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한 편을 봤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결말은 포함하지 않음)
아리스가와 데스코는 이사 온 첫날부터 기분이 나빴다. 옆집에 사는 정체 모를 소녀가 커튼 뒤에 숨어 자기 집을 자주 훔쳐보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학한 반 친구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따갑다. 바로 뒷자리는 공석인데다 데스코가 앉아있는 교실 바닥엔 알 수 없는 기묘한 문양까지 있다. 삼각형을 두 개 겹친 형태의 이른바 "육망성"을 중심으로 몇 겹의 원이 그려져 있다. 이 이상한 문양 때문인지 아이들은 데스코의 곁에 오거나 말을 섞으려 들지 않는다.
하굣길에 우연히 만난 옛 발레 친구 후코 덕분에 데스코는 그만뒀던 발레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4명의 유다와 1명의 살인사건'에 대해 듣게 되고,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장소가 3학년 2반(데스코의 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반 친구 무쓰 무쓰미로부터 '유다에게는 4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아낙필락시스라는 주술로 유다가 살해당했다는 소문과 함께 데스코의 뒷자리 아이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피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 데스코는 직접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고 자신의 옆집 아이가 이 사건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하나'를 만나게 되고 두 소녀의 천진난만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낙필락시스라는 주술, 유다의 살해, 한 아이의 증발을 과연 이 두 소녀가 풀어갈 수 있을까나? (이 애니를 보실 분들을 위해 결말을 남겨둔다.)
애니를 보며 내겐 더 특별하게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있었다. 첫 장면. 막 이사 온 데스코가 빈 방에서 혼자 발레를 출때, 발레 교습소에서 아이들과 단체로 발레 연습을 할 때나 또는 택시를 탄 아빠에게 엄마의 서류를 전해주려고 뛰어갈 때 그 행동들이 어색함이 없다는 것.
예를 들어 애니라는 특성에서 오는 어색한 몸짓이 눈에 띄는 영상들이 있다. 뒤뚱거리며 걷는다거나, 캐릭터가 뛰는데 뛴다기보다 바깥 영상이 흘러가는 형상이거나 뭔가 부자연스럽게 툭 튀어나오는 장면들. 그런데 이<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에서는 그런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다.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나중에 <하나와 앨리스:살인사건>의 원작을 읽고 알게 되었다. 로토스코프 기법. 모델이 움직임을 카메라로 투사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기법인데, 이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된 기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애니의 중심으로 흐르는 소녀, 청춘, 우정, 사랑, 만화책, 소문, 아낙필락시스, 기묘함, 따돌림 등을 통해 그 아름다운 청춘들의 세심한 마음과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은 분주한 몸짓에 감동하고 감탄하곤 했다. 어쩜 이렇게 세심하게 소녀들의 감성을 관찰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이와이 슌지 감독과 오츠이치 작가의 합주곡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원작에서는 애니에서 다루지 못했던 하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는. 또 애니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결말 부분 역시 이렇게 끝나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