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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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1967~)는 영국 런던, 인도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인도계 미국작가이다. <축복받은 집>은 그녀가 1999년 출간한 첫 소설집으로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단편소설로는 이례적으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했으니, 첫 작품으로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이후 <그저 좋은 사람>,<저지대>등을 발표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축복받은 집>에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인도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두 편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에 사는 인도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인도계 작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소설에는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미국에 사는 인도 이민자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라히리는 자신의 소설이 '이민자 소설'로 불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글로 쓰기 마련이기에 작품 속 인물들이 인도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미국의 교육을 받고 미국인으로 자란 작가가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겪은 삶을 작품으로 보여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인도인들의 문화와 역사는 낯설지만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 낯섦은 익숙함으로 바뀐다. 소통의 어려움과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 공허한 관계는 국적과 인종을 떠나 모든 인간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이 소설집 속 9편의 이야기는 이러한 인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부재와 이해심 부족, 그로 인한 갈등과 고독의 문제를 다룬다. 미국 이민자로서 겪는 인도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 <축복받은 집>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아이를 사산한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슴 속에 지닌 채 서로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일시적인 문제>, '남편도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는,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p.110)과 역시 아내와 대화 없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관광 안내인 카파시를 통해 끝내 소통할 수 없는 인간 관계를 보여준 <질병 통역사>, 자신의 몸을 따뜻한 온기로 달아 오르게 했던 "당신은 섹시해요"라는 남자(불륜남)의 말이 사실은 상투적이며 공허한 사랑의 밀어였음을 깨닫는 여자의 이야기 <섹시>, 고국 인도를 떠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한 여인이 겪는 고독과 어려움을, 혼자서도 잘 지내는 11살 미국 소년과 대비해서 심리적으로 잘 보여준 <센 아주머니의 집>,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결혼한 젊은 부부의 갈등과 이해의 어려움을 담은 <축복받은 집>은 인간 관계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두 번째 이야기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에서는 미국에서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세시)의 독립을 위한 내전을 지켜보며 그곳에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는 피르자다 씨와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인도인 가족의 따뜻한 정이 열 살 소녀의 시선으로 묘사되는데 다 읽고 나면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맨 마지막 작품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었다.

인도인 남성이 인도, 영국을 거쳐 세 번째 대륙인 미국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이민자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힘들지만 평범한 삶이 그것을 겪는 개인에게는 달에 가는 것보다 더 큰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다음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데 9편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가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싶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中 (p.309)


단편 소설집으로 유명한 줌파 라히리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9편의 작품이 대체로 다 좋았지만 읽기 전의 기대가 너무나 컸었기에 살짝 그 기대에는 못 미쳤다. 원제는 세 번째 작품 <질병 통역사 Interpreter of Maladies>가 표제작인데, 국내에서는 좀 더 느낌이 좋은 제목인 <축복받은 집>으로 바뀌어 출간되었다. 

인도 이민자들을 주인공으로 인간 관계 속에서 허덕이고 길을 잃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갈등, 그 안에 보이는 작은 희망과 회복을 줌파 라히리만의 매우 차분하고 깔끔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집 <축복받은 집>, 데뷔작이지만 데뷔작 같지 않은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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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13 13: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글 읽어 내려가니 하나하나 다시 생각나요~~
저도 ‘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 너무 좋았어요. 인용하신 문장도 넘 좋았고요^^
다시 감동이 밀려옵니다~~

coolcat329 2022-01-13 14:15   좋아요 5 | URL
마지막 이야기 정말 감동적이더라구요. 페넬로페님도 좋아하는 이야기군요!

새파랑 2022-01-13 16: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리뷰도 남겼고 좋았었는데 쿨캣님 리뷰 읽으니 조금씩 기억이 나네요~!! 약간 낯선 느낌이 드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 다시 읽어보고 싶어 지네요~!!

coolcat329 2022-01-13 16:35   좋아요 4 | URL
네~단편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또 새롭고 좋더라구요~새파랑님은 줌파 라히리 많이 읽으셨죠? 저는 이제서야 읽었네요😚

새파랑 2022-01-13 16:38   좋아요 4 | URL
제가 찾아보니 저도 세권밖에 안읽었더라구요 😅
<그저 좋은 사람>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ㅋ

mini74 2022-01-13 2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작가분 다른 책들 찾아봤던 기억 납니다. 묘하게 정서가 닮은 거 같아요 ~

coolcat329 2022-01-14 09:34   좋아요 2 | URL
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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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존 파울스(John Fowles 1926~2005)는 1926년 영국 남부 에섹스(Essex) 주의 해안 도시 리온씨(Leigh-on-Sea)에서 태어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종전 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와 그리스 등지에서 교사로 일했고, 1952년 귀국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3년 발표한 <콜렉터>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파울스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 주었고, 1966년 발표한 <마법사>는 '히피 세대들의 필독서'로 떠오르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파울스는 런던을 떠나 영국 남서부 라임 레지스(Lyme Regis) 지방으로 이주하여 글쓰기에 전념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의 최고의 작품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1969년 발표한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파울스의 모든 소설들 가운데 가장 큰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전후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불리며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1981년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대영제국이 가장 번영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867년 3월, 영국 남서부 라임 마을, 춥고 세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아침, 귀족 가문의 찰스 스미스슨은 약혼녀이자 부유한 사업가의 외동딸인 어니스티나 프리먼과 함께 성벽을 따라 걷다가 방파제 끝, 세찬 바람 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라 우드러프라는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찰스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다가가지만 자신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얼굴에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여성이라면 얌전하고 순종적이며 다소곳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시대'에 그녀의 얼굴은 자신을 찔러 죽이는 '창'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그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찰스는 아마추어 생물학자로서 화석을 채집하기 위해 외진 숲을 돌아 다니다 사라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몇 번의 만남과 마을의 소문을 통해 사라의 사연을 알게 된다. 

그 사연이란, 어느 날 폭풍으로 난파된 프랑스 선박이 근처 해안으로 표류해 오고, 마을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던 사라는 구조된 프랑스 중위를 간호하게 되었는데, 그 프랑스 장교와 부도덕한 밀애를 나눴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정조를 잃고 실연당한 여자로 생각, 심지어 정신 이상자로 몰아세우지만 사라는 그런 주위의 비난은 무시한 채 스스로 '남에게 따돌림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던 것.


"전 수치심과 결혼했어요. (...)어떤 모욕이나 비난도 저를 자극할 수 없어요. 그 경계를 넘어선 곳에 저 자신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전 아무것도 아니고, 이젠 더 이상 인간도 아니에요. 그저 프랑스 중위의 창녀일 뿐......" (p.231)


찰스는 이런 사라를 보며 연민과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도움을 주겠으니 이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제안하지만 사라는 이곳을 떠나는 것은 수치심과도 결별하는 일이 된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찰스가 새 삶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이며 거듭 설득하자 사라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찰스는 가엾은 여인에게 자신이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과 함께 '자유 의지'를 운운하며 그녀와의 사적인 만남이 한 순간의 불장난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도움을 주고 받으며 스쳐 지나가는 사이로 일단락 된 듯 보이는데, 찰스가 백부로부터 호출을 받고 잠시 라임을 떠난 사이 사라는 사라지고 설상가상으로 찰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던 백부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어 저택과 작위를 상속 받지 못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돈만 많은 집안 딸 답게 약혼녀 어니스티나가 보여주는 숙녀답지 않은 태도는 찰스를 실망시키고 사라가 남겨놓고 간 편지는 찰스를 더욱 심란하게 만든다. 


"간청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 주세요. 오늘 오후와 내일 아침에 기다리겠습니다. 안 오시면,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p.269)


책을 읽다보면 전지적 화자는 찰스의 행동과 생각을 좇아갈 뿐 사라의 내면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사라에 대해 계속 의문이 생긴다. '이 여자는 왜 이러는 걸까? 이상한 여자네...수상하네...'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찰스는 사라에게 끌리면서도 자신의 신분과 체면, 약혼녀 어니스티나를 생각해서 사라를 이성적으로 멀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온 사라의 존재를 감정적으로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다. 찰스는 사라의 부탁대로 그녀를 만나러 가고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찰스가 자신의 실존적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소설 맨 앞에 '모든 해방은 인간 세계의 회복이며 인간 자신에 대한 인간관계의 회복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소설 전체의 제사(epigraph)로 씀으로써, 이 소설의 주제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라를 만나기 전 찰스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였다. 일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적당한 교양과 과학적 지식까지 겸비한, 거기다 신흥 부유층 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재산도 더 불릴 수 있는 그야말로 미래가 창창한 그런 신사였다. 

그러나 우연히 사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찰스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낡고 진부한 신사계급의 껍질이 깨지는 것을 경험한다. 

찰스는 결국 파혼까지 해가며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하지만 그 사랑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랑이기에 그에 따른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낡은 사회적 관습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욕망과 만나는 과정은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의 실존주의와도 연결된다.


이 소설은 1867년의 이야기를 1967년에 살고 있는 화자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중간에 갑자기 작가가 일인칭 시점으로 개입하는데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니스티나는 같은 세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그녀는 1846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세상을 떠났다.(p.40)]


[나는 모른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모두 상상이다. 내가 창조한 인물들은 내 마음 바깥에 존재한 적이 없다.(...) 물론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아는 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알랭 로브그리예와 롤랑 바르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p.128)]


1876년의 이야기를 하면서 히틀러가 나오고 롤랑 바르트가 나온다. 또한 갑자기 일인칭 '나'가 불쑥 나와 소설의 이야기로부터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이런 서술 방식은 소설 내내 계속 된다. 

급기야 소설 후반부에 가면 작가가 소설 속 인물로 두 번이나 등장, 기존 소설의 형식을 벗어난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다음과 같다. 


[지금 너를 이용해 먹을 수 있을까? 지금 너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것은 바로 전지전능한 신-그런 불합리한 존재가 있다면-의 시선이다. 우리가 흔히 신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야비하고 의심 많은(누보로망 이론가들이 지적했듯이) 도덕적 특질을 가진 시선이다. 이 시선을 나는 찰스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그 사내의 얼굴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그 사내의 얼굴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 내가 바로 그 사내라는 것을 인정하겠다.(p.526)]


이어서 등장 인물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한 가지 결과를 작가가 정하지 않고 두 가지 결말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총 세 가지 결말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찰스의 상상이고 나머지 두 개는 위에서 말한 찰스가 처한 딜레마를 아예 없애고 두 가지 결말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왜 마지막 한 가지 결말을 제시하지 않고 여러 결말을 제시하는 소설을 썼을까? 

그것은 독자인 우리에게도 생각해 보라는 뜻이 아닌지, 또한 소설 속 이야기를 빅토리아 시대로만 한정하지 말고 현대까지 연결되는 인간 실존의 문제임을 이런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정말 많은 주제와 빅토리아 시대 충돌하던 가치관 등을 다루면서 즐거운 책읽기를 선사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다윈의 진화론, 매튜 아널드의 실존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빅토리아 시대를 재구성한 작가의 글을 내 지적 수준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방대한 지식이 집약된 소설이라는 점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무엇을 써야 하나, 참 힘들었다. 작가가 남녀의 사랑 이야기 외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 모든 것을 머리로 흡수하여 글로 정리하려니 참 내 능력으로는 벅찼다. 그러나 이 책은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지적이고 실험적인 면에서)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 텍스트이자 전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있었고, 존 파울스의 다른 책들을 다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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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1-07 21: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오.... 드디어 파울스의 세계로 들어오셨군요!
<마법사> 절대 놓치지 마세요. 명작입니다.

coolcat329 2022-01-07 22:43   좋아요 3 | URL
네~~정말 신박한 소설을 만났습니다.
<마법사> 사겠습니다. 골드문트님이 극찬하신 글 읽은 기억이 나네요.
편한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2-01-07 2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 파울스 소설 직접 읽으신 coolcat님께서 보람느끼셨다는 말씀을 리뷰 후반부에서 보니, 아주 공감됩니다. 깊이 읽으셨기 때문에 더 보람있으시겠어요.

저는 희미하게 제목만 들어본 작품은 coolcat님 덕분에 줄거리 알아가네요.

방금 전 본 <Don‘t look up>에서의 메릴 스트립도 굉장히 카리스마 뿜뿜 멋진데 1981년 영화에서는 또 다른 매력도 있겠어요^^

coolcat329 2022-01-07 22:56   좋아요 3 | URL
소피의 선택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옛날 메릴 스트립 정말 아름다워요.
이 책 절판됐던데 현대 고전인만큼 개정판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방금 돈룩업 보셨군요. 메릴 스트립도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더 보고 싶네요~^^
북사랑님 좋은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2-01-07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돈룩업 최고네요^^ 고양이라디오님 페이퍼 읽고, 봐야지봐야지 하다가! 지금 감동먹고 기후 위기 책 뽑아왔어요. 결국 헐리우드판 그레타 툰베리 영화인가? 하면서. coolcat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를^^

바람돌이 2022-01-08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열린책들 세계문학판으로 다시 나와있어요. 저도 보고싶어서 검색해보니 나오네요. 같은 역자인걸로 봐서 개정판인지 아니면 세계문학전집으로 넣으면서 판형을 바꾼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책이 계속 나오는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저도 존 파울스의 세계로 들어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

coolcat329 2022-01-08 11:53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열린책들세계문학 상,하권으로 나눠서 2009년인지 개정판이 있긴한데 한 권으로 다시 나오면 좋을거 같아요~^^

새파랑 2022-01-08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거 같은데 들어가보니 품절이라는 ㅜㅜ 그런데 바람돌이님 답글보니 개정판이 있나 보네요 ^^ 사랑이야기에 다양한 결말이라니 재미있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2-01-08 11:56   좋아요 2 | URL
상,하권으로 있어요~~^^
사랑이야기에다 빅토리아시대 공부도 됩니다~^^

coolcat329 2022-01-08 11:58   좋아요 3 | URL
상,하권으로 있어요~^^사랑이야기 외에 빅토리아 시대 공부도 된답니다~^^

mini74 2022-02-10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캣님 글 읽고 영화 찾아서 본 ㅎㅎ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2-10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다 샀어요 ㅋ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ㅎㅎ 축하드려요~!!

coolcat329 2022-02-11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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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p.335,336)


올리브가 돌아왔다. 2008년 발표하여 이듬해 퓰리처 상을 받은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이 11년만에 나온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메인 주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중년의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작소설이다. 학교 수학교사인 중년의 올리브가 약사인 남편 헨리와 함께 외아들 크리스토퍼를 키우는 것을 시작으로 아들의 결혼과 이혼, 애 둘 딸린 여자와의 재혼을 멀리서 지켜보며 부모로서 외로움을 느낄 무렵, 한없이 자상했던 남편 헨리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결국엔 사별하기까지의 20여 년의 시간을 13편의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 


속편 <다시, 올리브>도 역시 1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편 <올리브 키터리지>가 남편인 헨리의 이야기 ('약국')로 시작했듯이, <다시, 올리브>도 두 번째 남편이 될 잭 케니슨의 이야기('단속')로 시작된다. 


어느 덧 70대 중반이 된 올리브. 전편에서 남편 헨리가 죽고 뉴욕에 사는 아들 크리스토퍼와는 여전히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런 올리브에게 아내를 잃고 역시 외로움에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잭 케니슨이 다가오고 두 사람은 재혼을 한다. 다음은 잭 케니슨이 올리브에게 청혼하는 장면인데, 좋게 말해 올리브가 얼마나 자기 색깔이 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맙소사, 올리브, 당신은 정말 까다로운 여자예요. 더럽게 까다로운 여자. 젠장, 그런데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괜찮으면 올리브, 나하고 있을 땐 조금만 덜 올리브가 되면 좋겠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땐 조금 더 올리브가 된다는 걸 의미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시인' 中 (p.336)]


<다시, 올리브>에는 올리브를 중심으로 전편에서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늙어감과 죽음'이다. 

올리브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제자에게 자신도 죽음이 무섭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 - '햇빛' 中 (p.207)]


또한 82살의 올리브는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제자에겐 나이를 먹으면 어떤 기분인지 말한다.


["나이가 들면 투명인간이 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자유를 주지.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말이야. 거기에 뭔가 자유를 주는 측면이 있지" -'시인' 中 (p.324,325)]


늙으면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올리브의 말은 삶을 초월한 노인의 말 같으면서도 쓸쓸하게 들린다. 더이상 내가 아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할 기력마저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슬퍼하기엔 남은 생이 너무 짧은 것일까? 아마도 처음엔 올리브도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에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8년 간 결혼 생활을 한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정말로 혼자가 된 올리브는 이런 현실을 슬퍼하기 보다는 노년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올리브는 두 번째 남편 잭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헨리 생각을 한다. 헨리가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첫 번째 남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헨리는 영영 알 수가 없으니 괴롭고 힘들다.


"내가 별로 잘해주지 못했다는 거야. 그게 지금 마음 아픈 거고. 정말로 마음이 아파. 요즘 이따금-드물게,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이따금-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헨리가 내게도 그런 모습을 전혀 못 봤다고 생각하면 정말 괴로워." -'햇빛' 中 (p.205)


올리브의 이 고백이 나는 정말 너무나 슬펐다. 올리브가 헨리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던가. HBO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면 올리브가 얼마나 집안 분위기를 자기 맘대로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아, 그 숨막히는 식사 장면!)  또한 헨리에게 말과 행동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근데 그런 올리브가 지금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제자 문병을 가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올리브 성격 상 대화 상대도 없고 전 남편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을 잭에게 말 할 수도 없으니 아픈 옛 제자를 주기적으로 찾아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후회의 연속이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 또 다시 후회하고 슬퍼하고 뉘우치고 또 다시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올리브를 비롯한 <다시, 올리브>속 인물들은 모두 이런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삶의 상처와 결핍을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방황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에서 크게 엇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들이 인간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인생에 있어서 값지고 소중한 것들은 그 존재를 깨닫기 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어쩌면 모든 인간이 지닌 슬픔의 근원이 아닌가도 싶다.


잭도 떠나고 심장마비를 일으켜 극적으로 살아난 올리브는 노인 거주 단지로 거처를 옮긴다. 올리브는 이제 끝이 다가왔음을 안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자신의 삶을 거쳐갔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헨리의 다정한 눈빛, 잭의 영리한 미소, '심장의 바늘'인 아들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와의 관계는 늘 삐그덕거렸으나 헨리와 잭, 두 남자의 사랑을 받은 올리브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여자였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지난 삶을 글로 남기려는 올리브는 다음과 같이 타자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친구 이저벨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p.460)


올리브는 자기가 누구였는지 깨닫고 세상을 떠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지난 삶을 되돌아 보고 기록하면서 조금씩 후회하고 성찰하며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가지 않을까?

곧 2월이 올텐데 아마도 올리브의 이 말이 귓가에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2월의 저 햇빛 좀 봐."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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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3 2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도 좋았고 드라마속 여주가 상상한 올리브보다 조금 날씬하긴 하지만 눈빛이며 참 좋았어요 ~ 쿨캣님 글 읽으니 그때 느낌이 새록새록, 다시 꺼내읽고 싶어집니다 ~

coolcat329 2022-01-04 11:32   좋아요 2 | URL
올리브 발이 275죠 ㅎ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를 너무 잘 했죠?
이 책은 1년 후 다시 매일 한 편씩 읽어봐도 좋을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04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리뷰를 보니 올리브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막 나네요. 저는 올리브의 그 평범함이 진짜 매력적이더라구요. 다들 실수하고 후회하고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그런데 또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오히려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했던 올리브는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모습이어서 더 공감이 많이 갔던거 같아요.

coolcat329 2022-01-04 11:38   좋아요 2 | URL
네 올리브에게 제 모습도 보여서 뜨끔했어요. ㅎㅎ
앞으로 늙어갈 제 자신을 그리며 읽으니 더 와 닿았습니다. 바람돌이님도 꼭 읽어보셔요~
 
벨아미 펭귄클래식 108
기 드 모파상 지음, 윤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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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Bel-Ami>는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이 1885년 발표, 19세기 후반 파리를 배경으로 조르주 뒤루아라는 잘생긴 청년의 막장 출세기를 다룬 소설이다. 다시 말하자면 노르망디 시골 청년 조르주 뒤루아가 '뒤 루아 드 캉텔 남작'이 되기까지의 아슬아슬하면서도 추잡한 과정을 담고 있다. 


잘생긴 얼굴, 큰 키의 건장한 체격에 우아한 모습인 뒤루아.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궁색한 삶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성공을 꿈꾸며 파리로 왔지만 현실은 박봉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피가 끓는 젊은 남자로서 길거리 여자들만 보면 몸이 달아오르니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뒤루아는 길에서 우연히 옛 군대 동기 포레스티에를 만나고 그의 주선으로 신문사에 취직하게 되면서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약고 영리하고 뭐든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뒤루아는 얼마 가지 않아 유능한 취재기자가 되고 파리 사교계를 드나들게 된다. 자신의 수려한 외모와 우아한 행동이 돈 많은 부인들에게 먹혀들어 가자 뒤루아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마침내 파리 사교계의 한 여자를 얻게 되는데 뒤루아는 너무나 쉽게 불쑥 찾아온 행운에 큰 성취감을 느낀다.


[드디어 희망이, 이제 힘을 얻고 성공을 하고 이름을 날리고 돈과 사랑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신기루 속에 꿈틀대면서 뒤루아의 눈앞으로 우아한 여인들이, 돈 많고 권세 있는 여인들이 나타났다. 흡사 연극 공연의 절정에서 꽃다발처럼 줄줄이 무대 위를 지나는 단역 여배우들처럼 모두들 미소 띤 얼굴로 하나씩 나타나 그의 몽상의 황금빛 구름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p.101)]


적당한 지위와 돈,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드 마렐 부인과의 만남은 그의 넘쳐나는 욕망과 정욕을 잠시나마 진정시켜 주지만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나자 그의 욕망은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다. 반반한 얼굴로 '벨아미'(미남 친구)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주변을 탐색하던 뒤루아는 신분 상승의 도구로 여자들을 이용, 배신과 거짓을 일삼고 유혹하기를 반복한다. 


["언제 둘이만 있을 수 있는 겁니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는 합니까?"(p.103)


"아무튼 언젠가 댁에서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한테 가장 소중한 꿈은 바로 부인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는 일이라고요."(p.212)


"정말입니다. 전 정말 부인을 사랑합니다. 오래전부터, 미친듯이 사랑합니다.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하죠. 제가 미친 겁니다. 부인을 사랑하다니......오! 정말입니다.부인을 사랑합니다!"(p.288)


"당신을 내 아내로 삼을 수 없다면 난 파리를 떠날 거고 이 나라를 떠날 겁니다."(p.396)]


뒤루아가 하는 말이다. 근데 상대가 다 다른 여자이다. 그리고 저런 거짓 사랑 고백이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는 건 바로 그의 잘생긴 외모 덕분이다. 


잘생긴 얼굴과 영악함을 무기로 겁없이 설치는 뒤 루아(뒤루아에서 귀족 칭호인 뒤 루아로 바뀜)를 보며 '이러다 큰코다치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설은 나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런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게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도 뒤 루아 못지 않게 썩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팽창하면서 돈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건 프랑스 사회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사회에서는 비도덕적인 사람,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 살아남기 쉽지 않겠는가.


['세상은 강자들의 것이다. 강자가 되어야 한다. 모두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p.265)]


뒤 루아는 그 누구보다 세상이 누구 편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강자가 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인 얼굴과 '여자를 유혹하는 힘'을 제대로 이용한 것이다. 게다가 '여자들은 모두 창녀일 뿐'이라는 그의 비뚤어진 생각은 목적을 위해 여자들을 수단으로 이용한 그에게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게 했기에 자신의 야망을 향해 나아가기가 더욱 쉬웠을 것이다. 


타락한 사회가 타락한 인간을 만들고 타락한 인간은 또 타락한 사회를 만드는 부패와 위선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양심과 도덕은 얼마나 부질없어 보이는지 모른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그 점을 한 번 더 확실히 하면서 끝난다. 그래도 벨아미 2편이 있다면 나는 뒤 루아가 분명 자신 보다 한 수 위인 팜므 파탈을 만나 반드시 큰코다칠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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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24 18:0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벨아미>를 읽으셨군요~! 잘생긴 친구 벨아미 ㅋㅋㅋ 벨아미가 나쁜놈이긴 한데 책이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ㅎㅎ 역시 막장이 재미있는거 같아요~!! 저도 2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ㅋ

coolcat329 2021-12-24 18:14   좋아요 5 | URL
네~책장이 그냥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벨아미 요 인간 더 강력한 여자 만나 제대로 당했으면 좋겠어요 ㅋㅋ

페넬로페 2021-12-24 18: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벨아미는 먹이를 찾아 높은 곳만 향하는 하이에나네요~~
쿨캣님께서 벌아미의 마지막을 공개하지 않으셔서 넘 궁금한데요.
이 책 읽으면 열받으며 읽을 것 같아요^^

coolcat329 2021-12-24 18:59   좋아요 4 | URL
벨아미가 나쁜 놈이긴 한데요...그 주변 인물들도 다 탐욕덩어리들이에요. 소설 속 벨아미 말대로 그야말로 ‘잡탕‘이거든요. ㅎ 더 못된 강력한 여자가 나타나 응징을 좀 해주면 좋겠지만요 ㅎ

페넬로페님 메리 크리스마스 🎄

미미 2021-12-24 1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벨아미 2 누가 써주면 좋겠어요ㅎㅎ
타락이 성공의 발판이 되는 세계에서는 양심과 도덕은 오히려 약점이 되겠죠! 쿨캣님 해피 크리스마스🙋‍♀️🎄🎅🤶🌟

coolcat329 2021-12-25 09:43   좋아요 2 | URL
미미님도 즐거운 성탄절되세요~

잠자냥 2021-12-24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도 이 책(펭귄클래식 버전)으로 읽었는데요. 뒤 루아가 저 표지처럼 생겼다면 도저히 벨아미 아니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12-25 09:45   좋아요 3 | URL
오 맞아요 ㅋㅋㅋ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민음사도 저 표지던데 이해가 안 가네요ㅋㅋ

잠자냥 2021-12-25 09:57   좋아요 2 | URL
프랑스 꽃미남 기준이 음… 암…. 음….. ㅋㅋㅋㅋ
 
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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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가 1997년 발표한 소설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에 이어 세 번째 읽는 쿤데라의 소설이다. 

책날개에 있는 쿤데라의 두 줄짜리 유명한 작가 소개글이 새삼 반갑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다섯 살 된 아들이 죽은 후 샹탈은 남편과 이혼하고 네 살 연하의 장마르크와 살고 있다. 그녀는 장마르크와의 만남을 앞두고 홀로 노르망디 해변을 거닐다가 별안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더 이상 남자들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 라는 샹탈의 뜬금없는 말에 장마르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자기는 그날 아침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 곁에 가기 위해 찻길에서 치어 죽을 각오로 뛰어왔는데 어떻게 그녀는 다른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있을까?'(p.44) 라고 생각한다. 장마르크에게 샹탈의 말은 평소 자신이 생각하던 그녀와는 너무나 다른 그녀답지 않은 말이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천박하고 음탕한 익명의 시선'(p.46) 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샹탈은 주소도 우표도 없는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나는 당신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닙니다. 당신은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p.50) 라고 적힌 편지를 받고 샹탈은 처음에 불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편지가 속속 도착하고 샹탈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시선을 점점 의식하며, '늘씬한 몸매', '디오니소스적이고, 도취한 듯한 야만적인 불꽃', '아름다운 빨간 당신이 눈에 선합니다!' 라는 '그'의 찬사에 묘한 흥분을 느낀다. 

너무 화려해서 자주 하지 않았던 빨간 진주 목걸이도 '그'가 아름답다고 하자 당당히 걸고 다니고, 급기야 빨간 잠옷까지 사서 입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이토록 늘씬한 적이 없었고 피부도 이토록 하얀 적이 없었다고' 느낀다.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샹탈을 활기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여인으로 만들고 그녀는 자신의 그런 이미지에 도취된다. 연인 장마르크와 사랑을 나눌 때도 자신을 엿보는 '그'를 상상하며 희열을 느끼는데, 장마르크는 이런 샹탈이 이끄는 대로 또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으니 참 재미있다. 


자신을 여신으로 찬미하는 이런 편지를 보내는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책 뒤에 줄거리를 읽지 않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당연하게도 샹탈은 '그'의 정체가 궁금해지고 주변을 살피며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반면, 장마르크는 '자기가 세계와 맺고 있는 유일한 감정적 관계가 그녀라고 생각'(p.98)하며, 그 '유일한 존재'인 그녀를 잃는다는 두려움과 자신이 알던 샹탈이 더 이상 그 샹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착각을 했다는 생각." (p.99)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확립하는 샹탈과 그런 샹탈을 보며 자신이 알던 샹탈과 자기가 모르는 샹탈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장마르크,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쿤데라는 정체성이라는 인간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생각했던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없어지는지, 나의 정체성은 과연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에 가서 '아...그럼 그렇지..이런 거였어?' 하게 되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정체성이란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꿈과 현실의 그 알 수 없는 경계선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익명의 사람들 속'으로 내던져 지지 않고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삶의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기에 우리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샹탈의 말처럼 쉴 새 없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야.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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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17 1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이 말씀은, ˝내가 입 열기 전에 먼저 당신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는 인생 교훈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혼자 생각을 하고 지나갑니다^^

coolcat329 2021-12-17 15:18   좋아요 3 | URL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연연하기 보다는 내가 상대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는게 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좋은 영향을 준다...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감 2021-12-17 14: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쿤데라 작품 읽기 쉬운가요? 저도 슬슬 쿤데라 읽어볼까 해서요ㅎㅎ

coolcat329 2021-12-17 15:26   좋아요 4 | URL
세 권 겨우 읽어봤지만 저는 쉽지는 않았어요. 근데 또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운건 아니에요.
계속 읽고 싶고 알고 싶은 그런 작가입니다. 이 책 소품같은 작품이니 한 번 맛 보시고 괜찮으시면 <참을 수 없는...>도 보세요.
농담, 불멸도 저는 읽어 보고 싶어요.

coolcat329 2021-12-17 15:41   좋아요 3 | URL
아! 물감님 나귀가죽보단 분명 좋으실거에요. 완전 달라요. ㅋㅋ

물감 2021-12-17 15:47   좋아요 3 | URL
발자크보다 나으면 됐어요ㅋㅋ참존가벼움 먼저 읽어보게씁니다😀

coolcat329 2021-12-17 15:48   좋아요 2 | URL
네~~감상평 기대할게요!

미미 2021-12-17 14: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재생되는 멜로디ㅋㅋㅋ
저 두줄 소개글 처음 보는데 짧고 강렬한데요?!😄
리뷰를 읽다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란 생각이 들어요.‘정체성‘이란 늘 혼란스럽지만 매력적인 단어같아요ㅎㅎ 저도 읽어볼래요~♡

coolcat329 2021-12-17 15:28   좋아요 3 | URL
쿤데라 저 작가소개글 참 당당해 보여요.
그의 소설 속 인물들도 저 정도의 정보만 제공하죠. ㅎ
저 외의 정보는 다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고집이 느껴져서 저는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바람돌이 2021-12-17 14: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랑 겹치네요. 저도 참을수없는과 무의미의 축제 딱 2권 읽었는데 확 끌리는 작가는 아니더라구요. 여태 읽은 책보다 쿨캣님이 소개하시는 이 책이 더 끌리네요. ^^

coolcat329 2021-12-17 15:30   좋아요 3 | URL
오 저랑 같으시군요. 참존은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무의미는 도대체 이게 뭔가...싶었어요. ㅎㅎ
정체성은 그 보다는 쉬운 편이니 기회되시면 읽어보셔요~

페넬로페 2021-12-17 14: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독서 서평 쓰기 강의 들었는데 선생님께서 이 정체성에 대해 멋지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책 사놓고 아직, ㅎㅎ
정체성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데 자꾸 하나로만 확정지으려해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coolcat329 2021-12-17 15:35   좋아요 4 | URL
네~바로 그 점때문에 장마르크가 혼란스러워해요. ㅎㅎ
참 유쾌하면서도 귀엽기까지한 소설이에요.
도서관에서 강의까지 들으셨으니 훨씬 재미있겠어요~~

새파랑 2021-12-17 17: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책 엄청 재미있을거 같아요. 연인을 옆에 두고도 다른 시선을 더 의식하는 상황이라니~ 그 남자는 혹시 ˝장마르크˝ ?

coolcat329 2021-12-17 19:57   좋아요 1 | URL
댓글이 사라져서 다시 쓰네요 ㅎㅎ
아주 막~~재미있는건 아닌데, 새파랑님은 이 소설 좋아하실거 같아요😉

mini74 2021-12-17 17: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넘 재미있겠어요. 저도 새파랑님 처럼 장 마르크일거 같은 ? *^^*

coolcat329 2021-12-17 18:45   좋아요 2 | URL
그쵸~? ㅋㅋ 미니님도 읽어보셔요. 200페이지도 안되니 부담없으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