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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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인의 사막>은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Dino Buzzati 1906~1972)의 대표작으로, '20세기 환상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디노 부차티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도시 벨루노(Belluno)에서 태어나 밀라노로 이주한 뒤, 1924년 밀라노 대학 법학부에 입학, 졸업 후에는 기자로서 평생 활동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했다. 1933년 첫 소설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그는 1940년에 발표한 <타타르인의 사막>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50년에 발표한 소설집 <60개의 이야기>로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했고, 1963년 발표한 <어떤 사랑>은 문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다수의 소설, 시, 희곡 등을 발표했고 화가로도 활동했는데, 스스로를 "기자와 작가를 취미로 하는 화가"라고 칭할 정도로 그림에도 깊은 열정을 보였다. 

환상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부차티는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현실과 환상이 어우러지는 독창적인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소설은 사관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 장교 조반니 드로고가 북부 국경의 외딴 요새, 바스티아니로 파견되면서 시작한다. 어렵게 요새에 도착한 드로고는 '감옥이나 버려진 궁전'(p.26)을 연상케 하는 황량한 요새의 모습에 실망하여 처음에는 넉 달만 버티고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요새에서의 생활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점차 그를 매혹시키고,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운명의 힘'(p.88)에 이끌려 결국 요새에 남기로 한다. 


드로고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국경 너머 북쪽 땅에 흩어져 있는 타타르인들이 언젠가 침략해 올 것이라는 '은밀한 희망'(p.234)에 사로잡혀,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허비한다. 그의 기다림은 점차 그의 삶을 지배하며, 단순한 인내를 넘어 그의 존재 이유이자 유일한 목표로 자리 잡는다. 그는 멈춰 있는 듯한 요새의 시간 속에 갇혀 흘러가는 세월을 실감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젊음과 꿈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고립된 요새에서 오지 않는 적을 기다리다 늙고 병들어 요새에서 쫓겨나고, 결국 어두운 여관방에 홀로 남게 된다. 


이런 드로고를 마지막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것이 실상 얼마나 초라하고 덧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는지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믿으며, '어쩌면 일생일대의 기회, 그의 전 생애를 가치 있게 만들어줄 결정적인 전투'(p.278)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마지막 기대를 건다. 그것은 그가 평생을 기다려왔던 싸움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전투'(p.279)인 바로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적이었다. 30년에 걸친 그의 모든 기다림과 갈망은 결국 이 '혹독한 전투'를 향해 모아지며, 그는 이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마지막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인간 실존의 문제를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은 처음이었다삭막하고 황량한 분위기 속에서도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는 빛을 잃지 않고, 그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되어 읽는 내내 책을 품에 안고 싶을 만큼 강렬한 감동을 느꼈다.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너무 좋아서 두 번을 읽었는데, 세 번을 읽어도 좋을 작품이다. 


특히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그 속에 시간이라는 요소를 비중 있게 다룬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시간의 흐름이 점점 가속화되면서, 독자인 나 역시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를 통해 시간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고 의미를 부여하는 거대한 힘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30장에서 드로고의 죽음을 보며,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문제를 떠올렸다. 과연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피할 수 없는 을 맞이해야 할까...앞으로 이 물음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삶의 본질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할 거 같다.  정말 여운이 오래 남는 멋진 작품이다. 



1976년 발레리오 주를리니(Valerio Zurlini 1926~1982)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음악을 맡아 더욱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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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3-21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있군요~! 이 책 제가 완전 좋아하는 책인데 ㅜㅜ 드디어 읽으셨군요~!!

coolcat329 2025-03-21 12:14   좋아요 1 | URL
네~정말 문장이 아름다워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어요.
영화 드로고 중위 역은 시네마천국에서 중년 토토를 맡은 자크 페렝이더군요.

레삭매냐 2025-03-27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포스터를 보니 왠지 책의
이미지가 바로 연상이 되는 그
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도 연상되구요.

coolcat329 2025-03-29 12:06   좋아요 1 | URL
아~저도 그랬어요. 근데 실제로 쿳시가 이 소설에 영향을 받아 <야만인을...>을 썼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음악이 정말 이 소설의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했더군요.
 
블렌드 오렌지선셋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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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셔본 알라딘 커피 중 가장 달달한 커피. 산미와 단맛의 조화가 봄에 마시기 딱 좋다. 배송비 때문에 책도 함께 구매했는데, 앞으로 커피를 살 때마다 책 한 권씩 꼭 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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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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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그 유명한 ‘아쿠타가와 상’의 주인공이라 소설이 난해하고 어려울 줄 알았는데, 17개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엇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다니 정말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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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하영북스)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하영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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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중단편 소설집으로 <감정의 혼란>, <아모크>, <책벌레 멘델>, <체스 이야기> 이렇게 네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중 <아모크>와 <책벌레 멘델>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으로, 이 두 작품을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그만 푹 빠져서 네 작품을 다 읽고 말았다. 


<감정의 혼란>과 <체스 이야기>는 4년 전에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흥미롭고 감탄스러웠다. 특별한 상황에서 고통을 겪는 인물들의 심리가 4년 전 읽었을 때보다 더 생생하고 깊이 있게 다가오니...감탄할 수밖에!


<아모크>는 1922년 출간된 작품으로 당시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모크'란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한 일종의 정신병으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어떤 광기에 휩싸여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소설은 바로 이 아모크 상태에 빠진 한 의사의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의사는 내가 읽은 츠바이크의 소설 속 인물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인데, 이런 인물의 이야기를 열심히 읽고 있는 나를 보며, 정말 츠바이크는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벌레 멘델>은 가장 여운이 오래 남은 작품으로 인간의 경지를 뛰어 넘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책 장수 멘델이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츠바이크는 화자의 입을 빌려 '책을 쓰는 목적은 협소한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어 사람들을 연결하고, 인생의 가혹한 적인 무상함과 망각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p. 242)이라며 멘델로 대표되는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드러낸다. 


하영북스에서 출간된 <감정의 혼란>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이유는 역자 정상원의 훌륭한 번역과 풍부한 작품 해설이 큰 몫을 했다. 츠바이크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는 작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조차 '자신의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읽히지 못하리라고 한탄'(p. 321)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는가! 나는 지금까지 츠바이크를 싫어하는 사람은 물론, 그를 조금만 좋아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츠바이크를 떠올리는데, 야만의 시대와 싸우며 글을 썼던 그의 고뇌를 아는 독자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어제의 세계>와 <메리 스튜어트>가 개정판으로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밖에서는 싫은 소리 못하는 호인이었으나 집안에서는 신경질적이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말 나에게 최고의 작가이다. 

자신의 작품이 잊혀질까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편안히 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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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2-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라는 책을 갖고 있는데 오디오북으로 조금 듣고 책 읽기는 시작하지 못했어요. 워낙 유명인인데 본인은 유명해질지 몰랐다니 아이러니. 탁월하면 누군가는 꼭 알아 보게 돼 있고 대중들의 평가를 받게 되지요.^^
 
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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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12/3 계엄이 선포되기 2주 전 출간된 2023 부커상 수상작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상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우연이지만 그 시기적절함에 소름이 돋는다. 줄 바꿈 없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문장이 서서히 조여오는 전체주의 국가의 폭력처럼 느껴져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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