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경 시인이 소주잔을 쥐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의 머리가 지구처럼 23.5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각도기로 재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23.5도라고 직감했다. 왜 그런 직감을 했는지 까닭은 모르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기운 그의 머리 쪽 방향에 놓인 빈 병들. 거나하게 취한 최 시인의 불안한 기울기를 떠받쳐주는 역할처럼 보인다. 소주잔을 든, 취한 사내 모습 사진으로 이처럼 구도(構圖)가 잘 잡힌 사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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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에 10분 이상 늦었다. 별나게 도로에 차들이 붐벼 늦은 것이다. 한 달 만에 보는 친구들. 내 자리를 만들어주면서 악수를 청한다. 이런 말들도 하면서 말이다. “늦는 사람이 아닌데 늦다니 오늘 웬일인가 했지.” “학창시절에도 결석은 해도 지각은 안하는 친구가 늦으니 이상하다 했어. 하하하.” “아무래도, 이번 모임 날을 주말로 잡은 게 무리였나 보이. 잊지 말고 다음번에는 평일로 잡아야 해. 퇴직한 놈들이 굳이 주말에 만날 일이 있나? 안 그래? 하하하.” 어지럽게 오가는 술잔들. 남들이 보면 점잖은 할아버지들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년들처럼 새끼를 입에 달고 환담이 오간다. “야이 새끼야, 어서 술잔 비워.”“원 새끼도. 성급하긴!”

결코 싸우는 소리가 아니다. 너무 정겹다 보니 그러는 거다.

바로 한 달 전 모임의 장면이다. 아아, 그런 일상(日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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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박효규 또한 이정규처럼 나와 같은 초중고를 다녔다. 그에 관한 기억은 초등학교(교대부속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날이 첫 번째다. 햇빛 화창한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귀갓길에 그의 집에 들르게 됐는데 놀랍게도 작은 아코디언을 꺼내 내 앞에서 연주해 보이는 게 아닌가!

1960년이던 그 시절 음악교과서의 사진으로나 보던 귀한 악기 아코디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주까지 하다니,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릴 적 친구 얘기를 쓸 때마다 놀랐다!’는 표현을 나도 모르게 한다. 하긴 어릴 적 눈앞의 사물이나 사건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일이 있더니 세월이 흘러 친구는 음악선생으로, 나는 국어 선생으로 한 학교에서 만났다. 모 고등학교에서, 1994년이다. 우리는 어언 마흔 살 넘은 중견교사였다. 특유의 우렁찬 음성으로 재미난 얘기하기를 즐기는 친구, 50명 넘는 교직원들의 차 중 친구의 차가 가장 낡은 차였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새 차로 바꿀 만한데 오히려 그 고물차를 자랑스레 끌고 다녔다. 그뿐 아니다. 어느 날은 뒤 범퍼를 새로 간 모습으로 나타나 동료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 하는 친구의 말이 너무 재미가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난 이제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저께 어디 다녀오다가, 뒤로 오던 어떤 사람의 차가 내 차 뒤를 받았지 뭐야. 그래서 내 차 뒤를 자기 돈 들여 새로 갈아주었다니까? 이제 내 차는 앞부분만 누가 받아주면 돼. 그러면 내 고물차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새 차로 탄생하는 게 아니겠어? 하하하.”

그러더니 이듬해 여름방학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버렸다.

 

그 박효규 친구 역시 미국에서 내가 올리는 페북의 글을 재미나게 보고 있다는 얘기를, 어제 모 행사장에서 만난 후배한테 전해 들었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다.

박효규. 자네, 미국에서는 어떤 차를 몰고 다니나? 괜히 궁금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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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강석영 기자가 2년 전에 쓴 기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이하 센터)는 지난 5 1973년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A씨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했다고 밝혔다.

1972년 당시 A씨는 늦은 나이에 음악대학교에 입학해 훌륭한 성악가를 꿈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같은 해 8월경 A씨는 만학도로 음악을 전공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아버지로부터 북한으로나 가라고 꾸중을 듣고 산책을 하던 중 반발심과 자책감의 표현으로 김일성 만세라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마침 길을 가던 시민이 A씨의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내 경찰이 나타나 A씨를 연행했고 수사과정에서 폭행과 허위진술을 강요해 기소했다. 1973 A씨는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판결 이후 그는 악기 연주를 포기해야만 했고 정신적 충격으로 노래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그런 엄혹한 시대에 마치 조금만 참고 살자는 듯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노래를 불러서 단번에 인기가수가 된 송대관.

 


세월이 약이겠지요 당신의 슬픔을

괴롭다 하지 말고 서럽다 울지를 마오

세월이 흐르면 사랑의

슬픔도 잊어버린다

이 슬픔 모두가 세월이 약이겠지요

세월이 약이겠지요

세월이 약이랍니다 이 몸의 슬픔을

서럽다 하지 않고 괴롭다 울지 않으리

세월이 흐르면 상처의

아픔도 잊어버린다

이 슬픔 모두가 세월이 약이랍니다

세월이 약이랍니다

 

송대관 그가 EBS싱어즈란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이겨내고 있는 그가 이런 말을 해 나를 감동시켰다.

저는, 돈보다는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노래 부릅니다.”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순수한 직업관일까.

이 땅의 수많은 대중들이 사랑하는 가수 송대관. 그의 장구한 건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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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 화백한테서 음악을 선물 받았다.

수많은 노래가 담긴 조그만 usb이다. 내가 좋아하는 70, 80 가수들의 노래다. 그 중에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있었다. 컴퓨터로 들어보았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그 순간 지금은 사라진 육림극장 앞의 올훼다실이 떠올랐다. 1971년 겨울이다. 길을 걷다가 그대로 들어가는 1층인데다가, 틀어주는 음악과 어둑한 실내조명이 좋아 나는 그 겨울 올훼다실을 간간이 들렀다. 마음 같아서는 날마다 들르고 싶었지만 돈이 궁한 사정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대학 2학년일 즈음이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들렀다가 어디선가 본, 낯익은 사내와 이웃하고 앉게 됐다. 어둑한 실내이지만 가까이 이웃해 앉았으므로 그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분명 낯익은데 누굴까?’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씽긋이 웃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TV에 나오는 배우 김희라였다.

그 때 양희은의 아침이슬 노래가 어두운 지하에서 떠오른 찬란한 붉은 해처럼 실내에 울려 퍼졌던 것이다.

 

긴 밤 지새우고/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알알이 맺힐 때/아침동산에 올라/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내 맘에 설움이/알알이 맺힐 때/아침동산에 올라/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후기1: 당시 춘천의 공지천은 겨울이면 꽁꽁 얼어 전국적인 빙상장이 되었다. 선수가 아니더라도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들었다. 그 날, 김희라씨가 공지천에 스케이트를 타러 왔다가 잠깐 올훼다실에 들렀던 것 같다. 그가 앉은 자리의 의자 한 편에 스케이트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잘생긴데다가 한창 젊어서 같은 사내인 내가 봐도 멋져보이던 김희라씨.

이제는 병마에 시달리는 노후란다. 마음 아프다.

그 날 김희라씨와 나는 그저 씽긋 웃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소 닭 보듯 이웃해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후기2: 올훼다실의 이런저런 기억들을 바탕으로 2018년에 작품 ‘K의 고개를 쓴 것이다. 이상한 일은, 앞으로도 올훼다실을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도 쓸 것 같다는 사실이다. 한 편, 현재 춘천 시청 부근에는 올훼의 땅이란 카페가 있다. 소양 1교 부근의 봉의산 가는 길카페와 함께 춘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소문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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