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면서 들을, 이왕이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것을 찾다가 우연히 유투브에서 문지혁 작가가 운영하는 '문지혁의 보기드문 책'이라는 채널을 발견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epiphany를 설명하는 강의였는데, 작가의 단정한 외모와 차분한 목소리, 무엇보다 진지한 강의가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어디선가 본(아마도 자목련님의 글?) <초급 한국어>의 저자였고, 지난 달 두 권을 연속해서 읽었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문지혁', 바로 작가의 이름과 같다. 자신의 이야기와 허구가 섞인 '오토픽션(autofiction)'으로 <초급 한국어>(2020)는 작가가 뉴욕의 한 학교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경험을, <중급 한국어>(2023)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문지혁이 헤어졌던 연인과 결혼해 불임으로 고생하다가 어렵게 딸을 낳고,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글쓰기 수업을 한 경험을 담고 있다.
두 소설 다 좋았지만 그래도 더 재미있었던 작품은 <중급 한국어>이다. 이야기는 글쓰기 수업의 커리큘럼(1장'자서전'에서 시작하여 '합평'을 거쳐 11장 '작품집 만들기'로 끝나는)에 따라 진행되는데, 수업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지혁의 일상-결혼생활과 육아,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과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독자 또한 자신의 과거와 일상을 의미있게 되짚어 보게 된다.
무엇보다 제임스 조이스, 안톤 체홉, 프란츠 카프카, 롤랑 바르트, 레이먼드 카버 등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주제에 맞는 글쓰기 연습을 하는 수업은 마치 나도 학생이 되어 강의를 듣는 거 같았고, '유년', '사랑', '대화', '환상', '일상', '죽음과 애도', '고통'과 같은 작품별로 제시된 주제어를 보며 '역시 소설은 삶과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급 한국어>는 '나의 모국어, 어머니께', <중급 한국어>는 '나의 첫 외국어, 채윤에게' 바치는 책으로 채윤이는 문지혁 작가의 딸이다. <중급 한국어>에는 딸을 낳아 키우는 일상의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는데, 나는 십여 년 전 나의 어설픈 육아를 돌아보면서 '그래 맞다...아이를 키우는 일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얼마나 어려웠던가...영어나 일어가 아닌 아랍어나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처럼 얼마나 낯설고 힘들었던가...' 생각했다.
두 소설의 제목은 한국어 교재 같아 딱딱하고 지루할 거 같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각 소설 당 두 번, 총 네 번을 나는 큰 소리로 웃었고 문학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그 수업이 따뜻하고 즐거웠다.
한 예로 '사랑'을 주제로 한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남자 주인공을 쓰레기라 하며 불륜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을 혹평한다. 이에 소설 속 지혁은 이렇게 말한다.
[소설이라는 실험실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소설의 인물들은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 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소설이란 윤리로 비윤리를 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비윤리를 통해 윤리를 비춰 보는 거울이자 그 둘이 싸우고 경쟁하는 경기장이 아닐까요? (p.93,94)]
문학 강의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삶을 통해 문학 작품을 들여다 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