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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드레퓌스 사건, 나는 고발한다, 루공-마카르 총서,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정도로만 알고 있던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이번에 읽은 <테레즈 라캥>은 작가의 자연주의 소설관을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1867 출간되었다.
당시의 사회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실주의에서 발전, 강화된 형태로 나타난 자연주의 문학은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함께 나타났다. 사실주의가 '객관성'을 강조했다면, 자연주의는 '과학성'을 강조한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p.355)
인간의 능력으로 고치지 못했던 불치병들이 과학의 도움을 받아 치료되고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과학의 위상은 높아진다. 사람들은 과학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고, 이런 과학에 대한 무한 신뢰는 인간의 삶도 과학으로 그 진실과 법칙을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쓴 작가가 바로 졸라이다.
<테레즈 라캥>을 발표하고 동료 문인들, 비평가들의 악평-"<테레즈 라캥>의 저자는 포르노그라피를 펼쳐놓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불쌍한 히스테리 환자다"-에 당황한 졸라는 1868년 2판 서문에서 자신의 소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서문 p.10)
자연주의 소설의 서막을 알린 <테레즈 라캥>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베르농에서 25년간 잡화상을 운영한 라캥 부인. 그녀에게는 병약한 아들 카미유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키운 조카 딸 테레즈가 있다. 테레즈는 라캥 부인의 오빠 드강 대위가 알제리 여자와 사이에서 오랑에서 낳은 딸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 프랑스로 건너와 라캥 부인에게 맡겨진다. 테레즈는 늘 병을 달고 사는 카미유 곁에서 덩달아 병자처럼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지내게 된다. 늘 아픈 아들을 걱정하는 라캥부인은 자신이 죽고 나서도 아들을 돌봐줄 수 있도록 테레즈가 21살이 되자 아들과 결혼시킨다. 따라서 테레즈 드강이 이 책의 제목인 '테레즈 라캥'이 된다.
결혼 후 이들은 파리 '퐁네프 파사주'로 이사하여 라캥부인은 잡화상을 운영하고 카미유는 철도회사에 취직을 한다.
욕망을 모르는 병약한 카미유, 불같은 욕망을 꽁꽁 숨긴채 억눌린 채 살아가는 테레즈,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떨림도 흥분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앞에 로랑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로랑은 카미유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로 카미유와 같은 철도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
이런 로랑을 테레즈는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억센 머리칼, 혈기 좋은 반반한 얼굴, 황소도 잡을 듯한 뭉뚝하고 퉁퉁한 손, 굵고 짧은 기름진 목 등 한 마디로 남성 호르몬이 넘쳐 흐르는 그런 남자를 테레즈는 처음 보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편 카미유와는 다르게 남성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로랑에게 테레즈는 전율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동물적인 욕망의 소유자'인 로랑은 이런 테레즈의 욕구불만을 간파하고 테레즈를 유혹하기로 결심하는데 그 과정이 자연주의 소설답게 참으로 계산적이다. 얼굴도 별로고 사랑하지도 않지만 공짜(!)로 육체적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 카미유가 알게 되도 그냥 힘으로 날려버리면 되니 로랑에게는 밑져야 본전인 것이다.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라캥부인, 대화상대로 괜찮은 카미유, 자신을 덮치기를 은근히 바라는 듯한 테레즈의 은근한 시선 등 로랑은 라캥 집안을 뻔질나게 드나든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오고 로랑은 '그녀의 머리를 젖힌 후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으스러지도록'(p.65) 누르고, 조금 반항을 하던 테레즈도 곧 그에게 몸을 맡기고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렬한 행동'...
로랑과 테레즈는 카미유와 라캥 부인을 속이고 은밀한 만남을 계속하고 소설은 잡화상이 있는 퐁뇌프 파사주의 분위기처럼 더욱 끈적하고 습한 냄새를 풍기며 전개된다.
<테레즈 라캥>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소설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졸라는 이 책의 서문에서 '각 장(章)이 기묘한 생리학적 경우에 대한 연구'이며 '해부학자가 시체에 대하여 행하는 것과 같은 분석적인 작업을 살아 있는 두 육체에 대하여 행한 것뿐'(p.11,12)이라고 말한다.
정말 이 말이 맞는게 졸라는 인간이라는 두 동물, 로랑과 테레즈를 소설 속에 등장, 만나게 하여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두 '동물'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과학자처럼 묘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통 치정소설에서 보이는 사랑의 드라마는 없다. 해부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면서 그 어떤 감정을 보이지 않듯이, 졸라도 이 두 사람의 행동과 반응, 파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그들을 묘사하면서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두 인물을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은 과학자의 그것처럼 냉담하고 때로는 너무나 집요하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 신경과 피, 즉 육체에 의해 강하게 지배받는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독자들에게 너무나 간절히 보여주고 싶어한 졸라의 의지가 나에겐 너무 많이 느껴졌다.
'작가가 자신의 자연주의 소설이론에 이 정도로 진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각 장에 걸쳐 계속 중언부언(重言復言)으로 늘어놓는 묘사가 지겹기도 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28세 졸라의 노력이 문장마다 느껴졌다.
음습한 퐁네프 파사주를 배경으로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은 인물'들을 면밀히 분석, 기록한 이 작품은 '인간에 관한 객관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에밀 졸라의 진지함과 노력을 담고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간 정도까지는 굉장히 흥미롭게 읽다가 중후반부터 했던 말을 요렇게 저렇게 말만 바꿔서 계속 하는 작가의 집요함에 질려 속으로 '이건 별 3개다'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아! 마지막 장에서 별 하나를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도 못했던 결말, 그리고 이들이 단순히 육체에 종속되어 그것에 지배받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작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여준 결말에 나는 그만 소름이 돋았다.
나는 현재 이 책을 포함 졸라의 책을 5권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그의 모든 책을 다 모으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진지함, 노력, 집요함 이런 점이 인상깊었고 무엇보다 그는 행동하는 정직한 지식인이 아니던가...
이 작품은 이 후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인상주의 화가 드가는 테레즈와 로랑이 결혼하고 맞이하는 첫날 밤을 그림으로 남겼다.
'실내(The Interior)' 혹은 '겁탈'(The Rape)'로 불린다.
또한 연극과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2009)가 <테레즈 라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가장 최근에 상영된 영화로 2013년 개봉한 'In Secret' 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작과 동명인 '테레즈 라캥'으로 상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