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필사하고 필사해도 멈출수가 없어라.

 

 

 

 

 

독서를 하다보면 항상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했다. 가끔 집에가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표지를 힐끔거리며 남몰래 훔쳐보는 스토커가 되는가 하면 서점가 한쪽으로 모여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어떤 책에 그토록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힌트를 찾아볼 요량으로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한다. 이렇듯 나는 늘 다른 사람이 읽는 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집엔 '독서 에세이'집이 참 많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이점에 대한 통찰력은 뒷전이고, 책을 '읽고' 정리된 '생각'이 주요 관심사였고, 지금도 그런 부분들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는데,  가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책을 만나 필사하고 필사해도 멈출 수 없는 희열을 느낄때면 아! 이 책 정말 사랑스럽다! 라고 외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책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한 달에 읽게되는 10권의 책중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이 책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문장속에서 느껴지는 감탄과 울림의 변주를 느끼며 필사하고 필사해도 멈출 수 없는 희열과 말 못할 감동이 밀려듬을 느끼며 결국 이 책에 붙여진  '헤세의 서평집'은 잘못된 표현임을 느꼈다. 이 책은 인생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대한 통찰이며, 독서에 대한 기쁨의 변주곡이다. 

 

 

그토록 언뜻 보기에만 우연일뿐, 실은 고도로 계산되고 상세히 연주된 조명이다. 램프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그 유령 같은 모습에서 우리는 친구를, 형제를, 사촌들, 이웃들을 알아볼 수 있으며, 이따금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게 된다.p40

 

하지만 아메리카 에서 홀로 삶을 개척해야 할 소년이 이토록 위험에 빠져서도 보여주는 그 젊음과 무죄함, 선량함과  사랑스러움은 카프카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모든것을 더 밝고도 즐겁고 명랑하게 만들어 준다 p34

 

냉철한 비판과 고백하지 못한 동경이 뒤섞인 채로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사람들과 온 세상 물건들이 모조리 토마스 만이 그려낸 것 같은 얼굴을 한다. 웃음이 터지도록 진지하고 눈물이 쏟아지게 웃기는 모습 말이다.p41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자. 모로씨가 늙어간다는 것,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또 해가 간다는 것이 사건이라고 말이다. 이 책의 헤아리기 어렵고 감동적이고 압도적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이 천천히, 알아채지 못하는 가운데 하지만 끊임없이, 돌이킬 길 없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 사람이 불확실한 충동에 이끌려 어떤 운명을 기다리는 것을, 수수께끼가 풀리기를, 진짜 마음을 사로잡는 뜨거운 사랑을, 구원을 만족을, 자기존재의 정당화를, 운명을 기다리는 것을 바라본다. 그는 절반만 의식한 채 막 우연히 찾아 헤매면서도 자기 운명이 바로 자기 위에 있음을, 이미 자기를 둘러싸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 이렇게 기다리고 예감하고 찾아 헤매면서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p49

 

모든 진짜 시인의 작품은 이와 같다. 마치 폭풍위에 휩쓸린 듯 거기 귀를 기울이고, 바닷가에서 처럼 거기 눈길을 빼앗기고, 자연의 힘에 홀린 듯 작품에 빠져들어 자신을 잊는다. 훨씬 나중에 두 번째 세 번째 다시 읽을 때에야 비로소 고요해진 감각으로 전체 구조와 각각의 부분에서 예술성을 찾아내고 즐거워하며, 점점 새로운 기쁨으로  수많은 크고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낸다.p132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책. 들

 

2008년 부터 시작된 나에 독서기록을 살펴보면  현재에 이르기 까지 143편. 물론 흩어진 기록들을 전부 찾아보진 않았지만, 7년 동안의 기록이라고 하기엔 좀 미비한 숫자긴 하다. 거기에 반해 63년 동안을 읽고 쓰는데 무려 3000편의 서평을 기록했고 거기에 더해 그가 쓴 여러 소설, 에세이 들을 떠올려 본다면 헤르만 헤세는 정말 대단한 애독가임은 분명하다. 그가 책을 사랑하게된 계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그의 삶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게된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를 다녀야 했던 헤세는 시인이 되고 싶어 집을 나와 서점 견습공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살을 경험할 만큼 거칠고 황폐한 사춘기를 보낸 그는 틈틈히 작성한 글을 기고하며 이십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해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여러 출판사에서 헤세의 서평을 얻기 위해 많은 책을 보낸 덕분에 헤세는 읽지 않은 책들 더미에 쌓여 살았다는 이야기는 그가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그의 도전과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 수록된 73편의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 그의 책 『데미안』까지도 읽지 않았음에도 이 책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이 책 읽어봐라' 식의 명령조나, 자신의 생각만을 뭉쳐놓고 책 이야기는 뒷전인 이야기도 아닌 순수한 목적의 '독서'로 읽는 독자를 즐겁게 한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된 감정에서 생겨난 믿음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출판사에 대한 믿음, 번역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흘러 넘쳐 그가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가 읽은 책들을 살펴보면 유럽권의 책 뿐만 아니라 동양의 책들도 다수 있음을 알게된다. 헤세가 인도여행한 후  동양에 관심을 보이며 적은 책  『인도기행』범우문고221. 이나 『싯다르타』 민음사. 2002 를 봐도 동양에 대한 사상이 남달랐음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 미친 사람을 향한 아시아 사람의 감정'p69이라는 표현이나 문장에 종종 등장하는 아시아 라는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동양의 종교에 대한 사상이 남달랐음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세가지.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읽으며 나는 세가지를 얻을 수 있었는데 하나는 헤르만 헤세라는 인물에 대해. 둘째는 헤세가 사랑한 책에 대해. 셋째는 번역가 안인희님 이다.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중에  꼭 좋은 번역가의 책을 선택하라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저자의 정서, 감정, 생각들을 문장으로 이끌어내는 번역가와, 감성으로 이끌어내는 번역가가 있다면 안인희님의 번역은 감성이 풍부한, 그래서 헤세와 너무나 잘 어울어졌던 글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유려한 문장, 풍부한 표현력,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저자와 책에 대한 이야기는 글의 흐름을 망치지 않게 적재적소에 개입하여 안내해주는 글들이 어울어져 이 책을 빠르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한 장 한 장 손떼를 묻혀가며 두고두고 펼쳐들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며 안인희 번역가님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 좋은 번역가의 책을 선택하라'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헤세가 사랑한 책들 중엔 ' 작가들에 대한 기억' 이라는 파트(1.5)가 있는데 헤세가 기억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짧막하게 옮겨놓았다. 그중 도스토엡스키에 대한 헤세의 기억이 가장 인상적이라 적어 놓는다. 헤세가 생각하는 도스토엡스키를 읽는 방법에 관한 글이다.

 

안락의자에 누워 『죄와벌』을 읽으며 이 유령의 세계에서 편안한 두려움을 구하는 사람은 이 작가의 진짜 독자가 아니다..... 우리는 비참할 때, 우리의 고통 감내 능력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고통받고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느낄 때  도스토엡스키를 읽는다.

 

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망연히 삶을 건너다 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인함을 더해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그럴때 우리는 구경 꾼이 아니요, 즐기면서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작품속 온갖 가련한 존재들의 가련한 형제가 된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며, 그들과 함께 경직되어 숨도 못 쉬면서 삶의 소용돌이 속을, 죽음의 영원한 물레방아를 멍하니 들여다본다. 그럴때 우리는 도스토엡스키의 음악, 그의 위안, 그의 사랑에 귀를 기울이고 그럴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경악 스러운 지옥과도 같은 그의 세계의 경이로운 의미를 체험한다..

 

 

이렇듯 책을 망연히 손에 잡히는데로 읽기보단, 그 작가를 열렬히 느낄 수 있을때 내 삶을 관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때 읽게된다면 완전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담으로 78페이지에 아래서 7째줄에 '모두'에 씌여진 한자어는  그 아래 '만유'자리로 옮겨야 하며, 26페이지에 아래서 5째줄 ' 이 소설을 절반 성숙한 힘든 소년의'라는 문맥이 조금 이상스럽다 '절반 성숙한'이라는 단어를 몇번씩 되뇌이며 생각해보았다. 차라리 '미숙한 소년'이나 '성숙하지 못한 소년'등의 문장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278페이지 도스토엡스키에 대한 생각중에  다섯번째줄 '희망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는 뭔가 이상스럽다. '죽음으로 죽을때' 혹은 '죽음을 느낄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나는 '죽음을 느낄때'를 선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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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7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글은 읽을 게 너무 많아요. 고전 추천도서로 알려진 작품만 읽어도 헤세 문학 절반도 못 미치는 정도에 불과할 겁니다. 저도 헤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해피북 2015-02-08 14: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번에 헤세 책을 거의 구입해봤는데 제법 많더라구요ㅋ 그리구 여전히 새로운 책들이 나오기도해서 읽어야 할 책은 많지만 넘 좋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