 페이지가 고작이다. 뭐 결코 얇은 책은 아니겠으나 썰을 풀어 놓기엔 다소 적은 듯도 하다. 그런데 읽다보면 저자가 정말 아는 게 많구나 감탄한다. 언제나 그렇듯 두껍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책은 아니다. 자기 얘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풀어 놓느냐가 우선인데 그런 점에서 저자는 탁월하다.

 

그래서 읽으면 갑수 씨는 아는 것이 많아 좋겠수.’ 하게 된다. 이름이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생각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난 (남자들도 여자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남자들 자기 아는 것 많다고 상대에게 말할 기회도 안 주고 딥다 떠들어 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대도 그는 그게 무슨 자신의 지성이라도 되는 양 착각한다. 그런데 명백히 말하지만 여자는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 더 정확히는 대화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는 게 많으니 들어주기도 바쁘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새 빠져든다. ‘갑수 씨는 아는 것 많아 좋겠수.’는 다시 말하면 일종의 각성 상태라는 말도 되는데 그 상태를 좀 더 오래 가지고 있어야 했다.

 

문득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독서를 해 오지 않았는가 반성도 하게 되는데, 사실은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도 밀당의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이 책에 보면 나쁜 년이 나온다. 줄 듯 줄 듯 안 주는 여자를 두고 남자들의 세계에서 은어처럼 그렇게 쓴단다. 우리 독자들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어떤 저자건 무조건 처음 읽은 책이 좋아 그날로 팬을 자처하지 말고 좋아하면 오히려 이런 나쁜 사람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스토커가 되라는 말은 아니고.

 

그런데 읽다보면 갑수 씨는 확실히 호사가란 생각이 든다. 하긴 문화평론가의 다른 이름이 호사가는 아니던가? 그런데 호사가도 알고 보면 굉장한 지식인은 아닌가 싶다. 과거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엔 공부도 참 고통스럽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의 공부의 목표는 오로지 입신양명이었다. 물론 요즘의 공부도 그렇긴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호사가의 공부라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즐겁게 공부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하는 공부는 무슨 학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생활이나 문화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 밖에 호사가의 특징은 뭐가 있을까?

 

요즘엔 대학에서도 별의별 것들을 다 가르치는 모양인가 본데 저자가 386세대이고 보면 그 시절 클래식은 그렇다 쳐도 팝이나 재즈, 커피 등을 대학에서 배웠을 것 같지가 않다. 다 독학으로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커피로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한 사람에 대해 꽂히면 그 사람에 관한 평전을 세 권은 독파한다. 그런 것을 보면 호사가의 공부는 학위를 위해 공부하는 것 못지않은 아니 때론 그 보다 더한 정력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나 싶다.

 

클래식 전문가야 요즘엔 너무 많아졌고, 그도 클래식에 대해선 누구 못지않은 일가견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 보다는 오히려 팝이나 재즈를 말할 때 좀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읽다보면 미국 민중사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내가 그 부분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도 나 역시 팝송만 줄곧 들었던 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뭘 알고들은 것은 아닌데 들은 가닥이 있으니 저자가 어떤 말을 해도 흡수가 빠르다. 저자와 내가 팝송을 들었던 때가 비슷하기도 하고. 요즘 팝의 경향은 어떤지 모르겠다.

 

삶의 질이 좋아지면 사람들은 뭔가 호사가의 특징을 띄고 싶어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어찌 클래식이나 커피, 팝송을 아는데 국한 되어 있겠는가. 의외로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클래식이나 커피, 재즈 등을 아는 것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단적으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호사가 자체가 되는 것이 연애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난 후자 쪽이라고 보는데 저자는 너무 자신을 일반화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난 앞에서 너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싫다고 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분명 뭔가 자기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난 왜 연애를 못하느냐고 머리털 뽑지 말고 어떤 분야든 자신의 내면을 빛나게 해 줄 지식으로 채워라. 자신감이 충전되고 그것으로 썰 풀 일은 많으며 반은 먹어주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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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1-31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김갑수씨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호사가.
커피 매니아, 클래식 매니아인 것은 많이 알려져있고요.
글도 재미있게 잘 쓰지요. 이 책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 나왔다는 소식 들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읽으셨네요 ^^

stella.K 2017-01-29 20:17   좋아요 1 | URL
진짜 이 사람 호사가예요.
정말 글 잘 쓰더군요.
새해 벽두에 이렇게 좋은 책 읽는 것도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요.
h님도 한 번 읽어 보세요.^^

북프리쿠키 2017-01-31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수씨가 종편방송에 많이 나오시는 분 맞죠? ㅎ
얼굴이 호감형은 아닌데 또 매력이 있는가봐요.

줄듯 줄듯 안주는 여자에 심히 공감하고 갑니다.ㅎㅎㅎㅎ

stella.K 2017-01-31 16:0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저런 사람이 젤 부럽더군요.
자기 좋아하는 공부하면서 여기 저기서 불러주고 알아 봐 주고.
누구는 힘들게 힘들게 사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 만나신 적 있으신가 봅니다.ㅎㅎㅎㅎ

북프리쿠키 2017-01-31 16:10   좋아요 1 | URL
문득 몇명의 여자분들이 스쳐지나갑니다.ㅋㅋㅋ

stella.K 2017-01-31 16:17   좋아요 1 | URL
그럴 땐 화악~ 잡아 끌어야 하는데 말입니다.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7-02-03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야든 자신의 내면을 빛나게 해 줄 지식으로 채워라.˝ ㅡ 님의 페이퍼에서.
이런 말이 생각나네요. 남이 나에게서 훔쳐 갈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지식이다, 라는 것.

지식뿐 아니라 지혜까지 포함해 내면을 꽉 채우기가 명성을 떨치는 일이나 돈이나 권력을 갖는 일보다 우선이라는 걸 알아야하겠습니다.

스텔라 님,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stella.K 2017-02-03 15:33   좋아요 0 | URL
오, 언니! 저 방금 언니네 있다 오는 건데...ㅎ
남이 나에게서 훔쳐 갈 수 없는 것!
과연 그러네요.^^

페크pek0501 2017-02-03 15:37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전쟁이 나서 집도 불에 타고 재산도 없어지고 그래도 내 머릿속의 지식은 그대로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워서 남 주냐, 하나 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