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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학생 때에도 나는 연휴를 좋아했다. [아라비안 나이트]나 [삼국지]를 방해 받지 않고 읽을 수 있으니까.

람 잘 안 바뀐다. 이번 연휴에도 나는 책탑 쌓았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두 권을 읽었다. 사회인류학자 토머스 힐란드 에릭슨의 [인생의 의미]와 스테판 츠바이크의 에세이 모음집,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였다. 두 저자 모두 유럽인이자 PhD라는 점 외에, 공명하는 인간관을 보인다. 바로 "사람끼리의 온기와 신뢰"를 인간 삶의 핵심으 보는 관점이었다. 에릭슨은 21세기에 기술이 발전할지언정 인간은 정서적 결핍과 불신에 시달릴 것으로 예견했다. 츠바이크도 마찬가지이다.




칠전 일이다. 길을 걷는데, 가로수 가지치기를 위해 시에서 파견된 분들이 작업 중이셨다. 그 중 한 분이 전기톱을 든 채로, 산책로로 이동하셨다. 순간 나는 몸이 뻣뻣해질만큼 놀랐다. 아마 바로 그 며칠 전에, '미아동 마트 흉기 난동 살인 사건'이 연상되어서일지 모르겠다. 여느 마트 방문객으로 보였던 범인 태연자약하게 마트에 진열된 칼의 포장을 뜯고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은, 반복되는 뉴스 보도를 통해 내 머릿속에서 영화속 한 장면처럼 각인되었다. 그런 비인간적 사건들이 누적되면서, 사람이 사람을 믿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

물론 내게는 전기톱을 들고 이동하시는 분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다. 토머스 힐란드 에릭슨이나 슈테판 츠바이크가 암시했던 "신뢰 상실한 시대" 떠올라 글을 남긴다. 세상이 어찌나 각박해져가는지, 소임을 다하려 애쓰시는 분을 보고도 경계이 올라온다. 그 마음이 부끄럽지만, 어쩌면 불신은 이렇게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는 게 아닐까.

아무리 낙관하고 싶어도 인간간 신뢰도와 교감이 현상유지나 되면 다행인 시대다. 이런 시대에,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귀한 교훈을 건넨다. 미공개 에세이 9편을 수록한 이 책에서 가장 울림을 크게 준 글은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이었다. 어려운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도덕경제' 실현 가능성에 대한 사유 될 것 같다.

이 에세이에 등장하는 '안톤'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동네에 실제 살았던 무소유의 인물이다. 그는 마땅한 거처도, 직업도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청년이었지만 동네 사람들과 선의의 순환고리로 만들어다. 돈이 매개되지 않더라도 서로 돕고 베풀며 살아갈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이. '미아동 흉기 난동 살인사건'에서 보이는 끔찍한 비인간성과 대조된다.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에게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으면 일을 해서 벌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그런데 구겨진 바지를 입은 그 작고 마른 청년은 어떻게 이 법칙을 어길 수 있을까?

(...)

나는 곧 깨달았다. 면도도 잘 안 하고 후줄근해 보이는 이 말라깽이 청년은 자신을 위해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는 사람들의 인성을 믿었다. 그는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보다 이 작은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에 도덕적 의무라는 유동자산을 저축하기를 더 좋아했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15-16쪽


그 외, 이 에세이집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넉넉한 마음과 날카로운 지혜를 담겨 있다. 특히 각 글마다 곁들여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낭만적 회화는, 독자에게 덤의 선물이 된다. 천천히 음미하는 독서할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도 권한다.

Landscape with rainbow

Caspar David Friedrich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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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6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휴라곤 하지만 책을 두권이나 읽으셨다니 대난하셔요^^

cyrus 2025-05-06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쉬는 날에 책을 쉬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가네요...🥲

transient-guest 2025-05-07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가해지만 책을 많이 읽겠다고 다짐하지만 사실 적당히 바쁠때 책이 더 잘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5-05-07 17:13   좋아요 1 | URL
맞아요ㅠㅋㅋ 이번 연휴에 책 많이 읽어야지 했는데... 또르륵.

고양이라디오 2025-05-0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하루에 2권이나 읽으셨다니 대단합니다ㅎ 츠바이크 에세이 읽어보고 싶네요.
 

장안의 화제(?), 여기저기서 뜨겁게 추천하는 책을 인류학자가 썼다기에 반가웠습니다. "암 선고 받고 삶을 통찰," "유명인 *** 추천" 등의 홍보문구를 보았지만, 정작 [인생의 의미] 저자를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실물로 만나 책 날개를 열자마자, '아....!' 낮은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 분이셨구나!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2019, 2020년쯤 [과열 overheating]을 반복해 읽으며 대규모 인터네셔널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사회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건강한 중년으로 보였던 그가 2024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셨다니, 갑자기 마음이 휑해집니다.




[과열 overheating]에서 성장과 효율을 추구하는 지구촌의 흐름을 제어장치 없는 거대트럭에 비유하며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명과 암을 논의했던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양적, 질적 연구 양자를 탁월하게 수행하는 사회인류학자였습니다. 빈틈 없이 냉철한 프로페셔널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2025년 읽은 [인생의 의미]를 통해 엿본 이 분의 세계는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자연친화적이고 느림의 미학'을 아는 노르웨이 사람 특유의 여유, 프로그레시브 록을 비롯 음악과 반려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따뜻한 심장, 평생 인간을 연구해온 분답게 동서고금의 인생철학을 꿰뚫은 혜안으로 가득했습니다.

2025년 5월 5일, 원래 하려던 일을 미뤘을 정도로 [인생의 의미]를 읽는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이분은 2022년, 즉 60세에 이렇게 깊이 있는 에세이로 세상에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학자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자기성찰에 충실하고 겸손하면 이런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과연, 60즈음에 이렇게 지혜로 충만한 이야깃거리를 갖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인생의 의미] 인용

제가 [인생의 의미]를 읽으며 중요하게 생각한 점을 몇 가지 압축해 봅니다.

독특한 글쓰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작은 욕심이 생겼는데요. 비슷한 글을 흉내내보고 싶다는 욕심입니다. [인생의 의미]도, 큰 틀에서 예시가 되어줍니다. 저자가 아버지이자,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 사람, 자전거, 산책, 음악, 애호가이자 인류학자로서의 삶을 평생 공부하며 경험한 세계와 엮어서 펴낸 글입니다. 장르를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혜도, 지식도 이 한 권에 듬뿍 담겨 있습니다.

균형적 시각

인류학자로서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많은 장소를 다녀봤고 다양한 경험을 해왔습니다. 책을 통해 '인공위성적 조망'이 가능한 그의 균형 잡힌 시야가 드러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그의 해석에 신뢰가 갑니다. 예를 들어 그는 '가난의 낭만화,' '결핍의 낭만화' '동물과보호' 를 경계하면서도 이 화두에 관한 뚜렷한 소신도 드러냅니다.

동물이 일반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반대로 과도하게 관심을 받는 것도 문제가 있다. 돌고래같이 몸집이 작은 고래목 동물이나 범고래가 숨구멍이 얼어서 문제가 될 때면 전 세계 미디어가 북극의 드라마에 집중되기 동물환경운동가들은 정부나 불특정한 다수에게 도움을 달라고 목청을 높인다. 지중해에서 난민 수십 명이 익사해도 짧은 뉴스로 보도되는 게 전부인 사실과 비교하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50)

그 시인에게 물리적 바다는 중요치 않았다. 그것은 은유의 원천이자 상상의 도화선이다. 그는 수평선 너머 존재하는 욕망과 결핍, 갈망을 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결핍을 서정적으로 찬양했다면 나는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물질적 결핍 속에서 살고 있다. (95-96)

물론 가난을 낭만화하거나 청바지와 아이폰 소비를 꾸짖을 생각은 전혀 없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원주민을 자기 경멸의 인질로 삼으려는 시도도 탐탁지 않다. (112)

광폭, 심연의 사유

내게 치졸한 편견이 있다. 사회적으로 뚜렷한 성취를 이룬 소위 성공한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그 편견을 깨뜨려주었다. 물론, 그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2년이라는 느린 시간을 보낸 것이 인생관에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지만....

[인생의 의미]는 비단 노르웨이 국민뿐 아니라 그 어떤 문화적 배경과 국적을 지닌 독자가 읽어도 매 페이지 멈춰 서서 문장을 곱씹어야 할 만큼 지혜가 가득한 책이다.

핵심 메시지

두세 번 다시 읽고 난 후 조심스레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인생의 의미]를 한 번 읽은 독자로서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저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1) 그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과 사는 세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2) 위기나 결핍을 어두움이 아니라 저항과 변화의 기폭제로 본다. 3) 겸손한 인격자이다. 이 책에서 내가 유난히 좋아한 문장을 따로 옮겨본다.

부유한 사람들은 큰 위기가 있어야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아늑한 작은 어항에서 헤엄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심각한 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나를 2년 넘게 죽음의 대기실에 내던졌다...나는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스틱스 강의 진흙투성이 기슭에서 오래 머무르며 뭔가를 배웠다. (109)

광채가 나는 사람은 내면과 외면이 서로 잘 통하고 숨기는 것이 없는 특징을 갖는다. (265)

작은 세상은 큰 세상을 투영하고 큰 세상에 말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 공동의 일에는 관심이 없으며, 자신이 일부인 더 큰 이야기를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자신의 작은 정원만 가꾸며 사는 사람들 말이다.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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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잘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차이 - 당신 곁의 행운 천사를 알아보는 법
연준혁.한상복 지음 / 테라코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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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혁 + 한상복"

발음해 보면 은근히 이름마저도 잘 어울린다. 절친이자 자칭 "국가대표급 비非체육인 콤비"로서 [결국 잘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차이: 당신 곁의 행운천사를 알아보는 법]를 함께 쓴 저자들 말이다. 둘은 "고만고만한 서민 가정 출신" 문과남자(각각 동양사학과 / 영문학과) 로서 책 만들고 글쓰기를 업 삼아왔다. "하수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라며 겸손하게 낮추며 운명적 우정을 나누누는 이분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다독이며 채워주고 장점으로 시너지를 내어 멋진 산출물(책들)을 만들어 내니 말이다. 2010년에 연준혁, 한상복은 "행운분석서"를 공동집필했고 15년 후 "생활밀착형 행운 찾기 지침서"(6)를 펴냈다.

평생 글자를 만지고 살아오신 분들이라 참 워딩 잘 뽑으셨다는 생각이다. 실제 [결국 잘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차이: 당신 곁의 행운천사를 알아보는 법]은 "생활의 목소리"를 담은 실용적 지침서이다. 연준혁, 한상복의 인생관과 인격, 인생굴곡와 인생귀인들을 유추할 수 있게 저자들과 지인의 실제 사례를 솔직하게 공개할 뿐 아니라 유명인사들의 에피소드까지 풍부하게 담고 있다. 열심히 메모하다 보니 메모지가 빼곡해질 정도로 인상적 사례가 많았다.


인생 선배뻘인 두 저자가 공개한 "행운맞이 지침"을 나의 언어로 요약해 본다.



"점 点 인 줄 알았더니 선線을 이루더라" : (陰德) 보이지 않는 데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작은 선행을 베풀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라. 누적이 될 것이고 타인에게 베풀었던 게 스스로에게 돌아오리라.


보이지 않는 차이라? 그것은 따스한 음성, 눈빛, 타인을 배려해 먼저 움직이는 부지런한 손(같이 식사할 때 수저나 물을 챙겨주는 손 등)에서 나올 수 있다. 누적이다.


새로운 인연, 장소,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라. 행운은 초대장과 같아서 응해야 열린다.


총명聰明: 나를 빛내고자 하고 내 말이 더 많은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들어주고 남을 더 빛내주는 사람이 되자. 모임을 파괴하는 디미니셔diminisher가 아니라 illuminater가 되자


겸허하라. 특히 횡재나 운의 폭포 아래 있을 때 교만해지지 말라.



결국 요약하면 "착하게 살라."

요새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 들어가 보고 있는 '전생리딩연구가 박진여' 선생님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선한 마음으로 선행하며 살아라.'

개인적으로 나를 찌릿하게 감전시킨 문장을, 옮겨 적는다.


작은 영혼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게 두려워 변화에 한사코 저항한다. 그렇기에 더욱, 바깥에서 쪼아주는 '정이나 끌을 든 천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런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알아봐 줄 때, 비로소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차이] 97쪽

비슷한 생각을 꽤 오래 품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점점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준다'라는 기대 자체가 오만이 아닌가 반성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뭐, 정답은 없으니까. 또한 삶은 진행형의 연극인지라 단정할 수 없으니까. 일단 최선을 다해 나를 찾고, 내가 할 수 있고 (이왕이면 잘 해서) 기여할 거리에 몰입하면 된다.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산전수전 겪어본 사람들이 타인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은 예의범절만의 차원이 아니다. 관뚜껑이 닫힐 때까지,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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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7 0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실 두 번째이다. [우리, 나이 드는 존재]를 읽기는. 한 주제어 아래, 이런 저런 사람 다 필자로 불러 모아서는 종이 값 아까운 책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첨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이 모음 에세이집은 꽤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멋진 주름을 만들어 가는 여자들: 이라영, 고금숙, 김하나, 정희진, 김희경....

필진이 다양하며 그 중, 다른 책으로 혹은 강연장에서 이미 만나봤던 작가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김하나" 작가의 필력이 비교불가 수준으로 압도적이어서 다른 글 생각이 다 덮혀 버렸다. 물론, 다른 에세이 하나 하나 소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허투루 읽을 글은 한 편도 없었다. 다만, "김하나" 작가 좀 심했다!!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시나! 흠...76년생 김하나 작가의 76세 어머니께서도 입담이 좋으신 모양인데, 나의 팬덤은 확장형! 김하나 작가와 어머니의 책들을 더 찾아봐야지!


김하나 작가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신의 닮은점으로 글을 시작한다. 생일도, 식성도 비슷하고 심지어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것 까지 같다. 작가님의 아버지께서는 젊은 날 생각이 유연하고 열려 있어서 하나 작가님의 어머니와 즐거운 연애를 하셨던 것 같은데, 늙어가시며 점차 "조개가 되었다". 입을 꾹 다무셨다. 설령 입을 연다하여도 세상이 못마땅하여 툴툴거리는 말씀을 주로 하셨나보다. 한식과 회....드시던 음식만 내내 드시고, 다니시던 산책길로만 걸으시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만 경전처럼 되풀이해서 읽고. 그렇게 조개가 되어 가셨다. 

김하나 작가는 자신이 노년에 아버지같은 모습으로 늙을까 두려워하면서도 반대항에 계신 어머니의 유연성을 떠올린다. 어머니, 굉장히 멋진 분이시다. 몇 천자의 글자 만으로 독자가 작가님 자신과 그의 어머니께까지 홀라당 반하게 하다니 김하나 작가님 놀라워요!

이 책은 필진들 자신을 나타낼 상징 같은 사진들이 1인당 2장씩 들어가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다수가 자연물(숲, 나무, 물) 이미지를 대표 이미지로 제시했다. 눈이 시원하고 즐거웠다. 막힌 데 없이 연결된 청량감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정희진 선생님이 고르신 두 장의 사진은 그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선생님의 열정과 한 우물 파는 집요함에 감탄하면서도, 저 연세에도 운전과 수영을 못하시고 여행 가셔서도 온통 논문에 쓸 거리를 생각하시고 앎을 반성하는 게 체화되어 제대로 즐기시지도 못하는 "공부노동자".... 네모란 책상과 네모란 책, 네모네모 노트들....나는 선생님이 여기에 쏟고 담아내신 시간을 상상하며 경건한 마음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아무쪼록 정희진 선생님, 건강하시어 그 좋아하시는 공부 계속 하시고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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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씁쓸한 연말의 비결은?

계획단계부터 엉성하게, 그러면 덜 가혹해질 연말 평가. 아직 "2023년"이 입에 붙지도 않았는데 2024년 달력이 나왔냐고 자조하는 지인과 함께 웃었다. 나도 2023년 1월 1일이 곧 온다고 착각하니까. 그렇게 뇌를 속여봐야 뭐하니? 2024년이 3주 앞이다.


뚜렷한 발자국 못 남기는 2023년, 12월에라도 분발해야 하는데 자꾸 책에 손이 간다. 그것도 고구마 줄기 캐듯 한번 쥐면 놓기 싫은 주제 독서! '법의학'과 '법의인류학'을 두 주일째 파고 있다. 이 분야는 언제 읽어도 짜릿하다.


피, 뼈, 시신, 부패, 시취......


현실에서는 이런 단어조차 입에 못 올릴 겁많은 내가 활자화된 죽음 이야기엔 용감하게 다가간다. 아마도 죽음 그 자체보다도 인간이 죽은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매혹되는 것 같다. 생명이 꺼진 다른 인간 몸을 내려다보는 인간에게서 원초적 감정은 유예되고 대신 '직업적 훈련'이 조련해낸 전문가적 냉철함이 유지되는 점은 (법의학 모르는 일반인 눈에) 참 신기하다.

궁금하다.

법의학자 리처드 셰퍼드의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나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의 [뼈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죽음에 대한 초연한 태도는 직업적 에토스인지, 영국이라는 맥락과 관련된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또한 두 책에서 언급되는 범죄 사례에 가족간 살해가 많이 등장하는 양상이 영국적인 것인지도 궁금하다.

적어도 리처드 셰퍼드 박사에 따르면 "의도된 죽음"의 양상(사인, 가해-피해자 관계 양상 등)에는 연령대, 즉 삶의 단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에는 가정폭력, 젊은 날에는 연인이나 친구, 중년기에는 술 등 중독 행위 혹은 부부갈등 등 가족문제, 노년기에는 사소한 이벤트의 나비효과가 죽음으로 치달는 경우 등....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가 인생 주기를 7단계로 나누어 연령대별 사인을 주요 사례와 함께 소개하는 데 치중한 반면 [뼈의 증언]은 뼈 부위별로 각 뼈의 생김새나 특징, 각 부위 뼈와 관련된 대표적 사례 중심으로 엮었다. 재미있어서, [서울의 봄] 상영전 15분이나 계속되는 광고 시간에도 극장 좌석에서 [뼈의 증언] 책장을 넘겼다! 어떤 분야이든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헌신하시는 프로페셔널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런데 [서울의 봄]에서도 언급했지만 왜 그렇게 대한민국엔 "똥별"들이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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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10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어느새 2023년도 다 가 버리고
이제 20일 정도 남았나요?

새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또 램프의 요정
에서는 고놈의 천원을 자꾸만 줘서 책 사라
는 유혹을... 여튼 어제는 이번에 새로 나온
새 번역의 <율리시즈>를 사서 읽기 시작했
답니다. 과연 다 읽을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요. 일단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구요.

얄라알라 2023-12-10 21:51   좋아요 1 | URL
ㅎㅎ 갑자기 레삭매냐님 말씀에

내가 ˝율리시즈˝ 스펠링을 아는가? 궁금해져서 써보려니...허걱.
책도 안 읽어봤지만, 제목 원어로도 모르네요

시작이 반! 매냐님은 읽다 중도하차 별로 안 하시잖아요^^ 저와는 달리, 홧팅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3-12-10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내년 한 해에도 좋은 이웃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라봅니다. 행복한 한 주 시작되세요! ^^:)

얄라알라 2023-12-10 21:52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겨울호랑이님, 책 읽는 가족, 친구...다 드문에 책읽는 이웃이라니 갑자기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내년에도 책 읽는 분들이 많이 많이
세상에서 책 사랑이 크게 크게 퍼지기를요

행복한 일요일 밤 되세요. 감사드립니다

감은빛 2023-12-12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의 책 모두 흥미롭네요.
죽음이란 주제에 자꾸만 끌리는 이유가 가끔 궁금해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이 두려운데,
막상 나의 죽음은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 순간이 온다면 아주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3-12-24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12-12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 모두 재밌어 보입니다. 상연 전에도 열독 하시는 얄라님 너무 멋집니다!!!

연말 잘 마무리하세요^^!

얄라알라 2023-12-24 23:25   좋아요 1 | URL
ㅋㅋ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상영관에서 막간을 이용해서도 읽었을까요 ㅎㅎ
그정도로 리처드 셰퍼드 글 솜씨가 좋아요^^

고양이라디오님 해피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달리기, 조심조심 꾸준히 하시기를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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