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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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전집 14권에 해당하는 작품을 모두 읽었다. 연대순으로 읽었다면 좋았을 것을. 여섯 번째 소설을 맨 나중에 읽은 셈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가 죽으려고 마음먹고 집을 무작정 뛰쳐나가 산길을 걷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도련님으로 살아왔던 열아홉 살 청년이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사건의 배경에는 두 소녀가 있었다. 두 번째 소녀와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이 있었던 모양인데 두 소녀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모양이다. 그것이 부모와 친척에게 알려져 비난을 듣게 되었고 괴로운 나머지 가출하여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죽으려고 할 만큼 그렇게 큰일일 이었을까. 산 속에서 낯선 남자가 일을 해 볼 거냐고 물으며 접근하는 바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 조조라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겨서 한바 책임자에게 넘겨주는 사

람이다.

 

 한 번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는 순순히 따라간다. 일자리만 생기면 그것으로 족했고 갱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기뻤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을 뛰쳐나왔지만, 죽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햇빛을 보지 않고 속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음침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자기에게 너무나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붉은 담요와 꼬맹이까지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모은 조조는 이들을 데리고 산 속으로 산 속으로 향한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똑같이 갱부가 되겠다고 대답을 하는지 모두 다 똑같이 바보였다고 회상을 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 전락하게 되는 것보다 같이 전락할 길동무를 얻은 것을 아주 유쾌하게 생각한다. 소세키의 유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강에서 죽을 때는 반드시 뱃사공 한두 명을 끌고 가고 싶어지고 만약 죽고 나서 지옥에라도 가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이 없는 지옥보다는 반드시 요괴가 있는 지옥을 택할 거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여럿이가 마음은 든든한 법이다.

 


 숨 가쁘게 걸어가면서 자신의 행동이 가출이 아니라 소풍이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후회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얌전하다, 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었지만 광산으로 가는 길에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고 광산 안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한다. 얌전함이 극에 달하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게 된다는 말도. 아마도 갱 안에서 큰 고생을 할 듯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왜 사서 하는 것일까.

 


 조조가 한바의 책임자에게 를 데려다주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는 걸 알고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내하는 할멈을 따라 굿길에 갔는데 모여 있는 갱부들을 보고 압도되어 자신의 결심이 흐려진다. 그 갱부들의 얼굴은 그냥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얼굴이 아니었다. 둥글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런 느낌은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다. 모두 거칠고 난폭해 보이는데 그런 사람들이 만 명이나 된다니 완전히 기가 죽는다.

 


 희멀건 얼굴의 열아홉 살짜리 청년을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을 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 중 서른이 좀 안 되어 보이는 갱부가 여기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돌아가서 신문배달이라도 해라, 자기도 학교에 다녔는데 방탕하게 보내다가 여길 와서 굿길 밥을 먹다가 이렇게 되었다 나처럼 되면 끝장이다, 라는 충고를 해 준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겁이 나기도 하지만, 왠지 는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하층 노동자에게조차 동료로 대우받지 못하는 모욕을 받고 있다고. 그들은 규칙을 내세우며 여기는 십장도 있고 의형제도 있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되니까 어서 돌아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돈을 벌어도 그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기는 걸까. 이렇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는 돌아갈 결심을 하지 않는다. 왠지 젊은 혈기에 못할 일이 뭐 있나 하는 베짱이 느껴지기도 했다.

 


 ‘는 걱정이 되면서도 사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할멈이 밥 먹으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는데.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이 떠지지 않는다. ‘벽토로 불리는 안남미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다. 그들은 안남미도 모르면서 갱부가 되려고 한다고 조롱을 하기 시작한다.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그것도 적응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은 갱부의 조수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시추, 호리코, 야마이치가 죽었을 때 하는 장례식이라는 잔보의 행렬을 보고 숙연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산 속 추위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불을 돈을 내고 덮어야 한다. 집에서 쓰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럽다. 자다가 빈대에 물리면서 비참한 생각이 든다. 갱 안의 둘러보는 일을 안내하는 하쓰 씨는 여기가 지옥의 입구라고 하며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 말에도 조롱이 섞여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갱부로 전락한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네가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경멸까지 느껴졌다. 따라서 들어가는데 하쓰 씨는 살아서 나갈 생각이라면 건방지게 굿길 같은 곳엔 들어오지 않는 게 좋다고 혼잣말처럼 한다. 그럼에도 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돌아가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이렇게 갱 안의 묘사를 실감나고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갱 안을 따라가는 과정이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암담한 기분이었다. 속세의 길과 전혀 다른 굴곡진 길, 절벽을 넘어 급기야는 허리까지 차는 물웅덩이가 있는 마지막 갱까지. 서서 갈 수 없고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곳도 있다. 열다섯 개나 되는 사다리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식은땀이 나게 했다.

 


 ‘의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처음엔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모면하려고 가출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갱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뻤다. 다음엔 그곳에서 속세의 사람 모습이 아닌 그들을 보고 후회와 호기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하쓰 씨의 안내를 따라 갱 안을 둘러보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는 여기서 죽으면 큰일이다,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게곤폭포로 가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서 갱 밖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하쓰 씨와 굿길 입구에서 8번 갱까지 견학을 하고 돌아 나오다가 길을 잃는다. 갱부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인품을 가진 야쓰 씨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일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갱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마음을 되돌린다.

 


어둡기만 했다. 손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는 손발도 보이지 않았다. 손에 닿는 감촉, 발에 닿는 감촉만으로 살아서 간다. 살아서 올라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오르는 것이고, 오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 사다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P268) 

 


 어둠 속에서 손발의 감촉만으로 앞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과 함께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다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건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는 갱부는 되지 않았다. ‘먹물을 좀 먹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장부를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 와서 며칠 동안은 그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외계인 취급을 당했었는데 갱부들의 월급을 계산하고 나누어 주는 장부 정리원이 되자 상황은 역전된다. 그 일을 다섯 달을 하고 나오게 된다. 갱부가 되려고 했으나 갱부가 되지 못해서였을까.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능청스러움을 보인다.

 


 하지만 소설가 장정일은 해설에서 반론을 펼친다. ‘소설이 되지 못했다는 작가의 허튼소리는 모두 잊어야 한다고. 어쨌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가출했지만 여태까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이 갱부가 되진 못했지만 갱부의 일상을 접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또 소세키의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폭포에서 자살한 일에 대한 석명이라고도 한다. 후지무라 미사오가 죽기 전에 남긴 글에 인생은 불가해(不可解)!’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 고뇌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며 힘써 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래서 여로(旅路)소설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교양소설이라는 그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 소세키의 바람이 퇴색되어 이웃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이 갱부로 전락한 일은 심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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