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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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4인의 독서강호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194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냉혹한 도끼파에 들어가고 싶었던 동네 양아치 싱(주성치)은  빈민가 돼치촌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려 행패를 부려보지만 되려 호되게 당하고 보니 무림 강호들이 숨어 살고 있었다는 영화 쿵푸허슬(2005). 변태성향의 세탁소 아저씨, 도넛가게 아저씨, 여자의 뒷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집주인 아저씨등 일상의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 어느날 그들에게 닥친 위협으로 부터 숨겨왔던 무술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통해 통쾌함과 희열, 해소감을 느끼며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었던 그 영화가 윤성근저자의 책 『책이 좀 많습니다』를 읽으며 떠올랐다.

 

 

서울 은평구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 윤성근씨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잘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헌책방을 차리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상한 나라'라는 건 아마도 저자가 좋아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서 따온 제목인거 같은데 세계 여러나라의 앨리스 책을 수집 중 인 저자는 조만간 수집한 책을 가지고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헌책방은 책을 '만나러'오는 공간을 넘어 여러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과 친분이 있어 그분의 서가를 윤성근씨가 운영하는 헌책방의 모습과 비슷하게 인테리어 했다는 글도 본적이 있다. 그런 저자가, 자신의 헌책방 손님이였던 23인의 애서가들과 나눈 이야기를 글로 묶어 놓은 책이 『책이 좀 많습니다』 인데 윤성근씨 역시 독서내공이 상당한 애서가이기에 '24인의 독서강호'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다.

 

 

 

 

 

 

 

 

 

 

 

 

 

 

 

길을 가다 만날것만 같은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집과 30분 거리에 떨어진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서가를 만들고, 건물을 빌려 '학사재'라는 서가를 만드는가 하면, 여기저기 책탑을 쌓아올려 자칫 위태로움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 자신보다 더 '가치'를 알아 줄 수 있는 이에게 책을 나눠주는 사람, 좋아하는 주제로 책을 모으고, 개인 도서관을 만든 각양 각색의 사람들의 집념과 결단 그리고 용기로 부러움을 사는가 하면 그들만의 독서편력으로 형성된 가치관에서 생기는 울림이 좋아 책을 읽으며 자주 웃음이 났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도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 또한 즐길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책을 사랑하면 된다. 책을 정말 사랑하니까 한 시라도 책하고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것이, 책이란 곧 평생을 함께하는 사랑하는 연인 같다고 그이는 말한다p17

책을 읽기에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까? 커다란 파도 만큼? 모든걸 날려버릴 정도로 강한 허리케인? 그 용기는 우리가 용기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싶을 만큼 아주 작은 것이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믿었다. 봄을 알리는 첫 산들바람 같은 용기가 꽃에 전해 지듯이 그런 작은 것들이 때로는 가슴을 흔들고 세상을 움직이게 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시가 지닌 힘이 그렇다고 믿는다.p220

 

삶의 기준이 돈이 될 수 없는 것같이, 사랑의 기준도 양이 될수 없다. 책을 많이 읽었다거나, 책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애서가'라고 부르진 않는다. '책'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고 쌓아올린 내공으로 삶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표현하는 당당함과, 책을 발견하고 만나는 기쁨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진정한 '고수'라는 점에서 절로 겸손해짐을 느낀다. 누구하나 부유한 환경에서 살진 않았지만 녹록치 못한 삶 속에서도 책과 함께 할 수 있던 어린시절에 감사하고,  그 경험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직장이되고, 재능이 되고, 기회가 되고, 꿈이 되었으며 여전히 꿈을 꾸는 사춘기 아이들과 같았다.

 

 

 

2. 진정한 독서의 내공은 책의 '가치'를 아는 것.

 

요즘부쩍 늘어난 호기심에 내 책장의 책들은 순환 운동 중이다. 다시 말해 읽어보고 두번 펼치지 않을 책들은 정리하며 책과 책이 겹쳐 가려지는 현상 만큼은 막아보고자 무던히 노력중이다.( 우리집 책은  대략 500~600권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안방에 들어차 있기엔 좀 버거운 양이다) 책에 관련된 에세이를 읽다보면 늘어나는 장서로 인해 고충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인거 같다. 집, 컨테이너 박스, 건물을 빌려 서재를 만들거나 방 전체를 책장으로 꾸민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엔 늘 고민스럽게 만드는 것이 책을 보관할 것인가, 나눠 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살다보면 필요한 순간이 생길것 같고, 지금은 읽히지 않지만 세월이 흐른뒤에 읽을 수 있을것 같은 온갖 욕망들이 뒤섞여 한참을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책의 '가치'에 대해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나보다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져 죽은듯 책장 한켠에 차지하고 있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로 표현하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애서가 이자 책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책을 사면 한 두 번 읽고 나름 판단을 합니다. 이걸 내가 계속 갖고 있으면서 써먹을 책인지, 아니면 몇년이 지나도 그냥 꽂아 두기만 할 책인지를 고민을 해본 다음 오랫동안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은 과감하게 다른 사람에게 줘요, 내가 갖고 있으면 몇 년 동안 책장 안에서 빛을 못 볼 운명인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장 필요한 책일 수도 있거든요p148

 

더불어 빌려 읽을 수 있는 책들은 빌려 읽으며 나름의 가치로 판단하는 그들만의 내공이 빛이나 보였다. 내게도 책을 구입할 적에 나름의 기준이 있다. 세계문학은 함께 세월을 느끼며 읽어야 제 맛을 톡톡히 낼 수 있기 때문에 구입해서 보는 편인데, 윤성근 저자의 표현을 빌려 여러번 곱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거친 곡식과도 같아서 꼭 구입해서 읽는다. 두번째론 기초체력을 키워줄 역사서 역시 꼭 구입하고, 삶의 울림을 주고 행동으로 이끌어주는 인문서 역시 구입하는 편이다. 그리고 관심분야인 독서에세이다. 그외에는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서점에서 확인해보고 마음에 이끌리면 사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은 마음을 이끄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자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독서 고수들의 내공을 익히며 자제의 미덕, 비움의 미덕을 실천해봐야 할 시점인거 같다.

 

 

인터뷰 중간마다 읽을만한 책에 관한 정보가 책을 더 값지게 한다. 평소에 자주 듣지 못했던 책들이 더 많고, 다양한 분야들의 이야기에 이끌려 나도 두 권 구입해 보기도 했는데 이번에 구입한 책은 문학과 사상사의 『기형도 전집』 과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세종서적  이다. 기형도 시인의 풍문은 익히 들었고, 시도 만나본 적이 있어 무척 기대가 되며, 책과 영혼이 만난다는 부제가 너무 흥미로워 빨리 읽어보고 싶은 책 '밤의 도서관' 역시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또한 고서 수집가 릭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르네상스 역시 조만간 만나 볼 예정이며 상당히 기대가 되는 책이다.

 

 

3. 필사하며 책을 읽다보니...

 

예전에는 좋아하는 구절에 밑줄도 긋고 포스트 잇으로 표시하며 읽었는데, 두 번째로 펼쳤을때 그어진 밑줄에 신경이 쓰이고, 새로운 구절을 발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따로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유독 오타를 발견하게 되는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 책에서는 조금 많은 오타를 발견하여 몇자 적어본다.

 

72페이지 밑에서 7번째줄 ' 일기를 쓰고 있고 있다고 생각했다.'에서 있고 를 빼야하며

95페이지 두번째줄 ' 무카미 하루키'를 무라카미로,

101 페이지 첫째줄 ' 자기 것이 됐기 때문에 지닐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에서 가질은 빼줘야 겠고,

136페이지 아래서 다섯째줄 <서부전 이상없다> 에서 서부전선으로.

147페이지 위에서 9째줄 ' 책을 많 사기 때문에' 에서 많이로 바꿔야하며

261페이지 밑에서 4째줄 '그런 쪽으로 많은 사랑을 은 책이다'에서 받은으로 고치고

269페이지 위에서 11째줄 '메모 양이 엄청나서 이 휘둥그레졌다' 은 설마 등은 아니겠죠? 눈으로 고치면 좋겠고,

277페이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 밑에서 3째줄 ' 남긴 기한 인간' 은 기이한 으로 고치면 좋겠다.

 

나도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다보면 웃지도 못할 오타들이 눈에 띈다. 동생이 자주 발견하여 신고해준 덕분에 고치기도 하지만, 고치지 못한 글들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책이라는건 언제나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2판 인쇄시에는 오타가 교정된 멋진 책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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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2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면 사랑한다’라는 최재천 교수의 말이 생각나요. 살아가면서 책 한 권씩 읽으면서 그 재미를 알게 되면 저절로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상한나라의헌책방’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도 있을 겁니다. 윤성근씨가 페이스북에 책 사진과 글을 업로드해요. 해피북님이 발견한 오타를 ‘이상북’ 페이스북 페이지에 알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해피북 2015-02-12 19:48   좋아요 0 | URL
이상북 페이스북 친구 맺었어요 ^~^ 책 소식과 다양한 소식들을수 있어 좋더라구요ㅋ

라로 2015-02-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큼 오타가 있을라구요!! ㅋㅎㅎ 그런데 동생분도 알라디너에요???? 와아~~~
암튼 이 책 알라딘에서 몇 번 봐도 관심 없었는데 해피북님 때문에 담아욧!!ㅋㅎㅎ

해피북 2015-02-12 19:44   좋아요 0 | URL
동생도 알라디너는 맞는데 활동을 잘하는편은 아니구 네이버 블러그에 올려놓은 글 보구 알려주더라구요

저는 독서 에세이를 무지 좋아해서 재밌게 읽었어요 ㅋㅡㅋ

수이 2015-02-1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러려니 했는데 ㅋㅋ 해피북님 글 읽고 장바구니에 퐁당!!

해피북 2015-02-12 19:46   좋아요 0 | URL
^~^ 저는 독서에세이 무지 좋아해서 재밌게 읽었는데 야나님께도 즐거움이 가득하면 좋겠어요 ㅎ

책방꽃방 2015-02-13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지기님의 책이군요. 예전에 이분이쓰신 [침대밑의 책] 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일어보고 싶은걸욤!^^

해피북 2015-02-13 16:17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이분의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심야책방`까진 구입 했는데 `침대 밑의 책`도 있었군요! 재밌게 읽으셨다니 말씀해주신 책두 구입해놔야 겠어요^~^ 요즘 헌책방에 관심도 생기구 저두 작은 책방이나 도서관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기네요ㅎ 영영 꿈으로만 남겠죠?ㅠㅜ

책방꽃방 2015-02-1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대밑의 책은 작가가 자신이 읽은책을 추천하는건데 독서리스트만들기에 도움이 되는거 깉아여. 그리고 책 끄트머리에 그려진 작은 그림이 있는데 책을 스르륵 남기는 움직이는 그림이 되는 재미난 구성도 했더라구요. 암튼 이분 글은 참 재미난거 같아요!^^
 

아담한 사이즈라 오늘 가지고 다니며 읽고 있는 책. 손은 시려웠지만 자꾸 웃음이 난다 ^~^ 곳곳에 사진과 그림이 이뻐 자꾸 들여다 보고 싶은 책!

오늘 찾은 명문장!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도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
또한 즐길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책을 사랑하면
된다. 책을 사랑하니까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p16


요즘 부쩍 책 구입이 늘어난 이유가 바로 이것!
사랑하기 때문이였다! 사랑 ㅋ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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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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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필사하고 필사해도 멈출수가 없어라.

 

 

 

 

 

독서를 하다보면 항상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했다. 가끔 집에가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표지를 힐끔거리며 남몰래 훔쳐보는 스토커가 되는가 하면 서점가 한쪽으로 모여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어떤 책에 그토록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힌트를 찾아볼 요량으로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한다. 이렇듯 나는 늘 다른 사람이 읽는 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집엔 '독서 에세이'집이 참 많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이점에 대한 통찰력은 뒷전이고, 책을 '읽고' 정리된 '생각'이 주요 관심사였고, 지금도 그런 부분들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는데,  가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책을 만나 필사하고 필사해도 멈출 수 없는 희열을 느낄때면 아! 이 책 정말 사랑스럽다! 라고 외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책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한 달에 읽게되는 10권의 책중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이 책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문장속에서 느껴지는 감탄과 울림의 변주를 느끼며 필사하고 필사해도 멈출 수 없는 희열과 말 못할 감동이 밀려듬을 느끼며 결국 이 책에 붙여진  '헤세의 서평집'은 잘못된 표현임을 느꼈다. 이 책은 인생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대한 통찰이며, 독서에 대한 기쁨의 변주곡이다. 

 

 

그토록 언뜻 보기에만 우연일뿐, 실은 고도로 계산되고 상세히 연주된 조명이다. 램프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그 유령 같은 모습에서 우리는 친구를, 형제를, 사촌들, 이웃들을 알아볼 수 있으며, 이따금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게 된다.p40

 

하지만 아메리카 에서 홀로 삶을 개척해야 할 소년이 이토록 위험에 빠져서도 보여주는 그 젊음과 무죄함, 선량함과  사랑스러움은 카프카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모든것을 더 밝고도 즐겁고 명랑하게 만들어 준다 p34

 

냉철한 비판과 고백하지 못한 동경이 뒤섞인 채로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사람들과 온 세상 물건들이 모조리 토마스 만이 그려낸 것 같은 얼굴을 한다. 웃음이 터지도록 진지하고 눈물이 쏟아지게 웃기는 모습 말이다.p41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자. 모로씨가 늙어간다는 것,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또 해가 간다는 것이 사건이라고 말이다. 이 책의 헤아리기 어렵고 감동적이고 압도적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이 천천히, 알아채지 못하는 가운데 하지만 끊임없이, 돌이킬 길 없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 사람이 불확실한 충동에 이끌려 어떤 운명을 기다리는 것을, 수수께끼가 풀리기를, 진짜 마음을 사로잡는 뜨거운 사랑을, 구원을 만족을, 자기존재의 정당화를, 운명을 기다리는 것을 바라본다. 그는 절반만 의식한 채 막 우연히 찾아 헤매면서도 자기 운명이 바로 자기 위에 있음을, 이미 자기를 둘러싸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 이렇게 기다리고 예감하고 찾아 헤매면서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p49

 

모든 진짜 시인의 작품은 이와 같다. 마치 폭풍위에 휩쓸린 듯 거기 귀를 기울이고, 바닷가에서 처럼 거기 눈길을 빼앗기고, 자연의 힘에 홀린 듯 작품에 빠져들어 자신을 잊는다. 훨씬 나중에 두 번째 세 번째 다시 읽을 때에야 비로소 고요해진 감각으로 전체 구조와 각각의 부분에서 예술성을 찾아내고 즐거워하며, 점점 새로운 기쁨으로  수많은 크고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낸다.p132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책. 들

 

2008년 부터 시작된 나에 독서기록을 살펴보면  현재에 이르기 까지 143편. 물론 흩어진 기록들을 전부 찾아보진 않았지만, 7년 동안의 기록이라고 하기엔 좀 미비한 숫자긴 하다. 거기에 반해 63년 동안을 읽고 쓰는데 무려 3000편의 서평을 기록했고 거기에 더해 그가 쓴 여러 소설, 에세이 들을 떠올려 본다면 헤르만 헤세는 정말 대단한 애독가임은 분명하다. 그가 책을 사랑하게된 계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그의 삶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게된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를 다녀야 했던 헤세는 시인이 되고 싶어 집을 나와 서점 견습공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살을 경험할 만큼 거칠고 황폐한 사춘기를 보낸 그는 틈틈히 작성한 글을 기고하며 이십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해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여러 출판사에서 헤세의 서평을 얻기 위해 많은 책을 보낸 덕분에 헤세는 읽지 않은 책들 더미에 쌓여 살았다는 이야기는 그가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그의 도전과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 수록된 73편의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 그의 책 『데미안』까지도 읽지 않았음에도 이 책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이 책 읽어봐라' 식의 명령조나, 자신의 생각만을 뭉쳐놓고 책 이야기는 뒷전인 이야기도 아닌 순수한 목적의 '독서'로 읽는 독자를 즐겁게 한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된 감정에서 생겨난 믿음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출판사에 대한 믿음, 번역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흘러 넘쳐 그가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가 읽은 책들을 살펴보면 유럽권의 책 뿐만 아니라 동양의 책들도 다수 있음을 알게된다. 헤세가 인도여행한 후  동양에 관심을 보이며 적은 책  『인도기행』범우문고221. 이나 『싯다르타』 민음사. 2002 를 봐도 동양에 대한 사상이 남달랐음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 미친 사람을 향한 아시아 사람의 감정'p69이라는 표현이나 문장에 종종 등장하는 아시아 라는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동양의 종교에 대한 사상이 남달랐음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세가지.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읽으며 나는 세가지를 얻을 수 있었는데 하나는 헤르만 헤세라는 인물에 대해. 둘째는 헤세가 사랑한 책에 대해. 셋째는 번역가 안인희님 이다.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중에  꼭 좋은 번역가의 책을 선택하라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저자의 정서, 감정, 생각들을 문장으로 이끌어내는 번역가와, 감성으로 이끌어내는 번역가가 있다면 안인희님의 번역은 감성이 풍부한, 그래서 헤세와 너무나 잘 어울어졌던 글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유려한 문장, 풍부한 표현력,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저자와 책에 대한 이야기는 글의 흐름을 망치지 않게 적재적소에 개입하여 안내해주는 글들이 어울어져 이 책을 빠르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한 장 한 장 손떼를 묻혀가며 두고두고 펼쳐들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며 안인희 번역가님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 좋은 번역가의 책을 선택하라'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헤세가 사랑한 책들 중엔 ' 작가들에 대한 기억' 이라는 파트(1.5)가 있는데 헤세가 기억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짧막하게 옮겨놓았다. 그중 도스토엡스키에 대한 헤세의 기억이 가장 인상적이라 적어 놓는다. 헤세가 생각하는 도스토엡스키를 읽는 방법에 관한 글이다.

 

안락의자에 누워 『죄와벌』을 읽으며 이 유령의 세계에서 편안한 두려움을 구하는 사람은 이 작가의 진짜 독자가 아니다..... 우리는 비참할 때, 우리의 고통 감내 능력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고통받고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느낄 때  도스토엡스키를 읽는다.

 

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망연히 삶을 건너다 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인함을 더해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그럴때 우리는 구경 꾼이 아니요, 즐기면서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작품속 온갖 가련한 존재들의 가련한 형제가 된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며, 그들과 함께 경직되어 숨도 못 쉬면서 삶의 소용돌이 속을, 죽음의 영원한 물레방아를 멍하니 들여다본다. 그럴때 우리는 도스토엡스키의 음악, 그의 위안, 그의 사랑에 귀를 기울이고 그럴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경악 스러운 지옥과도 같은 그의 세계의 경이로운 의미를 체험한다..

 

 

이렇듯 책을 망연히 손에 잡히는데로 읽기보단, 그 작가를 열렬히 느낄 수 있을때 내 삶을 관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때 읽게된다면 완전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담으로 78페이지에 아래서 7째줄에 '모두'에 씌여진 한자어는  그 아래 '만유'자리로 옮겨야 하며, 26페이지에 아래서 5째줄 ' 이 소설을 절반 성숙한 힘든 소년의'라는 문맥이 조금 이상스럽다 '절반 성숙한'이라는 단어를 몇번씩 되뇌이며 생각해보았다. 차라리 '미숙한 소년'이나 '성숙하지 못한 소년'등의 문장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278페이지 도스토엡스키에 대한 생각중에  다섯번째줄 '희망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는 뭔가 이상스럽다. '죽음으로 죽을때' 혹은 '죽음을 느낄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죽음을 느낄때'를 선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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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7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글은 읽을 게 너무 많아요. 고전 추천도서로 알려진 작품만 읽어도 헤세 문학 절반도 못 미치는 정도에 불과할 겁니다. 저도 헤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해피북 2015-02-08 14: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번에 헤세 책을 거의 구입해봤는데 제법 많더라구요ㅋ 그리구 여전히 새로운 책들이 나오기도해서 읽어야 할 책은 많지만 넘 좋아요^~^ ㅋ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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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이후 두 번째 만남만에 헤르만 헤세에게 빠져버렸다.

모든 진짜 시인의 작품은 이와 같다. 마치 폭풍위에 휩쓸린듯 거기 귀를 기울이고, 바닷가에서 처럼 거기 눈길을 빼앗기고 자연의 힘이 홀린 듯 작품에 빠져들어 자신을 잊는다. 훨씬 나중에 두 번째 세 번째 다시 읽을 때에야 비로소 고요해진 감각으로 전체 구조와 각각의 부분에서 예술성을 찾아내고 즐거워하며, 점점 새로운 기쁨으로 수 많은 크고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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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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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 중에 가장 먼저 구입한 책이 요 3권이였다. 내가 살아가는 지역권에 관한 답사 여행기라 관심도 많았고, 특히나 경주와 안동에 관한 이야기엔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즐겁게 구입했던 기억이난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은 잠시뿐 읽고 싶던 그 순간에 읽어내지 못한 책은 다른 호기심에 밀리고 밀려 책장 안쪽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버렸고, 내 기억 속에서 잠시 잊혀지게 되었다.

 

 

올 해 연초 계획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읽기로한 답사기는 3권에 접어들었고, 그렇게 책을 덮었을때쯤엔 허탈함과 아쉬움, 후회와 미련들이 떠돌아 깊은 한숨만 내쉬게 되었다. 지난번 다녀왔던 경주와 안동, 공주 여행은 내 미처 보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해 다시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크게 일었는데 함께 다녀왔던 일행들을 꼬시고 또 꼬셔봐도 '볼것없음'으로 일축하는 콧방귀에 깨달은바 있으니 '선 독서, 후 답사'라. 역시 유물의 내력을 알고 모름에 있어 유물을 제대로 느끼는데 큰 차이가 난다던 말씀이 이번처럼 절절히 느껴진적 없었던거 같다.

 

 

특히나 아쉬운 부분은 경주 여행인지라, 불국사의 내력을 읽고 또 읽으며 마음 속으로 새겨 보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문화유산을 볼라치면 눈 앞에 보이는 사물을 두고 평가하기에 이르는데, 여기를 봐도, 저기를봐도 똑같은 사찰과 탑으로만 보며 더 이상 '볼것없음'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경주에 당도했을때 일행들과 둘러보며 조금이라도 뭔가 더 보려고 눈을 부리며 살폈지만, 일행들의 등살에 못이겨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 이 책을 읽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더라면.

 

 

' 왕즉불 사상이 강했던 시대야. 왕이 곧 부처다 이말이지. 그러니 요 불국사가 웅장할 수 밖에. 천상의 세계로 오르는 길을 표현 한건데, 정상이 수미산으로 범영루를 의미하고 거기엔 108명이 앉을 수 있대.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 알지? 그걸 상징한다나봐. 천상으로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는 33계단으로 33天의 세계를 의미하고, 33天을 올라 자하문에 들어가면 석가모니와 부처를 모신 대웅전을 마주하고, 그 좌우로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날 수 있어요. 옛날에 다보불이란 사람이 <법화경>에 대해 진리를 깨우친자있으면 그 자리에서 우뚝 솟아나리라 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석가여래가 법화경에 대해 진리를 깨친것을 말하자 그 자리에서 솟아오른게 다보탑 이라고해 그래서 두 탑이 마주 보고 있다고도 하지. 아니아니 질문은 받지 않아. 가서 봐야할 것들이 정말 많아. 계단에 새겨진 연화꽃연 꽃무늬, 대웅전 돌계단의 소맷돌, 그랭이기법으로 만든 석축들, 다보탑의 돌사자 까지 모두 봐야한다고, 이래도 볼 것없다고 할꺼야?' 라고.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한 번 다녀온곳을 다시 찾아가기란 쉽지 않은 법. 내 다시 이와같은 후회하지 않기위해서라도 열심히 읽고 또 읽어야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아쉬운 부분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갔을적에 안동댐 근처의 까치구멍집에서 헛제사 밥을 먹으며 식당에서 처음 경험하던 찬 음식들을 두고 훗날 다녀온분과 이야기 나눈적 있었다. 그때 그분과 나의 합의점은 '그 음식들을 사 먹느니, 차라리 자기가 한 음식을 먹으러 와라'는 다분히 낯 뜨거운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뿌리깊은 유교사상을 가지고 있는 안동 사람들에겐 제사는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제사를 지내고 밤참으로 먹었다는 제사밥을 향토음식이 되면서 '헛'으로 먹는다고 하여 헛제사밥이 되어 나왔을적에 우리와 제사음식이 어떻게 다른지 살폈더라면, 고등어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내륙지방인 안동에서는 고등어를 먹기위해선 소금에 푹 절인 생선이 운반 되었던 것이 유래가 되어 '안동 고등어' 가 유명세를 타게되었는데 그 고등어를 제사상에 올리는 사연을 살폈더라면 그들의 문화를 조금 더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하회마을에 도착해 '여기 사람이 살까 안살까?'와 같은 영양가 없는 내기를 하는대신 팔작, 우진각, 맞배 지붕중 어느 모양을 띄고 있는지, 마당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물동이동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싶은 아쉬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말씀처럼  안동 하회마을에도 변화가 일어 21세기 놀이기구들이 어울리지 않는 그림으로 다가온다. 하회마을의 전통을 생각한다면 그런 놀이기구는 좀 멀리 설치하는게 좋지 않을까.

 

 

무튼 곧 다가올 봄철을 맞아 아직 아쉬워만 하기엔 이르다. 가보지 못한 구례의 연곡사 사리탑과 꼭 닮은 현각선사탑이나, 모방이 아니라 변주로 계승했다는 소요대사탑도 봐야한다. 해의 각도에 따라 얼굴이 달리 보인다는 서산 마애불은 어떠하며, 한낮과 저녁의 물결이 달리 보인다는 섬진강의 모습은 어떠한가. 익산의 미륵사터 석탑과 복원된 미륵사탑의 허망함도 느껴보고, 공주와 부여의 고분과 박물관을 다녀와야 한다. 그때는 꼭 '볼것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살뜰히 아주 감질 맛나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우리 문화 유산은 ' 검이불루, 화이불치. 소중현대 (儉而不陋 華而不侈, 小中現大)속에 있다는 것을.(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으며 작은것 속에 큰 것이 다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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