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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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누구나가 동경해 마지않는 여행지이다. 나도 두 차례의 교토 여행을 했는데, 생각해 보면 거의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녔다. 금각사, 은각사, 기요미즈데라, 아라시야마, 철학의 길 등 거의 외관을 둘러보는 것에 그친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인증하는 것에 만족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그런 패턴의 여행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은 교토의 오래된 노포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내력을 듣는다. 한 가문의 노포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굴곡진 삶은 물론 근현대사의 격동의 시간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생생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일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골목 도쿄』는 거의 음식점에 관한 노포 이야기였는데, 이 책은 열 곳의 가게 중 음식점에 대한 것은 이즈우, 토카사이칸, 혼케오와리야 등 세 곳이고 나머지는 목욕탕, 게스트하우스, 술도가, 카페, 서점, 도장 가게, 500년의 역사가 있는 사탕 가게 등 다양한 업종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만큼 폭넓은 분야의 노포에 대한 장인정신 뿐만 아니라 가게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도 노포로 거듭나는데 지대한 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25년간 교토에서 살면서 교과서에도 소개된 대표적인 문화라고 부리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오랫동안 대를 이어온 기업의 발자취와 그들의 증언, 자료로 남아있는 객관적인 역사를 재구성하여 살아있는 교토의 역사와 만나고 싶은 의도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어판으로 세 권이나 냈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특이한 이력도 놀라웠다. 여기서는 3대 이상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노포들을 다루고 있다. 3대 이상이라면 부모나 조부모의 가업을 잇고자 하는 의지와 가문의 전통과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경향이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세월을 견디며 노포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의 배경속에 빠지지 않는 것이 사람과 따뜻한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거래처를 귀하게 여기고 손님들의 눈과 혀를 기쁘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자산이다. 일단 맛을 보증할 수 있다면 손님을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오늘에도 가게나 기업을 운영하는 행태를 보더라도 어떤 사업이 잘 된다고 하면 시세를 확장하기 바쁘다. 문어발식으로 확장을 하고 초심을 잊어버린 방만한 경영은 부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고등어 초밥으로 까다로운 교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이즈우의 경우는 그러한 초심을 잘 간직한 사례다.


올라간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계속 올라갈 수는 없어. 올라가면 언젠가는 떨어질 때가 오는 법이야.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크게 벌인 것을 줄이는 일은 힘들단다. 고용한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빚을 갚도록 해야 하니까.”(p40)


 참으로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단순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노포 이야기 속에서 삶의 처세도 찾을 수 있다. 호황이던 시절 가게를 넓히자고 했지만 선대의 지혜롭고 확고한 운영 방침으로 230년이나 되는 전통을 갖게 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술이란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술을 잘 못하지만 술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오래전 전통주를 지키려는 장인에 대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고유의 맛을 유지하고 생산하는 과정도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판로 개척이나 마케팅 전략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쓰이 주조1726년에 창업한 일본 전통주를 만드는 회사인데, 13대 마쓰이 하루지에게 데릴사위로 들어가 가업을 잇는 경우라서 흥미를 끌었다. 지금도 일본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소수에 그칠 정도로 가부장적 권위가 짙다고 하는데, 그 당시 처가의 성을 따르면서도 전통의 명맥을 이었다는 점이다. 전통과 가치를 그만큼 중시했다는 것이겠지.


 또한 맥주, 소주, 와인 등 각국에서 수입되는 술이 넘치는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세월을 버티며 살아남았을까 궁금해진다. 2013년 교토 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배조례(교토 시 청주 보급 촉진에 관한 조례)를 교토 시장과 시의회가 힘을 모아 제정해서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된다. 건배조례의 목적은 시의 전통 산업인 청주로 건배하는 문화를 만들어 청주의 보급을 통해 일본 문화의 이해 촉진에 기여하는 것이란다. 전통주의 명맥을 유지하고 판매의 활성화를 위해서 관 차원에서까지 힘을 보탠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 상황에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을 좋아해서 여행 때마다 서점을 둘러보게 된다. 고서점 거리로 유명한 도쿄의 진보초나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츠타야 서점을 여러 차례 가보았다. 1872년 창업한 마루젠 서점은 좀 생소하다 싶었는데, 몇 년 전 도쿄 여행때 오차노미즈 역 근처의 서점에 더위도 피할 겸 들어갔던 곳이 바로 마루젠이었다. 1869년 하야시 유키치가 설립한 마루야마상사가 그 전신이라고 한다. 그는 개업의로서 의료 도구나 약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등 서양 문물을 폭넓게 수입해 판매하는 것으로 일본인에게 근대화를 실감케 하였다. 이러한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마루젠 교토 지점은 2005년에 문을 닫게 되는 위기에 처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놀랍게도 마루젠 서점이 부활했다는데... 서점마다 사람들이 북적였던 그들의  분위기를  봐 온 터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후계자들이 현대식 교육을 받고 일부는 유학생활을 한 엘리트들도 있었는데 가업을 잇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로웠다.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이유로 또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성장하여 자연스레 가업을 잇는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사례가 많았다. 몇 년에 걸쳐 혹독한 수행을 거치며 준비를 하는 과정도 대단했다. 전통과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와 분위기가 자연스레 스며든 가풍이 가업을 잇도록 이끄는 것 같았다. 특히 혼케오와리야의 점주가 된 프리랜서 사진작가였던 이나오카 씨가 가업을 잇게 된 계기는 감동을 준다. 외국을 동경해서 해외에서 살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자기 안에 뿌리내리고 있던 어릴 적 교토 풍경이나 추억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다고. 이런 것을 볼 때 가업을 잇고 전통과 가치가 축적된 노포를 만드는 영광은 의무감 보다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아닐까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맛을 찾고 어릴 적 향수를 그리워하는 단 한명의 손님이라도 반갑게 맞이하는 따뜻한 마음 말이다. 이러한 교토의 대표적인 노포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에 대한 다른 관점을 알려주었다. 너무 현대적인 건물의 외관과 시세 확장으로 업종도 자주 바뀌는 우리의 경우를 볼 때 분명히 부러운 이야기였다. 돈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에서 노포는 탄생하지 않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교토 여행은 그들의 시간과 역사가 켜켜히 쌓인 노포를 돌아보고 싶다는 기대감에 충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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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 목욕 가방 들고 벳푸 온천 순례
안소정 지음 / 앨리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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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차례 일본 여행을 했지만 온천에 가 본 적은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평소에도 목욕탕에 가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욕조에 따끈한 물을 받아서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온천 명인이 되었다는 작가를 따라 온천 여행을 하다 보니 정말 가보고 싶어졌다. 피부에도 좋고 통증을 치유하기도 하는 온천이 좋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어온 것도 그렇고. 작가가 명인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떠나서 그 과정은 재밌기도 하겠지만 좀 번거로워 보이기도 했다. 88군데의 온천을 다니고 도장을 받아야 명인이 되는 것인데 하루에 열군데 정도를 다녀야 한단다. 그렇다면? 옷을 벗었다 입었다 열 번 정도를 반복해야 한다. 글쎄 나 같으면 못하겠다 싶어서 웃음이 났다.

 무겐노사토 슌카슈토(몽환의 마을 춘하추동)온천. 이름처럼 멋지고 환상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온천 순례가 아니었다. 같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과 뜻밖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친구가 되고 온천을 사랑하는 사람, 재정난 때문에 문을 닫았다가 좋은 온천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함께 관리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힘을 얻어 운영한다는 푸근한 이야기를 알고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아주 오래되어 낡은 듯한 온천부터 호텔의 신식 온천, 특이하고 이색적인 온천까지 다양한 곳이 소개된다. 백년도 넘은 온천, 극장을 끼고 있는 온천, 식물원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온천 그 개성도 참 다양하다. 전세를 내다시피 유유자적 혼자 온천을 즐기는 작가의 모습에서, 오롯이 자신의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호사를 누리는 그런 시간들이 정말 부러웠다. 어느덧 나도 명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은 어떤 모습의 온천이 나올까,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기기 바빠진다.

 

  

꿈이 뭐예요?”

과거의 나는 이 질문에 직업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게 직업적 성취가 아님을, 열정도 언젠가는 소모되는 자원임을 깨닫기 시작한 20대 끝자락에서 꿈을 놓치고 오히려 안도했다. 꿈꾸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진작 알았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P4-시작하며(꿈 대신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꿈꾸는 것과 행복은 다른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자신이 하는 일로 성공의 승부를 걸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고 시간에 쫓기게 되고 행복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게 되기도 한다. 행복이란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것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소개하는 온천의 주소, 영업시간, 교통편, 입욕 요금과 시설 정보가 자세히 들어있다.

각 장에는 먹거리와 머물 숙소의 정보도 들어있고, 온천 명인에 도전한 이야기인 만큼 온천 축제의 정보, 건강한 입욕을 위한 안전 수칙 등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찜질할 때도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참 좋았을 것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 또한 온천 명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즐기는 것. 그러면서 내게 알맞은 입욕법을 알아가는 것. 온천 명인이 된다는 건, 그런 일들을 알아가는 게 아닐까? 130초의 시간은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내게 가장 알맞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자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온천 명인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P39)

 

 명색이 온천 명인에 도전 중인데 뜨거운 물속에 오래 있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라고 자위한다. 나의 상태에 가장 알맞은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 일상에서도 자신을 향한 너그러운 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을 하다가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해서 나는 안 돼, 라며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한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하나씩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매일을 산다는 건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쓰바라 온천은 전혀 다른 말을 걸어왔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고. 매일은 새롭게 도착하니까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세상에 온천에게 이렇게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을까. 엉뚱해서 웃음이 절로 났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물처럼, 꾸준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온천을 좋아해야지. 그렇게 매일을 맞이해야지.’(P198)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서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작가는 매일 다른 온천을 만나면서 어느 순간 온천과도 마음을 공유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온천 또한 자신 속에 들어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찰랑거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도 했을까. 아무도 없는 공간, 누군가의 손길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온천을 보며 편안한 위로를 받으며 매일을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차나 식사를 주문하면 온천은 무료 이용할 수 있는 등 개성 넘치는 온천이 많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몸을 씻는 것처럼 마음도 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시간. 온천에 홀로 간다는 것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P310~311)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많은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나도 그렇고.) 뭔가 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는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렇게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고 싶어진다. 물아일체가 된다는 것은 행복의 다른 말이 아닐까.

 

삶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니라고. 온천에서 몸을 단정히 하는 일처럼, 그저 매 순간을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온천을 만난 뒤, 평범한 매일 그리고 보통의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질문자에게 되묻고 싶다. “좋아하는 일은 모두 특별하지 않나요?” 사랑에 빠지면 연인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처럼, 온천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천이 내게 대단할 뿐. (중략) 벳푸 온천 명인 도전 길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상장도 수건도 아닌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누구에게나 유효할 거라는 희망도 함께였다.’(P317~319)

 

 삶이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고 행복도 그리 거창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꿈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행복을 찾은 작가가 달리 보였다. 탕 속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이 몸을 닦는 것처럼 매 순간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을, 평범한 매일과 보통의 자신을 조금 더좋아하게 되었단다. 무엇보다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요 근래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권 읽었다. 오래된 가게를 좋아해서 도쿄 골목을 돌아다닌 작가 이야기, 미술관이 좋아서 일본 열도의 미술관을 탐방한 이야기, ‘꿈 없음에 만족하던 어느 날’ ‘벳푸 온천 명인을 알게 되어 온천 명인에 도전했다는 안소정 작가의 이 책까지.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 이야기다. 나 또한 일본에 관심이 아주 많은 터라 언젠가 일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 도전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 그것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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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산책 -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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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은 미세먼지로 잔뜩 찌푸린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어 마음마저 그런 기분에 휩싸이기 쉬운 요즘, 봄 향기가 물씬 나는 싱그러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꽃과 나무 등 자연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세상일까,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 이소영은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가이자 식물학자이다. 10여 년 동안 식물원과 수목원, 산과 들, 정원과 공터를 찾아 가 보고 만난 다양한 식물과 사람의 이야기다. 꽃과 식물을 채취하고 세밀화를 그리며 정성을 쏟는 일이기에 누구보다 남다른 애정이 생길 것 같았다. 더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 닮고 싶어지고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초록빛 숲 속에서 떠도는 신선한 공기처럼 느껴져 감동이 일었다.

 

 지난겨울 12월에 제주도 여행길에 들렀던 여미지 식물원이 생각났다.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선인장이나 평소에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짙은 초록으로 무성한 잎들이 달린 나무들 사이를 거닐면서 바쁜 삶으로 경직돼 있던 마음을 유연하게 해 주는 느낌이 좋았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던 관계로 워낙 넓은 식물원의 다양한 수목과 꽃들을 자세히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보통 마음을 치유하고 쉼을 위해 식물원에 가곤 한다. 하지만 식물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닌 종의 보존을 위해 식물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한다. 분류학자, 생태학자, 원예학자, 조경학자 등 식물세밀화가 까지 식물을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숨겨진 노력 덕분에 우리의 삶이 한층 건강하고 풍요로워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국내의 수목원은 물론 세계 각지의 식물원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다른 나라의 식물원에 대해서 다룰 줄은 생각도 못했다. 특히 일본의 하코네 습생화원이 인상적이었다. 언뜻 스치듯이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방치되어있던 논을 습지로 복원해서 조성한 곳으로 1979년 문을 열어 200여 종의 습생식물 외에도 1100여 종의 고산식물과 일본의 자생식물 등 1700여 종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3월부터 11월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곳은 매년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정원이 떠오르는 풍경,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정원으로 동북아 자생 풀들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우리의 자생식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고 그럴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던 식물의 세계도 우리 인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보고 들은 적만 있는 식충식물에 대한 이야기다. 벌레가 식물의 잎을 갉아먹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벌레잡이식물은 원래 다른 식물들과 함께 숲과 들에서 살았는데, 작고 약해서 점점 습지나 암벽으로 밀려나면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은 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작은 곤충이나 동물을 통해서 영양분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 식물들이 살기 위하여 생존 방법으로 사냥을 택한 것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끈끈이주걱은 끈끈한 점액질에 달라붙은 동물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 둔 후 지쳐 죽도록 해서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그에 따라 변화하려는 몸부림이 있었기에 식물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반면, 강자인 인간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대하며 훼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식물을 다룬 이야기지만 과일 이야기도 나온다. 과일은 우리 생활과 너무나 밀접하고 친숙해서 생각지 못했던, 과일도 식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식물세밀화라는 말이 생소하기도 했고 왜 굳이 그림이 필요할까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알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원예식물의 식물세밀화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단다. 사진으로는 식물의 종 특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데, 사진으로 담으면 식물 개체 각각의 변이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밀화에서는 어떤 종의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특징은 드러내되, 개체의 환경 변이 등은 축소해 표현하므로 식물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특징을 잡아내기도 용이하기 때문에 식물 연구가 발달한 미국, 영국, 일본에서는 그림을 통해서 발표한다고 한다.

 

 최초의 식물세밀화는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16세기 최초의 식물학자들이 약용을 위해 식물의 생태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생체를 채집하며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 약용식물을 얻기 위한 식물 연구가 식물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서 인류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식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식물을 이용하기 위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약효가 증명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이름이 붙여지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식물의 가치는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지에 달려 있고, 결국 그것은 인간이 결정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들은 식물을 바라보는 내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그러면 식물에게 미안해지고, 또 나는 그만큼 식물을 더 사랑하게 된다.’(P166)

 

 한 종의 식물을 식물세밀화로 그려내는 과정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시기를 예측할 수 없으니 오랫동안 그 식물의 생육과정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에 수십 번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식물을 채집하고 형태를 기록하며 연구하는 일련의 활동 속에는 식물들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종의 역사가 들어있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임을 깨닫게 해 준다. 자신이 뿌리를 내린 환경에 순응하고 긴 시간 동안 주변의 환경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는 식물에게서 인간인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과일이나 화분에 심겨진 화초들이 소비자의 기호와 입맛에 따라 선택을 받으면 인기 있는 상품이 되고 선택받지 못하는 멸종되기에 이르는 원예 산업의 역사적 사례에서도 사람들의 심리가 보였다.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번영과 소멸이 반복되는 식물세계의 흥미로운 변화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식물을 키운다. 관상, 식용, 약용 등 식물로부터 유익함을 얻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키울 때 잘 죽지 않고,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좋은가를 묻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질문을 통해서 나는 식물에게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지만, 식물은 내게 많은 걸 해주길 바란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데...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콕 집어 말하는 이 장면에 웃음이 난다

 

 여미지 식물원에서 정말 신기했던 것은 천장이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화초들이었다. 이 책에서 알았는데 흙이 필요하지 않고 공중에서 자라는 틸란드시아였다. 선인장과 같은 다육식물이지만 전혀 다른 품종처럼 외관이 다르다. 흙이 필요 없으니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공기 정화 효과에 실내 장식의 기능도 활용할 수 있으니 사람들의 인기를 끌지 않을 수 없겠다. 사람들이 바라는 심리와 맞아 떨어져 운명이 갈리는 틸란드시아와 리톱스의 사례를 보아도 마냥 편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늘 그 자리에 서있는 나무, 화초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바라볼까. 봄엔 푸릇푸릇 새싹으로 여름엔 짙은 녹색의 그늘을 베풀어주는 나무들. 꽃을 피우고 열매를 한없이 내어준다. 그들의 변화 속에서 위안을 얻고 내일의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어쩌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그냥 지나쳤던 주변의 식물의 꽃 이름을 알아보고 한 번 더 돌아보는 작은 노력으로도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저자는 식물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이 리뷰는 채널예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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くじけないで (單行本)
柴田 トヨ / 飛鳥新社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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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예스블로그에서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이벤트가 한창이다. 번개 퀴즈 이벤트가 자주 나오더니 이제는 필사 리뷰 이벤트까지! 흥미진진한 예스블로그다. 여러 이웃들의 필사 리뷰가 속속 올라오기 시작하니 나도 마음이 살짝 조급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으로 할까. 아니면 다른 뭐가 있지 않을까 며칠을 생각하다가 아! 그거다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러분은 책 한 권을 모두 필사해 본 적이 있으신지. 나는 분명히 있다.물론 산문으로 된 작품을 모두 필사하는 것은 손도 아프고 오래 걸려서 좀 힘들겠다. 시바타도요의くじけないで(약해지지 마)는 내가 오랫동안 중단했던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보게 되었다. 그냥 단지 한 번 읽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공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원문을 해석하고 그것을 필사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처음엔 이삼일에 한 편씩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설렜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모르는 단어 사전도-네이버 사전을 활용했다-찾아야지, 필사를 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예쁘게 잘 쓴 것을 올리고 싶어서 여러 번 연습해야 했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또 핑계가 있다면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책도 읽어야지. 이렇게 점점 일주일, 한 달로 갭이 벌어지더니 아주 오래 걸려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마흔 두 편의 시를 한 편씩, 173월에 시작해서 185월 말에 마무리하고 마음이 뿌듯하고 후련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마치 연재를 마친 것 마냥) 예스블로그의 이 필사 리뷰 이벤트 덕분에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음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1. さびしくなったら (사비시쿠낫타라/쓸쓸해졌다면)

 

 

  참으로 따뜻하고 담백한 시다. 혼자 있다가 쓸쓸해졌을 때 시인 화자는 마냥 울적해 하지 않는다.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도 반가운 친구가 된다. 그 따뜻한 햇살을 손으로 건져 얼굴에 대어보고는 어머니의 온기를 떠올리는 화자가 상상되어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는 다시 살아갈 힘을 주고 용기를 준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어도 떠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웃음, 따뜻했던 말들은 살아남은 사람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테니까.

 

2. くじけないで (쿠지케나이데/약해지지 마)는 이 시집의 타이틀 시다.

 

 

  시바타 도요는 어렵지 않은 평범한 언어로 우리에게 위로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제각각 여러 이유로 너나없이 힘들고 불안한 시절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럴 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친 우리에게 아주 약간의 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나만 힘들다고 한숨 쉬지 말자.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듯이 고통도 마찬가지다. 햇살과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꿈은 얼마든지 꿀 수 있다. 허황된 꿈이든 아니든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중심을 잡으면 된다. 살아있기에 괴로움, 슬픔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 세기를 살다간 노련한 경륜의 시인 화자는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로 나태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즐거울 수 있다.

 

3. 貯金( 저금)

 

 

 

 2009년 신문에 대서특필 된 이 시를 접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지극히 삶의 냄새가 나고 딱딱하게 느껴졌던 이런 단어도 시가 되는구나. 사람들에게서 받은 친절, 상냥함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쓸쓸해졌을 때 그 따뜻한 마음을 꺼내서 자신을 위로한다니. 저금한 돈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한방에 사라진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 어려울 때 받았던 친절한 마음은 두고두고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희망이 된다. 이 시를 읽고 음미해 보면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답을 준다.

 

4. はくる(아침은 온다)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떤 이유로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사람의 빈자리는 그 사람이 떠나기 전까지는 아마도 모르겠지. 영원한 것은 없으니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텐데 가끔

그걸 잊고 산다. 나중에 이래서 후회하고 저래서 후회하곤 한다.

 시인 화자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었다. 강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어쩐지 익숙하지 않다. 이럴 때 어색함을 내려놓고 손을 내미는 이웃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듯이.

나만 불행한 것 같아, 라며 한숨짓지만 모두가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비슷하다.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무던한 것 같은 삶에도 아침은 온다. 밝게 떠오르는 태양, 그 밝고 따뜻한 햇살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과 용기를 주지 않은가.

 

 저자しばたトヨ[柴田トヨ] 시바타도요는 일본 도치기(?木)현 도치기 시에서 출생했으며 이 시는 백수(伯壽)에 출간한 처녀 시집이라 한다. 약해지지마(くじけないで)(2009)의 판매 부수가 150만을 돌파, 일약 유명 시인이 되었다. 나이 구십에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백수에 시인이 되었단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좋아하는 일로 무언가를 이루는 데는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해 준 시인이다. 하늘과 바람과 햇살 등 자연이 시에 자주 등장한다. 아들, 남편, 힘이 되어 준 지인, 사회적 관심사 등의 이야기가 시가 되어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준다. 가끔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은 시, 시바타도요의 시는 삶을 사랑하게 해 주는 시다.

 

 2019년 2월 예스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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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시집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지음, 정제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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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이라는 루미를 언급한 이야기를 여러 권의 책에서 만나고 궁금했었다. 무려 800년 전에 태어난 시인의 시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종교인으로 추앙받는 루미를 이제라도 만나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페르시아어의 코란’, ‘신비주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6권 분량의 마스나비1권을 발췌 번역한 루미 시집은 총 75편으로 되어있고 신, 고독, 사랑, 삶을 노래한 산문시다. 전통적인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신과 하나가 되기를 진정으로 원했으며 노탁발승 샴스 타브리즈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고 그와의 안타까운 이별의 그리움을 태양이나 불꽃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래전에 쓰인 루미의 시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였다.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시도 있었고 삶에 임하는 태도를 알려주는 교훈적인 내용, 마음을 치유해 주는 편안한 시도 있었다. 이 시집을 시작으로 나머지 마스나비도 차례로 번역되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삶에서 슬픔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삶은 불타는 듯한 슬픔과 함께한다. 삶이 끝난다면 가도록 두어라. 하지만 아! 당신은 머물러라. 당신같이 아름다운 자가 없으니.(중략)

조개는 인내하지 않으면 진주를 품을 수 없다. 사랑으로 탐욕이란 옷을 찢는 자만이 욕심과 삶의 어려움에서 완전히 정화된다.

그러니 기쁘라! ! 사랑은 우리의 행복. ! 모든 문제를 고치는 명의. ! 헛된 오만과 긍지의 치료제. ! 우리의 플레톤이자 갈레노스.

흙으로 빚어진 육신은 사랑을 통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신도 춤추며 온다.(P20~21)


고작 발에 박힌 가시도 빼내기가 힘든데 하물며 마음에 박힌 가시는 어떻겠습니까?

마음에 박힌 가시는 아무리 작은 가시라 해도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준 흔적입니다.(P25)


(전략)새는 아래로 위로 납니다. 새의 그림자도 새처럼 납니다. 어리석은 자는 새의 그림자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달리다가 곧 지치고 맙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의 그림자인 줄도 모르고 그림자의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림자를 향해 화살을 쏘느라 화살집이 빕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자를 좇느라 화살집이 비고, 삶이 저물어갑니다.

그림자를 쫓는 사냥에 삶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의 그림자는 당신을 보살피고 그의 그림자를 통해 당신을 보호합니다.(P35~36)


 8백 년이나 되는 오래전에 지은 시이지만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함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겉모습을 좇아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기쁨을 놓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아무리 빨라도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 그것을 깨닫게 될 때는 세월은 벌써 저만큼 앞서가고 한숨만 남을 뿐이다.


(전략)스승을 찾으십시오. 죽음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죽음에 대해 말합니다. 당신을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스승을 찾지 마십시오. 모든 스승은 당신 자신입니다.

그 스승을 아는 것 또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주체가 되어 사람들의 대상이 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방향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방향을 따르십시오.(후략)(P38~39)


  죽음에 대한 지혜를 알기 위해 스승을 찾으라한다. 성공이라는 명제 아래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이다. 유한한 인생임에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가끔 잊고 산다. 다행인지 최근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책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죽음을 자주 상기한다면 현재의 시간을 좀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혼자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기에. 스승은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승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전략)석류를 산다면 웃고 있는 것을 사십시오. 그 웃음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소식을 전해줄 것입니다.

웃고 있는 석류가 정원을 웃게 하듯 지혜로운 자와의 대화는 나를 지혜롭게 합니다.

당신이 아름다운 대리석이라면 당신 마음의 주인에게 닿아 보석이 될 것입니다.

영혼에 순결한 사랑이 흐르는 자에게 마음을 주십시오.

선한 사랑이 없는 자에게는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절망이 있는 곳으로 가지 마십시오. 희망은 분명 존재합니다.

어두운 곳을 향하지 마십시오. 태양은 분명 존재합니다.(후략)(P52~53)


 석류가 웃고 있는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멈춘다. 알알이 잘 영글어 빨갛게 익은 모습일까. 넘치는 기쁨으로 밝게 웃는 얼굴을 활짝 핀 꽃에 비유하듯이 석류의 모습도 그렇겠지. 한 가지 걱정에 빠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음먹기에 따라 절망보다는 희망을 선택할 수 있다.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해를 바라보며 불끈 힘이 솟아오르지 않은가.

 

말은 갑자기 혀에서부터 뛰쳐나온다.

그것은 활에서 나오는 화살과도 같다.

! 아들아, 쏘아진 화살은 되돌릴 수 없다.

급류를 막으려면 수원지를 막아야 한다. 수원지를 막지 않으면

온 세상을 집어삼킨다. 온 세상을 황폐화한대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후략)(P78) 


베푸는 자에게는 계속하여 풍족하게 해주시고 그들이

베푸는 만큼 채워주십시오.

인색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마시고 그들이 인색한

만큼 빼앗아주십시오.

사랑에 있어 너그러운 사람은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나무의 잎이 진다면 영혼의 가난함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너그러움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대도 그의

자비로움이 당신 손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씨앗 창고는 비겠지만 밭에서 곡식이 자랍니다.

씨앗을 창고에 두기만 한다면 쥐가 와서 모조리 먹어버릴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일들로 가득합니다. 그의 공고한 사랑을 느껴 보십시오.

(P120~121)(시 전문)


 베푸는 일은 따뜻한 관심이며 사랑이다.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일은 줄어드는 마이너스가 아니다. 나눔은 따뜻한 사랑의 전파를 타고 흘러간다. 씨앗을 심은 후 빈 창고와 밭에서 풍성하게 자라는 곡식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베푸는 일은 씨앗을 심는 일이다. 씨앗은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며 풍성한 사랑으로 돌아온다는 지혜를 깨닫게 된다.


(전략)우리가 열망하는 모든 달콤한 것들은 그 안에 시간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루비가 아름답게 빛나고 광채가 나려면 수년의 햇살을 받아야 하고, 채소가 자라기 위해서는 두 달이, 장미가 자라기 위해서는 꼬박 일 년이 걸립니다.

뱀의 독이 약이 될 때가 있고 불신도 허락될 때가 있습니다.

덜 익은 포도는 떫지만 잘 익으면 아주 달콤해지고

항아리에 담겨 발효되면 훌륭한 식초가 됩니다.

현명한 자가 독약을 마시면 넥타가 되지만 미성숙한

자가 독약을 마시면 감각이 마비됩니다.(P131~132)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쓰디쓴 인내와 시간의 비밀이 필요하다는 것은 진리다.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성공에는 절실함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세상만사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보석 루비, 채소와 장미꽃도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

엄청난 슬픔과 마음의 상처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하지 않은가.

세월이 약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존재인가보다.


(전략)부족함은 뛰어남의 거울입니다. 고난은 힘과 영광의 거울입니다. 모든 반대되는 것은 그 반대되는 것에 의해 보입니다. 식초를 먹고 나면 꿀이 달다는 것을 압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고 완벽해지기 위해 급히 서두르는 자는 그이 곁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 자신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자만심만큼 영혼에 고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P164)


 결핍 뒤에 뛰어남이 숨어있다. 어둠의 고난은 밝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강단 있는 마음이 있다면 원하는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이란 비슷한 것 같다. 그토록 오래 전에 선지자들이 고민하던 것을 지금의 우리도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인간우리의 삶은 그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루미의 시를 만나고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곁에 두고 시인 루미와 자주 만나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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