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소송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18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제헌 옮김 / 별글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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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 두 작품을 읽고 안타까움과 혼란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며 상념에 빠졌던 적이 있다. 특히 <소송>에서 느낀 혼란스러움은 지루함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이 현재 벌어진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 별글 출판사의 이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읽었던 작품의 애매함을 완화시켜 보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불편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혹자는 공평하다고 하고 혹자는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부조리한 인간사의 일면을 다시금 확인한 기분이 들었다.


<변신>

 그레고리 잠자는 악몽에서 깨어난 어느 날,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자 기둥이었고 사랑과 감사의 존재였던 아들이자 오빠가 말이다. 우상 같은 존재였던 아들은 이제 수치심과 더불어 귀찮은 존재로 바뀌어 간다. 집안을 위해 일했던 아들이 이제는 보살핌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인데, 한낱 벌레에 불과해 보이는 것을 아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가족들의 심리변화를 보는 과정은 실로 섬뜩하다. 마지못해 먹을 것을 주지만 가족과 함께 마주보거나 하지 않고 차단한다.


 벌레가 된 후에도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애쓰는 잠자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용을 쓰지만 무거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거기다 커다란 몸에 비해 어이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서로 엉켜 버둥거린다. 가위에 눌려 아무리 일어나려고 애써도 꼼짝도 할 수 없었던 답답함이 연상된다. 의식은 전과 같이 똑같이 그레고리 잠자 이건만. 그렇게 애를 썼지만 출근 시간을 놓치고 회사의 이사가 집으로 찾아오고 급기야는 벌레가 된 잠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몸에도 불구하고 더욱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결심을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들리는 건 벌레의 외침뿐이다. 자신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점점 절망에 빠진다. 아버지 얼굴에 나타난 당황한 빛을 읽어내며 이것이 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않았을까 안절부절 못하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으로 체념과 슬픔에 빠지면서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한다. 왜 겉모습은 벌레로 바뀌는 벌을 내렸으면서도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을 주었을까. 벌레로 바뀐 모습의 잠자는 남은 가족에게 이미 오빠와 아들이 아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은 성가시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몸에 박힌 채 죽어간다.


 경제적으로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는 사람만이 가족의 일원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좀 부족한 면이 있어도 감싸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는 없을까. 가족이 되는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문득 세상에 던져진 존재들이 사랑으로 혹은 어떤 인연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편안한 세상이 되었지만 소외감과 우울증에 사로잡히는 현대인의 생활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벌레가 되어 자신의 얘기를 끊임없이 하지만 듣는 이에겐 시끄러운 웅얼거림이 되어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민낯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었다. 이 작품은 소외된 사람의 모습을 벌레로 형상화함으로써 표현주의적 작품이며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다루는 면에서 실존주의 소설로도 간주된다.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송>

 이야기의 주제가 딱 떨어지는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 그런데 <소송>은 읽으면서도 읽은 후에도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어떤 죄목인지 누구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는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구속영장도 없이 어떤 힘에 끌려 1년 동안이나 소송에 휘말리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요제프 K의 이야기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고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 앞으로 나아가지만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나고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두려움이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갑작스런 자연재해나 사고 등에 맞닥뜨려 주저앉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좀 다른 경우지만 주인공 요제프 K의 경우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하는 면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K는 무작정 의기소침하거나 하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사건을 좀 가볍게 보는 면이 있었다. 변호사의 애인을 희롱하거나 여자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데(여자들 쪽에서 적극적이긴 했다) 자기의 현재 상황에 대한 처신 치고는 좀 아니다 싶었다.


 서른 번째 생일 날 아침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체포된다. 처음에는 은행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 건 아닌가 생각하면서 금세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 심리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고부터 목격하는 재판소의 풍경은 부조리의 총 집합소였다. 엄격한 잣대로 죄를 묻고 처벌해야하는 곳이 무질서의 극치를 보여준다. 권력의 편에 서서 모여 있는 오합지졸의 집단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빨래하는 여자, 어린아이들, 재판소의 관리들, 화가 등 재판소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를 보고 재판소를 얕잡아 보았을 수도 있다.


 첫 대면에서 예심판사는 K를 페인트공이냐고 묻자 자신은 대형 은행의 이사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동명이인의 인물을 잘못 부른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에 대한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없다. 그저 답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죄인으로 치부하고 진행하는 것뿐이다.


 숙부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청원서조차도 제출하지 않는 등 별 진전 없이 몇 달이 흘러가고, 소송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K는 다급한 마음에 은행 고객이 소개해준 화가를 만나게 된다. 법률 조언을 화가에게 하다니. 화가를 찾았지만 화가의 집이 재판소이며 관리들과 결탁되어 있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 장이 될 때까지도 지루한 소송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이탈리아 고객의 접대를 위해 대성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신부인 듯한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신부는 법률 입문서에 적혀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K에게 재판의 심각성을 토로하는데.


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한 시골 사람이 이 문지기에게 와서 법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시골 사람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럼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지기는 말한다. ‘그럴 수는 있지만 지금은 안 돼.’ 법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문지기는 옆으로 물러서 있기 때문에 시골 사람은 몸을 구부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것을 본 문지기는 껄껄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거든 내가 금지하는 것을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게나. 그러나 내겐 권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게. 그리고 나는 신분이 가장 낮은 문지기에 지나지 않아. 문마다 문지기가 서 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권력이 강해진다네. 세 번째 문지기를 보면 나조차도 겁이 나.’(후략)(p436)


 마치 소송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K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이 신부마저 교도소의 신부라고 밝히는데. 사방이 K를 감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싹함으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 심한 장난 정도로 여기고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으니 곧 풀려날 것이라 믿었는데.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고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지리멸렬한 싸움에 휘말려 희생되고 만다.


 언젠가 인터넷에 회자된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가 된 사건이 떠올랐다.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범죄에 대한 증거도 불충분한 상황에 권력의 힘으로 우겨서 한 사람의 인생을 도탄에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 같다. 시대가 변했지만 어딘가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 받는 삶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이 소설처럼 말도 안 되는 경우는 없으리라고 믿고 싶다. 법의 저울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며 공정하고 성숙한 그런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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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양장)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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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나니.’(1825)

-역자 후기에서-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익숙한 시다. 이 시로 푸시킨을 알았다. 세로글씨로 쓰인 대위의 딸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오빠가 빌려왔거나 사온 책이었겠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읽었던 것 같은데. 남아있는 기억이 없으니 처음 읽은 거나 마찬가지다. 먼저 읽은 분들의 평이 재미있다고 해서 기대되었는데 역시 그랬다. 이 작품은 연애소설, 성장소설, 역사소설 등의 여러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어려움을 헤치고 하나하나씩 풀어간다는 의미에서는 영웅소설적인 느낌도 난다. 흔히 러시아 소설은 인명 자체가 길고 어려워서 잘 읽히지 않는데 이 작품은 술술 읽힌다. 화자의 말과 생각을 통해서 이 시를 쓴 푸시킨의 긍정적인 성격과 모험에 대한 도전 정신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러시아 근대문학사에 있어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명예와 위업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시로써 러시아 시문학의 황금시대를 열었고, 산문으로는 19세기 후반 고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으로 이어지는 영예로운 러시아 작가의 선조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문학은 러시아를 넘어 세계 독자들에게도 공감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데 그것을 푸시킨 현상으로 설명한다. 이미 이것의 비밀은 푸시킨의 시 속에 나타나 있고 그의 운명까지 묘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삶과 문학에의 열정과 사고가 조화롭게 스며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의 화자는 ’, 표트르 안드레이치다. 화자는 작가 자신이 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뒷이야기를 예고하는 등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열일곱 살이 된 청년이 군대에 가게 되는데 아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마음과는 달리 해방감을 느끼며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삶을 고대하고 있다. 군인으로 공적을 쌓은 아버지의 아들답다고 해야 할까. 오늘날 자녀의 병역의무를 어떻게든 면제받으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정치계의 상황과 묘하게 대비된다. 하지만 그리뇨프의 바람과 달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시골 벽지인 오렌부르크로 가게 된다. 충직한 늙은 하인 사벨리치와 함께 길을 떠나는데...


 군에 도착하기도 전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하룻밤 묵게 된 여관에서 어느 대위를 만나 할 줄도 모르는 당구 시합을 하다가 백 루블을 빚을 져서 돈을 뜯기고, 눈보라 속에 막무가내로 강행군을 하다가 길을 잃었다가 길 안내인의 도움을 받는데 이 사람에게는 토끼가죽 외투를 내어준다. 아직 어린 청년임에도 귀하고 비싼 옷을 덥석 내어줄 정도로 배포가 크다. 인정을 아는 성품이라고 해야 할까. 천방지축인 이 도련님 때문에 사벨리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무던히도 참아낸다. 다행인지 이런 기이한 인연이 나중에는 위험에 빠진 그리뇨프가 안전하게 목숨을 보전하는 인과응보로 작용한다.


 그렇게 물불을 못 가리는 그리뇨프가 상관인 미로노프 대위의 딸 마샤를 만나고 서서히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일까. 마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약한 겁쟁이였던 마샤가 부모를 잃고 나서는 이런 면도 있었나 할 정도로 바뀌어간다. 사랑이 깊어지고 결혼을 약속 하지만 표트르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거역하려 들거나 하지 않고 축복받는 결혼을 위해 기다릴 줄 안다. 천생 여장부 같은 엄마를 닮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엔 풋사랑일 뿐이라고 결혼을 반대하던 표트르의 부모도 마샤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서 아껴주게 된다.


 한 편 악당의 손아귀에 있던 마샤를 구하기 위해 푸가초프의 도움을 받기까지 그리뇨프와 푸가초프가 얽힌 행적은 정부군의 귀에 들어가고 유배를 당하기에 이르는데, 마샤는 페테르부르크로 가서 당당하게 예카테리나를 만나고 미래의 남편의 운명을 좋은 쪽으로 만들어간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나약한 개인이 국가권력인 예카테리나 여제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국가를 위해 공헌을 한 미로노프 대위의 애국심과 충정이 있었기에 예카테리나 여제의 선의도 가능했던 것이다. 이를 보면 어떤 거창한 위업이나 위대한 투쟁, 대단한 권력을 통해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사소한 인간의 선의, 선량한 영혼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푸시킨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국가권력인 예카테리나 여제와 민중 봉기를 통해 민중의 황제로 추앙받는 푸가초프가 대립하던 역사적인 장면이다. 반체제 청년 장교(데카브리스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시인 푸시킨의 가장 마지막에 쓰인 푸시킨의 장편소설로 그의 문학적 재능을 온전히 발휘한 작품이라고 한다. 역사권력과 개인의 갈등을 푸는 열쇠는 폭력과 강제성이 아닌 선량함, 선한 의지, 도덕성, 비폭력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피력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18세기 후반 부패한 제정 러시아와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삶의 모습과 더불어 청년 장교의 사랑과 모험을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당시의 역사의식과 민중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는 고전으로써 항상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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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오네긴 열린책들 세계문학 7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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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은 몇 해 전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의 자전 에세이를 읽고 깊은 감동과 여운이 남아있었고 그녀가 공연한 동명의 작품이기도 해서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푸시킨의 이 소설에서 소재를 얻어 차이콥스키는 같은 이름의 3막 가극을 작곡하였으며 1879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하듯이 문학작품의 영감으로 음악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또 예술가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세상은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발레 공연 영상이나 오페라 음악을 찾아 들어보았다.


 이 작품은 7년여 동안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푸시킨 문학적 역량이 응축되었다는 작품이다. 시와 소설을 탈피하여 시의 리듬과 소설의 전개를 곁들인 독창적인 운문 소설이다. 모두 8장으로 구성으로 각 장은 40~60개의 연으로 이루어져있다. 서구의 소네트와 같은 형식으로 한 개의 연은 14개의 행으로 되어있다. 낯선 장르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재밌지는 않았다. 좀 더 진행이 될수록 흥미로웠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지만 나는 먼저 발레 공연의 작품으로 알게 된 것이 더욱 뇌뢰에 남아서 읽으면서도 극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었다. 화자는 오네긴을 알고 있는 친구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때는 작가인 푸시킨이 되고 연인 따찌야나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중간 중간 연을 생략한 기법으로 독자의 상상의 여지를 준다. 화자는 독자를 소설로 끌어들여 참여를 유도하는 참신한 구성도 흥미를 유발한다. 한마디로 일반 소설은 독자 참여의 여지가 없이 관망하는 것과 달리 자유분방을 추구한 푸시킨의 의도가 깔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친척의 유산을 상속받은 오네긴이 시인인 친구 렌스키와 이웃 마을의 영지에 갔다가 그에게 사랑의 포로가 된 따찌야나의 사랑의 고백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다른 사람……! 아니, 이 세상에 제 마음을

바칠 사람은 그대밖에 없어요!

높으신 분의 섭리…… 하늘의 뜻으로

결정된 일, 저는 그대의 것입니다.

이제까지 제 인생은

그대와 어김없이 만나기 위한 저당이었어요.

알고 있어요, 신께서 그대를 보내 주셨다는 걸.

죽는 날까지 그대는 제 수호자라는 걸……

그대는 저의 꿈에 나타나셨어요.

보이지도 않는 그대께 제 마음 끌렸어요.

(P101 따찌야나가 오네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임.)

 



미인을 보아도 사랑의 느낌이 없어

그냥 꽁무니만 좇을 뿐.

거절당해도 금세 안정을 찾고

배신을 당해도 오히려 잘됐다 기뻐하고

미녀들의 사랑과 증오에 무감각.

사랑의 환희도 없이 그들을 탐했다가

미련의 아픔도 없이 차버렸다.

마치 무관심한 손님이

저녁때 휘스트* 게임을 하러 찾아와

앉아 있다가 게임이 끝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

제 집에서 편히 잠들고

아침이 되면 깨어나

오늘 저녁엔 어디로 갈까 망설이듯.

주석) *휘스트-트럼프 놀이의 일종.(P113~114)



 젊은 상속자 오네긴에게 아무런 삶의 의욕이나 충만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은 국외자,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던 당시 지성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지만 그는 자신과 그가 처한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당시 지성인의 정체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아울러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다.


 자유분방함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던 오네긴은 은둔생활을 마치고 사교계의 야회에서 따찌야나를 마주하게 되는데...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고 오네긴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상사병에 몸살을 앓으며 자신에게 사랑을 구걸하던 나약한 여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당당하고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차가운 모습의 따찌야나에게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다. 이미 결혼하여 공작의 부인이 되었는데...




오네긴 님, 저에게 이 화려함.


허위에 찬 이 역겨운 삶.

사교계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제가 거둔 성공.

저의 멋진 저택과 야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에 이 모든 가면 무도회의 누더기와

모든 광휘와 소음과 악취를 버리고

책장과 황량한 정원이 있는

제 초라한 고향집으로,

당신을 제가 처음 뵈었던

그곳으로,

제 가엾은 유모가 묻힌 무덤 위에

십자가와 나무 그림자 어른거리는

소박한 교회 묘지로 가고 싶어요…….


, 행복은 손에 잡힐 듯

그토록 가까이 있었건만……! 그러나 제 운명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경박하게 처신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거듭거듭 말리셨습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따냐에겐 어떤 운명이 주어지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제발 절 그냥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가슴속에 자존심과

순수한 명예심이 있다는 걸 전 압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감춰서 뭐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몸,

영원히 그이에게 성실할 겁니다.(P265~266)

 


 뒤늦게 따찌야나에게 사랑에 빠진 오네긴의 정열적인 편지를 받았지만, 묵묵부답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도 도도했던 그녀, 수수한 옷차림에 창백한 모습으로 편지를 읽으며 말없이 눈물을 철철 흘리는 따찌야나를 발견한다. 화려하고 당당했던 겉모습과는 달리 오네긴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한 따찌야나의 직언에 오네긴은 벼락을 맞은 듯 참담한 상황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서 아름다운 것일까.


★ 발레리나 강수진의 <오네긴> 유투브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i2Mb3SDNqqM


 객기어린 행동으로 렌스키의 약혼녀인 올가(따찌야나의 동생)와 춤을 추며 렌스키를 분노에 떨게 하고 그에게 복수했다는 만족감도 잠시 렌스키가 결투를 신청해 온다. 결투... 이 결투로 렌스키는 주검으로 사라지는데... 이 장면 또한 푸시킨의 드라마틱한 짧은 삶의 투영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도 미모의 아내 때문에 연적 단테스와의 결투로 생을 마감했다는데 어쩌면 예언과도 같은 이 작품에 섬뜩해진다. 짧은 생애를 살다갔지만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푸시킨은 지금까지도 후대의 작가의 작품들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결핍에서 꽃이 핀다고 했던가. 유배 생활, 정치적인 괴롭힘 등 황제의 시종으로 살아야했던 굴욕 속에서도 그의 문학은 꽃을 피웠다.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부모 아래서도 산더미 같은 책과 가정교사, 할머니의 이야기가 푸시킨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백 여 년이 지난 작품임에도 오늘의 삶에서도 작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그려졌다. 어렸을 때 아무 뜻도 모르고 읽었던대위의 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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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더디 세계문학 12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김지혜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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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열 권짜리로 읽은 책에서는 앤이 길버트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이야기도 들어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앙숙이었던 앤과 길버트가 겨우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지난 일을 용서하고 화해한 부분까지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정말 재미있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특히 앤과 길버트의 자존심 싸움, 우정이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괜히 두근두근 마음 설렜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읽으면서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짠한 마음에 울컥하고 아이 같지 않은 말투에 웃다가 울고. 생각해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는 눈물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본 엄마로서 측은지심이나 공감대가 확장되어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 것 같다. 여전히 앤은 매력적이었다. 매일이 감탄이고 매사가 놀라움이었다.


초록 지붕 집의 매슈 커스버트 아저씨 되시죠?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 데리러 오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참이었어요. 못 오실 상황이 뭐가 있을까 혼자 온갖 상상을 하고 있었죠. 만약 오시지 않으면 저기 아래 기찻길을 따라 내려가서 길모퉁이에 있는 벚나무 위에 올라가서 밤을 보내려고 했어요. 저는 무서움을 잘 안타거든요. 그리고 흰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잔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대리석으로 된 방에서 머문다고 상상할 수도 있고요. 그렇죠? 게다가 오늘 못 오시면 내일은 꼭 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P22)


 매슈와 마릴라 남매는 노바스코샤의 한 고아원에서 남자 아이를 데려오기로 하고 브라이트리버 역에 갔는데 남자아이는 보이지 않고... 매슈와 마주친 역장이 어린 여자아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왜 남자아이가 아니냐고 물어봐야 하는 일이 숫기 없고 소심한 매슈에게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눈치라도 챘을까. 처음 보는 매슈에게 천연덕스럽게 말문을 여는 앤이다. 작고 뼈만 앙상한 아이가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달콤한 목소리로 재잘대는데 말없고 수줍은 예순의 매슈는 자기도 모르게 연민을 느낀다. 혼자서 수습하기 힘들어서 일단은 데리고 가서 마릴라에게 떠넘겨야겠다면서 초록색 지붕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아저씨와 가족이 된다니 꿈만 같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집으로 가는 내내 주위의 경치에 감탄하면서 잠시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


저를 원하지 않으시는 거죠! 제가 남자아이가 아니어서 싫으신 거죠! 제가 그 생각을 못했네요. 아무도 저를 원한 적이 없었죠. 영원히 지속되기엔 너무 아름답다는 걸 진작 깨달았어야 했는데. 저를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 저는 이제 어쩌면 좋죠?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요.”(P39)


황홀한 꿈을 꾸며 집에 왔는데 마릴라의 놀라는 반응에 앤은 눈물범벅이 된다.


아주머니께서 고아라고 생각해보세요. 집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왔는데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치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고요. 아주머니도 분명 울고 싶을 거예요. 제 인생에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고요!”(P40)

못 먹겠어요. 저는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음식이 넘어가겠어요?”(P43)


 인생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밥을 먹겠느냐고. 외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살아오던 매슈, 마릴라 남매에겐 감정이 풍부하고 꼬박꼬박 할 말 다하는 앤을 보고 참 당황할 만도 하겠다. 하지만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유감없이 표현하는 앤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이 난다.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매슈 아저씨는 좋은 분이세요. 동정심도 많으시고요. 제가 쉴 새 없이 재잘거려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심지어 제 수다를 즐기시는 것 같았는걸요. 저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영혼의 단짝을 만난 기분이었어요.”(p54)


차마 못 나가겠어요.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초록 지붕 집과 사랑에 빠진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밖에 나가면 저 나무, , 과수원, 개울이랑 친해지게 되고, 그러면 저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지금도 충분히 힘들어요. 더 힘들어지면 곤란해요. 다들 절 부르는 것 같아요. ‘, , 이리 와, 같이 놀자.’ 이렇게요. 하지만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결국 헤어질 거라면 사랑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게다가 사랑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여기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 때 정말 좋았던 점이 바로 그거예요. 저는 사랑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을 거라 생각했고, 아무도 저를 방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순간의 꿈이 되어버렸죠. 이제 제 운명을 받아들일 참인데 다시 운명을 거스르고 뛰쳐나갈까봐 두려워요.”(P55)


 매슈를 따라 오면서부터 온갖 상상을 하며 꿈을 꾸었건만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앤의 상황이 안타깝다. 하지만 결혼도, 아이도 키워보지 않은 앤이 마릴라는 귀찮기만 하다. 다시 고아원에 보내려고 화이트샌즈에 가서 스펜서 부인을 만나러 간다. 앤의 수다에 질려하는 마릴라는 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하루하루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해먼드 아저씨는 그곳에서 작은 제재소를 운영하셨고, 아주머니는 여덟 명의 아이를 돌보셨죠. 아주머니께서 쌍둥이만 세 차례 낳았거든요. 아이들은 숫자가 적당할 때는 귀엽지만 쌍둥이를 세 번이나 연달아 낳는 건 너무 많잖아요. 저는 막내 쌍둥이들이 태어났을 때 단호하게 말씀드렸어요. 얘들을 돌보느라 제정신이 아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P62)

…… 본마음은 그러셨을 거예요. 진심이 그러했다면 밖으로는 늘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나름대로 고민거리가 많은 분들이셨어요. 술주정뱅이 남편과 같이 산다는 거나, 쌍둥이를 연달아 세 번이나 낳아 키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그분들도 본마음은 제게 잘해주고 싶으셨을 거예요.”(P64)


 그렇게 엄격하고 냉정한 마릴라도 앤의 지난날 이야기를 듣고는 안타까움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얼마나 굶주리고 궂은일과 가난, 홀대로 지친 삶을 살았던 것일까. 정말이지 상상력이 없었다면 살아갈 수 없었을 것 같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앤이기에 견뎌내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마릴라는 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앤은 마릴라와 매슈와 가족이 되어 온갖 사건이 끊이지 않는 좌충우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 눈물이 나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저 지금 너무 기쁜데 말이죠. , 기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환희의 새하얀 길과 벚나무를 봤을 때도 기뻤어요. 하지만 그대와 지금은 달라요. 그때보다 훨씬 더한 기쁨이에요. , 너무 행복해요. 착한 아이가 되겠어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토머스 아주머니는 저더러 매번 꼬마악당 같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노력해볼게요.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요?”(P81)


초록 지붕 집에서 살게 된 앤의 꿈이 이루어져 기쁨을 이야기하는 뭉클한 장면이다.


집이라는 곳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 같아요. 전 초록 지붕 집이 참 좋아요. 지금가지 어딘가를 이렇게 좋아해본 적이 없었어요. 집이라고 느낄 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 마릴라 아주머니, 저 정말 행복해요. 지금 당장에라도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도가 하나도 어렵지 않을 것만 같아요.”(P114)


 순수하고 감수성 풍부한 앤이 내뱉는 어른스러운 말에 웃음이 난다.

여자아이라면 질색이었던 마릴라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모성애를 느끼며 마음이 혼란스럽다.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며 살 일이다. 앤처럼 세상에 대하여 감탄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아요. 마음이 아파요. 언젠가는 아주머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실 거예요. 제 마음을 찢어 놓으셨으니까요. 하지만 용서해드릴게요. 그때가 오거든, 제가 용서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저더러 뭘 먹으라고 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해요. 특히 삶은 돼지고기와 채소라면 더 더욱이요. 상처받은 사람한테 어울리는 음식은 아닌 것 같아요.”(P146)

제가 이실직고할 때까지 방에 가둬둔다고 하셨잖아요. 전 소풍을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뭐라도 고백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어제 밤새 침대에 누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가능한 재밌는 이야기를요. 그리고 까먹지 않으려고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국 소풍을 못 가게 되었어요. 전부 헛수고였던 거죠.”(P148)


 또 하나의 영혼의 단짝 다이애나와 친구가 되고 난생 처음으로 소풍을 가게 되어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데, 마릴라의 브로치가 없어져서 앤은 의심을 받게 된다. 브로치를 만져보기만 한 건데. 용서해 주겠지 싶어서 그토록 가고 싶었던 소풍을 가기 위해 거짓 고백을 했는데... 자신의 숄에 붙어 있는 걸 찾아내고 마릴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안타까운 상황과 어이없는 반전에 눈물과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날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지 않아?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불쌍해. 이런 날을 누려보지 못하잖아. 그 사람들도 언젠가는 좋은 날을 맞겠지 물론. 하지만 이렇게까지 눈부시진 않을 거야. 게다가 학교 가는 길마저 이렇게 사랑스러우니 황홀하지 않아?”(P151)

단풍나무들은 참 다정해. 항상 바스락거리면서 나한테 속삭이거든.”(P155)


다이애나 때문이에요. 전 다이애나가 너무 좋아요. 그 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른이 되면 다이애나는 결혼을 해서 저를 떠나 멀리 가버리겠죠? , 저는 그럼 어떡해요. 그 얘 남편이 될 사람이 너무 싫어요. 상상만 해도 너무 싫어요. 그 아이의 결혼이고 뭐고 상상을 했더니 죄다 싫었어요.”(P170)


 다이애나와 앤의 우정은 우정을 넘어 사랑하는 연인과 다름없다. 숲을 같이 걸으며 나무와 호수, 다리 등 온갖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어른 못지않은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학교에 가게 되고 친구를 사귀고 공부에 열중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앤을 보는 일은 대견스럽다. 어딜 가나 실수와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좋은 매듭을 지어가면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앤이 되어 간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앤의 말은 기억하고 싶은 말이 넘친다. 오랜만에 읽었어도 재미와 감동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앞으로도 사랑스런 앤과 자주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듣고 살아가는 힘을 얻어야겠다.



 사랑하는 나의 오랜 세상아! 넌 정말 사랑스러워. 내가 네 안에 살고 있다는 게 기뻐.”(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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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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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전집 14권에 해당하는 작품을 모두 읽었다. 연대순으로 읽었다면 좋았을 것을. 여섯 번째 소설을 맨 나중에 읽은 셈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가 죽으려고 마음먹고 집을 무작정 뛰쳐나가 산길을 걷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도련님으로 살아왔던 열아홉 살 청년이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사건의 배경에는 두 소녀가 있었다. 두 번째 소녀와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이 있었던 모양인데 두 소녀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모양이다. 그것이 부모와 친척에게 알려져 비난을 듣게 되었고 괴로운 나머지 가출하여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죽으려고 할 만큼 그렇게 큰일일 이었을까. 산 속에서 낯선 남자가 일을 해 볼 거냐고 물으며 접근하는 바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 조조라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겨서 한바 책임자에게 넘겨주는 사

람이다.

 

 한 번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는 순순히 따라간다. 일자리만 생기면 그것으로 족했고 갱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기뻤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을 뛰쳐나왔지만, 죽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햇빛을 보지 않고 속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음침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자기에게 너무나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붉은 담요와 꼬맹이까지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모은 조조는 이들을 데리고 산 속으로 산 속으로 향한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똑같이 갱부가 되겠다고 대답을 하는지 모두 다 똑같이 바보였다고 회상을 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 전락하게 되는 것보다 같이 전락할 길동무를 얻은 것을 아주 유쾌하게 생각한다. 소세키의 유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강에서 죽을 때는 반드시 뱃사공 한두 명을 끌고 가고 싶어지고 만약 죽고 나서 지옥에라도 가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이 없는 지옥보다는 반드시 요괴가 있는 지옥을 택할 거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여럿이가 마음은 든든한 법이다.

 


 숨 가쁘게 걸어가면서 자신의 행동이 가출이 아니라 소풍이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후회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얌전하다, 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었지만 광산으로 가는 길에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고 광산 안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한다. 얌전함이 극에 달하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게 된다는 말도. 아마도 갱 안에서 큰 고생을 할 듯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왜 사서 하는 것일까.

 


 조조가 한바의 책임자에게 를 데려다주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는 걸 알고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내하는 할멈을 따라 굿길에 갔는데 모여 있는 갱부들을 보고 압도되어 자신의 결심이 흐려진다. 그 갱부들의 얼굴은 그냥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얼굴이 아니었다. 둥글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런 느낌은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다. 모두 거칠고 난폭해 보이는데 그런 사람들이 만 명이나 된다니 완전히 기가 죽는다.

 


 희멀건 얼굴의 열아홉 살짜리 청년을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을 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 중 서른이 좀 안 되어 보이는 갱부가 여기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돌아가서 신문배달이라도 해라, 자기도 학교에 다녔는데 방탕하게 보내다가 여길 와서 굿길 밥을 먹다가 이렇게 되었다 나처럼 되면 끝장이다, 라는 충고를 해 준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겁이 나기도 하지만, 왠지 는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하층 노동자에게조차 동료로 대우받지 못하는 모욕을 받고 있다고. 그들은 규칙을 내세우며 여기는 십장도 있고 의형제도 있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되니까 어서 돌아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돈을 벌어도 그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기는 걸까. 이렇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는 돌아갈 결심을 하지 않는다. 왠지 젊은 혈기에 못할 일이 뭐 있나 하는 베짱이 느껴지기도 했다.

 


 ‘는 걱정이 되면서도 사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할멈이 밥 먹으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는데.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이 떠지지 않는다. ‘벽토로 불리는 안남미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다. 그들은 안남미도 모르면서 갱부가 되려고 한다고 조롱을 하기 시작한다.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그것도 적응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은 갱부의 조수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시추, 호리코, 야마이치가 죽었을 때 하는 장례식이라는 잔보의 행렬을 보고 숙연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산 속 추위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불을 돈을 내고 덮어야 한다. 집에서 쓰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럽다. 자다가 빈대에 물리면서 비참한 생각이 든다. 갱 안의 둘러보는 일을 안내하는 하쓰 씨는 여기가 지옥의 입구라고 하며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 말에도 조롱이 섞여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갱부로 전락한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네가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경멸까지 느껴졌다. 따라서 들어가는데 하쓰 씨는 살아서 나갈 생각이라면 건방지게 굿길 같은 곳엔 들어오지 않는 게 좋다고 혼잣말처럼 한다. 그럼에도 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돌아가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이렇게 갱 안의 묘사를 실감나고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갱 안을 따라가는 과정이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암담한 기분이었다. 속세의 길과 전혀 다른 굴곡진 길, 절벽을 넘어 급기야는 허리까지 차는 물웅덩이가 있는 마지막 갱까지. 서서 갈 수 없고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곳도 있다. 열다섯 개나 되는 사다리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식은땀이 나게 했다.

 


 ‘의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처음엔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모면하려고 가출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갱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뻤다. 다음엔 그곳에서 속세의 사람 모습이 아닌 그들을 보고 후회와 호기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하쓰 씨의 안내를 따라 갱 안을 둘러보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는 여기서 죽으면 큰일이다,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게곤폭포로 가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서 갱 밖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하쓰 씨와 굿길 입구에서 8번 갱까지 견학을 하고 돌아 나오다가 길을 잃는다. 갱부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인품을 가진 야쓰 씨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일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갱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마음을 되돌린다.

 


어둡기만 했다. 손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는 손발도 보이지 않았다. 손에 닿는 감촉, 발에 닿는 감촉만으로 살아서 간다. 살아서 올라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오르는 것이고, 오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 사다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P268) 

 


 어둠 속에서 손발의 감촉만으로 앞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과 함께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다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건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는 갱부는 되지 않았다. ‘먹물을 좀 먹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장부를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 와서 며칠 동안은 그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외계인 취급을 당했었는데 갱부들의 월급을 계산하고 나누어 주는 장부 정리원이 되자 상황은 역전된다. 그 일을 다섯 달을 하고 나오게 된다. 갱부가 되려고 했으나 갱부가 되지 못해서였을까.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능청스러움을 보인다.

 


 하지만 소설가 장정일은 해설에서 반론을 펼친다. ‘소설이 되지 못했다는 작가의 허튼소리는 모두 잊어야 한다고. 어쨌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가출했지만 여태까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이 갱부가 되진 못했지만 갱부의 일상을 접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또 소세키의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폭포에서 자살한 일에 대한 석명이라고도 한다. 후지무라 미사오가 죽기 전에 남긴 글에 인생은 불가해(不可解)!’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 고뇌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며 힘써 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래서 여로(旅路)소설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교양소설이라는 그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 소세키의 바람이 퇴색되어 이웃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이 갱부로 전락한 일은 심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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