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맛비에 농장에 가지 못했다. 웬일로 어제는 비가 그치며 해까지 잠시 났다. 나는 집에 가만있을 수 없어 차를 몰고 20리 넘어 있는 농장에 갔다. 역시 농장은 잡초들이 기승을 부려 얼마 안 되는 작물과 아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화초들을 쉬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록적인 50일 장맛비의 결과였다.

다행히도 예초기가 작동했다. 예초기를 들고 잡초들을 쳐나가다가 순간 강렬한 통증에 작업을 중단했다. 내 왼손의 손등 한 군데에서 발생한 통증.

누가 그랬는지, 잡초더미로 달아나버려서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벌의 소행 같았다. 예초기를 든 손의 높이로 봐, 그런 높이에서 뱀이 깡총 뛰면서 저지르기 만무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의 반응이다. 그 통증에 순간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하루 지나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50일이나 계속된 지루한 장맛비와, 그 이상 지루하고 답답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 나는 갑갑해 죽을 뻔했다가 그 벌에 쏘였기 때문이다. 강렬한 통증은, 기나긴 갑갑한 생활을 순간 잊게 해주는 쾌감 같았다. 하루 지난 오늘 손등이 부어올라 약을 발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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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직생활 30년 중 27년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년을 중학교에서 보냈다.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다시골 읍에 있는 중학교인데도 대도시의 중학교 못지않게 학력제고에 극성이었다보통 6시간 본수업 후에도 보충수업을 두 시간씩늦도록 학생들을 공부시켰다그러니초등학교에서 편히 지내다가 막 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은 아주 힘겨워했다그래도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원래 중학교는 그러는가 보다’ 체념하며 적응들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생이 하나 있었다나는 몇 십 년 지난 지금도 그 학생의 이름을 기억한다○○이었다.

 

산의 진달래꽃들이 아름답던 봄날에 녀석은 느닷없이 학교를 결석했다부모도 그 사실을 몰랐다가 담임선생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니 사유(事由)가 딱히 없는 무단결석이었다.

대개 학생이 무단결석한다 해도 하루쯤이며해 저물녘 자진 귀가해서 부모님한테 호되게 야단 맞고는 다음 날부터 정상 등교를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러질 않았다하루이틀사흘무려 일주일이 되도록 무단결석이 이어졌다부모가 파출소에 실종인 신고를 할 만도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녀석이 동네 산에서 지내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된 때문이다학교의 담임선생 또한 녀석과 친한 학생들을 찾아 녀석의 행방을 알아봤는데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걔가 혼자 산에서 진달래꽃들을 따며 놀다가 우리가 이름을 부르며 가면 얼른 다른 데로 숨어버린다니까요산이 우거져서 찾을 수 없어요.”

결국 부모가 결정을 내렸다. ‘학교 다닐 생각이 전혀 없는 아들이니까 학교를 자퇴시키자.’

 

그 후 전개된 녀석의 행로가 흥미로웠다녀석은 자신이 이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하산(?)하더니 아는 중국집의 배달원이 된 것이다부모가 시킨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진 일이라 했다.

놀랍게도자기가 다녔던 학교의 교무실에도 철가방을 들고서 배달 온 녀석작은 몸에 철가방은 무거워보였다선생 한 분이 짓궂게 물었다.

일이 힘들지 않니?”

말없이 미소만 짓는 녀석.

공부보다 이런 게 더 좋아?”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깨달았다녀석은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하기보다는 철가방을 들지언정 여기저기 바람 쐬며 다니는 게 좋은천생 자유인(自由人)이라는 사실을.

 

이제 환갑 나이가 됐을 녀석지금쯤 잘 됐다면 그 시골 읍의 어느 중국집 사장님이 돼 있지 않을까그러면서 계산대만 지키지 않고 가끔씩 직접 철가방을 들고 밖으로 배달도 나갈 것이다. 오토바이를 신나게 타고서 말이다.

틀림없는 내 예감이다.   

 

사진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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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였다.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돌고 있지만 교실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보다는 무덥고 끈끈한 공기를 휘젓는 짓에 불과했다. 초보교사인 나는 교단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다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선생에 대한 예의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뿐 더위에 지쳐서 반쯤 졸고들 있었다.

본보기로 한 학생을 일으켜 세워 한바탕 야단침으로써 수업 분위기를 일신시킬까 했지만그래 봤자 그 효과가 몇 분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워낙 무더운 날씨였으니까. 나도 모르게 신세한탄을 했다.

나 참, 이렇게 수업해먹기 힘들어서야!”

그러자 1분단의 뒤쪽에 앉아 있는 녀석이 큰 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봉급이 나오잖아요?”

순간 교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학생들이 졸다 말고 확 잠이 깨서 과연 이 불의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까두려운 눈빛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교단에 선 지 얼마 안 된 초보교사로서 나는 판단을 잘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런 판단을 한 것이다. ‘저 녀석이 날씨가 하도 무더워서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일게다. 괜히 문제 삼으면 일만 복잡해진다.’ 그래서 이런 말로 넘겨버렸다.

허허허그러게 말이다.”

긴장했던 학생들 모두 와하하! 웃어버렸다. 그 바람에 녀석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고 교실은 아연 활기가 살아났다. 나는 수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어언 환갑 나이가 됐을 녀석. 지금 어떻게 지낼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있는 회의석상 같은 데에서 불쑥 난감한 소리를 하진 않을까? 예를 들면 마을 회의 중에 이장님이 한창 얘기하는데 불쑥 이장님은 배도 고프지 않소? 밥 먹고 합시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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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가 차 뒤쪽에서 났다. 실내 후시경을 보니 웬 교통경찰차가 사이렌에 경광등까지 번쩍이며 차 뒤로 따라붙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를 세웠다. 교통경찰차도 따라서고 이윽고 경찰관 한 명이 내렸다. 내 차의 열린 운전석 창 가까이 와 말했다.

범칙금을 내셔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서류에 뭘 적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결코 과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지 한 장 떼이면 몇 만 원인데 가만있을 수 없었다.

아니, 제가 뭘 어겼습니까?”

운전 중 전방주시태만입니다.”

아니, 조심해서 천천히 달렸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건 어째 이상하다. 그렇다, 꿈을 꾸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빨리 깨자.’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거실 아랫목이었다.

늙어서일 게다, 새벽 4시경에 잠이 깬다. 그러면 컴퓨터를 켜서 하룻밤 새 뉴스도 보고 그러다가 6시경에 혼자 주방에서 아침밥을 먹는다. 곤하게 자는 아내를 깨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식후 30분에 혈압약과 통풍약을 먹는다. 전에, 약봉지를 달고 사는 노인들을 참 한심하게 여겼는데 내가 바로 그런 노인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약 기운에다가 식곤증이 복합적으로 밀려오면서 다시 아침잠을 30여 분 잔다. 오늘은 그 순간에 교통경찰한테 혼나는 꿈을 꾸다 깬 것이다. 꿈이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참 어이없다는 생각도 든다. 꿈속에서이라는 걸 의식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은 물론이고 한 10년 전만 해도 자면서 꾸는 꿈은 조금도 의심 없는 완전한 꿈이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꿈과 현실이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

모처럼 꾸는 꿈조차 순수함을 잃다니!’

정처 모를 실망감에 거실 창밖을 망연하게 내다보았다. 어제는 종일 흐린 것 같더니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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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성각 후배(소설가. 현재는 환경운동에 매진하고 있다.)를 한 번은 만날 거라 생각했다. 다른 데도 아닌 춘천의서면 어느 마을에 와 살고 있다니(박기동 시인이 전한 소식이다.) 머지않아 만나게 되겠지 한 것이다. 그러면서 삼사 년이 그냥 흘렀다.

 

나는 티베트 불교의 김규현 법사를 한 번은 만나고 싶었다. 2016년에 첫 작품집을 낼 때 티베트 천장사를 주인공으로 한 라싸로 가는 길을 쓰면서부터다. 티베트 관련 서적들을 구해 그 지역의 문화(특히 천장 풍습)를 공부한 뒤 썼지만 아무래도 미진한 마음이었다. ‘룽다타르쵸는 어떻게 다른지, ‘티베트 불교를 밀교라고도 하는데 왜 그런지등등 김규현 거사를 직접 만나 봬야 해소될 물음들이었다. 하지만 김 거사는 무슨 일인지 저 먼 네팔에 가 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2018년에 두 번째 작품집을 내면서 먼동이라는 티베트 천장사의 행로를 썼다. 티베트에 가보지도 않고 관련서적의 지식에다가 상상력을 보탠 그 먼동에 지인들이 두 번째 작품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좋아하는 데 나는 놀랐다. 하긴 첫 번째 작품집의 라싸로 가는 길역시 반응이 좋았다. 그 때문에 2년 지나 먼동을 쓴 것이지만.

이래저래 나는 김규현 거사를 한 번은 만나봐야 했다. 하지만 네팔이란 먼 나라를 그 용건 하나로 찾아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편하게 결론 내렸다. ‘연이 닿으면 만나겠지.’

 

나는 마임이스트 유진규씨를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다. 물론 그를 TV에서 자주 봤고 내가 사는 춘천 어느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지만실제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나의 이런 말에 누군가가 질문할 수 있다.

아니, 춘천에 살면서 유진규씨 마임공연 한 번 못 봤단 말이오?”

그렇게 됐습니다.”

 

202076일 밤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서면에 있는 나비야 게스트 하우스에 갔다가 그 세 사람을 한꺼번에 만났다. 40여 년 전 강릉 단오제가 열리는 남대천 어느 카페에 마주앉아 대작하던 추억이 여태 생생한 최성각 씨. 티베트 천장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쓰게 되면서 한 번 만나 뵀으면 한 김규현 거사.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 그리고 다른 좋은 분들.

모두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숲이 가까이 있어 모기들이 성가시긴 했지만 즐거운 밤이었다. ()들이 모인 기념비적인 밤.

그 밤의 장면들을 내 아내가 사진으로 담았다.

 

 

덧붙임: 내 평생 게스트 하우스라는 데를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우리말로 나그네들이 묵는 집이 아닐까?

그 날 밤 나그네들이 연을 따라 그 집에서 만났다. 나그네. 우리는 사실 이 세상에 온 나그네다. 세상 뜰 때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한다. 하긴 세상에 태어날 때도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던 것을.

공수래공수거.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202076일 나비야 게스트하우스의 밤이 추억으로 깊게 남을 거라 여기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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