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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 마다 각성하게 되는 책이다. 건축뿐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짚고 있는 것처럼 핏줄이 스는 책이다. 21살 때 처음 접한 뒤로 다음 시리즈를 찾아보기로 해놓고 5년이 넘도록 찾지도 않았다. 나 자신은 자라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멈춰있는 기분도 든다. 다시 한번 선명하게 각성해야 할 때가 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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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희망적인 글보다 밥통같은 날 더 위로해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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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진저리가 나는 순간이 있다. 이것이 나의 뜻이라 여겼지만 그 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이러니와 돈이 없는 찌질함에서 나오는 이 고통스럽고 고역같은 순간들은 나에게 어서 이 곳을 탈출하라고 지금이 ‘이 때‘ 라고 말한다. 게다가 더욱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 노동과 학업이 존귀한 어떤 예술과 문학에 부딪히게 되면 정당성을 일부 가진다.

내가 한 것이 어느 면에선 학업 이지만, 어느 면에선 노동이었다. 그 가운데 얻는 것은 돈도아니요, 학업에 대한 보상도 아니었다. 지지리도 구질구질한 이곳을 탈출할 하나의 계기였다. 그 곳을 2년 뒤 다시 왔다. 드디어 졸업을 한다. 여기서 이 구질구질한것을 해봐야 하는것인지, 하지말아야 하는것인지, 고민을 하는 내가 참 구질구질하다.

하지말아야 할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다. 오로지 다시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오기위함이다.
가난이 예술을 더 증폭시키는 것은 내 사전엔 없다. 예술은 예술을 만나고, 가난은 가난을 만나는것 뿐, 긴사람은 긴 사람을 만나야 할 뿐이다.

언젠가 이 모든 고민의 언저리에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 선택을 할 순간이 올 때 뒤돌아보지 않는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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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을 뒤집고 늙을때는 무엇이든 다 못 할 것같은 걱정을 뒤집어야 인생이 제대로 굴러갈 듯 보인다.

제아무리 이미 정해져 있는 절대 수명과 시간에 무엇을해야할지 지독히 고민해도 답은정해져있지않을까,

시답잖은 호기심으로 몇가지의 취미생활을 하며 각가지 관심을 여러분야에 주던가 자기자리에서 진득하게 꾸준히 연마하여 어느 목표를 달성하며 인생을 보내는 단편적이고 이분법적인 시선으로보고있다.

어찌보면 이렇게 시새운 것인데 뭘 그렇게 안달복달하는지도모르겠다. 아, 참 나는 고달픈 삶을 벗어나고싶어서 이리저리 구경하는참이었다. 근대 스치듯 생각해보니 어딜가도 자본주의가 가지고있는 물량산출공식의 노동자로 있는 이상 직업을 바꾼들 변함은 없을 것이라는 거다. 답이 스물스물 풀리고있다! 직업이아니라 제도를 포기해야하는 것이었다.

나의 공허를 메우는 방법으로 사회적시스템을 거부하는방법, 내 스스로 나만의 사회를만드는법, 지금의사회안에서 타협하며 살아가는 법 등 아직은 많아보인다. 어떻게 살아갈 지는 조금만 더 살아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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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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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읽는 책인지 심장이 두근대고 머리가 어질하다.
직격탄을 한방에 맞은 것 같아 아찔대고 있다.

사회인과 학생의 중간기로에 서있는 나에겐 회사에선 노동의 '당위성'을 가진 인재를 구하며, 학생은 '열심히' '당연히' 해야할 몇가지에 대해 원칙을 내세운다. 열심히 해야하는 사회, 열심히 배워라, 열심히 해라,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이다지도 열심히 사는 것이 끝나는 것일까?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디까지 포기해야하는 것일까?
이십대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이유가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반려동물의 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누구나에게 보상이 주어지진 않는다.
언젠가 오겠지, 하고 살아가긴에 세상은 나보다 똑똑하다.
미치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여길쯤 '게으름'에 대한 챕터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 사람들 모두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인데 부지런함을 강요받고, 노동을 강요하고, 야근을 당연시 여기는 것일까?
우리 사람들이 더 게을러 져야지만 우리는 더 잘 살아 갈수 있지 않을까?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행복해지려면 결국은 일을 줄이는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_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름은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이 공리주의적 가치관을 가진사람들이 퍼트린 게으름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라고 여긴다. ~ 게으름을 경멸하는 공리주의자들은 우리 삶이 일과 쉼터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근대사회 이후 노동의 강도는 더 세지고 성과에 대한 요구는 절대화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심심함과 사색적 휴식은 과잉 활동성으로 대체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린 채 우리의 개성과 자아는 균질화된다. 이 매끈해진 균질화속에서 우리는 정체성을 잃고 다만 노동-기계로 전락하는데 게으름이란 이 전락에 대한 항의의자 몸의 성과주의적 부림에 대한 태업이고 성과사회가 부추기는 노동과 생산의 히스테리에 대한 저항이다."

"게으름은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될것이다"_피에르 쌍소

"즐거움을 위해, 여유를 위해 여러 관습과 책임과 의무들의 속박에 옥죄여 있던 마음이 평화로워 진다. 삶은 훨씬 더 여유로워 지고 풍요로워 질 것이다.
열심히 일하라! 그러나 게으름을 두려워 마라! 게으름의 자유로움은 제 행복을 스스로 빚어낼 수 있는 자의 권리이자 능력이다"_ 장석주[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렇게 우리사회는 좀 더 여유롭고 자유로움 속에서 일과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성과주의제는 정말이지, 대책이 없다.
성과주의를 통해서 경제가 더 발전을 한다고 생각한 다는 것조차 미개하다.
이번 정책의 양적완화를 통해 한국 경제가 다시 살아날 지도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일하라! 라고 하는 나라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정부세금으로 각종 정책을 만드는 것들도 시행되지 않는 것이 다수, 백명이 각자 만원씩 갖는 것과 한명이 백만원을 가진 것 둘 중에 어느 나라가 잘 살 것인지 누구나 다 아는 것 아닐까? 성과주의에 폐단에 나라가 거꾸로 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바르게 인도할 재목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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