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소송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18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제헌 옮김 / 별글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 이 두 작품을 읽고 안타까움과 혼란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며 상념에 빠졌던 적이 있다. 특히 <소송>에서 느낀 혼란스러움은 지루함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이 현재 벌어진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 별글 출판사의 이 작품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읽었던 작품의 애매함을 완화시켜 보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불편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혹자는 공평하다고 하고 혹자는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부조리한 인간사의 일면을 다시금 확인한 기분이 들었다.


<변신>

 그레고리 잠자는 악몽에서 깨어난 어느 날,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자 기둥이었고 사랑과 감사의 존재였던 아들이자 오빠가 말이다. 우상 같은 존재였던 아들은 이제 수치심과 더불어 귀찮은 존재로 바뀌어 간다. 집안을 위해 일했던 아들이 이제는 보살핌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인데, 한낱 벌레에 불과해 보이는 것을 아들과 동일시 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가족들의 심리변화를 보는 과정은 실로 섬뜩하다. 마지못해 먹을 것을 주지만 가족과 함께 마주보거나 하지 않고 차단한다.


 벌레가 된 후에도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애쓰는 잠자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용을 쓰지만 무거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거기다 커다란 몸에 비해 어이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서로 엉켜 버둥거린다. 가위에 눌려 아무리 일어나려고 애써도 꼼짝도 할 수 없었던 답답함이 연상된다. 의식은 전과 같이 똑같이 그레고리 잠자 이건만. 그렇게 애를 썼지만 출근 시간을 놓치고 회사의 이사가 집으로 찾아오고 급기야는 벌레가 된 잠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몸에도 불구하고 더욱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결심을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들리는 건 벌레의 외침뿐이다. 자신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점점 절망에 빠진다. 아버지 얼굴에 나타난 당황한 빛을 읽어내며 이것이 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않았을까 안절부절 못하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으로 체념과 슬픔에 빠지면서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한다. 왜 겉모습은 벌레로 바뀌는 벌을 내렸으면서도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을 주었을까. 벌레로 바뀐 모습의 잠자는 남은 가족에게 이미 오빠와 아들이 아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은 성가시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몸에 박힌 채 죽어간다.


 경제적으로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는 사람만이 가족의 일원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좀 부족한 면이 있어도 감싸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는 없을까. 가족이 되는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문득 세상에 던져진 존재들이 사랑으로 혹은 어떤 인연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편안한 세상이 되었지만 소외감과 우울증에 사로잡히는 현대인의 생활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벌레가 되어 자신의 얘기를 끊임없이 하지만 듣는 이에겐 시끄러운 웅얼거림이 되어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민낯을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었다. 이 작품은 소외된 사람의 모습을 벌레로 형상화함으로써 표현주의적 작품이며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다루는 면에서 실존주의 소설로도 간주된다.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송>

 이야기의 주제가 딱 떨어지는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 그런데 <소송>은 읽으면서도 읽은 후에도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어떤 죄목인지 누구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는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구속영장도 없이 어떤 힘에 끌려 1년 동안이나 소송에 휘말리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요제프 K의 이야기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고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 앞으로 나아가지만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나고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두려움이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갑작스런 자연재해나 사고 등에 맞닥뜨려 주저앉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좀 다른 경우지만 주인공 요제프 K의 경우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하는 면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K는 무작정 의기소침하거나 하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사건을 좀 가볍게 보는 면이 있었다. 변호사의 애인을 희롱하거나 여자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데(여자들 쪽에서 적극적이긴 했다) 자기의 현재 상황에 대한 처신 치고는 좀 아니다 싶었다.


 서른 번째 생일 날 아침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체포된다. 처음에는 은행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 건 아닌가 생각하면서 금세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 심리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고부터 목격하는 재판소의 풍경은 부조리의 총 집합소였다. 엄격한 잣대로 죄를 묻고 처벌해야하는 곳이 무질서의 극치를 보여준다. 권력의 편에 서서 모여 있는 오합지졸의 집단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빨래하는 여자, 어린아이들, 재판소의 관리들, 화가 등 재판소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를 보고 재판소를 얕잡아 보았을 수도 있다.


 첫 대면에서 예심판사는 K를 페인트공이냐고 묻자 자신은 대형 은행의 이사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동명이인의 인물을 잘못 부른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에 대한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없다. 그저 답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죄인으로 치부하고 진행하는 것뿐이다.


 숙부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지만 청원서조차도 제출하지 않는 등 별 진전 없이 몇 달이 흘러가고, 소송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K는 다급한 마음에 은행 고객이 소개해준 화가를 만나게 된다. 법률 조언을 화가에게 하다니. 화가를 찾았지만 화가의 집이 재판소이며 관리들과 결탁되어 있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 장이 될 때까지도 지루한 소송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이탈리아 고객의 접대를 위해 대성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신부인 듯한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신부는 법률 입문서에 적혀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K에게 재판의 심각성을 토로하는데.


법 앞에 문지기가 서 있다. 한 시골 사람이 이 문지기에게 와서 법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시골 사람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럼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지기는 말한다. ‘그럴 수는 있지만 지금은 안 돼.’ 법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문지기는 옆으로 물러서 있기 때문에 시골 사람은 몸을 구부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것을 본 문지기는 껄껄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거든 내가 금지하는 것을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게나. 그러나 내겐 권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게. 그리고 나는 신분이 가장 낮은 문지기에 지나지 않아. 문마다 문지기가 서 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권력이 강해진다네. 세 번째 문지기를 보면 나조차도 겁이 나.’(후략)(p436)


 마치 소송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K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이 신부마저 교도소의 신부라고 밝히는데. 사방이 K를 감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싹함으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 심한 장난 정도로 여기고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으니 곧 풀려날 것이라 믿었는데.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고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지리멸렬한 싸움에 휘말려 희생되고 만다.


 언젠가 인터넷에 회자된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가 된 사건이 떠올랐다.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범죄에 대한 증거도 불충분한 상황에 권력의 힘으로 우겨서 한 사람의 인생을 도탄에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 같다. 시대가 변했지만 어딘가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 받는 삶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이 소설처럼 말도 안 되는 경우는 없으리라고 믿고 싶다. 법의 저울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며 공정하고 성숙한 그런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