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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인생 - 한국에서 마약하는 사람들
강철원 외 지음 / 북콤마 / 2019년 5월
평점 :
나와는 생활 경험, 몸의 이력, 언어 면에서 교집합이 작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드러낸 책은 호기심 때문에 읽는다. 그 호기심을 천박하다고 비난할 수 있으랴? 문학의 언어이건, 학술적 직조기로 거쳐나온 언어이건, 사람을 소재 삼은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자력이 커진다.
설탕 중독, 운동 중독, 일기 중독, 별 모으기 중독... 나라고 중독 경험이 없지는 않다. 중독 유도하는 소비주의 사회에 안정적 시민권을 확보하며 살기에, 중독적 소비에 거침이 없다. 마약은 다른 차원의 중독이다. 그 신체화된 증후를 감추기 어려우나 감춰야 한다. '마약중독'임을 드러냈다가는, "말종 인간"이나 "범죄자"로 검은 덧칠이 되니까.

[중독 인생]을 처음엔 호기심에서 읽었다. 내 삶의 반경 안에서는 마주칠 일 없을 이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한국 사회엔 이런 "사각지대"도 있더라'하며 심각성을 품평하고 젠 체 할 뻔했다. 하지만, [중독 인생]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아예 "중독"이라는 말조차 함부로 쓰지 못하겠다. "국뽕," "물뽕," "첫뽕" "도리도리" "야마(돌아)"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지리다" "꽂히다" 별 생각 없이, '세상살이 각박해진 시대의 거친 생활어인가?' 하며 귀에 스쳐 내보냈던 표현들이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약 관련 용어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생활성을 드러내기 위해 언어유희라 생각했던 표현들이, '마약중독자'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몸을 반응시키는 두려운 촉발제이기도 했다.
2020년대 한국 사회에 언어만 마약화 되었을까? [중독 인생] 역시 도입부에서 UNODC(유엔 마약범죄사무소)의 '세계마약보고서 World Drug Report'의 통계수치를 인용하며 한국 사회 마약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가가 아니다. 경유지도 아니다. 어엿한 마약 소비국이며 (암수시장에서)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독인생]이 기관에서 발행된 공식적 보고서처럼, 데이터에만 의존해 마약의 사회적 침투를 고발하는 것만은 아니다. 마약중독자를 보는 시선과 자료수집 방법 면에서 차별된다. 이 책은 서초동에서 주로 활동하는 기자 네 분(강철원, 안아람, 손현성, 김현빈)이 "한국의 마약하는 사람들," 투약자 10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재소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고, 중독자 재활센터에서 보름간 합숙한 데이터를 가공해 쓴 책이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들, 마약류 중독 전문의, 마약중독자 재활센터의 운영자 및 관계자 등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내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중독인생]의 1, 2부는 "마약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국 사회에 마약이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SNS시대 "비대면" 마약거래가 활성화되어, 얼굴없는 이들끼리 카톡으로 주문받고 "Drop"기법으로 공공의 장소(커피숍, 버스 터미널, 공공화장실 등)에서 마약을 거래한다. 평균적 마약중독자의 일생은 20대에 마약에 손 댔다가, (계속 자기가 통제 가능하다는 착각 하에 끌어오다가) 50대에 중독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궤적을 "말기 암" 단계에 와서 문제 심각성을 깨닫는 암담함에 비유한다. 3부에서 6부는 "마약하는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마약에 물들어가는지, 치료를 받고 싶어도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결국 감옥으로 보내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마약사범'은 파란색 수감번호표를 받고 변별된다. 역설적으로 마약사범들이 집합된 구치소가 "마약중독자 양성학교(마약사관학교)"로 기능한다고 한다. 특히, 여성 투약자들의 경우 출소 후, 마약 공급책 등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4명의 저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마약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실질적으로 마약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제도가 운영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독자"를 "정상적 생활인"과 아예 차원 다른 세계에 사는 별종이나 범죄자로 보는 시선을 취하기 때문에 애초에 치료 대상 삼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다. 범죄자로 처벌대상 삼거나, 사회 암적인 존재로서 애써 수면 밑에 묻어두려하거나. 설상가상, 마약재활치료에서 가장 마이너스 요인은 마약 중독자가 공동체에서 이탈해 고립되는 것이다. [중독 인생]에 등장하는 이들이 증언하듯, 일단 "마약사범" 라벨이 붙으면 출소 뒤에도 직업을 구하거나,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가 아닌 처벌이나 외면을 받고, 더한 중독이나 범죄의 늪으로 빠지는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UNODC가 2020년 발행한 보고서를 보니, 재활치료가 필요한 8명 중 1명만 치료 받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중적 오명화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민자, 소수자 등이다.

[중독 인생]을 통해, 마약중독자들의 처절한 고통을 활자로만 접했지만, 안타까움 이상으로 공포감이 크다. 그것이 가족으로부터이건, 사회로부터이건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이겨내고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의 중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마약 논의'가 "하지 마쇼." "위험하오" 였다면, 21세기엔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NO NO NO"도 극히 중요하지만, 그 만큼이나 "이미 위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하고 도울지"를 모색해야하나 보다.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중독인생] 네 분의 기자들과 협업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유의미한 제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도 곁들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