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문학 아케데미로부터, 메일 수신 설정을 해두었는데
"호락호락한 시 한편 보내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왔다. 알라딘 이웃분들이 시집을 열심히 읽으니, 그 리뷰라도 기웃거리지만 고백하자면 시를 천천히 음미할 준비가 덜 된 독자이다. 나는. 그런데 "호락호락한 시"가 재미있어서, 공유해본다.
하하, 혼자 웃고 씁쓸해지고, 짠하다! 우리는 뭘로 꿰뚫어 보여주지? 호락호락하게 내 갈 곳은 어디메? 호락호락한 시 한편이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거구나!

gteddy
소주 한 병이 공짜 / 임희구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 - ⟪문학의 전당⟫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