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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ㅣ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평점 :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그 모습이! 그가 바틀비였다. (p.25)
<필경사 바틀비>는 <모비 딕>으로 유명한 작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이 1853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 19세기 중반 맨해튼 월 스트리트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로 취업한 바틀비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라는 말로 유명한 바틀비. 이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는 자신을 고용한 변호사인 '나'의 요구를 여러 번 거절한다.
커피를 타 오라거나 개인 심부름 같은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 필사원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검증을 도와달라는 것인데, 그것을 거부하니 고용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기막힌 노릇이다.
급기야 며칠 후에는 자신의 본업인 필사마저 그만두고 그저 '사무실의 붙박이'가 된다.
필사료 외에 웃돈을 얹어주며 좋은 말로 일을 안 할거면 나가줘야 겠다는 '나'의 말에도 그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바틀비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이 소설은 바틀비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윗 사람의 지시에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삭막한 관료 사회에서 우리에게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지 않는가...
사람이 노동하는 기계로 전락해버리고 또 언제든지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는 노동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소외현상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바틀비의 행동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이미 이런 환경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다.
역자는 바틀비의 거부 행위를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행위가 기정사실화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p.101)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하지 않기를 선택한 권리가 있음을 작가는 바틀비를 통해 보여준다.
책 뒷면 보르헤스의 말처럼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특히 <변신>과 <단식광대>가 생각이 난다.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단식 광대는 끝까지 음식을 거부한다. 이유는 입에 맞는 음식이 없기 때문인데, 안 하는 편을 선택하는 바틀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 입에 맞는 음식이 없는가', '왜 바틀비는 안하는 편을 택하는가' 기존 세상을 향한 '소극적인 저항'이라는 점, 역시나 책 읽기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을 하게 하는 점이 두 소설을 같이 떠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