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레퓌스 사건, 나는 고발한다, 루공-마카르 총서,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정도로만 알고 있던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이번에 읽은 <테레즈 라캥>은 작가의 자연주의 소설관을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1867 출간되었다.


당시의 사회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실주의에서 발전, 강화된 형태로 나타난 자연주의 문학은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함께 나타났다. 사실주의가 '객관성'을 강조했다면, 자연주의는 '과학성'을 강조한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p.355)

인간의 능력으로 고치지 못했던 불치병들이 과학의 도움을 받아 치료되고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과학의 위상은 높아진다. 사람들은 과학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고, 이런 과학에 대한 무한 신뢰는 인간의 삶도 과학으로 그 진실과 법칙을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쓴 작가가 바로 졸라이다. 


<테레즈 라캥>을 발표하고 동료 문인들, 비평가들의 악평-"<테레즈 라캥>의 저자는 포르노그라피를 펼쳐놓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불쌍한 히스테리 환자다"-에 당황한 졸라는 1868년 2판 서문에서 자신의 소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서문 p.10)


자연주의 소설의 서막을 알린 <테레즈 라캥>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베르농에서 25년간 잡화상을 운영한 라캥 부인. 그녀에게는 병약한 아들 카미유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키운 조카 딸 테레즈가 있다. 테레즈는 라캥 부인의 오빠 드강 대위가 알제리 여자와 사이에서 오랑에서 낳은 딸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 프랑스로 건너와 라캥 부인에게 맡겨진다. 테레즈는 늘 병을 달고 사는 카미유 곁에서 덩달아 병자처럼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지내게 된다. 늘 아픈 아들을 걱정하는 라캥부인은 자신이 죽고 나서도 아들을 돌봐줄 수 있도록 테레즈가 21살이 되자 아들과 결혼시킨다. 따라서 테레즈 드강이 이 책의 제목인 '테레즈 라캥'이 된다. 

결혼 후 이들은 파리 '퐁네프 파사주'로 이사하여 라캥부인은 잡화상을 운영하고 카미유는 철도회사에 취직을 한다. 

욕망을 모르는 병약한 카미유, 불같은 욕망을 꽁꽁 숨긴채 억눌린 채 살아가는 테레즈,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떨림도 흥분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앞에 로랑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로랑은 카미유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로 카미유와 같은 철도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

이런 로랑을  테레즈는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억센 머리칼, 혈기 좋은 반반한 얼굴, 황소도 잡을 듯한 뭉뚝하고 퉁퉁한 손, 굵고 짧은 기름진 목 등 한 마디로 남성 호르몬이 넘쳐 흐르는 그런 남자를 테레즈는 처음 보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편 카미유와는 다르게 남성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로랑에게 테레즈는 전율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동물적인 욕망의 소유자'인 로랑은 이런 테레즈의 욕구불만을 간파하고 테레즈를 유혹하기로 결심하는데 그 과정이 자연주의 소설답게 참으로 계산적이다. 얼굴도 별로고 사랑하지도 않지만 공짜(!)로 육체적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 카미유가 알게 되도 그냥 힘으로 날려버리면 되니 로랑에게는 밑져야 본전인 것이다.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라캥부인, 대화상대로 괜찮은 카미유, 자신을 덮치기를 은근히 바라는 듯한 테레즈의 은근한 시선 등 로랑은 라캥 집안을 뻔질나게 드나든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오고 로랑은 '그녀의 머리를 젖힌 후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으스러지도록'(p.65) 누르고, 조금 반항을 하던 테레즈도 곧 그에게 몸을 맡기고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렬한 행동'...

로랑과 테레즈는 카미유와 라캥 부인을 속이고 은밀한 만남을 계속하고 소설은 잡화상이 있는 퐁뇌프 파사주의 분위기처럼 더욱 끈적하고 습한 냄새를 풍기며 전개된다. 


<테레즈 라캥>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소설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졸라는 이 책의 서문에서 '각 장(章)이 기묘한 생리학적 경우에 대한 연구'이며 '해부학자가 시체에 대하여 행하는 것과 같은 분석적인 작업을 살아 있는 두 육체에 대하여 행한 것뿐'(p.11,12)이라고 말한다. 

정말 이 말이 맞는게 졸라는 인간이라는 두 동물, 로랑과 테레즈를 소설 속에 등장, 만나게 하여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두 '동물'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과학자처럼 묘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통 치정소설에서 보이는 사랑의 드라마는 없다. 해부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면서 그 어떤 감정을 보이지 않듯이, 졸라도 이 두 사람의 행동과 반응, 파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그들을 묘사하면서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두 인물을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은 과학자의 그것처럼 냉담하고 때로는 너무나 집요하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 신경과 피, 즉 육체에 의해 강하게 지배받는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독자들에게 너무나 간절히 보여주고 싶어한 졸라의 의지가 나에겐 너무 많이 느껴졌다. 

'작가가 자신의 자연주의 소설이론에 이 정도로 진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각 장에 걸쳐 계속 중언부언(重言復言)으로 늘어놓는 묘사가 지겹기도 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28세 졸라의 노력이 문장마다 느껴졌다. 


음습한 퐁네프 파사주를 배경으로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은 인물'들을 면밀히 분석, 기록한 이 작품은 '인간에 관한 객관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에밀 졸라의 진지함과 노력을 담고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간 정도까지는 굉장히 흥미롭게 읽다가 중후반부터 했던 말을 요렇게 저렇게 말만 바꿔서 계속 하는 작가의 집요함에 질려 속으로 '이건 별 3개다'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아! 마지막 장에서 별 하나를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도 못했던 결말, 그리고 이들이 단순히 육체에 종속되어 그것에 지배받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작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여준 결말에 나는 그만 소름이 돋았다.


나는 현재 이 책을 포함 졸라의 책을 5권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그의 모든 책을 다 모으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진지함, 노력, 집요함 이런 점이 인상깊었고 무엇보다 그는 행동하는 정직한 지식인이 아니던가...


이 작품은 이 후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인상주의 화가 드가는 테레즈와 로랑이 결혼하고 맞이하는 첫날 밤을 그림으로 남겼다. 

'실내(The Interior)' 혹은 '겁탈'(The Rape)'로 불린다.






또한 연극과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2009)가 <테레즈 라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가장 최근에 상영된 영화로 2013년 개봉한 'In Secret' 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작과 동명인 '테레즈 라캥'으로 상영되었다.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8-26 15: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소설이지만 이론연구서 같은 느낌일듯해요! 성격과 기질이 분명 다를텐데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어 이작품 더 궁금합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벨아미>에서도 자기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인물이 있는데 벨아미 반응을 보면 귀에서 피가나는듯 진저리를 내거든요? 중언부언 강조했다는 부분읽고 그 대목이 생각나 웃고있는 중입니다ㅎㅎ

coolcat329 2021-08-26 17:18   좋아요 2 | URL
벨아미에 재밌는 인간이 나오는군요. ㅋ 기억해두겠습니다.ㅋ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간성이 나빠서 일어나는게 아니라 순전히 개인이 처한 환경과 육체안에 갇힌 인간의 기질때문임을 졸라가 계속 묘사합니다. 참 실험적인 소설이지요.

scott 2021-08-26 15: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모랄리스트이고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 에밀졸라 작품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다른 일반 소설들은 허구 속 허풍의 세상일 뿐이라는게 느껴집니다
테레즈 라캥은 프랑스 중학생들 필독서!
에밀 졸라 작품들이 한국에 많이 번역 되지 않고 있다는게 안타 까울 뿐입니다.

전 졸라의 작품중에 목로 주점을 첨에 읽고 충격 받고 그 다음 제르미날을 읽고 나서 완죤 팬이 되었죠..
솔직히 빅토르 위고 보다 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프로방스를 대표 하는 화가 세잔의 둘도 없었던 친구 에밀 졸라 ~*


coolcat329 2021-08-26 17:20   좋아요 5 | URL
이 책이 프랑스 중학생 필독서군요! 헐...ㅋㅋ
앞으로 읽을 졸라의 걸작들 정말 기대됩니다. 목로주점으로 루공 마카르에 도전해 보려구요~

얄라알라 2021-08-27 22:16   좋아요 2 | URL
역쉬~~ 프랑스 중학생 ˝필독˝ 리스트는 다른 듯합니다! 뭔가 빠름빠름 중학생^^;; 쿨캣님 리뷰 아니었던들 저는 테레즈 라캥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갈 뻔했는데^^:;

레삭매냐 2021-08-26 16: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 졸라 !

새파랑 2021-08-26 16:36   좋아요 5 | URL
전 졸리네요😅

coolcat329 2021-08-26 17:21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 패주 리뷰 기다리고 있습니다. 졸라는 중고 구하기가 힘드네요🤭

얄라알라 2021-08-27 22:16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 스타일로 바로 댓글 달아주시는 새파랑님!
온라인 케미가 넘 좋아서 혼자 실실 웃습니다^^

졸라- 졸리네요^^

두분 모두 행복한 금요일 밤^^

새파랑 2021-08-27 22:33   좋아요 1 | URL
북사랑님께 웃음을 드렸다니 뿌듯하네요 ^^ 즐거운 불금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파랑 2021-08-26 16: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밀졸라 작품은 안읽어봤는데 리뷰만 봐서는 엄청 흥미로워 보이네요. 게다가 별 3개에서 별 4개로 바꾼 결말은 도대체 어떻길래? 궁금해지네요~! 인간이라는 동물이라니🙄

coolcat329 2021-08-26 17:30   좋아요 5 | URL
결말이 저에겐 의외였습니다.
인간이 지닌 동물적인 기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이 소설에 나오는 인간들이 첨엔 참 낯설고 기괴하게 느껴집니다. 근데 그 안에서 저의 모습도 보이더라구요...당분간 저 자신을 움직이는게 동물적 본능인지 아님 인간으로서의 이성인지 관찰해볼까도 싶습니다.ㅋㅋ

Falstaff 2021-08-26 16: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스토리나 자연주의적인 묘사보다
퐁네프 파사주, 음산하고 습기 자욱하고 지저분하고, 죽은 아이가 둥둥 떠내려갈 것 같은 센강 위의 반은 상점, 반은 살림집, 어둡고 그만큼 범죄 발생을 애초부터 분위기 팍팍 풍기는, 배경이 더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ㅎㅎㅎ 전 얘기하신대로 별 세 개 준 걸로.

coolcat329 2021-08-26 17:37   좋아요 5 | URL
네~저도 동감입니다.1장 처음에 묘사되는 퐁네프 파사주... 출발부터 음습하고 끈끈한 분위기를 제대로 보여주죠.강렬한 시작이에요.

mini74 2021-08-26 17: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밸아미 읽고 있는데 훙미진진. 거의 다 읽어가는데 왜!!! 인과응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가하며 분노하고 읽고 있습니다. 벨아미 다 읽고나면 이 책도 읽고싶어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미미 2021-08-26 18:20   좋아요 4 | URL
모파상도 에밀졸라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테레즈 라캥>쿨캣님 리뷰에서처럼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었다는 느낌을 <벨아미>읽을때 받았거든요. 미니님 댓글보고 찾아보니 두 작가 모두 프랑스출신에 나이차가 10년밖에 안되고 (19세기)에밀졸라가 주관한 문학작품집에서 모파상이 데뷔했다고 나오더라구요 ~😳

mini74 2021-08-26 18:30   좋아요 5 | URL
전 졸라는 목로주점이랑 나나. 너무 예전에 읽어서 다시 읽으려는 중이에요 ㅎㅎ 그 책 속 건조하고 냉정한 묘사 등이 벨아미에도 담겨 있는 거 같아요. 찾아보니 모파상은 플로베르 제자인데 플로베르가 에밀졸라를 소개시켜줬다고 하네요. 둘 다 플로베르의 영향을 받았으니 좀 닮지 않았을까요. 테레즈라캥은 박쥐의 원작이기도 해서 예전부터 읽고싶었는데 딴 길로 자꾸 ㅎㅎㅎ 저는 에밀졸라 모파상 하면 고흐 그림 중에 책과 장미를 그린 작품이 있는데 그 책들이 에밀졸라와 모파상책들. 그래서 왜인지 미미님 말씀처럼 닮게 느껴져요 ㅎㅎ

미미 2021-08-26 18:32   좋아요 4 | URL
👍👍목로주점이랑 나나도 빨리 읽어보고 싶어요! 오늘도 플친님들덕에 읽고픈 책 만땅입니다 후후~♡

coolcat329 2021-08-26 20:22   좋아요 4 | URL
하하 저도 급 <벨아미> 읽고 싶어져서 ㅎㅎ

졸라집에서 매주 목요일 메당 그룹이라고 모임을 했다는데 거기 모파상도 참석한걸로 알고 있어요. 근데 나중에 자연주의와는 거리를 뒀다는거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렇습니다. ☺

scott 2021-08-27 00:27   좋아요 4 | URL
졸라의 목로 주점‘의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딸이 소설 ‘나나‘의 여주인공 나나입니다
그러니까 목로주점 읽고 나면 소설 나나로 !! Go~@@


페넬로페 2021-08-26 17: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졸라의 작품 딱 하나 읽었는데 자연주의 작가답게 신랄했지만 위트 있고 그래도 뭔가 따뜻함이 있었던것 같아요.
처음에 졸라가 이 소설을 단편으로 썼다가 뒤에 다시 장편으로 썼다는데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단편으로 읽을 때 좋아서 이 책 사놨었는데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인간은 참 흥미로운거 같아요 에휴^^

coolcat329 2021-08-26 20:24   좋아요 6 | URL
아 처음에 단편으로 썼다가 장편으로 한거군요. 그쵸? 인간은 참 알 수 없는 존재여요. 저부터 저자신을 모르겠어요.🤔

물감 2021-08-26 21: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누구든 졸라의 책을 읽으면 전 작품을 갖고싶어합니다요ㅋㅋㅋ

coolcat329 2021-08-26 21:36   좋아요 5 | URL
아 그렇군요! 그래서 중고로도 찾기 힘들군요. ㅠ
 
그레이엄 그린 - 정원 아래서 외 5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04~1991)의 모든 단편을 담고 있는 책이다. 1954년에 출간한 <21가지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망 1년 전,1990년에 출간한 <마지막 말>까지 총 4권의 단편집에 실린 49편의 단편과 기존 단편집에 실리지 않은 4편을 추가하여 총 53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930페이지에 달하는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시기별로 볼 수 있어서 좋지만 너무나 많은 이야기 가운데 이해 안가는 작품들이 꽤 있어, 누군가와 같이 읽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2019년도에 산 책으로 당시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을 읽고 너무 압도당해(!!!) 같은 카톨릭 신자인 그레이엄 그린에게 관심이 갔고 비교해보고 싶어서 산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그다지 즐기지 못했고 몇몇 작품은 이해를 못 했으며, 그레이엄 그린이 자신이 가장 잘 쓴 작품으로 꼽은 작품 중 하나인 <정원 아래서>는 거의 90페이지에 달하는 중편에 가까운 작품인데 지루해서 혼났다. 

알라딘 100자평과 리뷰를 읽어보니, 문학이나 소설을 탐닉하는 사람은 꼭 읽어야(잠자냥님), 훌륭한 단편작가(폴스타프님), 매일밤이 행복, 스토리가 매혹적, 묵직하고 예리하다 등 한 분(별4개) 빼고 다 별 5개의 호평이다.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혼자 뜨뜻미지근할 때 참 눈치를 보게 되고 난감하다. ㅋㅋㅋ

작년부터 읽기 시작해서 최근에 하루에 한두 편씩 읽었는데 이렇게 읽으니 예전에 읽은 이야기는 기억이 안나서 다시 훑어봐야 했다. 그 중 인상적인 작품 몇 개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파괴자들 

-설명의 암시

-레버 씨의 기회

-이상한 시골 꿈

-남편 좀 빌려도 돼요?

-8월에는 저렴하다



이 책은 단편집 4권에 그 외 새로운 단편 4편이 실린 책이기에 사실 보통 단편집 4권을 좀 넘게 읽은 셈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이야기 외에도 brilliant한 작품들이 반 이상이다. 

다만 책 뒷면에 써 있는 '20세기 스토리텔링의 패러다임을 혁신한 대위법적인 상상 세계', 그레이엄 그린이 보여준 바로 그 상상의 세계를 내가 이해못했기에 힘들지 않았나 싶다. 

읽다만 단편집을 바라보는 건 괴롭다. 후련하다!

한동안은 너무 많은 분량의 단편집은 안 읽을거 같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8-19 23: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벽돌을 읽으셨네요!👍저도 있는데 생각보다 더 두꺼워서 손이 안가는ㅋㅋㅋㅋ<플래너리 오코너>도 사놔야겠어요~♡

coolcat329 2021-08-19 23:48   좋아요 7 | URL
아휴 진짜 후련합니다!
플래너리는 몇 편만 견디시면 다음부턴 진짜 신세계입니다. 저는 단편을 읽은게 별로 없고 좋아하질 않았는데 플래너리를 읽고 너무 반했던거에요. 그래서 더 두꺼운 이 책을 사서 ㅋㅋ 즐거운 시간도 있었으나 고행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미미님 굿나잇되세요☆

scott 2021-08-20 00:46   좋아요 3 | URL
미미님 미국에 퓰리쳐급 단편 문학상이
플래너리 오코너‘상으로
단편의 대가!!
하지만 미미님 취향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단편 스타일을 선호 하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사알짝 ^.~

미미 2021-08-20 07:27   좋아요 3 | URL
오~ ‘플레너리 오코너‘상 도 있군요! 퓰리쳐 급이라니👍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 꼭 읽을꺼예요~♡ㅎㅎㅎ😆

coolcat329 2021-08-20 11:38   좋아요 4 | URL
앤드루 포터의 유명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플래너리오코너 수상작이죠~

붕붕툐툐 2021-08-19 23: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옷! 저도 지금 <정원 아래서> 고전 중입니다. 때려치워야 하나 고민 중! ㅋ 제3의 사나이도 너무 힘들게 읽었어요~ㅎㅎ
<플래너리 오코너> 저도 읽어보고 싶네용!!^^

coolcat329 2021-08-20 11:40   좋아요 3 | URL
어멋 지금 <정원 아래서>읽으시는군요. 참 뭐랄까 철학적사유가 심오한 작품 같은데 저는 어려웠어요. 재미도 없구요.

mini74 2021-08-19 23:5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 964페이지 ㅠㅠ 후련해하시는 맘이 느껴집니다 ㅎㅎ 플래너리 오코너 압도당하셨다니 관심이 생깁니다. 고생하셨어요 *^^*

coolcat329 2021-08-20 11:41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플래너리 기회되시면 읽어보셔요. 좀 임팩트가 강한데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습니다.

새파랑 2021-08-20 00:0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53편에 930페이지면 1편에 17페이지 정도 겠네요? 와우 ㅋ 그레이엄 그린은 브라이턴 록만 읽어봤는데 저도 도전해봐야겠군요. 쿨켓님 포함 셀럽(?)분들이 인정한 책이라고 하시니

coolcat329 2021-08-20 11:43   좋아요 4 | URL
셀럽분들은 인정을 하셨는데 저는 인정할 수준이 안되는 관계로 별4개입니다. 저는 그린의 장편을 읽어봐야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1-08-20 00:3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53편의 단편을 읽는다는 것은 53번의 생각과 느낌의 시작과 끝이 반복된다고 생각해요.
전 단편을 읽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집중력이 요구되더라고요.
두꺼운 벽돌책 읽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coolcat329 2021-08-20 11:44   좋아요 5 | URL
53개의 세계를 들락날락~장편보다 단편이 더 집중 긴장하게 되더라구요. 보통 단편이라도 저는 나눠서 안보고 장편처럼 쭉 읽는데 이 책은 불가능 했습니다.

얄라알라 2021-08-20 00: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90페이지짜리 중편 포함 53편, 900여쪽!
53편을 기분 내키는 대로 골라가면서 천천히 읽어도 되겠네요

별 5 or 4 소신 별주기, 쿨캣님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저도 5개 4개 사이에서 고민할 때 많은데^^

coolcat329 2021-08-20 11:46   좋아요 4 | URL
대체로 사람들이 좋다고 한 작품만 골라보는것도 좋을거 같아요. 읽을 책이 너무 많잖아요~

scott 2021-08-20 00: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린은 단편보다 장편!을 높이 평가 받고 있습니다
서창렬 번역가가 현재 The End of the Affair에 번역하고 있다고 하시니 이책 기대 하셔도
영문학자들은 권력과 영광을 최고작으로!
그린은 브라이턴 록을 ㅎㅎ

coolcat329 2021-08-20 11:49   좋아요 3 | URL
네~스콧님의 추천으로 그린의 장편 읽어보겠습니다. 그린 본인도 단편이 쓰기가 힘들었다고 했는데 장편이 더 나을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

han22598 2021-08-20 01: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편보다 단편을 좋아하는데, 장편을 더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이유는 단편을 읽고 나면 장편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과 궁금증들이 생겨나는데, .그런걸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서...좀 그래요. 글이라도 쓰면 좋은데..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어려우니까 ㅋㅋㅋ ..그래서 단편읽는 독클하고 싶은게 저의 소원입니다. ㅎㅎ

coolcat329 2021-08-20 11:50   좋아요 3 | URL
네 저도 동감입니다. 단편이 저는 더 어렵더라구요. 짧은 소설인데 읽고 나서 이해안가 멍한 표정 아시나요? ㅋ

페크pek0501 2021-08-20 1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9백쪽이 넘는 책을 읽으시다니 이건 축하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축 하 합 니 다.
저는 오헨리와 모파상의 단편집을 사 놓고 생각날 때마다 읽고 목차의 제목에 동그라미를 쳐 놓아요. 이미 읽어서 겹치는 것도 재독해요.
이 책은 도전할 만한 책이네요. 읽고 나면 뿌듯할 듯요.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좋아하는 계절 여름, 물론 요 몇년 간의 여름은 공포로 다가왔지만 그래서 앞으로는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힘들거 같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발산하는 그 여름의 기세등등한 기운을 나는 참 좋아한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 나는 또 한 해가 이렇게 가는구나... 싶어 슬퍼지곤 한다.

이제는 좋아할 수 없는 여름이지만 그래도 이 여름이 가기 전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은 작가의 다른 작품 <이선 프롬>과 단짝인 소설이다. 이디스 워튼이 편집자에게 쓴 편지에서 <여름>은 '무더운 이선'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 점을 봐도 그렇다. 워튼은 <이선 프롬>과 <여름>을 두고 "자신이 쓴 뉴잉글랜드의 두 이야기"라고 했다. 

<이선 프롬>이 뉴잉글랜드 지방의 기나긴 겨울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여름>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두 작품 다 삼각관계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 외부인의 발길이 뜸한 뉴잉글랜드 시골에서 자신의 꿈과 가능성을 펼치지 못하고 답답한 현실에 갇혀 있는 젊은 남녀를 주인공을 했다는 점이 비슷하다.


'젊은 여자 하나가 노스도머의 거리 한 끄트머리에 있는 로열 변호사의 집에서 나와 문가에 섰다'(p.7)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바로 이 '젊은 여자' 채리티가 주인공이다. 

<이선 프롬>이 외부 화자에 의해 이야기가 묘사된다면 <여름>은 채러티의 시선으로 인물들이 그려진다. 


18살의 채리티(Charity)는 노스도머(가상의 마을)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신의 후견인인 로열(Royall) 변호사와 함께 살고 있다. 로열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채리티가 17살이 되던 해 로열 씨는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어릴 적 산에서 살던 자신을 데려와 키워준 그이지만 채리티는 이 일로 그를 경멸하게 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상점도, 극장도, 강연장이나 상가'도 없는 노스도머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던 6월의 어느 아름다운 오후, 그녀가 일하는 도서관에 도서관 주인인 해처드 부인의 사촌이자 건축가인 루시어스 하니(Lucius Harney)가 나타난다. 그는 도시에서 온 건축가로서 뉴잉글랜드 지역의 옛날 집들을 공부하기 위해 왔는데, 도시에서 온 그에게 채러티는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하니 또한 시골처녀인 채리티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마치 '수액이 부글부글 끓고 잎집이 훌훌 옷을 벗고 꽃받침이 터질 듯 차오르는 모습'(p.53)처럼 뜨거운 여름 햇살과 함께 무르익어 간다. 

루시어스 하니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여름, 그들의 사랑은 7월 4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보는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채리티의 가슴은 환희로 고동쳤다. 사물의 잠재된 모든 아름다움이 갑자기 그녀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은 상상할 수 없었다. (중략) 그녀는 별 속에 갇힌 것 같았다...... 그림은 이제 사라졌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 채리티는 두 손이 자기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뒤로 젖혀지면서 하니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포개졌다. 갑작스러운 격정에 휩싸여 그가 머리를 가슴에 끌어당기고 두팔로 안았을 때 채리티는 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이제껏 알지 못하던 하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녀 자신이 그의 새롭고 신비스러운 힘을 소유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그런 하니 말이다. (p.139)


나는 채리티의 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나 또한 한강에서 불꽃놀이를 보며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 또 있을까...'생각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터질 것 같은 가슴, 고개를 젖히고 팡팡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이 아름다운 세상, 내 가족,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 다 행복했으면 싶고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보기만 해도 설레는 사람과는 불꽃놀이 무조건 가야한다. 그걸 못해봐서 너무너무 아쉽다...


채리티와 하니의 저 장면은 참 아름다우면서도 이 최고의 행복을 끝으로 두 사람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임을 독자로서 예감할 수 있기에 슬프게도 다가왔다. 


여름의 열기가 뜨거워 질수록 채리티와 하니의 사랑이 뜨거워 졌듯이, 가을의 냉기가 공기 중에 스며들면서 두 사람의 사랑에도 현실이라는 무시 못할 방해꾼이 등장한다. 

산 속에서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자란 채리티에 비해 하니는 대도시의 높은 신분 집안의 남자이다. 

채리티는 '고향맞이 주간행사' 에서 평소 자신이 부러움의 대상으로 질투하던 도시에 사는 애너벨이 하니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순간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다. '연인의 포옹이라는 부서지기 쉬운 은막 뒤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의 삶이 수수께기처럼 숨어 있'음을 느끼며 자신과 하니 사이의 엄청난 격차를 실감한다. 


채리티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니에게 주었다. 그러나 삶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다른 선물과 비교한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채리티는 이런 일을 겪은 다른 젊은 여자들의 경우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갖고 있던 것을 모두 주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그것 가지고는 짧은 순간밖에 살 수 없었다. (p.181)


하니와 애너벨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채리티에게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채리티는 하니와 몰래 만나는 폐가에서 하니를 기다리면서 그래도 자신이 애너벨보다 더 예쁘고 하니도 그 사실을 안다는 사실, 다른 아가씨들과 춤출 때 자신에게 허락을 구했던 자잘한 사실들에 위안을 얻으면서도 그와의 관계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결국 이런 불안의 실체는 로열 씨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언제 결혼해 줄는지 물어봐라... 그렇게 못하잖아! 넌 그렇게 못 하잖니, 넌 그걸 잘 알고 있지... 왜 못 하는지도 말이야. 그리고 자넨 왜 저 애한테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잘 알아. 왜 그럴 생각이 없는지 말이지." (p.190)


로열 씨의 결혼에 대한 추궁에 두 사람다 아무런 말도 못한다. 로열 씨가 떠나고 하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잠시 이곳을 떠나 있어야겠어...... 어쩌면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일을 정리하려고.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올게... 그러면 결혼하자." (p.193)


'낯선 사람'처럼 들리는 하니의 목소리, 하니에게 절망적으로 매달리던 자신을 돌아보며 그녀는 '납덩어리' 같은 수치심을 느낀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그의 거듭되는 약속이 오히려 상처'로 다가온다. 

떠난 하니를 기다리며 채리티는 그들 사이엔 서로를 향한 욕망과 사랑외에는 그 어떤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로열 씨가 결혼 여부를 추궁하기 전까지 하니가 결혼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나름 충격과 반전이 있는 이야기라...


이 소설은 주인공 채리티의 심리묘사가 굉장히 훌륭하다. 산 속에서 태어나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후견인 밑에서 자라며 교육과 문화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당차고 솔직하며 자존심이 강한 채리티의 마음을 워튼은 자신의 이야기처럼 세세하게 묘사한다. 

<이선 프롬>에서 이선이 그랬듯이 채리티도 환경과 사회의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특히 여자로서 더욱 선택의 폭이 좁은 현실은 같은 여자로서 막막했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여름>은 <이선 프롬>보다는 희망적이다. <이선 프롬>이 어두운 청교도적 가치관과 지리적 환경 등으로 억압받고 그 결과 비극적인 삶을 사는 인물들을 그린 반면, <여름>은 채리티라는 여성을 통해 솔직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더욱더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하면서 현실을 자각, 세상과 타협해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디스 워튼의 작품은 <순수의 시대>,<이선 프롬>,<여름> 이렇게 세 권을 읽었는데, 이 중에서 이번에 읽은 <여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작가도 <여름>을 자신의 작품들 중 가장 좋아했고 이 작품을 쓰면서 희열을 느꼈다고 하는데 '아마 이 작품과 작가의 개인적 삶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p.269)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나에게 채리티의 심리묘사가 돋보였던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영화 Summer (1981) Diane Lane (채러티 역)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1-08-18 22:1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대한 ㅡ소설이 아닌 계절요ㅡ
생각이 저랑 똑같으시네요.
에어컨이 있는 경우(특히 요 몇년) 저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좋아요. 요즘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저도 좀 슬퍼지고 있거든요.
여름이 사랑의 정열로만 가능한 계절이라면 다른 계절은 왠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쿨캣님의 글에서 느껴져요.
제가 Diane Lane도 좋아하는데 영화도 좋을듯 해요^^

coolcat329 2021-08-18 23:04   좋아요 5 | URL
아 그러시군요. 가을은 유독 짧아 더욱 그런거같아요. 막바지 여름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이안 레인 좋아하시는 것도 저랑 같네요~^^ 제가 백인 여자라면 이렇게 생기고 싶어요. 🤭

얄라알라 2021-08-19 00:31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coolcat님, 모두 뜨거운 여름이 물러갈 때 서운함 느끼시는군요! 저도 더위가 물러가면 한 해 다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기에, 두분 대화에 살짝 끼어봅니다^^ 뭔가 얹혀 가는 느낌 ㅋ

coolcat329 2021-08-19 08:14   좋아요 1 | URL
그쵸.여름 지나면 한 해 다간 느낌... 가을을 가지마라고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기분이에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붕붕툐툐 2021-08-19 00: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 좋아요! 워낙 더위를 안타는 편이라 봄이랑 가을도 춥게 느낄 때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여름은 제게 유일하게 따뜻한 계절이에요~
전 이디스 워턴의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젊은 남녀 주인공인 책 잘 못 읽겠어요. 너무 늙었나봐요~ㅠㅠ

coolcat329 2021-08-19 07:56   좋아요 0 | URL
아침 저녁으론 벌써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죠?
여름과 가을 공존하는 지금 시기도 참 좋네요. 좋은계절 건강하게 보내셔요.
저도 젊은 주인공은 조금 거리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책에서라도 젊은이들 만나고 싶어요 ㅋㅋ

바람돌이 2021-08-19 0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겨울이 좋습니다. 두꺼운 이불 폭 덮고 있는 기분이 너무 좋거든요. ^^ 하지만 쿨캣님 리뷰를 보니 이 소설은 읽어보고싶네요. ^^

coolcat329 2021-08-19 07:58   좋아요 0 | URL
아 겨울! 저는 겨울의 쫙 갈라지는 듯한 그 뭐랄까 쨍한 순도 100의 그 깨끗한 추위를 좋아하는데 미세먼지때문에 그 맛이 사라져서 슬픕니다. ㅠ

새파랑 2021-08-19 0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 이책 너무 좋았어요. 리뷰 읽다보니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네요. 역시 이 책도 영화가 있었군요 ㅋ

coolcat329 2021-08-19 07:5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리뷰읽고 저도 읽은거랍니다. 저 또한 결말이 이럴줄 몰랐어요...🥲

Falstaff 2021-08-19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 전, 몇몇 알라디너께선 아시듯이 대표적인 워튼 안티인데요, 이 책 나올 때부터, 윽, 거기다가 김욱동 번역이셔? 결국엔 또 읽고나서 후회하겠구나, 짐작은 했습니다.

하여튼, 결론은 샀다는 거. 아직 안 읽었다는 거.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거. 같이 주문한 프리쉬 책 장만하는데 시간이 걸려 아직 알라딘에서 배송 시작을 하지 않았다는 거. 여태 주문 취소해? 말아? 취소해? 걍 읽어? 고민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 테스 형, 사는 게 왜 이래? (글쎄 이게 표절이지 뭡니까!)

coolcat329 2021-08-19 12:00   좋아요 2 | URL
앗 이 책 안 읽으실줄 알았는데 벌써 사셨군요. ㅎ 정당한 자신있는 안티가 되기위해 읽으시는건지요 ㅋㅋ

테스 형이 뭔지 몰라 순간 당황해서 검색을 해보니 헉 나훈아 노래였네요. ㅋㅋ 백만송이장미 표절이라는거 같던데 ㅋ
혹시 좋아하는 노래신지요 😅
들어보니 가사가 ㅋㅋ
아 테스형 아프다~ㅋㅋㅋ

Falstaff 2021-08-19 12:22   좋아요 2 | URL
ㅋㅋㅋ 안티가 되기 위해 책 읽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 바뀌어서 혹시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기를 기대해 읽는 것이지요.ㅋㅋㅋㅋ 진짭니다!!!!!


전 너훈아하고 극적으로 합이 맞지 않아 절대 안 듣습니다.
근데 유튜브에 송창식이 함춘호하고 나와서 테스형을 기타 반주로 노래하는 거였어요. 그게 바로 라트비아 민요였던 것이지요.

저 먼 시간에 심x봉이 어느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번안한 거 가지고, 하느님, 제가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요 지랄을 한 걸 기억하는데요, ㅋㅋㅋ (제가 이런 노랫말을 붙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번에 또 너훈아가 고대로 베껴 써먹더라고요.
하여튼 다 도둑놈들입니다. 일본말로 이런 대사가 한 때 유행했었는데요.
˝민나 도로보 데쓰˝

coolcat329 2021-08-19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미움이 사랑으로~~만약 사랑으로 바뀌신다면 이 소설이 또 많은 낚시질을 당할듯 싶습니다 ㅋ 영향력있는 알라디너 폴스타프님 ~

저 노래 어느 나라 민요곡이라는거 저도 듣고보니 기억이 나네요. 라트비아 민요였군요. 청승맞은 곡조가 우리나라사람들이 좋아하는가봐요. 저는 좀 별로던데요...
 
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J.M.Coetzee(1940~)가 1980년 발표한 소설로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나는 쿳시의 책을 4권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처음 그의 사진을 봤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오르면서 깐깐한 이미지가 만만찮은 사람같아 보였는데, 영국, 미국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 작가라는 점이 눈길을 끓었다. 그는 부커상을 최초로 두 번 수상했고 2003년에는 "정교한 구성과 풍부한 대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서구 문명의 도덕적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했다"는 평과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작가가 남아공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이 당연히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문제를 다룬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시간과 공간적 배경, 사건의 실상도 불분명하다 . 30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어느 제국의 변방 도시라는 점 외에는 알 수가 없다. 


소설은 치안 판사인 '나'의 자기 고백의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줄거리는 간단하다. 

화자인 '나'는 '한가로운 변경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며 소일하고 있는, 제국을 위해 봉사하는 책임감 있는 시골 치안판사이자 관리이다.'(p.18) '나'는 복잡한 일에 얽혀들기 싫고 그저 '조용한 시대에 조용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관할하는 조용하고 비교적 평화로운 이 도시에 불안함이 싹트기 시작한다. 야만인들이 장사꾼들을 공격하고 가축을 훔치며 국경순찰대와도 충돌을 일으키고, 급기야 국경 너머 야만인들이 연합해서 제국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 공포심은 고조되고 이에 수도에서는 보안청의 제3국 경찰들을 변방에 파견하는데, 졸 대령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국경 너머 유목민과 어부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살인까지 자행한다. 


변방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나'는 그들이 위험한 종족이 아님을 안다. 그들은 '고기나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어부들'(p.33)이고 또는 이곳에 살다 '제국이 확장되면서 평원에서 산으로 쫓겨난 사람들'(p.121)일 뿐이다. 도시에 번지는 소문은 그저 '야만인들에 대한 히스테리' 때문임을 '나'는 안다. 

'나'는 졸 대령을 위시하여 제3국 경찰들이 벌이는 이 말도 안되는 행보에 분개해 "변경의 불안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도록 변경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파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p.37) 라고 제3국에 비판의 편지를 쓰지만 곧 찢어버린다. '나'는 제국의 모순을 알고 있고 그들의 폭력에 반대하지만, 자신 또한 제국의 일원이기에 그저 고문으로 지친 희생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 주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작품해설에서 역자는 쿳시는 '가해자와 피해자,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 백과 흑의 이분법에 의존하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진보적인 인물을 내세워 체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안으로부터 폭로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자신의 공모성을 부각'(p.270)한다고 말한다.


치안판사인 '나'는 제국주의의 폭력에 반대하는 휴머니스트이지만 자신 또한 제국을 위해 일하는 관리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평안한 안위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의 내러티브를 읽다보면 그 또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온화한 얼굴의 제국주의일 뿐이다. 

졸 대령이 아무 죄도 없는 어부들을 잡아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동정심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편한 삶과 이국적인 음식'을 잊지 못해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면 어쩌나 걱정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비렁뱅이 부족을 떠맡고 싶지는 않다.'(p36)


밧줄로 목과 목이 묶인 죄수들을 보고 '나'는 등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틈만 나면 잠을 자고 나가서 일을 하며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걸 알고 있기에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괴롭다. '곡물창고 옆 오두막'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지 않지만 또 알아야 한다. '나'의 삶에 즐거움이 사라지고 이런 혼란에 빠진 자신이 수치스럽다.


졸 대령이 잠시 떠나고 '나'는 시내에서 동냥을 하는 야만인 여자를 만난다. 이 여자는 졸 대령이 잡아와서 고문한 유목민들 중 한 명으로 아버지는 죽고 혼자 남아 구걸을 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졸 대령으로부터 심한 고문을 받아 발목이 부러지고 눈은 거의 먼 상태다. '나'는 그녀에게 묘하게 끌리고 집으로 데려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며 집안일을 거들게 하지만 이것은 명분일 뿐 나는 이상한 의식에 빠진다. 매일 그녀의 몸을 마사지 해주고 씻기는 의식. 

그녀를 어루만지고 씻기다가 '나'는 잠이 드는데 그것은 '일종의 황홀경'과 같다. 발가벗은 그녀를 씻기고 쓰다듬고 오일을 발라주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의식이자 어떤 위안으로 다가오지만 그는 '무엇 때문에 그처럼 낯선 몸에 끌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 (p.72) 

그녀의 엉덩이, 가슴, 가랑이를 만지고 자신의 얼굴을 배에 비비는 등 이상야릇한 행위를 하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성적인 욕망이 없음을 계속 강조한다. 그저 그녀를 이해하고 싶고 알 수 없는 끌림에 저항할 수 없을 뿐이다. 


이런 '나'의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졸 대령과 같은 고문자들과는 다름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를 씻겨주고 어루만짐으로써 그녀의 몸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하나가 될 수 없다. '나'는 그녀에게 흥분을 느끼지 못하고 그녀는 나에게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녀를 원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나중에 '나'는 깨닫는다.


그녀가 내 침대에서보다 채소의 껍질을 벗기면서 더 행복해했던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을 조여오는 허위의 독기를 느낀 게 틀림없다. 욕망으로 가장한 질투심과 동정심과 잔인성의 허위 말이다. 충동이 아니라 충동을 애써 거부하는 성행위에서도 허위를 느꼈을 것이다! (p.222)



제국주의자들이 '야만인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고통은 인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왔기에 소설 속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다. 졸 대령은 잔인하고 폭압적인 식민주의자로서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관심을 두고 봐야 하는 인물은 '나'인 치안판사이다. 그는 원주민들을 죄인 취급하며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졸 대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한다. 그렇지만 그 또한 제국주의의 폭력에 일조하고 있는 제국의 일꾼이고 그의 내면에는 '야만인들'을 향한 제국주의자로서의 무시와 편견을 품고 있다. 눈 먼 원주민 여자에게 보여준 그의 배려는 허위로 가득차 있었고 자기 자신의 속죄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편안한 시절에 제국이 스스로에게 얘기하는 거짓말이고, 대령은 거친 바람이 불며 세상이 험악해질 때 제국이 얘기하는 진실이다. 제국의 통치술의 양면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p.223)


쿳시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위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제국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진실'(폭력)과 '거짓'(온건함) 둘 다 필요하다는 사실. 따라서 '거짓'으로 표현되는 '나'는 제국이 편안한 시절에 필요한 제국주의자이고, 졸 대령은 제국이 위급할 때 필요한 제국주의자라는 말이다. 

제국이 가진 이 양면성, 특히 거짓말로 대변되는 온건한 제국주의자가 어떻게 제국주의에 일조하는지를 치안판사의 고백을 통해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다. 


 

제국주의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끝장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제국의 시대를 연장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 제국은 낮에는 적들을 쫓아다닌다. 제국은 교활하고 무자비하다. 제국은 사냥개들을 이곳저곳에 파견한다. 밤이 되면, 제국은 재앙에 대한 상상을 먹고 산다. (p.219,220)


제국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상상의 존재인 '야만인들'.

그들은 야만인들이 여자를 강간하고 가축을 훔치며 아이들을 죽인다며 '미친 상상'을 하고 사람들을 공포에 빠지게 한다.  이런 상상은 금새 퍼지고 제국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처럼, 제국은 오지않는 '야만인'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야만인'이 없으면 제국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쿳시의 소설을 처음 읽은 소감은 책 뒷면의 워싱턴 포스트의 평처럼 '비범한 소설'이라는 것. 

모호하면서도 시적인 문장에 작가의 고뇌가 느껴졌고, 역자의 말대로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2019년 영화로도 개봉.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1-08-12 15: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J.M.Coetzee, 젊은 날 보다 노년기에 더 클린트 이스트우드 삘이 납니다!


˝온화한 얼굴의 제국주의˝라 하실 때, 어떤 뉘앙스일지 궁금했는데 바로 다음 문장에서 ˝비렁뱅이 부족˝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네요..

코로나 시대 제대로 영화도 못 봤는데, 쿨캣님 권해주신 요 영화 궁금해집니다! 책은 그 이후로^^

coolcat329 2021-08-12 15:52   좋아요 4 | URL
저는 영화는 못봤습니다 😅
소설은 치안판사의 내러티브로 전개되는데 영화는 그 고뇌와 모순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감이 안잡히네요. 쿳시가 각본을 맡았다고 하네요.

잠자냥 2021-08-12 15: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이 영화로도 개봉했었군요. 저 젊은이는 누구 역할이었을지...;; 가늠이 안 되네요. 기억력 벌써 가물가물...

coolcat329 2021-08-12 15:55   좋아요 5 | URL
조니 뎁이 잔혹한 졸 대령이고 로버트 패틴슨이 졸의 부하 만델 역을 맡았네요. 가운데 늙은 남자가 치안판사구요~

새파랑 2021-08-12 15: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쿳시 이분 작품 소개가 많이 되던데 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표지가 ㄷㄷ 그래도 읽어봐야겠죠?

coolcat329 2021-08-12 15:56   좋아요 3 | URL
저도 참 읽고 싶던 작가였는데 이번에 읽게 됐습니다. 저는 이 책 읽고 뭔지 모르지만 조금 제 스타일인거 같아ㅋㅋ 좋았습니다.

페넬로페 2021-08-12 17: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 역시 우리 눈에는 똑같이 보인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네요^^
영화에는 조니 뎁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겠어요. 전 존 쿳시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coolcat329 2021-08-12 17:17   좋아요 4 | URL
무거우면서도 시적인 문장 등...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소설입니다.

레삭매냐 2021-08-12 17: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옷 요거이가 영화로도 있었나
보네요. 미처 몰랐습니다.

책은 두 번인가 읽었으니 이제
는 영화를 볼 차례인가요.

coolcat329 2021-08-12 17:19   좋아요 2 | URL
두 번 읽으셨죠~저도 한 번 더 읽고싶어요. 영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조니 뎁이 무서워요...

scott 2021-08-12 17: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쿳시 이작품을 시작으로 소년시절 -청년시절-서머 타임
그리고 페테르부르크 대가를 끝으로
이후의 작품은 안 읽게(관심이 끊어져 버림 ㅎㅎ)
최근작들은 실망
번역가이자 교수님 왕은철! 존 쿳시 번역은 믿고 읽을 정도로
왕은철 교수님 존 쿳시 전문가!

coolcat329 2021-08-12 17:47   좋아요 5 | URL
왕은철 이 분이 쿳시 전문 번역가더라구요. ㅎ
쿳시 작품 많이 읽으셨군요. 페테르부르크는 저도 갖고 있는데 그건 좀 더 있다 읽고 다음엔<철의 시대>를 읽어보려구요~~

페크pek0501 2021-08-16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하신 왕은철 님이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는데 참 잘 쓰시는 분입니다. 책도 내셔서 한 권 가지고 있어요. 제가 광팬이라서요.
읽어 보진 않았지만 이 책도 문장이 좋을 것 같습니다. ^^**

coolcat329 2021-08-18 20:02   좋아요 0 | URL
왕은철님의 광팬이시군요. 이 분 에세이 도서관에서 본 듯 한데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scott 2021-09-10 15: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쿳시옹 작품 완독! 이번 기회에 ^^

coolcat329 2021-09-10 17:35   좋아요 3 | URL
늘 젤 먼저 오셔서 정답게 인사하시는 스콧님~감사드립니다.

mini74 2021-09-10 15: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coolcat329 2021-09-10 17:36   좋아요 2 | URL
미니님 감사해요~^^

새파랑 2021-09-10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야만인과는 전혀 거리가 먼 쿨캣님 축하드려요 ^^

coolcat329 2021-09-10 17:37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초딩 2021-09-11 1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coolcat329 2021-09-11 21:30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축하드리고,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그 모습이! 그가 바틀비였다. (p.25)


<필경사 바틀비>는 <모비 딕>으로 유명한 작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이 1853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 19세기 중반 맨해튼 월 스트리트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로 취업한 바틀비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라는 말로 유명한 바틀비. 이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는 자신을 고용한 변호사인 '나'의 요구를 여러 번 거절한다. 

커피를 타 오라거나 개인 심부름 같은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 필사원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검증을 도와달라는 것인데, 그것을 거부하니 고용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기막힌 노릇이다. 


급기야 며칠 후에는 자신의 본업인 필사마저 그만두고 그저 '사무실의 붙박이'가 된다. 

필사료 외에 웃돈을 얹어주며 좋은 말로 일을 안 할거면 나가줘야 겠다는 '나'의 말에도 그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바틀비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이 소설은 바틀비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윗 사람의 지시에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삭막한 관료 사회에서 우리에게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지 않는가...


사람이 노동하는 기계로 전락해버리고 또 언제든지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는 노동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소외현상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바틀비의 행동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이미 이런 환경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다. 

역자는 바틀비의 거부 행위를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행위가 기정사실화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p.101)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하지 않기를 선택한 권리가 있음을 작가는 바틀비를 통해 보여준다.


책 뒷면 보르헤스의 말처럼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특히 <변신>과 <단식광대>가 생각이 난다.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단식 광대는 끝까지 음식을 거부한다. 이유는 입에 맞는 음식이 없기 때문인데, 안 하는 편을 선택하는 바틀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 입에 맞는 음식이 없는가', '왜 바틀비는 안하는 편을 택하는가' 기존 세상을 향한 '소극적인 저항'이라는 점, 역시나 책 읽기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을 하게 하는 점이 두 소설을 같이 떠오르게 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8-03 1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지 않을 권리는 알겠는데 실제로 직장에서 바틀비씨 같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속터져 죽을 듯합니다. ㅎㅎ

coolcat329 2021-08-03 16:03   좋아요 2 | URL
네 맞습니다. 엄청 싫을거같아요. ㅠ사실 저는 ‘우리에게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거 외엔 이해를 못하겠더라구요. ㅎㅎ

Falstaff 2021-08-03 16:35   좋아요 4 | URL
제가 사장이면 수습기간 안에 해고할 거 같아요. 진심으로.

coolcat329 2021-08-03 18:23   좋아요 2 | URL
근데 바틀비가 해고해도 안 나가니 ...ㅠㅠ 화자는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또 능력이 되니 자기가 사무실을 떠나지만 그렇지않으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네요.ㅜㅠ

새파랑 2021-08-03 17: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왠지 약간은 배우고 싶은? 업무 자세군요 ㅋ 그런데 해고당할지도 😑

coolcat329 2021-08-03 18:18   좋아요 3 | URL
네~ 해고당할거에요 ㅎㅎ

페넬로페 2021-08-03 1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유명한 말이 너무나 인상 깊었어요.
바틑비는 저 말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것을 끊어야 했잖아요~~
그것이 참 슬펐는데 어찌 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의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으로도 보이더라고요^^
저 이 책 읽고 며칠간 참 우울했어요**

coolcat329 2021-08-04 06:51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이 책을 쓸 때 멜빌이 많이 힘들었던게 아닌가...생각도 들었어요. 모비 딕 실패로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은게 이런 글을 쓰게했나 싶었어요.

붕붕툐툐 2021-08-03 23: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진짜 이 책 제목이 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걸까요? 아마도 만나야할 운명인 듯한데, 쿨캣님 페이퍼가 또한번 그 시기를 앞당겨 주시네요~😊

coolcat329 2021-08-04 06:53   좋아요 1 | URL
아 ㅋ 이 책 많이 들어보셔서 그런걸 수도 있어요 . 저도 그동안 궁금했는데 이번에 읽어봤네요~~^^

scott 2021-08-05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필경사 바틀비!!

MZ세대의 롤 모델 ㅎㅎㅎ

바틀비 후손들이랑 머리싸매고 일해야함 ㅜ.ㅜ

coolcat329 2021-08-06 12:55   좋아요 1 | URL
스콧님! 저 mz세대 몰라서 찾아봤네요.ㅋㅋ
밀레니얼과 제트세대! 바틀비가 이들의 롤모델이군요. 저희 세대보다는 좀 더 바틀비랑 가까울거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