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 화백한테서 음악을 선물 받았다.

수많은 노래가 담긴 조그만 usb이다. 내가 좋아하는 70, 80 가수들의 노래다. 그 중에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있었다. 컴퓨터로 들어보았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그 순간 지금은 사라진 육림극장 앞의 올훼다실이 떠올랐다. 1971년 겨울이다. 길을 걷다가 그대로 들어가는 1층인데다가, 틀어주는 음악과 어둑한 실내조명이 좋아 나는 그 겨울 올훼다실을 간간이 들렀다. 마음 같아서는 날마다 들르고 싶었지만 돈이 궁한 사정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대학 2학년일 즈음이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들렀다가 어디선가 본, 낯익은 사내와 이웃하고 앉게 됐다. 어둑한 실내이지만 가까이 이웃해 앉았으므로 그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분명 낯익은데 누굴까?’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씽긋이 웃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TV에 나오는 배우 김희라였다.

그 때 양희은의 아침이슬 노래가 어두운 지하에서 떠오른 찬란한 붉은 해처럼 실내에 울려 퍼졌던 것이다.

 

긴 밤 지새우고/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알알이 맺힐 때/아침동산에 올라/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내 맘에 설움이/알알이 맺힐 때/아침동산에 올라/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

 

 

후기1: 당시 춘천의 공지천은 겨울이면 꽁꽁 얼어 전국적인 빙상장이 되었다. 선수가 아니더라도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들었다. 그 날, 김희라씨가 공지천에 스케이트를 타러 왔다가 잠깐 올훼다실에 들렀던 것 같다. 그가 앉은 자리의 의자 한 편에 스케이트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잘생긴데다가 한창 젊어서 같은 사내인 내가 봐도 멋져보이던 김희라씨.

이제는 병마에 시달리는 노후란다. 마음 아프다.

그 날 김희라씨와 나는 그저 씽긋 웃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소 닭 보듯 이웃해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후기2: 올훼다실의 이런저런 기억들을 바탕으로 2018년에 작품 ‘K의 고개를 쓴 것이다. 이상한 일은, 앞으로도 올훼다실을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도 쓸 것 같다는 사실이다. 한 편, 현재 춘천 시청 부근에는 올훼의 땅이란 카페가 있다. 소양 1교 부근의 봉의산 가는 길카페와 함께 춘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소문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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